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하여 비상 조치 로써 시국을 수습 하고자 여기 충량한 그대들 신민 에게 고 하노라 .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 국에 대하여 그 공동 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 생각컨대 제국 신민의 강령을 도모하고 만방 공영의 낙을 같이 함은 황조 항종의 유범 으로서 짐의 권권복응하는 바 전일에 미·영 양국에 선전한 까닭도 또한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전을 서기함에 불과하고 타국의 주권을 배하고 영토를 범 함은 물론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교전이 이미 사세를 열하고 짐의 육·해 장병의 용전 , 짐의 백료유사의 정려 , 짐의 1 억 중서의 봉공이 각 각 최선을 다하였음 에도 불구하고 전국은 필경에 호전되지 않으며 세계의 대세가 또한 우리에게 불리하다 . 뿐 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여 참해에 미치는 바 참으로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하게 된다면 종래에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 할 뿐 더러 결국에는 인류의 문명 까지도 파각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짐은 무엇으로 억조의 적자를 보 하며 황조 황종의 신령에 사할 것 인가 . 이것이 짐이 제국 정부로 하여금 공동 선언에 응 하게 한 까닭 이다 . 짐은 제국과 함께 종시 동아 해방에 노력한 제 맹방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 하지 않을 수 없다 . 제국 신민 으로서 전진에 죽고 직역에 순하고 비상에 패한 자 및 그 유족에 생각이 미치면 오체가 찟어지는 듯 하며 또 전상을 입고 재화를 만나 가업을 잃어 버린 자의 후생에 관해서는 짐이 길이 진념하는 바 이다.



생각하면 금후 제국의 받을 바 고난은 물론 심상치 않다 . 그대들 신민의 충정은 짐이 선지하는 바 이나 짐은 시운의 돌아가는 바 심난 함을 감하고 인고 함을 인 하여서 만세를 위해서 태평을 고 하고자 한다 . 짐은 여기에 국체의 호지함을 얻어 충량한 그대를 신민의 적성에 신의하여 항상 그대들 신민과 함께 있다 . 만약 정에 격하여 사정을 난조하여 혹은 일명 배제 하여 서로 시국을 어지럽게 하고 대도를 그르치게 하여 신의를 세계에 잃게 함은 짐이 가장 여기에 경계하는 바 이다 . 모름지기 거국 일치 자손 상전하여 굳게 신국의 불멸을 믿고 각자 책임이 중하고 갈 길이 먼 것을 생각하여 총력을 장래의 건설에 쏟을 것 이며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튼튼케 하여 국체의 정화를 발양하고 세계의 진운에 뒤지지 않게 노력 할지어다 . 그대들 신민은 짐의 뜻을 받들어라.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고모리 요이치(지음), 송태욱(옮김),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뿌리와 이파리, 2004.

"세계 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가 있다. 여기서 '세계'는 '객관적 으로 명백한 사실' 을 의미한다. 환상 문학의 텍스트 들이 그러하다면 별다른 해악이 없겠으나 만약 그 텍스트가 공식 문서 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쇼와 昭和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 800 자'가 이에 해당한다.

제목 부터 기만이다. 전쟁에 패하여 (敗戰) 작성된 것 인데 전쟁을 끝내며 (終戰) 작성한 것 으로 되어 있다. 사태를 명료하게 규정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사태에 관하여 남을 기만하게 될 뿐 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 거짓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말로 최면을 건다해서 그렇게 되는게 아니다. 이것이 패전 이후 지금 까지 일본의 정치적 현실을 모호함에 빠뜨린 근본 원인 이다. 그런 점 에서 아바스 통신 도쿄 지국장 이었던 로버트 길랭의 지적은 예리하다: "물론 항복 이란 말도 사용 되지 않았다. 잔인한 원자 폭탄이 종결 이유 라고 했다... 이 텍스트는 정말 이상했다. 그 정신에서 볼 때 철저하게 일본적 이었다!!"

식민 지배와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 정치인 들의 망언은 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때 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규탄이 물결이 일렁인다. 이상한 일 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바보가 아닌 바 에야 왜 그런 일을 되풀이 하는 걸까 , 혹시 치밀하게 계산 된 뭔 가가 있는 건 아닐까 , 그렇다면 그들의 발언에 대응해서 규탄 집회를 여는 것은 적절한 대책이 아닐 수도 있겠다 , 그러면 1945 년 8 월 15 일 , 히로히토가 읽은 종전 조서를 중심으로 이 사태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 어떨까 , 어쩌면 그 안에 모든 사태의 출발점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종전 조서의 첫 문장은 이렇다: "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 조치 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 개 국에 그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 짐이 신민에게 고하고 있다 . 전쟁이 ' 끝났지만 ' 일본은 여전히 천황제 국가임을 천명하는 것 이다 . 여기서 공동 선언은 포츠담 선언이다 . 이걸 수락 한다는 것을 4 개국에 통고토록 했으면 당연히 이어지는 문장들 에서는 그 나라들 과의 전쟁에 관한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 일찍이 미 . 영 2 개국에 선전 포고를 한 까닭은 실로 제국의 자존 自存 과 동아 東亞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 이며 ,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 ." 천황은 "미 . 영 2 개국 "과의 전쟁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 1941 년 이후의 전쟁에 대해서 만 " 종전 "을 선언하는 것 이다 . 더욱이 " 미.영 "과 전쟁을 벌이게 된 까닭도 "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 "는 데 있었다 . 명백히 "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 " 해온 일련의 침략 전쟁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마치 없었던 일 인양 꾸며 졌으며 , 설혹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 짐의 뜻이 아니 " 라 신하들이 저지른 것 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나라들은 일본의 " 맹방 盟邦 "이 된다 (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저자는 이것이 " 무엇보다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국체 수호를 실현하기 위한 수사 "라고 지적한다.

국체 國體 -- 이것은 국가의 정체성 이라는 본래의 뜻 보다는 ' 천황 개인 '을 의미한다. 이 역시 텍스트의 기만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인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하여 전범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종전 조서는 군 통수권을 가지고 있던 천황과 제국 정부를 확실하게 분리한다 . 이렇게 함 으로써 "' 종전조서 ', 즉 '옥음 玉音 방송'은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일회적인 목소리를 넘어, ' 대동아 전쟁 '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자리 매김할 것 인가를 둘러싼 내각과 국회를 포함한 정치적 담론장 에서의 역사 인식을 지배하는 말의 규제력이 되기 시작했다."

'종전 조서 '는 일회성 문서가 아니다. 이는 1945 년 8 월 15 일 이래 일본 정부가 중국 침략 ,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취해온 공식적인 입장 이기도 하다 . 이미 천황의 종전 조서 로써 다 말하였고 , 연합국의 승인을 받은 일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 이다 . 그러니 그들은 종전 조서에 밝힌 이러한 공식 견해를 바탕으로 해마다 망언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이 망언이 아님을 굳게 믿고 있는 것 이다.

이 조서는 또한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하게 해줌 으로써 일본을 무혈 침공 할 수 있었고 -- " 만약 천황을 '전쟁범죄'인 으로 소추하면 국민의 강한 반발이 생기고 폭동이 일어나 미국 으로서는 더 많은 파견군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점령도 장기화 된다는 , 협박 과도 같은 점령 비용론에 의해 히로히토를 면책하는 것의 이점이 주장된 것이다 ." -- 수월하게 동북아시아 지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US 의 기본 태도를 담고 있기도 하다.

현재 일본의 우익들은 US 의 압력에 따라 자위대의 해외 파병 과 군사력 행사를 절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 말을 듣지 않으면 국체를 수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 거듭 말하지만 일본 우익에게 '국체' 는 천황이다. 진정한 국가 정체성인 국민은 그들의 안 중에 없다 -- 절박한 불안감에 빠져 '헌법 제9조 '를 바꾸려 한다. 그런데 이를 바꾸려면 천황의 전쟁 책임을 역사에서 지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은 식민 지배 뿐 만 아니라 일본의 해외 정복의 역사 자체를 몽땅 지운 역사책을 펴낸다 . 다른 한편 으로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속한다 . 거기에 모셔진 ' 호국 영령 '들은 천황을 위해 죽은 자 들 이다 . 천황은 전쟁 책임이 없으므로 그들 역시 전범이 아니라는 것 이다 . 또한 향후 해외로 파병되어 전사한 자위대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모실 것을 천명함 으로써 그들 역시 전범이 아님을 미리 준비 한다.

종전 조서 한 장의 위력은 이처럼 엄청나다 . 그냥 '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 ' 해 버리면 떳떳하게 지낼 수 있으련만 저렇게 구질구질한 짓을 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안쓰럽다. 언젠가는 국민들에 의해 무너질 것 이다.


종전조서 이 후의 글은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152.htm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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