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이웃은 증오 대상이 됐고 스스로 살상무기 만들었다

  작성자: 신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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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25 16:02:41

46 키프로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그리스계-터키계 유혈 충돌 이어져
묵은 갈등 1974년 전쟁으로 비화
터키군, ‘북키프로스공화국’ 발족

 

키레네 항구 부근에 조성된 키프로스 전쟁 터키군 전사자 묘역 전경.

키레네 항구 부근에 조성된 키프로스 전쟁 터키군 전사자 묘역 전경.

북키프로스 에르칸 국제공항 청사 전경. 이 공항 근처 니코시아를 거쳐 남북 키프로스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북키프로스 에르칸 국제공항 청사 전경. 이 공항 근처 니코시아를 거쳐 남북 키프로스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키프로스 전쟁 당시 터키군이 노획한 그리스군 M3 반궤도식 장갑차 모습.

키프로스 전쟁 당시 터키군이 노획한 그리스군 M3 반궤도식 장갑차 모습.

니코시아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국경 세관 전경. 사진 왼편이 북키프로스, 오른편이 남키프로스 세관이다.

니코시아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국경 세관 전경. 사진 왼편이 북키프로스, 오른편이 남키프로스 세관이다.

키프로스 민족갈등 때 터키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민간차량 개조 장갑차.

키프로스 민족갈등 때 터키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민간차량 개조 장갑차.

남니코시아에서 본 군사분계선 지역. 도로 건너편 터키 국기가 있는 축대벽 위가 북니코시아 지역이다.

남니코시아에서 본 군사분계선 지역. 도로 건너편 터키 국기가 있는 축대벽 위가 북니코시아 지역이다.



두 민족 삶의 터전 키프로스 분쟁 역사


쪽빛 지중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 키프로스. 뜨거운 날씨에 후끈 달아올라 있는 북키프로스 에르칸(Ercan)공항은 한산했다. 3만 터키군이 주둔하고 있는 북키프로스는 사실상 터키 영토다. 영국이 통치했던 이 섬은 1960년 8월 키프로스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새 국가 탄생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이슬람 종교를 가진 두 민족 간의 갈등은 그칠 날이 없었다. 1964년 2월 6일 헌법 개정을 앞두고 주민 분쟁은 극한에 달했다. 수 세기 동안 쌓여온 증오감이 평화로운 마을을 처절한 싸움터로 만들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종교의 가르침도 인간 욕심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이웃은 증오의 대상이 됐고, 너도나도 살기 위해 스스로 살상무기를 만들었다.

북키프로스 역사박물관에는 민족분쟁 당시 사용한 사제 소총부터 자동차에 철판을 두른 장갑차까지 있다. 10년에 걸친 갈등은 1974년 7월 20일 마침내 전쟁으로 비화됐다. 그리스계 군부세력과 터키계 주민의 유혈 충돌이 발생하자 터키는 즉각 4만 병력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했다. 본토에서 불과 65㎞ 떨어진 터키, 이에 비해 500㎞ 밖의 그리스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8월 16일 터키군 공격이 중지되자 북쪽의 그리스계 20만, 남쪽의 터키계 8만5000 주민이 남북으로 교차 이주하는 대대적인 인구이동이 있었다. 섬의 37%를 차지한 터키군은 ‘북키프로스공화국’을 발족시켰지만, 이 나라를 인정하는 국가는 현재 세계에서 오직 터키뿐이다.


피아식별 잘못이 부른 전쟁터 대참사

사례#1. 1974년 7월 20일 새벽 터키군은 기습적으로 북쪽 키레네 항으로 상륙했다. 키프로스 수비대는 사력을 다해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7월 21일 그리스는 정예 공수부대를 30대의 수송기로 키프로스군 지원을 위해 발진시켰다. 적 레이더를 피하고자 항공기 편대군은 바다 위에 붙다시피 비행해 키프로스 국제공항으로 무사히 진입했다. 하지만 그리스군과 키프로스군의 작전 협조는 너무나 미숙했다. 착륙하려는 수송기를 터키군으로 오인한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키프로스군은 지원군 증원을 전혀 몰랐다. 33명의 그리스군이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하고 어이없이 아군 사격으로 순식간에 전멸했다.

사례#2. 전쟁이 발발하자 그리스와 터키는 해상으로 병력을 수송했다. 그리스 해군은 키프로스 서쪽 파포스(Pafos)항으로 접근했으나, 이미 터키군 함정이 봉쇄하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 구축함들이 파포스 항 진입을 위해 속속 집결하고 있다’라는 허위 통신을 터키군에게 흘렸다. 기만 통신에 속아 넘어간 터키 함정 2척이 즉각 출동했다. 터키 구축함 코자테페(Kocatepe)함은 파포스항 부근에서 매복작전 중이었지만, 아군으로부터 오인 공격을 받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그리스군과 터키군은 똑같은 미국산 3500톤급 구축함을 운용하고 있어 혼란이 더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터키 전투기까지도 이 함정에 1000파운드급 폭탄을 퍼부었다. 결국 어이없이 이 군함은 침몰했고, 80명의 승조원이 몰살당했다. 키레네항 언덕에는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전몰장병 추모탑이 지중해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키프로스 전쟁 상흔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니코시아(Nicosia) 중심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이 있다. 경계선 주변에는 파괴된 건물이 즐비하지만, 남북을 오가는 주민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국경 세관 부근 카페 옆에는 3단 윤형철조망이 흉측스럽게 올라가 있지만, 관광객들은 여유롭게 차를 마신다. 한국 여권을 제시하니 남북 키프로스 세관원 모두 단 한마디 질문도 없이 스탬프를 쾅쾅 내리찍는다. 남니코시아 골목에는 가끔 경계초소가 보였다. 길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스 아테네와 비슷한 분위기다. 남니코시아 주민들이 북쪽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해 보였다. 공원에서는 수많은 외국인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위한 행사란다. 이들은 5년 이상 일하면 남키프로스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단다. 의외로 많은 스리랑카·방글라데시·파키스탄·네팔인들이 식당·호텔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 있었다.


군사분계선 건물 속 무장병력

키프로스 군사분계선의 정전 감시는 1300여 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담당한다. 2002년에는 한국군 장성이 키프로스 주둔 유엔군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이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니코시아 중앙에 폭 100m의 비무장지대(일명 Green Zone)가 있다. 여건에 따라서는 담벼락 한 가닥이 남북을 구분했다. 주변에는 불타고 파괴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50여 년 전 처절했던 전쟁의 상흔이다. 남북 키프로스 국기를 세워둔 쌍방 경계초소 역시 한국 비무장지대의 GP 축소판이다. 초소 인근 건물은 예외 없이 근무자 숙소다. 가끔은 쓰레기가 잔뜩 쌓인 폐허가 된 건물 자체가 ‘그린 존’이었다.


북키프로스 답사 중 황당한 경험

북니코시아 도심에는 짧은 머리의 사복 차림 청년들이 몰려다녔다. 빨간 베레모와 하얀색 각반 복장의 군사경찰도 곳곳에 있다. 이들은 안보현장교육을 온 터키군이었다. 케말 파샤 동상 앞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을 만나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한국인임을 밝히니 2002년 월드컵축구 3·4위전 당시 터키팀 응원에 칭찬이 자자하다. 필자 핸드폰을 건네주며 터키어 표기 사진 자료 설명을 부탁하니 서로 나선다. 다른 팀까지도 인증사진을 찍자며 몰려든다. 우쭐하는 기분으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끝나고 그들은 버스를 타고 떠났다. 잠시 후 공원에 전시된 화포 촬영을 위해 핸드폰을 찾으니 없어졌다. “아뿔싸!” 동상 앞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시내에는 2개의 경찰서가 있었다.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간 곳은 하필 군사경찰서였다. 다시 수소문해 일반경찰서에 가니 핸드폰 고유번호(IEMI)를 요구한다. 다음 날 겨우 한국에서 확인한 번호를 수사관에게 알려주니 황당하게도 핸드폰은 지중해를 건너가고 있단다. 뒤늦게 경솔했던 행동을 반성했지만 사진 자료들은 깨끗이 날아가고 말았다.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시칠리아, 사르데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이곳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 요충지이며, 넓이는 9251㎢로 제주도의 5배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키프로스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간 유혈 충돌이 수시로 일어났다. 1974년 키프로스공화국·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에서 북부지역을 터키군이 점령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된다.

 


필자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5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쟁유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사진=필자 제공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1125/1/BBSMSTR_000000100142/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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