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3월22일자 신문에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손원일함의 소음문제를 계기로 잠수함의 처절한 소음과의 전쟁에 대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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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1990년 우리 해군의 독일제 209급 잠수함 1번함인 장보고함 초대 함장을 지냈고 그뒤 잠수함 전단장까지 역임한 안병구 예비역 해군준장은 최근 펴낸 ‘잠수함, 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라는 책에서 잠수함과 소음과의 전쟁을 이렇게 묘사했다.

소리를 내면 잠수함이 적에게 발견돼 어항속의 붕어와 같은 꼴이 되기 때문에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잠수함이 내는 소음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프로펠러)가 내는 추진 소음, 함내(艦內)에 설치된 각종 장비와 기계류에서 나는 기계류 소음, 잠수함이 바닷물을 가르고 나갈 때 나는 유체 소음, 승조원에 의해 발생하는 천이 소음 등이다.

가장 큰 소음을 내는 존재인 스크류의 경우 날개수가 종전 5개에서 7개로 늘어나고 부드럽게 물을 밀어내도록 특수골곡형으로 바뀌고 있다. 잠수함 내부 장비로부터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장비 진동이 선체에 곧바로 전달되지 않도록 충격흡수 장치도 설치돼 있다. ‘쇼크 마운트’라 불리는 이 장치는 특수고무로 X자형 또는 H자형으로 제작, 설치된다. 금속과 금속이 곧바로 연결되지 않고 고무재료가 중간에서 충격과 진동을 흡수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 209급 잠수함 1번함인 장보고함을 독일에서 인수하는 도중 최종 단계에서 이 쇼크 마운트가 깨진 것이 발견돼 이를 교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승조원들은 걸어다닐 때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밑창이 부드러운 운동화의 일종인 잠수함화를 신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수함 내에서 말을 하지도 못해 수기(手旗) 신호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잠수함은 왜 이렇게 소음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까. 잠수함의 특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차대전 때만 해도 잠수함은 ‘필요시 잠항(潛航)하는 잠수함’이었다. 평상시엔 수상 함정처럼 물 위로 떠 다니다가 적 함정이나 항공기가 나타나면 물 속으로 잠수했다. 물 속에서 오랫동안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잠수함이 물 위에 떠있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함정이나 항공기에서 눈으로 발견하거나 레이더로 찾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엔 ‘필요할 경우 물위로 부상하는 잠수함’이 됐다. 완전히 물 위로 떠오르지 않고도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발전기를 가동, 잠수함의 추진력인 디젤 전지를 충전할 수 있는 스노클 시스템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잠수함이 물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사람의 눈이나 레이더에 의해 발견될 확률은 낮아졌다. 물속에선 레이더파가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수중 잠수함을 찾아내는 가장 유용한 수단은 잠수함에서 나오는 소음뿐이었다. 이에따라 잠수함을 찾아내려는 쪽은 어떻게든 작은 음파라도 잡아낼 수 있는 탐지장비를 만들어 내려 했고, 반대로 잠수함은 어떻게든 소음을 줄여 적에게 발견될 가능성을 낮추려 했다. 소리를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잠수함을 찾아내는 수단은 소나(SONAR:Sound Navigation And Ranging)라 불리는 음향탐지기가 대표적이다. 소나는 잠수함을 찾는 쪽과 잠수함 모두에게 가장 널리 사용되는 탐지수단이다. 적극적으로 음파를 쏘아 잠수함 선체로부터 튕겨져 나온 반사음으로 잠수함을 찾아내는 능동 소나와, 상대방으로부터 나오는 음파를 듣기만 하는 소극적인 수동 소나로 나뉜다.

하지만 음파로 바닷속의 잠수함을 찾아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바다의 특성 때문이다. 음파는 수온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굴절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수중에는 음영구역(Shadow Zone)이 존재한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선 일종의 물덩어리가 잠수함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또 바다에는 파도 소리와 해류가 흐르는 소리, 군함•상선•어선 등 각종 선박이 내는 소리 등이 혼재해 있어 이들 소리로부터 잠수함 소리를 구분해 내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이런 소음 속에서 잠수함을 찾아내는 것은 ‘시끄러운 디스코텍에서 혼자 카세트 녹음기로 명곡을 감상하려는 것과 같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 동해의 경우도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이고 선박 통행량이 많아 잠수함 탐지가 곤란, ‘잠수함의 천국’으로 불린다. 지난 96년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침투한 강릉 잠수함 사건이나 98년 유고급 잠수정 침투사건은 동해가 잠수함 천국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국의 잠수함이 내는 소음 수준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각 잠수함이 내는 소음도 사람 지문처럼 독특한 고유의 특성이 있다. 이 소음을 잠수함 별로 녹음해 두면 지문으로 범인을 찾아내듯이 잠수함이 어느 나라 것인지, 어느 급(級)의 어떤 잠수함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때문에 각국은 잠수함의 이 ‘소리 지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해 평상시에도 물 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각 잠수함이 내는 소음 수준은 극비에 부쳐져 있다. 과거 러시아 잠수함은 미국 것에 비해 소음이 훨씬 컸지만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중국 잠수함은 아직도 소음이 큰 편에 속하지만 일본 잠수함은 소음면에서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원자력 추진 핵잠수함이 추진기관 특성상 디젤•전지 등으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소리가 크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격용 핵잠수함인 ‘로스앤젤레스(LA)’급(級)은 초기형이 120dB(데시벨) 정도인데 이는 보통 재래식 잠수함과 같은 수준이어서 핵잠수함 가운데는 조용한 편에 속했다. 중국의 주력 공격용 핵잠수함인 ‘한’급은 이보다 20 dB 가량 큰 140 dB로 소음이 굉장히 큰 것으로 악명이 높다. LA급 잠수함이 조건만 좋으면 500㎞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한급의 소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탑재 구형 핵잠수함인 ‘양키’급은 135~140dB이었지만 점차 개선돼 ‘델타Ⅲ’은 125~130 dB로 줄었다. 영화 ‘붉은 10월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의 핵잠수함 ‘타이푼’급은 125dB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해군의 주력 잠수함인 209급(총 9척 보유)은 재래식 잠수함 가운데서도 조용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100~110dB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09급이 2~3㎞ 이내로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야 겨우 소리를 잡아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림팩 훈련 등에서 우리 209급 잠수함이 가까이 접근한 것을 미국 항공모함이나 이지스함이 몰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최신형 공격용 핵잠수함인 ‘씨울프’급과 ‘버지니아’급의 소음은 209급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핵잠수함치고는 굉장히 조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해군이 차기 주력 잠수함으로 도입중인 214급은 209급을 개량한 것으로, 원래 209급보다 더 작은 소음을 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해군에 인도된 214급 잠수함 1번함인 손원일함의 소음이 독일 제작사인 HDW사가 제시한 기준치를 초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손원일함의 소음 기준치는 비밀에 부쳐져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9급의 100~110dB 이하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손원일함의 소음은 특정상황에선 기준치보다 40 dB 가량이나 높게 나오는 것으로 군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잠수함 소음에 있어 40 dB은 엄청난 차이로 원래 목표치보다 8배 이상이나 먼 거리에서 상대방에게 탐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손원일함의 소음문제를 철저히 규명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