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을 기대했는데, 흐리고 살짝 비까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모스크바의 날씨가 겨울이 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한 하루였습니다.

혼자 모스크바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변 분들의 걱정을 새겨듣지 않고

혼자서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붉은 광장까지 갔었는데, 지난번에

다른 분들과 갔을 때 보다는 여유있게 구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혼자 돌아다니는 장점이 이게 아닌가 싶어요^^


구경을 하다가 붉은 광장 옆쪽(크레믈린 궁전 뒤쪽)에 있는 공원을 가보니

2차 대전에서 승리한 기념물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총을 들고 있는

경비병 사진이 흐릿하게 나와서 잘 안 보이시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거리가 먼 것 같아서 확대해서 찍으니까 크게 나오기는 했는데, 해상도가

떨어지는 걸 생각 못했습니다ㅡㅡ;;;


첫번째 사진은 기념비들 중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승전 기념비입니다.

러시아 어를 몰라서 가운데 있는 문구가 어떤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숫자를 보고 2차 대전 승전 기념비인 걸 알았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두번째로 볼 수 있는 기념물인데, 오른 편에 철모가 있는 걸

보고 전쟁 때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번째 사진은 독일에게 점령을 당했던 도시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들 중

스탈린그라드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인데, 이 비석에만 꽃이 놓여져 있어서

찍었습니다. 아마 스탈린그라드에서 온 관광객이거나 당시에 그 곳에서 싸웠던

퇴역 군인이 헌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몰라도 요즘 러시아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도시 이름을 읽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몇 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지 세어보지를 않았는데, 다음에는 몇 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지 세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20개는 되었던 것

같았는데 정확히 기억을 못하겠네요

(민스크, 키에프, 오데사, 세바스토폴, 스몰렌스크, 스탈린그라드....)



네번째 사진과 마지막 사진은 추모비 옆에 서 있는 군인들의 사진입니다.

들고 있는 총이 베트남 전쟁 때 원조되기도 했던 SKS 소총인 것 같았는데

혹시 제가 잘못알고 있다면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난 게 혼자 다니니까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반대로 당황스런 경험도 했습니다. 붉은 광장에 가보면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가 하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데, 살짝 비가 내리는

오늘도 예외없이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어요. 하객들 중 두 명이 제게 와서는

러시아 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진기를 제게 들이밀면서 이야기 하는 걸

보고 사진 찍어달라는 이야기인줄 알고 사진기 달라고 손을 내미니까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더군요. 왜 그러나 했는데, 같이 사진 찍자는 의미였고 생각지도 않게

하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신랑 신부가 저도 하객 중 한 명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ㅡㅡ;;;


사진을 찍고 나서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 다니는데 차림새가 허름한 남자가 절 보더니

러시아 어로 인사를 하면서 손을 내밀길래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내서 주니까

계속 따라오면서 더 달라고 하는 바람에 러시아 동전이 없다고 하면서 동전 지갑에 있던

동전들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해서 한 행동이지만 왜 제 동전 지갑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어요. 크게 문제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골목길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경험했던 일이라 가능한 한 큰 길로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