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인들의 일기 중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나 노상추일기 정도가 주목받고 있는 조선시대 군인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상대적인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부북일기(赴北日記·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부북일기는 군관 박계숙이 임진왜란이 종전한 직후인 1605년부터 1606년까지, 그의 아들이자 역시 군관인 박취문이 1644년부터 1645년까지 국경지역 수비 근무를 하면서 각각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니탕개의 난 이후 조선은 전투 능력이 우수한 정예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무과 합격자를 대폭 늘렸다. 이렇게 무과에 합격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부방, 다시 말해 1년씩 국경지역 수비 근무에 투입했다.

이를 통해 국경수비도 강화하고 본격적으로 무관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쌓게 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이다. 박계숙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박취문의 경우 부방 당시 무과에 합격했지만 정식 무관직으로 임용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출신군관 신분이었다. 출신군관은 상급자들이 지시하는 특정 군사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있고, 소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업무만으로 보자면 요즈음의 위관급 장교나 부사관의 업무 영역을 담당했다.이처럼 조선시대 군대의 하급 간부에 해당했던 두 사람의 일기에는 고향 경상도 울산에서 출발해 근무지역 함경도까지 이동하는 과정, 도착 후 국경지역에서 근무하는 내용을 거쳐 고향으로 귀환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조선시대에 국경지역 수비 근무자들의 일기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만큼 부북일기은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기에는 군인들의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게 기록돼 있다. 이를테면 박취문의 1645년 11월분 일기에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박취문이 조총 제조 업무를 감독하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조총 제조 책임자를 의미하는 조총별조감관에 임명된 박취문은 야장 18명 등 약 40여 명의 장인을 동원, 13명씩 3개 조로 나눈 후 3개월에 걸쳐 모두 288자루의 조총을 제조한다. 일기에는 조총 제조에 필요한 철의 양, 5단계로 구성된 조총 제조 공정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당시 군부대의 무기 제조 실태를 잘 보여준다.

일기를 보면 주인공들은 거의 매일 활쏘기를 할 정도여서 당시 군대에서 얼마나 활쏘기를 중시했는지 잘 보여준다. 박취문의 경우 189발까지 연속 명중 기록도 남아 있으며 다른 군관의 경우 200발까지 연속 명중하는 내용도 일기에 남아 있어 당시 간부급 군인들의 활쏘기 실력을 가늠하게 한다.

상급 부대의 검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박계숙의 1606년도 일기를 보면 1개월에 두세 차례씩 상급 부대의 검열이나 현장점검이 실시되고 있다. 이처럼 부북일기는 17세기 초 조선 군대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부북일기에는 공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여인과의 만남 등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서도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당시 군인들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분석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다. 아직 번역본은 없으며 원본은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