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UN가입 30년과 軍 국제평화협력활동> 진료 받으러 몰려온 현지 주민들로 새벽부터 긴 줄

  작성자: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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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6-09 14:47:19

76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① 동의부대 5년여 간 환자 26만 명 진료


다산부대 바그람 기지 공사 절반 수행
주민들과 다국적군 찬사 받으며
지역 안정과 평화 정착 기틀 마련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가니스탄 다국적군 작전에 동참해 각각 의료지원과 건설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지역 안정과 평화 정착의 기틀을 만들었다. 사진은 동의부대 3진과 다산부대 1진 장병들이 2003년 2월 26일 당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파병환송식 모습.  국방일보 DB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가니스탄 다국적군 작전에 동참해 각각 의료지원과 건설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지역 안정과 평화 정착의 기틀을 만들었다. 사진은 동의부대 3진과 다산부대 1진 장병들이 2003년 2월 26일 당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파병환송식 모습. 국방일보 DB


2001년 다국적군의 아프가니스탄 항구적자유작전에 동참한 우리 군은 평화협력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 정착을 위한 인도적 구호·지원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해성·청마부대(해·공군 수송지원단)에 이어 파병된 동의(의료지원)·다산(건설지원) 부대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주민을 진료·치료하고, 지역 재건과 다국적군 시설 건설을 진행하며 평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동의부대는 2002년 2월 처음 1진이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다국적군 기지에 전개해 동맹군과 현지 주민에 대한 의료지원을 시작했다. 이어 2진은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바그람에서 파병대를 운용했으며, 이듬해 파견된 3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다국적군 기지를 중심으로 대민 의료지원을 계속했다.

동의부대 진료는 현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한 국내 상황에서 위태롭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던 주민들은 동의부대의 헌신적인 진료를 받으며 삶의 희망을 이어갔다. 동의부대 군의관·간호장교의 뛰어난 진료·치료 실력에 대한 소문은 파병 이후 오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전역으로 퍼졌고, 주민들과 다국적군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군의 위상을 높였다.

동의부대의 진료를 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주민도 있었고, 일부는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실제로 환자의 절반 이상은 50㎞ 이상 거리의 지역에서 찾아오는 주민이었다. 이로 인해 동의부대의 병원 일대는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로 새벽부터 긴 줄이 생기곤 했다. 동의부대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내과·외과·소아과를 중점적으로 진료했고, 동맹군 장병들에 대한 진료도 병행했다.

이와 함께 동의부대는 주민 계몽을 위한 보건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오지 마을을 찾아가는 진료도 펼쳤다. 또 주민과의 교류 행사를 마련해 우리 문화를 알리고, 다국적 의료지원단과 교류·협력을 이어가며 연합의무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2007년 12월 철수 시까지 5년10개월여 동안 11개 진에 걸쳐 연인원 790여 명이 임무에 참여했고, 약 26만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다산부대 최초 파병은 2003년 2월이었다. 동의부대 3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으로 전개했고, 이듬해부터는 건설 소요 증가에 따라 대대급 부대를 건설공병단 규모로 증편해 파견했다. 다산부대는 다국적군 바그람 기지 내 활주로 확장 공사, 항공기 계류장 공사, 훈련장과 방호시설 건설을 비롯해 기지 운영에 필수적인 각종 시설 공사를 도맡아 완수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도로·건물의 보수·복구와 학교·관공서의 신축 지원 활동도 펼쳤다. 2007년 12월 철수할 때까지 4년10개월여 동안 9개 진에 걸쳐 연인원 1350여 명이 투입됐고, 바그람 기지 내 공사의 약 50%에 해당하는 400여 건의 공사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의·다산부대의 역사에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2007년 2월 적대세력의 테러 행위로 다산부대 고(故) 윤장호 하사(추서계급)가 전사한 것이다. 통역병이었던 고 윤 하사는 당시 바그람 기지 정문 인근에서 통역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살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 사고로 다국적군 장병과 주민 등 50여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이는 파병 장병의 안전 대책을 더욱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동의·다산부대에는 해병대 병력도 포함됐다. 해병대 파병은 베트남전쟁 이후 두 번째였다. 경계작전 지원을 위한 요원들이었는데, 2002년 2월 동의부대 최초 파견 시 8명을 편성해 경비반으로 운영했다. 이후 다산부대가 전개해 바그람 기지 내 두 부대가 통합 운영되면서 17명을 추가해 기지 내외부에서의 부대 경계작전을 수행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한국대사관 경계작전에 투입돼 재외 공관 경계와 교민 보호 임무를 했다.

동의·다산부대는 대한민국 위상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 평화협력에 동참한 활동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양국의 우호를 크게 증진한 활약이었다. 아울러 1990년대 소말리아와 서부사하라 등에서 펼친 해외 작전 수행의 흐름을 이어 더욱 발전된 임무를 하며 우리 군의 역량과 경험을 높이는 시간이었다. 서현우 기자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0609/1/BBSMSTR_000000100138/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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