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최신 리포트
북한과 가장 가까운 GP 사상 첫 공개되다!
작성자 : 유용원(218.145.xxx.xxx)
입력 2010-06-11 07: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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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씀드린대로 사상 첫 DMZ 내부 취재 두번째 기사들을 올려드립니다.  그동안 DMZ 내에 있는 GP는 사진 조차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저희 특별취재팀은 GP내에 직접 들어가 최전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장병들의 생활상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오늘 소개된 GP는 80여개에 달하는 우리 GP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동부전선의 한 GP입니다. 북 GP와의 거리가 불과 580여m에 불과합니다. 서로 소리치면 들릴 정도여서 '야호GP'로도 불립니다. 이곳에서 고생하면서도 대한민국 군인중 1%안에 들어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자세한 얘기를 아래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조선일보 2010년6월11일자 22~23면 2개면에 걸쳐 소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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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속으로] 北GP까지 580m… "뭐하냐, 한국" 北병사 목소리 그대로 들려

  • 특별취재팀
  • 기사
  • [DMZ 속으로] [1부] 긴장 흐르는 현실
    북쪽엔 금강산·해금강 동쪽엔 장엄한 일출장면 형언하기 힘든 절경

    [2] 대한민국 최북단·최동단 GP를 가다

    허연 입김은 칼바람에 부서지고, 무감각해진 인중에 흐르던 콧물을 그 바람이 실어간다. 때는 3월 중순, 강원도 고성의 봄은 여전히 맵고 시리다.

    우리나라 최북단·최동단 경계소초(GP·Guard Post)인 ○○○GP 가는 길은 험악했다. 한쪽 바퀴가 들릴 만큼 험궂게 굽이진 급경사길, 거기에 얇지만 여물게 얼어붙은 빙판을 삽·곡괭이로 깨고 모래를 흩뿌려야 취재차량은 근근이 전진했다. 비무장지대(DMZ)로 통하는 남방한계선 통문이 열린 지 40분쯤, 흰 병풍처럼 사위를 둘러싼 설산 속에 고도(孤島) 같은 '전사들의 용광로, 사자(獅子) GP'란 별칭을 가진 GP가 위용을 드러냈다. 조선일보 취재진은 언론사상 최초로 GP 내부 취재에 들어갔다.

    북한군 움직임 뚜렷이 보여

    ○○○는 우리 GP를 통틀어 북한과 가장 가까운 GP로, 북한 △△GP와의 직선거리가 불과 580m다. ○○○GP에서 북으로 350m를 더 가면 군사분계선(MDL), 거기서 230m 더 가면 북한 GP다. 북한 GP는 좁다란 2·3층만 빼꼼히 밖으로 내놓은 지하벙커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우리의 최동북단 GP전경. 그 너머로 금강산 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580m 떨어진 곳에 북한군 GP〈오른쪽 점선〉가 있다. /DMZ 특별취재팀
청명한 날씨가 운 좋게 펼쳐진 덕에 저쪽 움직임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망원카메라를 통해 병사 1명이 쌍안경으로 우리 쪽을 살피고, 다른 1명은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선명히 들어온다. "적 GP가 워낙 가깝고 특이관측이 많아 항시 긴장해야 한다"고 유재중(가명) 관측장교(중위)는 설명한다. 북한병사가 철책선 너머로 "뭐하냐! 한국" 하고 장난치듯 소리치는 모습, 땔감용으로 나무 베는 장면, 북한병사 300명이 월비산 보급로를 행군하는 모습 말고도 북측의 얼차려·구보·오발 내용이 기록·녹화돼 있다. 태극기·유엔기가 거센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건물 안 상황실에선 이렇게 소소한 것까지 관찰하고 있다.

이날 오후 여가시간에 우리 병사들이 기마전을 하며 함성을 지르자, 적 병사 4명이 쌍안경을 돌려가며 이죽거리는 광경이 관측장비로 클로즈업돼 보인다. 최혁재(가명) GP장(중위)은 "북한 병사들이 상대적으로 보급 형편이 좋은 GP 근무를 선호해 출신성분이 좋은 인원만이 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그들 간에 구타·얼차려가 종종 목격된다"고 했다.

우리 GP에선 북한군의 특이동향·이상징후를 하루 24시간 발견·보고한다. 북측은 첨단 관측장비 없이 주로 쌍안경을 이용해 우리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P는 이른바 '야호GP'다. 남·북 병사가 서로 "야!" "호!" 하며 육성 교신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하지만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은 삼가도록 철저히 교육한다"고 허성민(가명) 부GP장(중사)은 말했다. 당시 한·미 합동군사훈련(키 리졸브) 기간에 즈음한 때라, 이런 경고는 우리 취재진에게도 되풀이됐다. 저쪽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능선을 따라 올 수 있는 거리여서, 이곳 장병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천혜의 자연 속 긴장은 흐르고

○○○GP는 송희철(가명) 수색중대장(대위) 설명처럼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험한 GP'다. 금강산·해금강·외추도·말무리반도 같은 북쪽 풍광과 오른쪽으로 펼쳐진 동해의 일출 장면은 형언하기 힘든 절경이고, 남방한계선 철책을 따라 서쪽 끝까지 펼쳐지는 밤하늘 투광등(조명) 불빛은 일품이다. 전역을 두달여 남겨둔 지준수(가명) 병장은 "산·바다 경치를 접하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지만, 북한군이 바로 보이는 곳이라 다른 GP에 투입됐을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오발·총격전 상황은 최근까지도 발생했고, 특히 지난 3월 초 북한 GP 근무 하전사가 DMZ를 넘어 남측으로 귀순하면서 이 병사를 추격하던 북한 병사들이 MDL을 넘었다 돌아간 일도 있었다.

망원렌즈로 잡은 북한군 GP. (Canon 1D Mark Ⅳ 70~200㎜ ISO400 1/800 F13 촬영). /DMZ 특별취재팀
오후 8시 30분, 상황실은 바짝 긴장상태로 들어갔다. 내일이면 GP 투입 작전을 마치고 중대본부로 복귀해 달콤한 8박9일 휴가를 즐길 참인데, 북측 6㎞ 2개 지점에 산불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이 불이 계속 번지면 복귀 시기가 미뤄지는 끔찍한 '상황대기'로 이어진다. 상황병의 부산한 움직임과 본부와의 시끄러운 교신, 다행히 1시간30분여 관찰 끝에 불이 꺼졌음이 확인됐다.

밤 10시, 최 GP장의 야간점호가 끝나고 생활관(옛 내무반)에 불이 꺼졌다. 야간근무가 아닌 병사들이 잠자리에 든 병사들 깰세라 살짝이 식당으로 향한다. 자장밥(점심)과 돈가스(저녁)로는 채울 수 없었을 젊음의 만복(滿腹)을 위해 이들은 라면과 빵으로 마지막 밤참을 즐겼다.

인수인계 바쁜 이삿날

GP 요원들은 일정기간 근무 후 교체된다. 오전 7시, 바다를 붉게 물들인 해를 안고 ○○○GP를 지켰던 요원들이 아침 점호를 한다. 군가 '행군의 아침'으로 목을 틔우고 구호 "현장에서 승리로!"를 힘차게 외친다. "고생이 많았다. 무사히 철수하라." 선발대로 GP를 떠나는 이들이 총기 안전검사를 마치자 최 GP장이 감사의 말을 담아 지시했다. 이들은 통문까지 3.4㎞, 중대본부까지 8㎞를 걸어 임무를 끝냈다. 지난겨울 몇m씩 쌓였던 눈을 손삽으로 퍼냈던 바로 그 길이다.

GP를 물려받을 새 손님들이 포근한 날씨에 먼 길을 걸어오느라 속옷까지 땀에 흠뻑 젖었다. 새 GP장으로 임무교대를 할 박윤호(가명) 중위는 "최근 귀순자 유도작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지역이어서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든다"고 했다.

GP를 떠날 장병, 새로 맡을 장병들이 곳곳에서 인수인계에 한창이다. 한쪽에선 얼마 전 북한군 귀순 상황과 촬영 요령을, 다른 쪽에선 물과 부식 사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계가 뚜렷한 금강산 앞, 철책에 헌 군복을 찢어 매달아 놓은 위장막 사이로 바닷냄새가 몰려왔다.

(※기사 속 인물들의 실명을 공개할 경우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육군본부 실무자의 조언에 따라 모두 가명으로 작성했습니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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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속으로] "순찰 중 부스럭 소리만 나도 가슴이 요동… 수류탄 만지게 돼"

'산속의 고립된 섬' GP장, 24시간 북한군 동태 감시
후임 구타하는 선임… 담배 피는 병사 다 보여

"GP생활, 특히 ○○○GP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조각 배와 같다. 불안감과 폐소감(閉所感)이 때로 엄습하지만, 반복훈련을 통해 심적 부담을 떨쳐낸다."

○○○GP를 포함해 3개 GP에서 총 6차례 GP장을 지낸 유창민(가명) 수색중대 부중대장(중위)을 만난 건 그가 결혼휴가를 다녀와 부대에 복귀한 첫날이었다. 그는 2008년 4월부터 ○○○GP장을 7개월간 지냈고, 현재 GP 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곧 대위로 진급한다.

―○○○GP는 어떻게 다른가?

"최동북단에 있는 GP 중의 GP, 왕 중의 왕, 폭풍전야의 성이자 한편으론 무릉도원이다. 북한 GP 3개와 대치하며 상대가 언제 어디서든 도발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가 가장 먼저라는 심적 부담이 있다."

―GP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 최전방 감시 초소다. 모든 일이 GP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잘 봐야 후방을 사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눈(眼), 제1의 파수꾼이며, 선택받은 엘리트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한없이 우러나오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 반드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 요구되는 곳이다."

우리의 동쪽 최일선을 지키는 GP 대원들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작전을 수행하 고 있다. (Canon 1D Mark Ⅳ 24~70㎜ ISO400 1/250 F22 촬영) /DMZ 특별취재팀

―금강산의 사계를 눈으로 경험해본 소감은?

"봄엔 푸름과 꿈틀꿈틀한 생동감, 코 안에 빨려드는 짙은 풀냄새가 있다. 여름엔 어마어마한 매미 울음과 엄청난 비·번개가 교차해 변화무쌍하고, 가을엔 운치있는 단풍이 있으며, 겨울엔 남극 한복판에 있는 듯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무척 아름답다."

―철책 너머 북한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일 텐데.

"봄엔 비무장지대(DMZ)에서도 영농활동을 하고, 여름엔 DMZ 내 규정을 무시하고 웃통을 벗거나 흡연하는 모습이 보여 '군 기강이 상당히 이완됐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가을엔 차량으로 땔감을 나르거나 문풍지를 바르면서 월동 준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관측이 잘 안된다.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거나 폭언하는 상황도 감시 장비로 관측했다."

―선장(船長) 역할에 따르는 고뇌는 어떤 것들인가?

"전장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훈련한 대로 실전에 쓸 수 있을까, 완전작전을 할 수 있을까, 실전에서 병사들이 지휘 통제를 잘 따를까, 정확히 사격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없지 않다."

―임무가 특수하고 위중하다. 군기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GP 투입 첫날 '절대로 너희들에게서 인기를 사지 않겠다. 다만 상황이 발생하면 나를 따르라, 그러면 다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반응은)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끄덕이기도, 피식거리기도 한다."

―부하 병사들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근무주기·수면주기 바뀐다는 점, 불확실·불안정성에다 갇혀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다. 체육대회를 하거나 본부 협조를 얻어 다독이는 편이다."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

"새벽 초소 순찰 중 부스럭 소리만 나도 가슴이 요동치고 실탄·수류탄을 어루만지게 된다. 어떻게 조치할까, 병사들을 모두 깨워 출동시킬까, 찰나에 오만 생각이 다 난다. 민감한 소리 하나까지 마음을 뒤흔든다. GP장 하는 동안 실제 상황이 있었다면 멋지게 해내고 싶었는데 하늘이 안 도와줬다."

―외딴 섬의 최고 수장으로서 고독감은 없는가?

"외롭고 쓸쓸하다. 병사들은 여자친구·가족·복학·사회 적응 같은 고민거리를 꺼내놓고 서로 상의도 하지만, 정작 내 고민은 말할 대상도 없고 해결방법도 못 찾는다. '자기 컨트롤도 못하고 참 나약하구나'초라함을 느낄 때가 있다."

―대원들에게 못해줘서 마음 아픈 일은 없었는가?

"겨울에 영하 25도쯤 되면 규정된 복장을 하더라도 밖에 서면 5분 만에 귀가 잘려나가는 듯하다. 바람막이도 없는 곳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한 마리 고독한 매로 전방을 바라보는 소대원들이 정말 대단하고, 보온병에 커피 한 잔 타주는 게 고작인 점이 미안하다. 밤중에 복통이 심한 소대원이 있어도 후송 치료해야 하는데 야간엔 통행할 수가 없어 의무병 응급조치 밖에 할 수 없을 때엔 무력감이 든다."

―여름과 겨울, 날씨 편차가 심한 곳인데.

"겨울에 눈이 조금만 내려도 불안하다. 작전도로는 생명줄과 같은데 제설이 안 되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장비도 제한돼 있어 잘해야 하루 700~800m 제설하는데, 복귀해서 눈이 내려 결국 허탈하게 제설률 0%가 된 적도 잦다. 여름엔 비가 너무 내려 철수날이 미뤄지기도 한다. 사람인지라 짜증이 난다. '이게 바로 운명이다. 낙석 맞아서 귀한 몸 다치는 것보다 낫지 않냐'고 위로하지만, 한편으론 한숨 나오고 결재서류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짜증내기도 한다."

―통문 들고 날 때, GP 임무를 시작하고 끝낼 때 소회는?

"GP 투입 때 실탄 1발씩 장전하는데 한숨도 나오고 참 착잡해진다. 안 좋은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투입 이튿날 인수인계하고 지휘권 교대 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게 내 책임이 된다.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써야 하니까 가슴이 무거워진다. 철수할 때, 지휘권 이양하고 작전도로를 따라 내려올 때는 이제 책임을 벗었구나 싶어 상쾌해지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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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속으로] 南 GP 80개… 北 200개

  • 특별취재팀
 
GP(Guard Post)는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 안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는 최전방 경계소초다. 대원들이 일정기간 교대 근무하며 24시간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적의 침투·매복 움직임을 찾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근무기간 동안 GP 문밖으로 나갈 수 없어 '고립된 섬'으로 불린다. 군사분계선 남쪽 DMZ에 남한GP 80여개가 운영 중이며 북한도 북쪽 DMZ 안에 남한군 동향을 살피는 GP를 200개 이상 설치해뒀다.

정전협정상 군대 주둔, 무기 배치 등이 금지된 DMZ 안에 GP가 존재하는 것은 협정 위반사항이다. 원래 DMZ는 직접적인 군사공격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적 완충지대'로 설정됐다. 그러나 DMZ는 점차 요새화됐고, 비(非)무장지대가 아닌 중(重)무장지대(HMZ·Heavily Militarized Zone)로 왜곡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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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속으로] 눈 오면 병사들이 더플백으로 부식 수송

모두 가족 같은 유대감 생겨

최전방 경계소초(GP)에선 제설(除雪)도 배식도 모두 작전이다.

최동북단 ○○○GP를 방문한 날 오후 비무장지대(DMZ)로 통하는 통문 밖에서 GP 근처 케이블(cable) 이착륙장까지 부식이 하늘길로 옮겨지고 있었다. 막사에서 200m쯤 떨어진 이착륙장까지 병사들은 방탄헬멧·소총·방탄조끼로 무장한 채 땀범벅이 돼 부식을 운반한다.

파를 썰고 콩나물을 무치고… 취사병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신철원(가명) 일병은 부대원들의 끼니를 몽땅 책임진 유일한 조리사다. 이날 저녁식단은 두부고추장볶음. 병사들이 좋아하는 메뉴다. 신 일병은 "인기있는 식단을 많이 주고 싶은데 현실이 안 따라 많이 아쉽다"고 했다. 취사장 기본 근무시간은 새벽부터 늦저녁까지 돌아서면 끼니 차려야 하는 일상이다. 그는 "잔반통에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그득할 때 무척 섭섭하다"고 했다.

눈 많았던 지난겨울 케이블 운행이 불가능해 병사들이 부식으로 채운 더플백을 멘 채 허리까지 빠지는 수㎞ 길을 '도보 부식'한 적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한 병장은 "1시간 동안 죽을 둥 살 둥 눈길을 헤치고 돌아와 소대원과 음식을 나눠 먹을 때면 '이게 GP 근무하는 맛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식당 배식구 앞엔 '피땀 어린 우리 세금 잔반통에 들어간다'는 구호가 적혀 있다.

부식 수송 역시 병사들이 완수해야 할 작전이다. (Canon 1D Mark Ⅳ 24~70 ㎜ ISO400 1/250 F22 촬영) /DMZ 특별취재팀
 

GP 근무자는 군의 1%도 안 된다는 점에 이곳 병사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GP 신참 최철(가명) 이병도 그랬다. "두렵고 어렵고 갑갑한 점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사명감이 크다"고 했다. 병사들은 "PX가 없어 군 생활 추억이 없다" "물이 귀하다" "공사하느라 종일 삽질하다 보면 온몸에 통증이 온다" "껴입을 만큼 입어도 한겨울 '바람싸대기' 앞에선 볼이 얼얼하고 발가락이 깨질 듯 아프다"면서도 말끝에 '대한민국 1%의 자긍심'을 갖다 붙였다.

외딴섬 같은 GP에선 가족보다 더 한 정이 쌓인다. 최혁재 GP장은 "갇힌 공간에서 오래 같이 생활하면서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돼 전우 겸 친구 겸 가족인 묘한 유대감이 생긴다. 휴가 후 복귀할 때 소대원들과 서울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함께 귀대하곤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38
0 / 500
  • best곰탱이~ (218.145.xxx.xxx)
    2010-06-11 12:02:05
    헉..어딘지 알겠네요ㅎㅎ저쪽 gop에서 근무를 해서 몇번들어가봤습니다..
    안에 시설은 좋은편인데..정말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려서 케이블이라도 고장나면 진짜 개고생이죠 ㅎㅎ도보부식..저쪽이 정말 경치가 좋습니다..오른쪽으로는 동해..북쪽으로는 금강산..뒤쪽으로는 설악산까지 보일때도있고요..죽을때까지 다시 못가겠지만..잊지 못할꺼 같네요 ㅎㅎ
    1
  • 불굴의의지 (218.145.xxx.xxx)
    2010-09-30 12:02:16
    전진무적칼님이 말씀하시는 GP가 저도 근무했던 곳 같은데요. 거기도 상당히 가까워서 소리지르면 다 들리는데. 총폭탄 친구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네요.
    0
  • 사막의 늑대 (218.145.xxx.xxx)
    2010-06-14 22:25:17
    멋있다...건강히 전역하시길...
    0
  • 어둔밤도깨비 (218.145.xxx.xxx)
    2010-06-13 01:11:48
    김일성은 실재로 1994년에 죽었지만 1986년에 중부전선 GP에서 청취되어서 동부전선만에 비상이 걸린 해프닝이 있었씁니다. 오랜세월이 지난후 동기생모임에 나가보니 서부전선은 당시 비상이 안걸렸다고 하더군요. 당시엔 무척 심각했었는데..... 이런게 다 군대 이야기가 되는것이죠.... 당시 김일성사망사실을 청취한 GP장이 동기라 확인도 했지요. 5Division에 있던 GP였는데 이제는 그친구에게 너때문에 뺑이쳤다고 술사라고 자주 그런답니다.
    0
  • 제육검문소 (218.145.xxx.xxx)
    2010-06-12 21:36:35
    북두들기고 기타치고.....나는난북이 넌 허철이 ? 아님반대인가 하도오래돼서리.. 79년도에저기갔었는데.그때는동경사 시절이었구요 반갑네요오랜만에봐서,,그때말로는 저곳은 면담지피라고불렀지요2?? 지피라고했고.. 박통사망때는해안가288고지에서 광주사건땐716오피,,이젠기억마져가물거리는 내청춘의현장이네요..건봉사땡초는민통검문소에서 많이갈궜지요..괞히밉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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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R (218.145.xxx.xxx)
    2010-06-12 19:47:09
    000 op에서 근무했었는데 통전에서 왼쪽45도각도루 산봉오루에있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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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p0344 (218.145.xxx.xxx)
    2010-06-12 18:02:10
    86년인가 87년에도 김일성이 사망했다고 비상걸리고 난리가 난 적이 한번 있읍니다.
    죽어다고 해서 비상걸려서 한 5일정도 군장 싸놓고 손톱짤라서 성냥곽안에 넣어서 유품 상자 만들고 그랬지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86년인지, 87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아무튼 제 군생활 동안 제일 크게 긴장했던게 6.29선언 하기 직전에 충정비상걸려서 출동대기했을때 하고 김일성 죽었다고 비상걸렸을때 입니다.
    하지만 정작 부대원들이 정말 긴장하고, 죽을수도 있겠구나 했던건 오히려 6.29직전 충정비상걸려서 대기했을때 입니다. 서울에서 전경들이 완전 박살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출동하면 우리도 그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짠밥수 낮은 병사들은 상당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할 정도 였읍니다.
    전 전방부대 근무해 본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고생들 많으시네요. 예비역분들도 고생많이 하셨고요. 여러분들때문에 지금 우리가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0
  • 마수러 (218.145.xxx.xxx)
    2010-06-12 16:38:00
    철원에서 근무해본사람으로서 한겨울 쌓이는눈이 어떤느낌인지는 대략짐작이 가네요 ㅎㅎ 총기같은경우는 양수리님꺼 가져다가 들고다님좋겟네.. GP장의 인터뷰중에 결재서류에 짜증난다거나 부대원다독이고 자신을 다스리는것에 대한 어려움과 고충들을 표현한부분에선 취재팀에 대해 보다 진솔한 지디생활을 말해준것 같아 형식적이지 않은 답변에 인상적이라눈.
    0
  • 초보매니아 (218.145.xxx.xxx)
    2010-06-12 15:24:20
    22사단이군요...저도 거기서 군생활을 했는데...김일성 사망은 돈꿀레옹님 애기대로 94년입니다.
    정확히 토요일이구요, 점심먹고 고참들이랑 농구하고 있는데 비상걸려서....
    바로 진지로 출동했던 기억이 나네요..
    첨엔 뭐 5분대기조처럼 가끔씩하는 비상점검 훈련인줄 알았는데 인사계가 어찌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지....
    다른곳은 비상안걸렸다는게 좀 이상하군요...저희부대는 작계대로 거점진지까지 출동햇다가
    며칠후에 복귀했는데 말이죠..
    0
  • 불사조 (218.145.xxx.xxx)
    2010-06-12 14:14:58
    저는 복무 중에 철책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쪽은 개인화기의 경우 사용불능인 경우를 제외하면 후방으로 반출할 수가 없어서 정비반이 직접 방문하는데 여기에 한 번 참여해볼랬는데 불발로 끝나고 말았죠 ㅠㅠ 그리고 전역한지 13년이 지나서 금강산 갈 때에 철책을 지나가면서 이제야 원을 풀었다고 생각했었죠 ^^ 2007년에 경계체험 행사를 통해서 철책근무도 경험하면서 군 복무시의 아쉬움을 확실하게 날려 버렸습니다. ㅎㅎ 위에 올려진 글과 댓글을 읽으니 고생들이 많으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글 읽는 재미가 정말 짱짱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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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꿀레옹 (218.145.xxx.xxx)
    2010-06-12 14:13:40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에 사망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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