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버마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약 130개의 소수민족들은 자치를 얻는 대가로 연방에 가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연방의 다수 민족인 버마족은 자치를 위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소수민족들은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연방은 석유나 철광석,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이들 소수민족들의 땅을 결코 독립시켜줄 의향 따윈 없었고, 1962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정권을 세우면서 게릴라들과 군부와의 투쟁이 격화됩니다. 군부는 소수민족 게릴라들과의 싸움에서 특유의 잔인성을 발휘, 강제노역, 소년병 징집, 집단 강간, 학살, 고문, 그리고 무려 50만명의 소수민족을 강제이주시키는 등 '인종 청소'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1988년 수도 랑군에서 대규모 학생시위를 유혈진압한 뒤, 통치위기를 느낀 군부는 국가명칭을 '미얀마'로 바꾸고(버마의 소수민족들이나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군부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버마'로 지칭합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17개 소수민족들과 휴전협정을 체결합니다. 소수민족과 그 군대들에게 일정수준의 자치를 보장하는 대신 중앙정부가 국경 지역의 천연자원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진 뒤 20년간 불안한 평화가 이어져 왔죠.

2007년 인플레이션으로 촉발된 승려와 학생들의 민중항쟁과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한 대규모 재해 등 40년간의 군부통치에 위협을 가하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자 군부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2010년 신헌법을 위한 국민투표와 총선을 제안합니다. 이들 선거를 1년 앞둔 현재 군부는 정권의 군기를 잡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자치를 누리며 무장을 강화하던 소수민족들에게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경수비대로 전환하거나 무장을 해제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소수민족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자치를 위협하는 이 조치에 반발했고, 17개 소수민족의 민병대 가운데 정부의 명령을 순순히 따른 부대는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소수민족들이 군부의 조치에 반발하자 군부는 반항하는 민족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소수민족 군대 가운데서도 가장 약한 코캉(果敢)족의 특별행정구역을 지난 8월 말 압도적인 전력으로 공격, 약 1,500명에서 2,000명 사이의 코캉족 민병대를 사흘간의 전투 끝에 제압하고 30,000명의 피난민이 국경을 넘어 중국 윈난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중국계 유민인 코캉족을 공격한 이 사건으로 군부는 전통적으로 버마 군부정권을 지지한 중국의 분노를 사게 되지요. 군부는 코캉족 지도자 펑자셩(彭家聲)이 이끄는 게릴라들이 마약/무기 밀수에 가담했기 때문에 이들을 공격했다는 핑계를 댔지만, 지난 20년간 군부가 국경지대의 마약밀거래 등 위법행위를 못본 척 하거나 가담하여 짭짤한 이익을 얻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네요.

군부가 코캉족을 너무나 쉽게 제압하는 것을 본 다른 소수민족들은 이제 버마 정부군의 공격에 대비해 종종 반목하고 싸우던 이전의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소수민족간의 협력/유대와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친족은 카친족 사관학교에 카렌족이나 샨족, 와족 민병대의 장교들을 받아들여 훈련시키고 연합 전선을 펼치는데 가장 적극적입니다. 무려 49만명을 웃돌고 T-72나 69식 탱크로 무장한 버마 정부군에 비하면 이들 민병대의 전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군부에 대한 증오와 독립을 위한 열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소수민족들이 단결할 경우 이들의 외로운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1. 카렌 민족해방군 (Karen National Liberation Army)

1948년 버마 독립 때부터 60년 이상 독립을 추구하는 카렌족은 대부분 기독교도이기 때문에 불교를 사실상 국교로 신봉하는 군부에 의해 잔인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태국과의 국경지대에서 버마군과 태국군 양쪽의 공격에 시달리는 카렌족은 태국 국경지대에서의 밀수를 통해서 전쟁 자금을 조달하며, 약 2,000명에서 최대 12,000명 사이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족은 소년병 그리고 10대 병사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 특징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2. 카친 독립군 (Kachin Independence Army)

중국에서도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은 카친족(혹은 징포景頗족)은 본래 티벳 고원에서 남중국 윈난성으로, 그리고 인도와 버마 북부까지 뻗어간 민족으로 전통적으로 용맹한 전사들로 인정받았고, 2차 대전 당시 영국군 편에서 싸우면서 독립 후 자치를 약속받기도 했습니다. 1961년 공화정이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지자 카친족은 카친 독립기구(KIO)를 결성하고 독립을 위한 게릴라 투쟁에 나섭니다. 카친족 역시 대부분이 기독교도들이며, 이들은 카친족이 사는 버마 북부의 풍부한 철광석을 중국이나 인도, 태국, 라오스 등으로 밀매하거나 불법 벌목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지만,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편 등 마약거래를 자제하는 편입니다. 약 4,000~5,000명 사이인 카친독립군은 독자적인 사관학교와 포병대대 등을 갖추는 등 무장 수준이 다른 민병대에 비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샨족 국가 군대 (Shan State Army)

전통적으로 중국 윈난성 출신인 샨족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버마 북부와 태국과의 국경지대, 치앙마이 등에 분포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최근 몇년 동안 버마군과 와족과의 전투에서 상당한 병력 손실을 입었으며, 전통적으로 마약거래에 적극 거래하는 등(악명높은 '황금의 삼각지대'의 마약왕 쿤사는 샨족 저항군의 지도자였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약 6,000명~10,000명 사이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4. 연합 와족 국가 군대 (United Wa State Army. 佤聯軍)

버마 동부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사는 와족은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계 유민들로 전통적으로 사람 사냥을 하는 원시 부족이었고, 1989년 학생시위가 실패한 후 결성됩니다. 1990년대 중반 와족은 군부와 휴전협정을 맺고 군부의 지원을 받아 경쟁 부족인 샨족 토벌 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지만, 군부가 2010년 총선 참여를 조건으로 한 무장해제를 명령하자 이를 거부하고, 최근에는 같은 중국계인 코캉족과 함께 군부의 토벌 작전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와족을 주요 아편, 메스암페타민 등 각종 향정신성 약물의 주요 생산자들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와족은 또한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무장을 공급받고 태국과 캄보디아의 암시장에서 마약/무기를 밀수해서 상당한 무장을 축적했습니다. 약 20,000명의 와족이 5개 사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5. 미얀마민족민주연합군 (Myanmar National Democratic Alliance Army)

최근에 군부의 공세로 효과적으로 분쇄된 코캉족의 민병대입니다. 코캉족은 본래 17세기 중반 명나라가 멸망할 무렵 버마 북부의 샨족지대로 피신한 명나라 유민들의 후손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한족 문화와 풍습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코캉족은 아편,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대마 등 마약 거래나 매춘, 밀매 등에 적극 가담했으며, 89년에 가장 먼저 군부와 휴전협정을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지도자 펑자셩(彭家聲)은 최근에 군부를 거스르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군부의 분노를 샀습니다. 약 1,500명에 불과한 미얀마민족민주연합군을 정부군이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30,000명의 코캉족 난민들이 중국으로 피신하면서 버마 군부는 중국의 분노를 사게 됐죠.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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