원본 :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http://blog.naver.com/imkcs0425/60168289128

20. 대형보병상륙정(LCIL) 

 

영국은 1940년 6월에 유럽에서 치욕스럽게 쫓겨난 후 독일 치하의 유럽에 여러 차례 소규모 기습 작전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이런 기습 작전에 구조용 모터보트를 썼고, 이어서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히긴스 보트를 썼다.

그러나 영국은 곧 기습작전용으로 좀 더 큰 상륙정을 원하게 되어 페어마일 사가 설계한 100인승 목제 상륙정을 채택했으나 성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페어마일 사의 대형 목제 상륙정은 1942년 7월에 소형보병상륙정(LCI(S) = Landing Craft, Infantry, Small)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영국은 200 명을 상륙시킬 수 있는 45m 길이의 금속제 상륙정을 원했으나 영국 조선소에서는 이런 상륙정을 필요한 만큼 만들 여유가 없었다.

결국 영국이 찾아낸 해법은 또다시 미국이었다. 

 

영국이 원한 것은 본격적인 프랑스 침공에 사용할 상륙정이 아니라 프랑스 침공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기습 작전들을 실시하기 위한 대형 상륙정이었으나 미국은 그런 기습작전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은 자신들이 마치 본격적인 유럽 침공에 써먹기 위하여 새로운 대형 상륙정을 원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전차상륙함(LST)의 선례를 떠올린 영국은 지원을 기대하면서 먼저 미육군의 의중을 타진해 보았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미해병대는 이미 1930년대 초반에 100 명 이상이 타는 대형 상륙정을 포기했으며 미육군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미육군은 프랑스 침공 때 최초 제파의 병력들은 모두 대형병력상륙정(LCPL)이나 기계화상륙정(LCM)에 실어 상륙시킬 예정이었다.

 

1942년 4월 초에 영국은 미해군 함선국을 직접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맘때에는 미국의 조선 능력도 전부 동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건조 목록에 새로운 대형 상륙정을 끼워넣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영국해군은 미해군 함선국을 공략하기 위하여 정교한 계략을 썼다. 

 

1942년 4월 30일에 미해군과 영국해군의 참모들이 워싱턴에서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거기에 맞추어 영국해군성에서는 미해군 함선국장인 알렉산더 반 퀴렌 소장에게 전문을 한 통 보냈다.

영국해군성은 이 전문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대형 상륙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상륙정의 건조를 위하여 유능한 민간 사업자에게 전권을 위임해 주도록 미국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능한 민간 사업자란 명백하게 히긴스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사실 이때 히긴스는 이미 주문받은 각종 상륙주정들과 어뢰정들을 제때 생산해 납품하기에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히긴스는 전쟁 기간 동안 상륙주정들과 어뢰정들을 합쳐 20,000 척 이상을 생산했다.

 

이틀 후인 5월 2일에 영국해군성 대표단의 일원인 록스덴 중령이 함선국을 방문하여 예비설계반을 이끌고 있던 코크레인 대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록스덴 중령은 영국해군이 원하는 새로운 대형 상륙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히긴스임이 확실한 유력한 민간 사업자와 사흘 후에 만나서 새로운 대형 상륙정의 건조에 대하여 상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퀴렌 소장이 받았다는 전문 내용을 알고 있는 데다가 기계화 상륙정(LCM)의 채택 문제를 놓고 히긴스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코크레인 대령은 록스덴 중령의 수작에 그대로 걸려들었다.

 

그는 록스덴 중령에게 민간인 사업자를 만나기 전에 자신들에게도 그 새로운 대형 상륙정 개발에 참가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록스덴 중령은 못 이기는 척하고 미리 준비해 갔던 모든 자료를 넘겨주었고, 함선국 예비설계반은 불과 3일이 채 걸리지 않은 5일 아침까지 그 방대한 자료들을 모두 소화하고 정리한 다음 자신들의 안을 만들어 가지고 록스덴 중령을 다시 찾았다.

함선국의 정성어린 자료들을 살펴본 록스덴 중령은 감명을 받은 표정을 지으면서 오후로 예정된 사업가와의 약속을 취소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약속이 잡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렇게 함선국을 끌어들인 영국은 이번에는 함선국의 지지를 이용하여 육군을 설득했다.

1942년 5월 10일에 열린 육군과의 회의에서 영국해군 대표단은 300 척의 새로운 대형 상륙정만 있으면 프랑스 침공시 최초 제파인 60,000 명의 보병 모두를 상륙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고, 함선국의 기술자들이 새로운 대형 상륙정 300 척을 1943년 4월 15일까지 준비할 수 있다고 보증했다.

안 그래도 프랑스 침공에 작은 상륙주정만을 고집할 경우 너무나 많은 숫자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던 육군도 이 새로운 대형 상륙정을 지지했다.

 

영국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새로운 대형 상륙정이 프랑스 침공에 요긴하게 쓰이리라는 그들의 주장은 옳았다.

1942년 7월에 대형보병상륙정(LCI(L) = Landing Craft, Infantry, Large) 라는 이름을 얻은 이 새로운 대형 상륙정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다수가 참가하여 맹활약했다.

 

해군과 육군의 지지를 모두 획득한 대형보병상륙정은 이제 당당히 미국의 건조 목록 상위에 이름을 올렸고, 건조 작업은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함선국은 육군과의 회의가 있은지 불과 10일 후인 5월 21일에 대형보병상륙정의 특성을 확정했다.

원래 이 단계에서 계약설계반(contract design section)으로 넘기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예비설계반에서 계약용 설계도까지 직접 그렸다.

그리하여 록스덴 중령이 코크레인 대령을 만난지 불과 1달 만인 1942년 6월 3일에 함선국과 조지 로울리 조선소 및 뉴욕 조선소 사이에 대형보병상륙정 300척의 건조를 위한 계약이 서명되었다.

건조가 시작된 것은 1942년 7월 7일이었고, 최초의 대형보병상륙정이 취역한 것은 10월 9일이었다.

 

함선국은 대량생산을 위하여 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고무같은 중요한 전략물자를 적게 사용하면서 미숙한 승무원들을 위하여 유지 및 정비가 쉽도록 설계했다.

대형보병상륙정은 당시의 상륙함정으로는 유일하게 가변피치 프로펠러를 채택했는데 통상적인 고정피치 프로펠러에 비하여 최대 속력은 약간 떨어졌지만 감속 기어의 숫자가 줄어들어 전체적인 구조가 간단해지고 중량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엔진은 800 마력짜리 쿼드 디젤 엔진 2개를 사용하여 2개의 프로펠러를 돌렸다.

 

대형보병상륙정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총 941척이라는 많은 숫자가 건조되었다.

영국은 렌드리스로 220척을 공여받았으며, 소련이 30척을 받았다.

대형보병상륙정의 실전참가는 1943년 7월에 남태평양에서 실시된 키리위나 상륙작전이 최초이다. 

 

아래는 대형보병상륙정을 포함하여 미해군이 영국해군의 영향을 받아 건조한 상륙함정들의 제원이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상륙함정들. 출처 : U.S. Amphibious Ships and Crafts, P.104)

이 최초의 형식을 LCI(L)-1 급이라고 분류한다.

 

(LCI(L)-1 급인 대형보병상륙정 제213호)

 

미해군은 영국해군과 달리 대형보병상륙정을 공격용 상륙정이 아니라 프랑스 침공시 영국해협을 왕복하면서 병력을 실어나를 수송함으로 보았다.

따라서 함선국은 1943년 5월에 취역한 보병상륙정 제351호부터는 원활한 항해를 위하여 함교를 한단계 높이고 상부구조물을 확장했다.

영국해군은 전차상륙정의 경우를 교훈삼아 반드시 자력으로 대서양을 건널 수 있도록 요구했는데 대양 항해에는 높은 함교가 여러모로 유리했다.

이후의 대형보병상륙정들은 LCI(L)-351 급으로 분류한다.

 

(대형보병상륙정 제351호. LCI(L)-1 급과 비교하여 한단계 높아진 둥근 함교와 확장된 상부구조물이 눈에 띈다.)

 

1944년에 건조된 대형보병상륙정들은 함수 옆에 비치된 상륙용 경사로 대신 전차상륙함처럼 함수에 개폐식 문을 달고 그 안에 짧은 램프를 설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력은 물론 소형 차량도 실을 수 있게 되었고, 보급품 양륙도 훨씬 쉬워졌다.

 

(1944년 5월에 건조된 대형보병상륙함 제795호. 기존의 대형보병상륙정에 있던 긴 상륙용 램프 대신 함수에 개폐식의 문과 짧은 램프를 달았다.)

 

함수에 개폐식의 문과 짧은 램프를 단 대형보병상륙정들은 LCI(L) 641-657, 691-716, 762-780, 782-821, 866-884, 1024-1033, 1068-1098호이다.

번호가 불연속적인 이유는 각 조선소마다 대량으로 발주하면서 미리 번호를 할당했기 때문으로 연결된 숫자들은 각 조선소의 1944년 이후 건조분이다.

 

공격용으로 사용하려던 영국해군의 당초 계획과 달리 대형보병상륙정은 노르망디 전투에서 주로 영국해협을 오가면서 병력을 실어나르는 수송함의 역할을 했고, 태평양에서도 주로 해안이 확보된 이후에 증원 병력을 상륙시키는 역할을 했다.

 

미해군은 대형보병상륙정을 독립적인 함으로 취급했다.

대양을 항해할 수 있고 다른 함에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미해군의 인식은 옳은 것이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에 영국해군에서는 실제로 대형보병상륙정을 대형보병상륙함(LSI(L) = Landing Ship, Infantry, Large)로 재분류했다. 

 

반면 200톤 남짓한 배수량을 가진 대형보병상륙정은 본격적인 함으로 취급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는데 예를 들어 연료정제용 원심분리기가 없었다.

함으로 취급받던 대형보병상륙정은 급유함으로부터 직접 연료 보급을 받았는데 이럴 경우 연료에 물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연료정제용 원심분리기를 가진 대형함은 문제가 없지만 원심분리기가 없는 대형보병상륙정에서는 연료에 포함된 물을 비롯한 불순물 때문에 디젤 엔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오키나와에서는 대형보병상륙정들을 개조한 로켓포정인 LCI(R)들이 급유함에서 받은 경유에 포함된 물 때문에 전부 엔진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통신 장비가 미비하여 함대 방송을 청취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소형 주정들에게만 보급되는 페인트도 보급받지 못했다.

 

대형보병상륙정은 전차상륙함이나 전차상륙정에 비하여 전통적인 배의 형태에 가까웠고 따라서 속력이 훨씬 빨랐다.

이런 빠른 속력 때문에 대형보병상륙정은 병력을 상륙시키는 본연의 역할 이외에도 다른 용도로 많이 쓰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륙작전시 화력지원 역할로 실제로 미해군은 일본본토 침공시 거의 모든 대형보병상륙정을 화력지원정으로 개조하여 투입할 예정이었다.

(상륙함정을 개조한 화력지원함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기술할 예정입니다.)

 

일부 대형보병상륙정들은 태평양 전선에서 탐조등을 싣고 밤새도록 아군 주둔지 주변을 비추면서 일본군의 야습에 대비하도록 도움을 주거나 소해정으로 활약했다.

맥아더 장군의 남서태평양지역군에서는 대형보병상륙정 4척에서 수중파괴반(UDT)을 운용했는데, 비공식적으로 LCI(D) 라고 불린 이 대형보병상륙정들은 각 6명으로 이루어진 수중파괴반 2개 반과 40톤의 폭발물을 싣고 다니면서 작전했다.

또한 많은 대형보병상륙정들이 함대 정박지에서 우편물과 인원을 수송하고, 상륙 허가를 얻어 육지로 상륙하거나 귀함 시간이 되어 자신들의 배로 돌아가는 수병들을 태우고 다녔다.

 

가변 피치 프로펠러를 장착한 대형보병상륙정은 힘이 좋았기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일부 대형보병상륙정들이 탄약을 가득 실은 바지선들을 예인하고, 고장을 일으키거나 좌초된 상륙주정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으며, 소방정으로도 활약했다.

남프랑스 상륙작전에서는 4척의 영국해군 소속 대형보병상륙정이 소형 상륙주정들의 모함 역할을 했고, 미해군 소속의 9척은 구난정 역할을 했다.

 

대형보병상륙정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대량으로 생산되어 유용하게 사용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인원수송용 소형함정으로 화물 탑재량이 75톤 밖에 되지 않고 소형 차량 이외에는 차량 수송이 불가능하여 범용성이 떨어졌다.

그런데 막상 인원수송용으로 쓰기에는 멀미가 심한 단점이 있었으므로 종전이 되자 대형보병상륙정은 개조되거나 개수되지 못하고 미해군에서 곧 사라졌다. 

 

원본 :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http://blog.naver.com/imkcs0425/60168289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