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월 29일 우드로윌슨센터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공동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와 관련, 무엇보다 핵 확산 문제에 미칠 결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해야 한다는 한국 내 여론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을 사용해 전력을 생산한 후,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WGPu: Weapon Grade Plutonium)이 필연적인 부산물로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기를 생산하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고 ‘핵폐기물 처리’라는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여 이 같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막는 신기술의 개발을 대한민국의 핵과학기술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235(원자핵과 중성자의 합이 235개인 우라늄)와 우라늄238(원자핵과 중성자의 합이 238개인 우라늄)을 원자로에 장입하고 연소시켜 이뤄진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연소시키고 나면 사용후핵연료가 남는다. 우라늄이 연탄이라고 가정할 때, 사용후핵연료는 연탄재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재에는 우라늄238이 변한 플루토늄이나, 잔류 우라늄이 남아 있어 연탄재와는 비교되기 어려운 사용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에 남은 우라늄을 추출해 내는 작업이다. 재처리를 하면 우라늄의 효율성을 훨씬 높일 수 있고, 고준위 폐기물의 양(부피와 중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재처리를 하지 않으면 핵연료로 들어간 우라늄의 1% 정도만을 사용하는 꼴이지만 재처리를 하면 그 두 배인 최대 2%까지 쓸 수 있다. 또 통상 1000㎿(메가와트, 1㎿는 100만 와트) 표준형 경수로를 1년 동안 가동하면 20t의 고준위 폐기물이 생기지만, 재처리하면 고준위 폐기물의 저장면적을 20% 가량 줄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재처리를 하는 순간, 그 나라는 마음먹기에 따라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을 꿈꿀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재처리기법은 습식인 퓨렉스(PUREX, Plutonium Uranium Extraction) 공정이다. 사용후핵연료봉을 잘게 자른 다음 강한 질산을 가해 연료부분을 녹여낸 뒤 이를 다시 인산트리뷰틸(TBP: Tri-n-Butyl Phosphate)이라는 용매에 넣으면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용매로 옮아가고 나머지 핵분열 물질은 대부분 질산용액에 그대로 남는다.

그 뒤 화학적인 방법으로 용매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추출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어 고속로(FBR: Fast Breeder Reactor)용 핵연료를 만든다. 따라서 퓨렉스는 연소되지 않고 남은 우라늄을 전량 회수할 수는 있지만 핵무기 원료로 쓸 수 있는 플루토늄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처리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원자력 이용 기술이 나왔다.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은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만을 분리하고, 플루토늄은 순수한 상태가 아니라 미량의 또 다른 핵물질이 혼합된 상태로 남기게 한다. 따라서 자원 재생 차원에서 우라늄의 활용 비율을 거의 100%까지 높일 수 있으면서도 국제질서의 불안 요소가 되는 어떠한 플루토늄도 추출되지 않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전기분해를 이용한다. 첫 단계로 산소와 금속의 화합물인 사용후핵연료에서 산소를 떼내어 금속물질로 변화시킨다. 다음으로 염화칼륨과 염화리튬 용액에 금속으로 전환된, 사용후핵연료를 넣는다. 온도를 500℃까지 올리면 ‘사용후핵연료’가 녹기 시작한다. 여기에 음극과 양극의 전극에 전기를 흘려주면 우라늄만 음극에 달라 붙는다. 플루토늄을 포함한 다른 방사성 물질에 비해 낮은 전압에서도 음극으로 쉽게 움직이는 우라늄의 금속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원하는 양의 우라늄을 분리 채집한 후엔 전압을 올려 우라늄과 다른 물질도 음극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면 음극에는 우라늄과 넵튜늄·플루토늄·아메리슘·큐리움 같은 초월우라늄원소(TRU: Trans-Uranium: 우라늄 보다 무거운 핵종들) 속에 문제의 핵심인 플루토늄이 뒤엉키게 된다. 결국 한 공정으로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동시에 추출하지 못하는 데에 파이로프로세싱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같은 공인된 핵무기보유국이 아니면서 재처리를 국제사회로부터 용인 받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자국의 재처리를 천명한 후, 1959년 실험실 규모의 재처리에 성공, 플루토늄을 채취해냈다. 1977년 토카이 재처리 시설을 가동했으며 2006년까지 11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 했다. 1993년에는 도카이 시설로는 재처리 규모가 부족해 연간 800t을 처리할 수 있는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을 착공했고 2008년부터 가동 중에 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인도의 핵실험으로 핵확산금지 정책이 위기에 봉착하자 당시 카터 행정부가 미국 내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의 재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금년(2010) 말이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유카(Yucca)산 핵폐기물 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어서 미국 정부는 의회에 새로운 핵폐기물 저장소를 짓겠다고 요청했지만, 의회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거부하고 있다.

재처리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얼마나 될까? 재처리를 하는 국가가 드물고, 재처리의 이익 중 하나인 환경문제에 대한 국가간 평가 기준이 달라 정확한 평가는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이 140만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 하지 않고 보관하는 신규 시설을 건설하는 데 77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한 것만 봐도 재처리를 통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할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2005년도 국제에너지자원협회(Energy Resources International) 연감에 따르면 천연 우라늄 양은 310만~1600만t으로 추정된다. 우라늄을 1회만 이용하는 현재의 기술과 세계 원자력 발전소 현황을 종합해 보면 2040~2100년이면 우라늄이 완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해 우라늄 자원 활용이 극대화된다면 원자력발전소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향후 수천 년간 인류는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라늄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골칫덩어리인 고준위 핵폐기물의 양도 획기적으로 감소한다.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을 거치면 사용후핵연료처럼 직접 방사능을 내는 위험 물질인 고준위 핵폐기물 양이 기존의 100분의 1로 줄어들고, 차지하는 부지 면적도 225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을 거쳐 재생된 우라늄은 기존의 열성 원자로형인 경수로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우라늄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원자로인 ‘고속증식로’ 개발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열성 원자로형은 중성자의 속도(열)를 줄이지 않으면 원자로 주요 장치들이 고열에 견딜 수 없기 때문에 1000만분의 1 정도로 줄여서 이용한다. 반면 고속로(FBR)는 우라늄에서 붕괴되어 나오는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이용한다. 원자로 주요 장치들의 내성을 강화시켜 중성자의 에너지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도가 낮은 우라늄도 사용할 수 있어 파이로프로세싱과 더불어 세계 주요 각국이 상용화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을 도입한 실험용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어 원격으로만 가동되는 핫 셀(hot cell) 구역. ⓒ한국원자력연구원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가 동시에 개발되면 우라늄 고갈·군사적 전용·환경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게 돼 차세대 원자력 기술로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미국이나 러시아가 오래 전부터 연구를 시작해 20년 정도 후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우리도 출발은 늦었지만 그들의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오히려 그들보다 빠른 15년 정도 후에는 상용화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속로용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는 파이로프로세싱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렉스 플러스(UREX+)란 기술을 개발 중이다. 파이로프로세싱과 비슷하게 우라늄을 순수 분리한 뒤, 플루토늄은 넵튜늄 등과 함께 분리하는 방법이다.

일본에서는 고속로를 위한 넥스트(NEXT)법을 개발 중이며, 프랑스도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황일순 교수팀이 고속증식로를 위한 피서(PEACER)법을 연구 중이다. 필자도 오랫동안 기술개발에 합류하고 있는 피서 방법은 파이로프로세싱과 기본 원리는 같지만, 파이로프로세싱이 냉각제로 나트륨을 쓰는 고속로용이라면 피서는 납-비스무스 냉각제 고속로용이란 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