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http://blog.naver.com/imkcs0425/60165925450

1. 해군위원회와 해군참모총장

19세기 말까지 미해군에는 전쟁 계획을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이 없었고, 주로 의회가 이 역할을 담당했다.

1898년에 벌어진 미서전쟁의 경험으로 미국은 앞으로의 전쟁에서는 해군 전략을 더 이상 임기응변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00년에 해군장관  존 롱은 고위 제독들로 이루어진 해군위원회(General Board)를 만들고 위원장에 마닐라 해전의 영웅으로서 해군제독(Admiral of Navy)인 조지 듀이 제독을 임명했다.

(조지 듀이 제독)

해군위원회의 임무는 전쟁시 미해군의 작전 계획을 미리 작성해 두는 일이었는데, 실제로 활동을 시작하자 이 일이 사실 미해군의 운영 및 향후 발전 전략의 거의 모든 부문에 걸치는 업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예를 들어 1904년에 해군위원회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장기 계획을 해군장관에게 건의했다.

해군위원회는 로드 아일랜드 주 뉴포트에 있는 해군대학(Naval War College)과 긴밀하게 협조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새로운 전술이나 전략을 시뮬레이트하여 실효성을 검증했다.

실제로 해군대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력의 집중운용 개념을 발전시켜 항공모함 운용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마련했고, 섬 건너뛰기 작전을 검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해군대학은 명실상부한 미해군의 싱크탱크가 되었다.

1900년대 초에 미해군의 건함 계획이 담당 부서들의 보수성과 구태의연함 때문에 실제로 전투에 필요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유능한 소장 장교들이 비판하자 해군위원회가 조율하겠다고 나섰다.

건함 계획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건함관련 부서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1908년에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개입하여 해군위원회에 앞으로 미해군이 건조하는 모든 함정에 대하여 설계상의 요구 사항을 의미하는 "특성"("characteristics")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해군위원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제 작전, 인사, 기지 건설, 거기에다가 건함 계획에 이르기까지 미해군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게 된  해군위원회의 조언은 해군장관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해군위원회의 권한이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현역 군인 신분인 해군위원회 위원장 듀이 제독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비판 또한 강해졌다

1912년에 해군장관 트루먼 뉴베리는 이러한 비판을 등에 업고 해군위원회와 별도로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는 작전 보좌관(Aid for Operation)과 물자 보좌관(Aid for Materiel) 직위를 신설했다.

1914년에 듀이 제독이 사망하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해군제독 직위가 사라졌고, 다음해인 1915년에 작전 보좌관의 명칭이 해군참모총장(Chief of Naval Operation = CNO)으로 바뀌면서 듀이 제독의 후계자가 되었다.

해군참모총장은 자체의 참모부(Office of Chief of Naval Operation = OpNav)를 가지게 되었다.

이때 물자 보좌관의 후임 직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해군참모부(OpNav)의 권한이 크게 팽창하여 물자 부문을 제외한 해군위원회의 기능을 거의 흡수했고, 원래의 설립 목적인 작전 부문을 빼앗긴 해군위원회는 자연히 물자 부문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제 작전 및 인사, 훈련을 담당한 해군참모총장과 물자 부문을 담당한 해군위원회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양자를 조정하는 위치에 있는 해군장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후 물자 부문의 부서들은 형식상 해군참모총장의 지휘 하에 들어갔으나 내부 운영에서는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이러한 부서들은 건조수리국(Construction & Repair = C&R), 기관국(Engines), 병기국(Ordnance), 기지건설국(Yards & Docks) 그리고 1921년에 만들어진 항공국(Bureau of Aeronautics = BuAir) 이었다.

건조수리국과 기관국은 1940년에 하나로 합쳐져 함선국(Bureau of Ships = BuShips)이 된다.

해군참모총장의 권한 밖에 있던 이러한 부서들은 아무래도 작전 부대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 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41년에서 43년에 걸쳐 병기국이 어뢰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실패한 사건이다. 

역대 해군참모총장들은 물자 부문을 통제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물자 부문은 해군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명목상의 상관인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했으며,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던 해군장관 또한 이러한 상황을 묵인했다.

물자 부문을 직접 통제하는데 성공했던 해군참모총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함대 총사령관을 겸직하면서 해군장관을 뛰어넘어 대통령에게만 보고할 의무를 지고 있던 킹 제독이 유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함대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어네스트 킹 제독.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예를 들어 1941년에 해군위원회는 해병대의 적정 규모에 대하여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해군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하게 된 계기는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함께 이전의 참모총장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막강한 권력을 가진 킹 제독의 등장이었다.

전간기 동안 미해군은 평화시에 다수의 상륙함정을 보유할 정도로 넉넉한 예산을 받지 못했으므로 유사시에는 민간 선박들을 징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자 대부분 제1차 대전 당시에 건조되었던 민간 선박들은 낡았고 속력도 느려서 상륙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국제 정세가 점차 긴박해지자 건조수리국장을 역임한 에모리 랜드 중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해사 위원회(Maritime Commission) 가 1936년에 설립되어 매년 50척씩 향후 10년 동안 상선을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

해사 위원회의 가장 큰 임무는 전시에 적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미국과 전 세계를 연결할 수송선을 건조하는 것이었는데 일단 전쟁이 나자 매년 50척을 건조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실제로 해사 위원회는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5,601 척의 선박을 건조했다.

필연적으로 해사 위원회가 건조한 선박의 대부분은 구조가 간단하여 건조가 쉬운 리버티 선(Liberty Ship)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리버티 선은 속력이 11노트로 너무 느려서 상륙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현역 해군 중장인 랜드 위원장은 상륙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고속 수송함을 포함하여 다수의 보조함들이 해군에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고, 리버티 선과는 별도로 이러한 보조함들을 대량으로 건조하여 공급할 명쾌한 계획을 세웠다.

해사 위원회는 전쟁 기간 동안에 왕복형 증기 기관을 장착한 리버티선 2,708 척을 건조하는 동시에 증기 터빈을 장착하고 15노트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일반화물선 955 척을 추가로 건조했는데 이러한 일반화물선들 중 많은 수가 병력 수송함 및 공격수송함(AP = Auxiliary, Personnel 및 APA = Auxiliary, Personnel, Attack)또는 화물수송함 및 공격화물수송함(AK = Auxiliary, Cargo 및 AKA= Auxiliary, Cargo, Attack)으로 개조되었다.

해사 위원회가 건조한 선박들을 어느 비율로 해군이나 육군 또는 일반적인 수송임무에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합동참모본부(Joint Chiefs of Staff = JCS) 의 권한이었으며 배분 비율은 미국과 연합국의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역시 해군참모부의 기능이 엄청나게 커졌다.

1941년 말에 이미 미함대총사령관에 임명된 킹 제독이 1942년 초에 해군참모총장을 겸임하게 되면서 건함 계획에 대한 권한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킹 제독은 해군의 전략 수립 및 작전 지도만으로도 너무나 바빴으므로 실제 건함관련 임무는 해군참모차장인 프레드릭 혼 제독이 담당했다.

그리하여 해군위원회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함정의 특성을 제안하는 권한마저도 해군참모부에 빼앗기고 완전하게 몰락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은퇴를 앞둔 제독들의 코끼리 무덤으로 전락한 해군위원회는 1951년에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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