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병대에 입대한 것은 대학2학년때 서클활동을 하던 중 만난 복학예비역선배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당시 나는 2학년을 마치고 모두가 그리하듯 휴학계를 냈었다.
하지만, 이듬해 5월이 될때까지도 유독히 내게만은 신체검사통지서가 오지 않았고,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중 친구들은 하나둘 육군에 입대하였다.
애가달은 나머지 학교에 찾아가 어떻게 된 연유인지 확인을 했었는데, 말도 않되는 이유로 나의 휴학계만이 병무청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빨리 입영하지 않으면 복학시기를 마출 수 없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해병대에 지원하게되었다. (교무처의 철제캐비닛에 페인트 칠을 했다는데, 그 페인트가 마르기도 전에 내가 낸 휴학계를 맨 밑에 놓아 들러붙는 바람에 내것만 병무청으로 보내지 못했다는 마르스의 저주같은 설명을 들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해병대에 입영하는 순간부터 나에게는 지옥문이 활짝 열렸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훈련과, 무지막지한 구타, 폭력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마져도 공포와 괴로움이었다.
자다말고 일어나 속옷바람으로 집합하여 찬물을 뒤집어 쓰는 것은 예사였고, 군가소리, 복창소리가 적다는 이유로 살벌하게 두들겨맞는 장면들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듣기만해도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아나는 어마어마한 욕설들이 난무했고, 그렇게 훈련단을 마치고 실무로 올라갔다. (남녀의 특정신체부분이나 남녀간의 은밀한 행위를 빗댄 욕설과 자세 등이 매우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룡부대라 불리우던 나의 실무부대는 시암리의 전방에 나가있는 소충중대였다. 중대본부에 전입하기까지 사단과 연대, 대대를 거치며 겪은 그 섬찢한 공포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구타는 어느덧 나로하여금 왼만한 폭력쯤은 가뿐히 소화하는 면역력이 생기게했었다.(그래 패기밖에 더하겠니, 패바바...)
중대본부에서 사흘을 대기하다가 함께 간 동기와 함께 화기소대로 최종배치되었고, 그곳은 나의 일생에서 하루도 잊혀질 수 없는 괴로운 기억들을 안겨주었다.



인천이 집이라던 어느 선임이 있었다. 500자 초기의 그 선임은 당시 일병 고참이었고, 소대의 막내였던 나와 동기의 사이에는 단 두명의 일병선임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중대 화기소대에는 중대내의 모든 꼴통들과 문제아들을 모아놓는 집합소의 역할도 했었다, 그러니 매일 선임들만 늘어날 수 밖에....)
얼마후 그 선임은 상병진급을 했지만, 소대에 단 네명밖에 않되는 후임들과 함께 여전히 소대와 중대의 모든 살림을 맡아하는 살림꾼이었다.
당시의 선후임 해병들은 모두가 알겠지만 그 선임의 위치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중본, 화기선임들의 뒷치닥거리와 온갓 살림살이, 근무서랴, 훈련준비하랴, 모든 것이 그 선임의 몫이었다. (그 선임의 역할에 다른 별칭이 있었는데 "향도병"이라고 불렀다)
가뜩이나 행동이 굼뜨고, 느렸던 나는 그 선임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소대의 집합은 대부분이 막내인 나의 삽질로 인한 것이 주된 이유일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그 선임은 나로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나와 함께 근무조가 편성되는 날이면 그 선임은 작정한 듯 나를 기합들이려했다. M-55, 2포 방공포진지 아래 27초소에 도착하면 그 선임은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씨발새끼.....이병놈이 빠져가지구.....제껴"

목울대를 두어대쯤 쥐어박고나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빤쓰바람"

1월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위 초소에서 하얀 보급사각팬티, 일명 "알리빤쓰"만 입은채 M-16 소총을 들고, 철모를 쓴채 5분쯤 서있으면 온몸이 얼어붙다 못해 차라리 죽고싶어진다.
나도모르게 장전손잡이에 손이갈때쯤 되면 그 선임은 나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기라도 하는 듯, 쪼르려뛰기를 시키고, 초소 주위를 몇바귀씩 오리걸음을 반복해서 시키고는 했다.
그렇게 그밤을 홀딱 새우며 빤쓰바람과, 오리걸음, 쪼그려뛰기를 반복하고나면 이후 며칠간은 기합이 든 것같다가도 이내 빠지고 말았으니 나와 그 선임간의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고문관중에 대표고문관이었고, 요즘 병사들의 표현대로라면 개념이 없어도 아예 없는 무개념한 신병쉐키였던 것같다, 그래도 꿋꿋하게 군대생활했다, 뭐 몇대 쥐어터지거나 두들겨 맞는 것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던 것같다, 군대는 당연히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터라 인권이니 폭력이니하는 생각은 아예 있지도 않았었다)

흔이 있는 작업시간때의 소소한 웃음도 우리사이에는 없었고, 죽일듯이 두들겨 패는 선후임간에도 반드시 조금은 있었던 잔잔한 애틋함같은 것도 없었다.
마주칠때마다 이유도 없이 워카발로 걷어 차거나, 목 울대를 쥐어박으며 엄격하고, 무자비한 선후임간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을때 전방에서 1년을 지낸 부대가 예비대와 교체하게 되었다.
그때쯤 그 선임은 병장이 되어있었고, 나 역시 일병고참이 되어있었지만 그 선임과 나의 관계는 조금도 낳아지지않은채, 그대로 전방에 잔류하여 교체해온 부대로 자동전입됐고, 나는 화기소대, 그 선임은 일소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새로 교체되어온 부대는 정말이지 후임들이 많았다. 내가 상병이 되면서 나는 어느덧 화기소대의 중간고참이 되어있었다. 일소대로 전출간 그 선임의 내위치때 역할을 내가 맡게된 것이다.

해병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고, 그것을 이상없이 완수해내야하는 책임감은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누구에게 싫은소리를 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은, 중본과 화기소대의 살림살이와 선후임간의 질서를 잡기위한 기합잡기 등이 엉망이어서 당시의 정서상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정도로 악화돼 급기야는 "당나라군대"라는 초유의 군기상태를 불러오고 말았다.
덕분에 상병의 중간이 될때까지도 소대의 이, 삼수선임들에게 불려다니며 이병처럼 얻어맞으며 생활해야했지만, 도무지 후임들을 집합시켜 오파운드를 들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활하며 지내던 중 간간히 일소대로 전출된 그 선임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예비대에서 교체되어온 새로운 중대의 후임들에게 원래의 소속소대에서만큼 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런점은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다.
내 경험으로 볼때 연대의 3개대대를 모두 전방잔류로 경험한바에 의하면 어찌된 것이 후방예비대대만 거쳐오면 기합들이 그렇게 빠져있는지, 기합빠진 것은 기합빠진놈이 알아본다고 영락없는 당나라군대 그대로였다.
아무튼, 그 선임이 그런 대우를 받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나의 생각은 이랬었다.

"고참이 되어서까지도 얼마나 후임들을 괴롭히고 때렸으면 말년에 선임대우도 제대로 못받을까....."

하지만, 해병대에서 소속이 다르다고, 부대가 바뀌었다고 후임들이 선임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시의 정서였다. 아무튼, 그리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내가 상병고참이 되어 제법 말빨이 서고있을때 쯤 된 추운 겨울밤에 한무리의 전역자가 중대본부 화기소대 내무실로 들어왔다.

중대예하소대의 만기, 혜택자 등 전역자 5명속에는 그 선임도 끼어있었다.

내무실 입구에서 마주친 그에게 표정없이 인사를 하고 실탄을 챙겨 내 초병인 신병을 데리고 29초소로 올라갔다. 겨울밤의 달빛아래 전방에 펼쳐진 끝도없는 갈대밭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신병으로 처음 중본에 도착하던날, 이유없이 날보고 "제껴"라고 말하더니 커다란 사과한알을 꿀꺽 삼키는 것처럼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 선임......밤근무때는 그 추운 겨울에 거의 대부분 빤쓰바람을 거르지 않았고, 주간근무때는 HMG총열을 들고 총검술에, 집총체조에, 별짖을 다 시키며 갈구던 그 선임......삽자루와, 곡괭이자루가 부러지게 맞으면서도 그저 한대라도 덜 때리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선임......그렇게 동기와 함께 뒈지게 두들겨 맞고 보일러실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게만들었던 그 선임이 전역을 한다며 꼼뽕을 메고 나타나 나의 내무실에 와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했던 화기소대에서의 일년 남짖한 기간동안은 나로 하여금 하루도 웃음지을 잠시만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전역을 맞아 아쉬움과 회한어린 표정으로 마주친 그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애증"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연이어 몇개피의 담배를 피우고있자니 교대자가 올라왔다. 내무실로 돌아오니 윗층침상에서는 전역자들과, 소대의 일,이수선임들, 60밀리 반장등이 모여않아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해병대의 내무실은 침상이 2층으로 되어있었다)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며 들어서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선임은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돌렸었다.

아직은 이른 초저녘이라서 맞후임이 보고있던 주계로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차례가 되어 다시 근무교대를 나갔다. 여느때처럼 이수선임의 근무타임을 대신 넘겨받아 네시간을 연짱으로 근무하고 내려왔을때는 새벽 두시가 넘어 내무실이 소등되어 있었고, 모두가 취침중이었다.

다시한번 근무교대를 하고, 그밤의 마지막 근무를 마친다음 탄띠를 풀어 철모와 함께 침상에 정열하고 침구속으로 들어가 잠이들려할때 쯤, 나즈막한 톤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ㅇ해병.....자냐?..................수고많다...잘있어라......고생해......"

날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있었지만, 일부러 아는체하지 않았다. 아주짧은 시간이 흐른다음 내무실의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고, 다찌차의 부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소리없이 조용히 여닫고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핑 돌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일어나 불을켜니 내 침구 머리맏에는 그 선임이 놓아 둔 컵라면과, 우유가 놓여있었고 한장의 메모지가 있었다.

"ㅇ해병, 잘 생활하고 건강하게 전역하기 바란다, 5??기, 박ㅇㅇ"



해병대에 입대하여 그야말로 지옥같은 쫄병생활을 했고, 고참이 되어서는 내가 당했던 아픔과 고통들을 내 후임들에게는 절대로 주지 않으리라며 무던히 참고 참아가며 삼년을 마쳤지만, 그날 새벽 눈을맞으며 떠났던 그 선임에게서 처음으로 뜨거운 무엇을 느꼈던 것같다.

그것이 이른바 "전우애"인지, 아니면 사내들의 "의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날새벽 해병대에 입대한 후 처음으로 무언가를 가슴으로 느끼며 모포를 뒤집어 쓴채 눈물을 흘렸었다.


사족: 요즘 병영을 보면 우리때의 선후임간 애틋한 정이 메말라있는 것같다은 생각이 든다, 신세대장병이란 말도 있지만 그 장병들과 거의 매일같이 대화하는 관산포도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알듯하기도 하고 모를 듯 하기도 하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요즘 장병들에게는 우리때와 같은 선후임간의 "정"이나 "측은지심"같은 것을 거의 볼수가 없다, 하지만 관산포는 우리때 있었던 선후임간의 잔혹한 구타와 폭력행위가 옳았고 좋은 것이라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차라리 삭막하고 이기적이라도 서로 때리고 맞는 일이 없는 군대가 낳다고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