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MOLLE) 용의 전술 조끼와 여기에 부착되는 탄입대-주머니 류.     필자제공

 90년대에 미군의 IIFS(Individual Integrated Fighting System : 개인 통합 전투 체계) 장비는 예상보다 인기가 없었다. 조끼 형태인 점은 좋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장비의 장착 위치와 수효가 고정돼 있어 조금이나마 위치와 수 조정이 가능한 기존 ALICE(All-Purpose Lightweight Individual Carrying Equipment) 장비보다 불편하게 여기는 병사도 많았다. 여기에 냉전 후 축소된 미군의 예산 문제도 겹치면서 IIFS장비 보급률은 의외로 낮았다.

　이 때문에 미군은 새로운 개인 군장 시스템을 1997년에 개발한다. 바로 몰리, 혹은 몰(MOLLE: Modular Lightweight Load Carrying Equipment)로 불리는 시스템이었다. 번역하면 ‘모듈화 경량 하중 운반 장비’가 되는 이 체계는 20세기 끝 무렵에 나와 21세기 군장 시스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 파격적인 시스템이었다.

　시스템 자체는 전술 조끼와 배낭, 버트팩(허리에 매다는 소형 배낭) 등으로 구성돼 얼핏 IIFS의 발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사점은 여기서 끝이다. 몰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모듈화였다. 단독군장 상태에서 착용하던 각종 주머니 중 그 위치가 고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애당초 각종 주머니가 부착되는 전술조끼, 즉 몰리 베스트 부분에 달려있는 주머니류가 하나도 없다.

　이것은 PALS(Pouch Attachment Ladder System)이라는, 혁신적인 새로운 장비 장착 시스템에 의해 실현된 몰리의 전무후무한 모듈화다. PALS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두꺼운 천으로 만든 짧고 굵은 띠를 일정한 간격(0.5인치, 혹은 12.7㎜)으로 각종 전술조끼나 개인장비의 표면에 촘촘하게 배치한 수납부다.

　또 하나는 이 수납부에 끼워질 삽입부로, 전술조끼 등의 표면에 장착될 주머니나 액세서리류에 설치되며 수납부의 띠에 꿰어질 수 있는 폭의 강화된 섬유, 혹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긴 띠로 구성된다. 수납부에 삽입부의 띠를 꿰어낸 다음 삽입부의 띠를 금속 단추로 고정하면 되는,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다.

　몰리의 천재성은 이 PALS를 통해 말 그대로 원하는 수와 위치에 필요한 장비를 부착하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하는 탄약류 휴대 위치와 탄입대 수의 조절 기능은 병사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체형·임무·전장 성격 등에 따라 탄약 휴대량 및 휴대 위치가 같을 수 없음에도 기존 장비들은 선택의 폭이 매우 좁거나 전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몰리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 몰리 시스템이 가져온 변화는 새로운 장비의 부착이 전례 없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들은 처음 제정된 장비를 대체하거나 추가 장비를 부착할 여유가 적었다. 그러나 몰리 베스트는 PALS 규격에 맞으면 거의 무궁무진한 변화 가능성이 있어 추가 장비, 혹은 대체 장비의 장착이 간단하다.

　몰리 시스템은 1997년 등장했으나 처음 2~3년간은 보급이 그렇게 원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9·11과 그 뒤를 이은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빠르게 군에 보급됐다. 특히 PALS 규격의 보급은 미국만에 한정되지 않았다. 2001년 이후 기존 개인 장비를 개량할 때 PALS 규격을 그대로 도입하거나 유사한 형태의 제품을 만들지 않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