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정책 토론방
[조지 부시]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작성자 : 홍순명(000.000.xxx.xxx)
입력 2006-06-26 06: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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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클린턴 2기 중반이던 1998년 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자신의 옛 안보보좌관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함께 당시의 정책결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을 美 Time지에 발표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다시 읽어 보면, 이 글은 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과오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미리 남겨 둔 신랄한 기소장임에 새삼 놀라게 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딕 체니 부통령(당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당시 합참의장),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전보좌관(당시 NSC 간부) 같은 일군의 엘리트 가신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부시의 전쟁내각은 걸프전 당시의 정책판단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이 글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후에 겪은 온갖 문제들이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만함에 눈이 멀었거나 혹은 그저 믿고 싶지 않은 결론이었기에 뻔히 이러한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묵살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가
필자: 조지 H.W. 부시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출처: Time
일자: 1998년 3월 2일

실질적인 이라크군의 저항이 신속하게 종식된 것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고, 아마도 우리는 전투에서 평화정착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에 대해 심리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설정했던 정책지침 그대로,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목표(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몰아내고 중동 지역에 대한 사담의 위협을 제거한다)를 완수했을 때 전투를 중단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에 가해진 필연적인 제한, 전쟁의 불확실성, “전함 미주리 호” 선상의 항복이 없었던 점은 불행하게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남겼고, 새로운 문제가 떠오르게 되었다.

많은 아랍 동맹국들이 예상했고 우리 자신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담의 패배가 그의 권좌를 무너트리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의 운명은 이라크 민중에게 달렸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었다. 종종 그는 사담의 제거가 환영받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아주 실질적인 이유에서 봉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민중 반란이나 쿠데타가 사담 정권을 전복시키길 기대했지만,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목표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정책지침을 어기고,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그를 체포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나마에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노리에가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세계에서 침략행위를 다루는 패턴을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오던 중이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는 사담 본인이 쿠웨이트-이라크 국경 바로 북쪽에 있는 사프완에서 이라크군의 항복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서 그런 처참한 패배의 굴욕에 대한 책임과 정치적 귀결을 지도록 강요할 것인지를 오랫동안 토론했다.
결국 우리는 만약 그가 거부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물러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든가 우리의 요구를 철회하든가 하는 두 가지 선택만이 남게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파멸적인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고, 전자를 고르면 우리 아랍 동지들은 연합군에서 떨어져나가고, 실질적으로 우리 자신의 목표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탐탁지 않은 선택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담이 직접 와서 항복하는 대신 부하 장군 중 하나를 보낼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아마도 우리는 다른 군부대에 대한 공습 같은 선택적 응징 체제를 고안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괜찮은 제3의 선택으로 증명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잘 정의된 목표를 완수하기로 했다. 사프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서서히 끝나감에 따라, 우리는 아랍 측 연합군으로부터 전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필요 최소한만 남기고 미군을 신속히 철수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예전부터 아랍 사회에는 일단 그들이 중동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 우리가 거기 눌러앉을 것이라는 다소간의 우려가 있었다. 사담의 선전 조직들은 그러한 우려를 부채질했다.
우리의 신속한 철수는 아랍 동맹국들 사이에서 우리의 입지를 다지는데 도움을 주었고, 현재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우리를 신뢰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고, 우리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일이 끝나자 다시 떠났다.
우리가 전쟁을 치른 방식에 대해 약간의 비판이 있을지언정, 이스라엘 또한 우리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이 도전받을 때는 결정적인 방법으로 중동에 개입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능력을 입증하였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적 중 하나의 군사적 능력을 불구로 만들었다. (그 전쟁에서 잘못된 편에 선 후 자신의 이미지를 만회할 필요성을 느낀 야세르 아라파트와 맞물려) 우리의 새로운 신용은 마드리드에서 중동평화회담을 여는데 빠르고 커다란 이익을 주었다.

걸프전은 새롭게 떠오르는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 단순히 이라크의 침략행위를 격퇴하고 쿠웨이트를 원상회복시키는 것 보다 훨씬 큰 중요성을 가졌다. 그러한 중요성은 처음부터 우리로 하여금 해당 사태를 넘어 미래를 위해 초석을 다져둬야 할 유형의 관례로까지 전략적 통찰력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대외정책결정이란 관점에서, 우리는 폭넓은 국내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태들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의 대응을 추구했다.
국제적 견지에서, 우리는 무력사용의 모델을 설립하려고 시도했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침략행위로는 이익을 거둘 수 없다는 원칙이었다. 우리는 이라크를 적절히 다룸으로서, 미래의 잠재적 침략자들을 단념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미국은 혼자 행동에 나서서는 안 되며, 다자적 접근이 더 낫다고 믿는다. 이러한 결론은 부분적으로 실용적인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침공에 맞서 효과적인 군사적 반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아랍 국가들의 지원과 기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점정리

미국이나 현지 국가들은 모두 이라크란 국가가 쪼개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페르시아 만 지역 한복판의 장기적 세력균형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다.

이미 걸프전 당시부터 미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제거될 경우,
1) 페르시아 만 지역의 세력균형을 뒤흔들어놓게 될 것 이며
2) 이라크가 (민족/종파 분쟁으로) 쪼개질 위험이 있다는 것
을 아주 잘 알고 있었었음을 보여준다.


사담 제거를 시도하려고 지상전을 이라크 점령으로 확대하면 ...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져들게 되어(mission creep), 예측 불가능한 인적 정치적 비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었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질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면 연합군은 즉시 붕괴되고, 분노한 아랍 국가들이 전열에서 이탈하며 다른 동맹국들 또한 철군하게 될 것이었다

이라크전은 미국과 전통적 동맹국들 사이에 큰 균열을 야기했다.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서 일방적으로 UN 결의를 뛰어넘게 되면, 우리가 정착시키기를 희망했던 침략행위에 대한 국제적 대응 관례를 파괴하게 될 것이었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그러한 침공 코스를 밟는다면, 생각건대 미국은 아직도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이는 극적으로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예전부터 아랍 사회에는 일단 그들이 중동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 우리가 거기 눌러앉을 것이라는 다소간의 우려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의 신속한 철수는 아랍 동맹국들 사이에서 우리의 입지를 다지는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고, 우리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일이 끝나자 다시 떠났다.

미국이 이라크에 눌러앉은채 아랍동맹국들에게 내정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자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미국의 대외정책결정이란 관점에서, 우리는 폭넓은 국내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태들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의 대응을 추구했다

미국은 대외정책에 있어 더이상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대응을 추구하지 않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핵정책이 다를 뿐더러, 같은 불량국가라 해도 이란, 이라크, 북한에 대한 대응에도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


국제적 견지에서, 우리는 무력사용의 모델을 설립하려고 시도했다.

이라크전을 통해 미국은 걸프전 당시에 스스로 설립하려고 노력했던 무력사용의 모델을 파괴했다. 그 모델은 한 때 '미래를 위해 초석을 다져둬야 할 유형의 관례'라고 미국 정부가 생각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미국은 혼자 행동에 나서서는 안 되며, 다자적 접근이 더 낫다고 믿는다.

현재의 미국은 이런 믿음을 뒤집었다.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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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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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진 (127.0.xxx.xxx)
    2006-06-26 19:56:30
    테러문제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0
  • 이대진 (127.0.xxx.xxx)
    2006-06-26 19:55:29
    남사군도 분쟁의 경우도 인근 동남아 국가들이 중공때문에 미국에게 협력을 요청했지만 클*턴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었지요..그 이후 W.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중공은 남사군도에서 팽창책을 취하지 못하고 후퇴하게 되지요...
    0
  • 이대진 (127.0.xxx.xxx)
    2006-06-26 19:50:03
    만일을 가정해서 정보 부분이 클*턴 정부때 적합하게 운용되지 않았다거나 한다면...그리고 안보부분도 적합하게 정책이 집행되지 않았다면...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에 문제를 만들수 있지요..슬로우 모션으로 하면 사람들이 느끼기 힘들 수도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더라도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면으로 전개될수도 있지요..남사군도와 대만 문제에 관련하여 클*턴 정부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운영된 듯합니다...그래서 미의회에서 안보불안감이 팽배해져 대만을 반드시 방어하겠다는 대만결의안까지 냈을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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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순명 (127.0.xxx.xxx)
    2006-06-26 18:47:35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데요? <br>
    정보공동체 출신 관리 중에 이라크전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클린턴에게 돌리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가요? 이라크전에 관련된 정보실패 문제는 상원의 이라크 WMD보고서나 Kerr Report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걸 보시는게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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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진 (127.0.xxx.xxx)
    2006-06-26 15:18:29
    현 부시정부는 클*턴 정부 당시의 엉클러진 정보부분을 다시 바로잡느라고 몇년을 보냈고 그런 내용이 아마 911보고서에 나온 것으로 보도되었지요..
    0
  • 이대진 (127.0.xxx.xxx)
    2006-06-26 15:16:10
    클*턴 정부가 집권하여 위 내용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읍니까?..클*턴 정부는 의회로 부터 안보문제에 관한 평가로 낙제점을 받았는데요..이 지역에서도 같은 효과를 가져왔죠..동남아 지역에서 중공의 팽창을 불러왔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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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순명 (127.0.xxx.xxx)
    2006-06-26 14:11:25
    저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어떻게든 짜맞춰 보려는 설명이 안쓰럽군요.<br>
    부시 시니어는 걸프전의 압도적인 승리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선거 전에 찾아온 경기후퇴의 유탄을 맞았던 것이 선거에서 패한 제일 큰 원인입니다. 당시 클린턴 진영에서는 "It's economics, stupid!"란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크게 어필했었죠.<br>
    만약 저 글이 단순한 변명에 불과했다면, 이번 이라크전의 비극적인 진행을 저렇게 잘 예언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또한 이 글의 공저자인 스코크로프트는 부시 주니어 행정부에서도 이라크전에 반대하다가 공직에서 짤렸을 정도로, 이들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부시 시니어는 아들이 대통령인 동안 수렴청정 같은 비난을 피하기 위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전 반대 의견을 내기 전에 부시 시니어에게 먼저 상의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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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호 (127.0.xxx.xxx)
    2006-06-26 13:42:58
    수정, 앞에 나온 '제2차 걸프전의 승자'.. 이 아니라 "제1차 걸프전의 승자.." 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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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호 (127.0.xxx.xxx)
    2006-06-26 13:41:09
    저 글은, 시니어 부쉬가 "후세인을 살려둔 죄때문에" 대선에 떨어졌다는 세인의 입방아에 대하여 자신의 선택을 변명하고 낙선의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썼다고 봅니다. "자기는 잘했는데 국민들이 몰라줘서 낙선했다" 머 이런 변명이죠... 그러나 "후세인 살려뒀기 때문에 아버지가 낙선했다" 는 것을 잘 아는 아들 부쉬가 과연 자기 아버지의 변명에 귀기울일 있었을까요? 모든 국민들이 아버지 부쉬가 후세인을 진즉에 제거했어야만 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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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호 (127.0.xxx.xxx)
    2006-06-26 13:27:09
    시니어 부쉬가 재선에서 클린턴에게 떨어졌져. 그 선거 결과에 이라크 후세인은 만세를 불러댔고,, 제2차 걸프전의 승자는 부쉬 시니어가 아니라 후세인이라는 평가가 높았죠... 후세인은 그 후에도 부쉬 시니어의 초상을 땅에 놓고 밟고 지나가게 했고,,, 결국 부쉬 시니어가 암만 변명해도 그 때에 후세인을 뿌리 뽑지 못한 것 때문에 그는 선거에서 졌고, 결국 아들 부쉬가 나서서 제2차 걸프전쟁을 일으켜 후세인에게 복수해야만 했으니,,, 저 글은 아무 쓸데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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