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sniper)가 21세기 세계의 주요 전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제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당시 각광받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첨단전의 위세에 눌려 퇴색했던 저격수가 21세기 최대 전쟁인 이라크전을 계기로 다시 전장에서 눈부신 활약(?) 속에 부활하고 있다.

우리 군 또한 20년 가까이 일선 부대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최근 다시 편제되는 등 그 역할이 새롭게 부각됨에 따라 본지는 기획 시리즈로 3회에 걸쳐 저격수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500파운드 폭탄 투하 등 공습 2회, 155㎜ 곡사포의 일제 사격, M1 에이브럼스 전차 사격 10발, 약 3만 발의 자동소총 사격’.

적 1개 중대를 몰살시킬 만한 이 엄청난 공격은 사실 단 한 명의 적 저격수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2004년 11월 10일 팔루자의 한 모스크에서 저항하는 이라크 저격수 때문에 미1해병원정대(MEF) 8연대 1대대 B중대의 공격이 하루 종일 좌절됐다.

견디다 못한 미 해병대는 근접항공지원과 포병사격·전차부대의 지원을 요구했다. 지원부대의 엄청난 화력 앞에 팔루자 시내의 10번 도로 주변이 초토화되고 연기와 먼지로 뒤덮였다. 하지만 공격은 실패였다.

현장을 취재하던 뉴욕타임스의 덱스터 필킨스는 그의 기사에서 “But the sniper kept shooting”(그러나 저격수는 여전히 계속 사격했다)라고 냉정하게 썼다. 어쩌면 단 한 명, 많아야 서너 명에 불과한 것으로 짐작되는 저항 세력 저격수 때문에 최정예 미 해병대 1개 중대는 하루 종일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격수가 전장에서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라크전에서 저격수를 먼저 집중 운용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군 저격수들에 당하던 저항 세력들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4년 하반기부터 전장에 저격수로 맞불을 놓고 있다.

2005년부터는 주바(Juba)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이라크 저격수가 나타나 미군 143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그다드 남부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주바는 단 한 발의 사격으로 목숨을 빼앗는 악명 높은 사격 솜씨로 유명세를 날렸다.

미군 병사들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에 목숨을 잃으면서 심하게 위축됐다. 저격수가 미군과 동맹군 28명을 사살하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지난해 10월 18일 미국 CNN 방송에 공개돼 논란이 일어난 것은 저격이 심리전 차원에서도 파장이 크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미국도 미군 저격수 짐 질리란드 하사(28)가 M24 소총으로 1250m 거리에서 적 저격수를 사살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저항군의 심리전에 정면 대응하기도 했다.

최첨단 3세대 전차 보유량 세계 1위, 공격헬기 보유량 세계 1위 같은 구체적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미 육군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의 군대다. 미 해병대 또한 투지·훈련 강도 면에서 미 육군에 앞서는 정예부대다. 하지만 그토록 막강한 전력을 지닌 미 지상군들이 몇 년째 이라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개 사단이 웬만한 나라의 군단급 전력보다 더 강하다는 미 지상군을 쩔쩔매게 만드는 장본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답은 급조폭발물(IED), 대전차로켓(RPG), 그리고 저격수다. 급조폭발물과 대전차로켓은 오랜 세월 테러전과 비정규전에 얼굴을 내밀어온 단골 손님이다.

하지만 저격수는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다. 이라크전을 통해 저격수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라크전에서 저격수의 활약상은 온갖 첨단무기가 난무하는 21세기 디지털 전장에서도 여전히 ‘원샷 원킬’의 저격수가 생명력을 가진 존재임을 확실히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 군에 저격수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해 온 국내 저격수 연구의 1인자인 황광한(육사17기·준장·70) 예비역 장군은 “한국군 역시 산악지역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유사시 저강도 작전에서의 효과적 대응을 위해 체계적인 저격수 양성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2면

2007.02.21 글=정호영·김병륜/사진 제공=황광한 예비역 장군 lyuen@dema.mil.kr

저격수의 활약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


이라크 전쟁에서 저격수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무기가 주축을 이루는 현대전에서도 저격수가 각광받는 이유다.

팔루자에서 미 해병대가 저격수 때문에 작전에 실패한 사례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작전 실패도 괴롭지만 전쟁의 경제성 문제를 생각하면 더욱 고약하다. 전투기의 1회 출격에는 평균 2000달러 내외의 연료비가 든다. 이라크에서는 지상 기지가 아닌 항모에서의 출격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연료비는 2000달러를 넘었을 것이다.

해병 항공부대는 팔루자에서는 정밀유도무기만 사용했다고 밝혔으니 사용된 폭탄은 한 발에 적어도 수만 달러에 달하는 합동파괴직격탄(JDAM)일 가능성이 높다. 120㎜ 전차포탄 1발 가격은 1000달러 내외다. 1달러도 안 되는 소총탄이라고 해도 3만발씩 쏘면 만만찮다. 더구나 1개 보병 중대 운영에 필요한 비용까지 생각해야 한다. 단 한 명의 저격수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소모한 것이다.

반면 저항 세력의 저격수 운용에 드는 비용은 거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방 국가의 전문 저격용 소총은 만 달러를 육박하지만 이라크 저항 세력은 값비싼 저격용 소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저항 세력 저격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총은 이라크제의 ‘알카데시’ 저격용 총이다. 구 소련제인 ‘드라구노프’ 저격총을 변형한 이 총은 성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지만 저비용으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 미군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식의 전쟁 방식이라면 비용대 효과 면에서 미군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고비용 디지털 군대에 맞서는 저비용 아날로그 저격수의 힘이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다.

2007.02.21 김병륜 lyuen@dema.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