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전자실장이었던 서정욱(徐廷旭: ADD소장, 과학기술처 장관 역임) 박사의 증언.

당시 국군에서 쓰고 있던 분대용 무전기는 AN/PRC6 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부터 쓰던 구식입니다. 진공관식이고 무게도 3.4kg이나 되었고 덩치도 컸습니다. 나는 일선 지방에 있는 각 사단에 가서 이 무전기의 실태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무전기는 한국전쟁 때부터 써 왔으니 이미 노후한 고물인데다가 미군에서는 쓰지 않는 구형이라 부품부족으로 정비도 안되고 있었습니다. 작동해 보았지만 통화가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미군 통신기와 서로 교신이 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젊은 통신장교가 하는 말이 "보통 때는 안되고 간혹 통화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전쟁이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오싹해지더구만요. 중대장과도 통화가 안되고 미군과도 통화가 안 된다면 통신수단 없이 전투하라는 것 아닙니까? 나(徐)는 예비군용보다는 현역군인용 무전기가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에서는 어떤 종류의 무전기를 쓰고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월남전에서 쓰고 있는 것이 최신식 무전기일 터인데 PRT-4와 PRR-9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군은 어찌된 일인지 송신기와 수신기를 따로따로 쓰고 있었습니다. 수신기 쪽은 PRR-9인데 헬멧에 부착해서 사용하게 되어 있고, PRT-4는 송신기인데 손으로 들고 송신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분리식 무전기는 월남전에서 사용해 보니 많은 결점이 나타나서 새로 나오는 무전기는 다시 통합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국군에서 쓰고 있는 AN/PRC6을 기초로 해서 성능이 좋은 무전기를 개발하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우선 진공관식을 트렌지스터식으로 바꾸었지요. 부피도 작게 해서 전화기의 수화기 정도로 소형화하고, 무게도 3.4kg에서 1.5kg으로 가볍게 했습니다. 출력도 2배정도 증가시켰고, 채널수도 43개에서 200개로 늘렸어요. 채널수가 많다는 것은 통화할 수 있는 전화선이 많다는 것과 같지요. 전화선이 부족하면 서로 혼선이 생겨 통화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름을 KPRC-6이라고 했지요. KPRC-6은 국군이 장비하고 있는 AN/PRC-6에서 땄지요. PRC는 이동용무선전화기(Portable Radio Communication)에서 딴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형이라는 뜻에서 K를 붙였습니다. AN/PRC-6의 도면과 최신외국의 도면을 참고해서 설계를 했습니다. 규격은 미군 것을 썼습니다. 미군규격이 가장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이 무전기는 1972년 2월말경 완성되었다. 시험해보니 기대이상의 성능을 보였다. 이 시절에는 3, 4월경에 포항에서 韓美 합동 해병대 상륙연습을 실시하는 것이 연중 행사였다. 서 실장은 한국해병대 지휘관에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KPRC-6 시제품 4대를 주며 시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KPRC-6은 실전 상태에서 시험을 하게된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돌아온 무전기를 보니 국방색 도료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아마도 흙바닥에 몇 번씩이나 내동댕이 처졌나보다.

그러나 해병대의 보고는 "진짜 무전기를 처음 써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경우도 통화가 잘되었고 음성도 똑똑히 들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군과의 교신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라는 최상급 평가였다.

서 실장은 다음단계로 시험평가와 품질보증 시험에 들어갔다. 군용 무전기라는 것은 민수용 무전기와는 다르다. 심한 악조건에서도 이겨내야 한다. 전쟁터에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예사 일이다. 비도 맞을 수 있다. 쨍쨍 찌는 여름 폭염에도 견뎌야 한다. 겨울 혹한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각종 진동에서도 끄덕도 안 해야 한다. 그러니 미국에서 나와 있는 고문단의 의견은 생산은 한국에서 할 수도 있으나 품질보증만은 꼭 미국에서 해야 된다는 강한 입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ADD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이러한 품질보증제도 및 검사 시설이 없을 때이다.

그러나 시험은 해야만 한다. 서 실장은 미군통신기의 검사 기준을 놓고 어떤 방법으로 시험하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짜기 시작했다. ◇ 우선 낙하. 1m 높이에서 나무판자위에 수백번 떨어뜨려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 美松 위에 나일론 줄로 무전기를 매달았다. 높이는 1m이다. 이 나일론 줄을 가위로 끊어서 무전기를 26번 떨어뜨리는 시험방법을 썼다. 네모난 상자에는 6개의 면(面)과 모서리가 8개, 능선수가 12개 있다. 합해서 26개소의 장소에 대해서 낙하시험을 한 것이다. 이상은 없었다. ◇ 다음은 침수 시험이다. 1m 수중에 통신기를 24시간 넣고 난 후 통신기가 작동해야 한다. 시험장치만은 간단했다. 이것도 통과했다. ◇ 다음은 온도 시험이다. 24시간을 한주기로 해서 실시했다. 온도는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견뎌내야 한다. 온도는 영하 4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단계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즉 되풀이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영하 40도의 저온도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당시에도 "드라이 아이스"는 있었으나 영하 20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 끝에 두꺼운 "스치로폴"로 상자를 만들었다. 여기에 구멍을 뚫고 액체탄산가스(CO2) 봄베(CO2 소화기)의 분사구인 호스를 꽂고 온도계를 보면서 CO2를 불어넣었다. 그랬더니 영하 40도가 되었다. 그래서 무사히 시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온도 시험에도 합격을 했다. ◇ 마지막이 진동시험이었다. 국내에 진동시험기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각목(나무막대기) 끝에다가 고무로 무전기를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는 각목을 자동차에 붙잡아 매고 비포장도로를 달린 것이다. 각목의 길이에 따라 진동주파수가 달라진다. 긴 각목에도 매달아서 시험했고 짧은 각목에도 매달고 자동차를 몰았다. 이런 시험은 미군규격보다도 가혹한 시험조건이었다. 이 시험에도 합격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시험은 끝나고 KPRC-6은 합격을 했다.

그런데 미국 품질보증단의 전문가는 처음에는 KPRC-6의 품질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미군통신기의 검사규격이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은데 한국에서 만든 무전기가 이런 규격에 합격하리라고 믿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 실장은 시험을 한 현장을 일일이 안내하면서 설명을 했다. 더욱이 진동시험 때 나무막대기에 매달아 놓고 지프차로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고 하니 그때서야 "프로페셔널, 선 오브 빗치(Professional Son of Bitch)"라고 하더라고 한다. "선 오브 빗치"라는 말은 상스럽지 못한 욕이다. 그러나 여기에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붙으면 욕이 아니다. "지독한 녀석"이라는 뜻이 된다. 서 실장은 "지독한 녀석"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미국 품질보증단은 품질보증 문제에 대해서 드디어 "OK"하게 되었다.

3번째  사진은 비슷하게 생긴 2차대전의 핸디 토키. 안테나가 틀림

4번째 사진이 미군용 PRC-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