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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엿장수들

  작성자: 슈트름게슈쯔
조회: 6406 추천: 2 글자크기
3 0

작성일: 2020-08-20 20:32:01











구한말 한성(漢城)의 엿장수들 

 




한국 6.25 전쟁 정전 협정 이후  서울의 엿장수 - 1953

 


 




1960년대 서울의 엿장수 

 




1960년대 대패 생강엿 장수 


 





 1970년대 서울의 엿장수 




1980년대 서울 봉천동 골목의 엿장수 

 

 



서울 인사동의 엿장수 - 2004

 

 



충북 청주의 부부 엿장수 -2005

 

 



경기도 의왕시 갈미한글공원 보리밥 맛집촌 앞의 호박엿 장수 -  2019

 

 


한국 민속촌의 엿장수 -2020

 

 

구한말 1900년대 좌판 엿장수 부터 시작되어 해방과 한국 6.25 전쟁 이후 오래된 서책이나 골동품및

낡은 놋쇠,양은 그릇등의 고물을 엿으로 교환해 주던 리어카 행상 엿장수 시절이었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절을 거쳐 2000년대 부터는 사라져 가는 한국 대중 먹거리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2020년 현재까지 국민들에게 줄기차게 엿을 판매하며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먹거리 과자인

가락엿,깨엿,호박엿, 대패 생강엿,무엿,옥수수엿,고구마엿 등의 엿 판매를 끊이지 않게끔

엿장수 가위질을 힘차게 철거덕 거리며 광대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동 판매를 하던

장돌뱅이 상인 정신의 명맥을 이어온 한국의 엿장수들

 

 






댓글 3

  • best 청옥산 2020-08-24 추천 2

    60년대 울동네 방문 엿장수는 지게를 지고 왔습니다. 고물 빈병 고무신 등을 받았습니다. 그때 엿은 최고의 군것질꺼리였습니다. 우리는 엿을 사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우렸습니다. 폐선된 철도에서 방꽁이를 빼기도 하였고 동네뒤산에 마당바위정수리에 박혀있는 육각형 쇠말뚝을 빼보려고 갖은 용을 썼습니다.
    그러더가 용기네 앞마당에 붙은 작은 채전밭에서 기관포탄이 발굴되었습니다. 우리는 수십발의 기관포탄을 파내서는 몇발을 주고 엿을 바꿔먹었습니다. 그런데 엿장수가 포탄을 분해해야만 받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기네 마당에 쭈구리고 앉아 탄두와 탄피를 분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돌로 탁탁치면 탄두가 빠지고 까만 화약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화약을 땅바닥에 길게 늘여놓고 불을 붙혔습니다. 파바박 하고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용기가 돌로 때려 분해작업중에 탄약이 폭발했습니다. 용기 왼손은 너덜너덜해졌고 동네의원에 엎고 갔으나 용기는 왼손을 잃게 되었고 그후 우리는 그를 조막손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용기네집 뒤옆집에 포탄이 날아들었고 종복이네 일가가 몰살했습니다.

  • 2020-09-18 추천 0

    엿을 한주먹 들고 튀어도 잡으러 못갑니다. 엿판을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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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옥산 2020-08-24 추천 2

    60년대 울동네 방문 엿장수는 지게를 지고 왔습니다. 고물 빈병 고무신 등을 받았습니다. 그때 엿은 최고의 군것질꺼리였습니다. 우리는 엿을 사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우렸습니다. 폐선된 철도에서 방꽁이를 빼기도 하였고 동네뒤산에 마당바위정수리에 박혀있는 육각형 쇠말뚝을 빼보려고 갖은 용을 썼습니다.
    그러더가 용기네 앞마당에 붙은 작은 채전밭에서 기관포탄이 발굴되었습니다. 우리는 수십발의 기관포탄을 파내서는 몇발을 주고 엿을 바꿔먹었습니다. 그런데 엿장수가 포탄을 분해해야만 받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기네 마당에 쭈구리고 앉아 탄두와 탄피를 분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돌로 탁탁치면 탄두가 빠지고 까만 화약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화약을 땅바닥에 길게 늘여놓고 불을 붙혔습니다. 파바박 하고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용기가 돌로 때려 분해작업중에 탄약이 폭발했습니다. 용기 왼손은 너덜너덜해졌고 동네의원에 엎고 갔으나 용기는 왼손을 잃게 되었고 그후 우리는 그를 조막손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용기네집 뒤옆집에 포탄이 날아들었고 종복이네 일가가 몰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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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uchess 2020-08-23 추천 1



    슈트롬게슈쯔님,

    80년대 초반, 1983년에까지 우리동네에 엿장수가 왔습니다.

    고물을 가득 실은 리어카 위에 엿판을 올려놓고 가위로 시끄럽게 소리내며 엿장수가 오면 우리들은 엿 한조각 얻어먹을까 뒤를 따라다니기도 했고, 멀리서 엿장수 가위소리가 들리면 온마당과 뒤안을 뒤져서 혹시 녹슬은 고물이 있나, 빈병이 있나 찾아보곤 하다가 왜 우리집엔 그 흔한 고물도 없는거야 하고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대패날같처럼 생긴 것으로 누런 엿판에 대고 가위로 탁탁 위를 치면 거짓말같이 반듯하게 엿이 조각조각 갈라지던 생각이 납니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엿 한조각 손에 쥐면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1983년 이후로 우리동네에서 엿장수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어릴때 행복했던 시절 떠올리게 하는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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