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전입 후 연대를 거쳐 대대에서 대기하던 중 나와 내 동기의 최종목적지가 5중대라는 것을 알았다. 연대에서 대기하고 있을때 예비대대의 도하훈련이 끝나고, 어느날이던가 전방초소 견학을 간적이 있었다. GMC트럭에 실려 한참을 덜덜거리며 달린 끝에 알 수 없는 어느전방지역의 포상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영화아니면, 배달의 기수 등에서나 볼 수있는 거대한 대포?가 있었다.

나중에야 그놈의 이름을 알게되었지만 당시 처음보는 그 대포의 위용은 어린 이병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M-16 소총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두께의 엄청난 포신이, 그것도 양쪽으로 아래위 두쌍씩 네개가 하늘로 솟아있었고, 각각의 대포옆에는 어마어마한 두께의 포탄이 쇠로 만든 띠로 이어진채 물려져 있었다.
우리를 인솔한 어느 중사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그 대포를 운용하는 실무선임들이 포를 구동시키자 놀라운일이 벌어졌다.
한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는 공간의 조종석에 않은 선임의 지시가 떨어지자 또다른 어느 선임이 등뒤에 달린 엔진을 줄로 감더니 시동을 걸었다.

그 엄청난 2문 쌍열 도합 4열 왕대포가 360도로 돌기도 하고, 아래위로 포구를 높혔다 낮추었다 하며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그제서야 내가 군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 엄청난 대포를 운영하는 실무선임들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보여주거나, 아니면 잠시 빌려줄때에도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하는 한국군의 원칙을 이미 알고있었고,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던 우리들 신병에게는 그 시범이 끝나자마자 HMG총열을 이용한 각종 체력단련 훈련들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을 인솔했던 중사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왕대포를 시범보인 두 실무선임들에 의해 다양한 건강체조?들과, 각종 에어로빅?동작들이 쉬지않고 이어졌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때쯤 나타난 중사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하여간 이넘들.....잠시도 쉬지를 않는구만....."

막연히 기합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 중사의 아무렇지도 않은듯 한 말 한마디는 앞으로 우리들이 실무부대에 배치되어 어떠한 생활을 해야하는지를 확연하게 알게해주었다.
그랬다.
그것이 맞는 것이든, 때리는 것이든, 아니면 기합이든, 운동이든, 모든 것은 선,후임간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영리하고 똑똑했던 우리 동기들은 금방 모든 것을 이해했고,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에 대대를 거쳐 각자의 중대로 배치되었다.
나와 동기의 목적지는 바로 그 왕대포가 2개나 있는 5중대로 결정되었고, 신병시절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인상적인 감동을 주었던 그 왕대포가 나의 군대3년을 엉망으로 만들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이름하여 M-55 방공포, 제2포 와 함께한 나의 삼년은 눈물과 포복절도의 군생활이었다. 기관총병과도 아니면서, 순전히 인원이 없다는 이유로 졸지에 방공포의 탄약수가 된 517기 선임이 있었다.
내가 화기소대에 배치된지 며칠쯤 지난 어느날 아침에 나를 뒤따르게해 도착한 곳은 유류고 뒷쪽에 짱박혀진 60밀리 박격포상이었다.
판초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것을 벋기고나니 섹시하게 생겨먹은 조그만 대포가 나왔다. 한방으로 서부전선을 불바다로 만드는 신무기라며 썰을 풀어대던 그 선임은 나의 작업복을 벋기더니 입고있던 (마지막 남은)누런 메리야쓰를 잡아 뜯었다.

뻰찌에 찝혀 뱃가죽이 찢겨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마지막 보급메리야스에는 병기기름이 듬뿍 적셔졌고, 나는 그날아침 내내 그 선임의 썰?을 들어가며 박격포를 닦았다. (전두한이 그 대포를 만들고는 감격에 겨워 순자아줌마랑 얼싸안고 울었다고도 했다)




M-55를 운용할 줄 아는 유일한넘 이라는 판단아래 일년후에 있었던 부대교체에서 전방잔류자로 결정되어 알지도 못하는 3대대 열한중대 화기소대병력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거기서 다시 일년이 지나 예비대로 갈때가 되자 전역을 두달남긴 나에게 다시 M-55방공포를 들먹이며 전방에 잔류하라는 거지같은 명령이 떨어졌었다.
끝까지 꼬이는 군대생활을 한탄하며 투덜거렸지만, 완전무장을 둘러메고 하나둘씩 출발하는 정든 화기소대원들을 바라보며 29초소의 뒷문을 활짝 열어제쳐 서치라이트를 그들이 행군하는 방향에 잠시 비추어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