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狂 )적인 보안 유지

  무적의 괴물 야마토를 완성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일본은 우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는 한편 희대의 기만술을 펼쳤다.

  야마토의 건조 계획이 시작된 것은 아직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유효하던 1933년!

  하지만 일본이 1935년 말을 기해 이 조약을 전면 폐기시키는데 성공( 사실 미국이나 영국도 독일의 재무장에 따라 사실상 자진 폐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하면서 전함의 건조는 순조류를 타게 되었다.

  문제는 미국이 이 사실을 알아차려 대응책으로 그 강력한 조선기술력과 자원을 앞세워 ‘울트라급 전함’을 건조할 경우였다.

  안 그래도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을 괴물급 전함을 소수 건조해 마치 훗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티거 전차와 셔먼 전차와 같은 상황연출을 해보고 싶어하는 일본의 입장에서 이는 결코 좋은 소식이 되지 못할 것이었고 따라서 건조 계획 단계에서부터 희대의 기만술이 펼쳐지게 되었다.

  예로부터 적을 효과적으로 속이고자 한다면 먼저 아군부터 완벽하게 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본은 이 원칙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우선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의 건조를 당시 보안 등급( 일본 제국 해군의 보안등급은 크게 “군사기밀”, “군극비”, “극비”, “대외비”의 4단계로 구분되었다 ) 중 최상위 단계인 “군사기밀”로 분류한 다음 건조에 소요되는 예산을 실제 만재 배수량보다 훨씬 적은 35,000톤급 전함에 소요되는 액수로 산출한 청구서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이는 당시 예산을 통해 건조되는 함선의 규모와 톤수를 역추산하는 각국 정보부의 추적을 완벽하게 무력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부족분은 어떻게 충당하는가? 였는데 이는 당시 건조되지도 않을 구축함 3척과 잠수함 1척의 건조 예산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처럼 예산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기에 미 정보부는 건조 초기부터 야마토급 전함을 자국의 콜로라도급이나 펜실베니아급 전함과 유사하거나 약간 강력한 수준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보안 등급 지정과 날조 예산을 통해 미 정보부의 눈을 속이는데 성공하자 일본 해군은 이제 실질적인 건조 과정을 과감하게 은폐하기 위한 특수 작전에 돌입했다.

  

패전 이후 해상자위대의 각종 구축함과 헬기모함의 건조 및 진수식이 화려하게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지켜본 분들은 야마토급의 건조 및 진수 과정 역시 매우 화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야마토급 2척( 야마토, 무사시 )은 그런 것과는 완벽하게 거리가 멀었고 화려한 진수식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우선 야마토가 건조된 구레 해군 공창은 건조에 관련된 모든 감독/관리자와 근로자들에게 보안 관련 서약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분들은 해마다 이런 서약 및 각서를 열람한 뒤 서명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에 서명한 뒤 본인의 사진이 첨부된 통행증과 뱃지를 교부받아 항시 휴대하고 다녀야 했다.

  

만약 이 통행증과 뱃지가 없다면 해당 인원은 공창 출입 자체가 원천 봉쇄되었고 수시로 드나드는 과정에서도 매 구획마다 배치된 보안원 및 겜페이타이( 헌병대, 憲兵隊 )에게 몸수색 및 확인 절차를 거쳐야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나마 양반에 불과했고 전함의 모든 정보가 기재된 도면은 초일급( 超一級 ) 기밀로 분류돼 관계자들의 열람에도 제약을 둘 정도였다.

  마치 고산자 김정호( 金正浩 )의 대동여지도가 총 22개의 파트로 나뉜 것처럼 야마토의 도면 역시 해당 도면만 봐서는 선체의 전체적인 형상을 알기 어렵도록 각 파트별로 나눈 뒤 해당 실무자에게 오직 그 파트의 도면만을 열람하도록 함으로써 나머지 파트는 전혀 모르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야마토의 전체적인 세부사항이 기재된 일반 의장도면과 건조 시방서는 총괄 책임자인 조선부장이 직접 관리/보관하여 정말 중요하다고 인정된 작업이 아닌 이상 타인에게 절대 열람시키지 않을 정도로 그 보안 유지는 치밀했다.

  또한 설계실의 보안도 정말 집요할 정도라 기밀 문서 및 관련 서적들 역시 해당 항목별로 각각 보관해 딱 그 내용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설계주임이 해당 도면을 검토해 공정 경과 사항을 진수부 장관에게 일일 보고하도록 하는 등 일본 측의 보안 유지가 얼마나 광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조치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일본의 패전 이후 미 군정 당국이 압수한 도면들을 펼쳐놓고 야마토의 건조에 참여했던 각 부서별 수석 기술자 및 작업자들을 심문한 결과 “나는 내 공정 외의 다른 공정에 해당되는 항목은 전혀 몰랐고 따라서 이 도면만으로는 야마토의 전체적인 사항을 알 수가 없소.”라는 증언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행정-서무 등 간접적인 분야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건조가 이뤄지는 구레 공창에 대한 보안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크게 뛰어넘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건조 과정을 외부에서 전혀 관찰할 수 없도록 은폐하기 위해 군 당국과 구레시민의 합동작전이 펼쳐졌다.

  

우선 실질적인 선체의 건조가 이뤄지는 도크 주변( 야마토의 건조를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는데 전장 314m, 폭 45m, 높이 11m라는 엄청난 규모였다 )에는 가건물들을 세워 근거리에서의 관찰 및 사진 촬영을 불허( 不許 )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조선소 당국은 이 주위를 다시금 육중한 함석판과 철굴 프레임을 이용해 거대한 장벽을 설치해 하나의 성채( 城砦 )를 구축해버렸고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크레인( 이것도 야마토의 건조를 위해 사실상 새롭게 추가된 것으로 약 350톤에 달하는 자재와 부품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을 지주( 支柱 )로 삼아 사실상 돔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한 위장망까지 둘러쳐버림으로써 공중은 물론 주변의 고지대( 高地帶 ) 및 야산에서조차 관측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버렸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1936년 12월에는 주변 고지대에 헌병들이 배치돼 경계를 실시하는 동시에 민간인의 입산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1937년 6월부터는 해발 855m 이상의 고지에서 항만 및 공창을 감제할 수 없도록 함석판과 철골로 이뤄진 벽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물론 미쓰비시사 주도로 나가사키 공창에서 건조된 자매함 무사시( 武藏 )는 이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보안 체계가 구축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영국과 미국 영사관이 위치한 탓에 도크 주변에 창고 등의 가건물을 여럿 가설하는 한편 무려 408톤에 달하는 거대한 장막을 이용해 도크 주변을 감싸 항만 주변을 빙 에워싼 산악지대에서조차 육안관측이 불가능했다.

  

이처럼 지형적인 보안조치를 완료한 일본 당국은 이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인적요인에 대한 보안, 방첩( 防諜 )을 단행했다.

  

우선 1936년 11월을 기해 구레를 경유하거나 행선지로 예정한 모든 열차에 헌병들이 배치되어 구레 조선소 및 항만을 경유하기 전 항만 및 공창 쪽 차창의 차광망( 遮光網 )을 내리도록 하는 방송 및 검속절차가 실시되어 열차 내의 승객들이 함부로 야마토의 건조를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자국민에게조차 열람이 금지된, 그만큼 야마토의 존재를 은폐하려한 일본의 조심스러움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

  

아무리 평소 입을 굳게 다무는 이라도 주석( 酒席 )에서는 과도한 취기( 醉氣 )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발설할 확률이 높다는 전제 하에 게이샤 등을 주축으로 무려 640여명에 달하는 방첩대가 편성돼 철저한 입단속에 돌입함으로써 일본의 광기어린 보안체계가 절정을 이루었다.

  

덕분에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주일 미국대사관 무관 스미스 해튼은 구레와 나가사키에서 건조 중인 신형 전함에 대한 정보를 전혀 빼낼 수가 없는 초유의 위기에 봉착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해튼은 일본 해군의 예산 청구서를 토대로 추정을 시작했지만 이 예산 청구서는 철저하게 위장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얻어낸 결과는 실제 야마토급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여기에 일본인 정보원 및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각국 해군무관들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 일본이 건조 중인 신형 전함은 총 4척이 건조될 예정으로 현재 건조가 진행 중인 1번함은 배수량 40,000톤급이며 2번함은 43,000톤급으로 410mm 3연장 주포탑 4기가 탑재될 것으로 추정한 보고서를 본토로 송부했는데 덕분에 미 해군은 이 엉터리 정보에 근거해 차세대 전함( 훗날의 아이오와급 )의 주포를 406mm로 채택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직 자신들도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410mm 이상의 구경을 지닌 주포를 일본이 개발했을 리가 없다는 인종적 편견도 한몫 두둑이 했지만 이런 미국의 오판을 부채질한 것은 바로 일본 당국이 독일에 제공한 신형 전함의 제원 때문이었다. 

  

1942년, 일본은 야마토의 배수량이 42,000톤이며 주포는 410mm가 탑재되었다는 엉터리 정보를 독일에 제공했고 미국은 이를 완벽하게 믿어버리고 말았다.

  이 엉터리 정보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기간 중 정설로 통했지만 점차 격침되는 일본 해군 함정으로부터 획득한 기밀문서 및 포로들의 증언을 통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으니 일본의 보안 유지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현재 이즈모급의 개수 공개는 미국과의 동맹 이후 더욱 대담해진 일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광적으로 유지한 보안의 장막 속에서 야마토급의 건조는 1937년 11월 4일에 기공된 이래 순조롭게 진행돼 1940년 8월 8일, 제1번함( 당시 야마토라는 제식명칭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 )의 진수식이 거행되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철저한 보안을 위해 덴노가 참석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선체를 해상으로 띄우는 방식이 아닌 도크에 해수를 주입하는 “매우 조촐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더해 11월 1일에 무사시가 진수될 때는 무려 600명에 달하는 경찰과 1,200명에 이르는 사세보 주둔 해군 육전대 병력이 배치돼 주민들의 외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도크 주변 일대를 엄중경계 할 정도였다( 10여년전의 이즈모의 진수식은 이에 비하면 정말 화려한 행사 그 자체인 셈이다 )

  

그나마도 사실상 진수식이 공식으로 발표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해당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이 날 신형 전함의 진수가 이뤄진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날 참석한 해군대신 대리에 의해 제1번함의 함명이 야마토( 大和 )로 명명되었다는 점이 중요사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야마토의 최종 의장공사가 완료된 날이 하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감행된 1941년 12월 7일( 아시다시피 이 날 진주만에서는 미 태평양 함대 소속 전함 6척이 처참한 몰골로 격침되거나 전복되는, 이른바 항공기에 의한 전함의 몰락기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다 )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불길한 징조가 드리운 셈이었다.

 

그리고 진주만 기습이 절반의 성공에 그친 지 9일 후인 12월 16일에 일본 해군에 정식으로 취역함으로써 거대전함 야마토라는 함명이 일본 해군사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