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3일

레오나르도 다김치 | 2008-06-26 0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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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르셨다.
사립문에 계시는 어머님에게로 달려갔다.

어 ~~~
그기에는 총을 멘 인민군(우리는 북한 군인들을 그렇게 불렀다) 둘이 서 있었다.
난 어머니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런데 내 손을 쥐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억센 힘을 느끼곤,
어머니와 마주한 인민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머님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군인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어머니 :
“집에 어른이 계시니 며칠의 말미를 주시면 상의하여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민군 :
"그러면 3일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무시무시한 전쟁의 신이 우리 집을 덮친 셈이다.
3일 후에 답해야 할 내용은,
-여맹(공산당 외곽단체로 여성들로 구성된 조직)의 마을 책임자를 맡거나
-여맹가입을 거절함.

만약 여맹의 마을 책임자를 맡으면,
국군이 다시 돌아오면, 어머님은 “부역자”란 낙인이 찍힘과 동시에,
생존을 장담할 수 없고 가족들은 연좌죄의 굴레를 쓰고 세상을 등져야 한다.

또한 여맹 가입을 거절하면,
공산당 치하에서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가혹한 박해를 각오해야 한다.

아버지는 외지에서 교사생활을 하셨고,
집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가장역할을 하셨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휘말린 당시의 역경을 헤쳐가기에는 세상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어머니에게는 한 줄기 빛도 스며들지 않는 깜깜한 밤이었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이 혼자서 결단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셈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어려서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새까맣게 타 들어갔을 어머님의 심정을 만분의 일도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런데...
운명의 신이 어머니를,
아니 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리가 잘린 인민군이 남쪽에서 쫒겨 북으로 도망을 쳤다.
바로 어머니에게 주어진 운명의 3일이 지나기 전에 !

<사진 설명>
인터넷에서 펀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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