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오브 어스’의 화염병은 큰 소리를 내서 좀비를 모을 우려가 있지만, 뛰어난 화력으로 광역 공격이 가능해 충분히 유용한 무기다. 필자 제공

비정규군의 효율 높은 무기, 화염병

지난 시간 언급한 ‘그리스의 불’의 현대적 후예로 이야기해볼 만한 현대 무기로는 화염병이 존재한다. 정규 편제 무기는 아니지만, 유리병에 인화물질을 담아 불을 붙여 던지는 이 무기는 실제 현대전의 여러 상황에서 긴요하게 활용된 바 있다.

서구권에서 화염병을 가리키는 별칭인 ‘몰로토프 칵테일’은 2차 대전 중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겨울전쟁’에서 비롯된 말이다. 압도적인 기계화 전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에 맞서기 위해 핀란드군은 휘발유를 채운 병에 불을 붙여 적 전차에 던짐으로써 전차 엔진룸에 화재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맞서고자 했다.

현대 정규군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무기지만, 게릴라나 테러리스트, 시민군 같은 비정규군에서 화염병은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활용되기도 한다. 간단한 제조법에 비해 화염이라는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 있고, 특히 직접적인 투척이 아니더라도 길목에 던져 화염으로 길을 막거나 하는 용도로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1인 슈팅 게임(FPS)인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에서 화염병의 사용 사례가 그럴듯하게 등장한다. 대테러부대 진영이 사용하는 소이탄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바닥에 깔아 주요 길목을 차단하거나 적이 엄폐할 가능성이 높은 곳에 먼저 던져 화력정찰의 개념으로 쓸 수 있는 형태로 실제 화염병의 운용법 중 하나인 길목 차단의 좋은 사용례를 보여준다.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도 화염병은 투척 무기의 대표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바이러스 창궐로 무너진 세계에서 사실상 정규 무기의 보급이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화염병은 유리병과 알코올, 헝겊으로 금방 제작할 수 있는 효과 높은 투척무기로 자리 잡는다. 대규모로 좀비가 밀집해 있는 지역을 화염병 하나로 클리어할 수 있어, 일종의 소형 소이탄과도 같은 효율 높은 무기로 각광 받는다.


화염을 뿜는 압도적 포스, 화염방사기

현대적인 화염 무기를 거론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무기는 화염방사기다. 인화성 물질이 들어 있는 탱크나 카트리지를 등에 메고 노즐을 전방으로 향해 불을 붙이면 불붙은 액체나 가스가 화염과 함께 전방으로 뻗어 나가는 이 무기는 실제로 세계대전 기간에 콘크리트로 보호받는 적 벙커 등을 불태우는 용도로 활용된 바 있었다.

그러나 실제 효과의 측면에서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 속에 현대 무기 체계에서 보기는 힘들다. 등에 인화물질을 지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큰 위험 요소고, 생각보다 사람이 들고 화염을 발사할 때의 유효 사거리가 짧아서 도리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불을 뿜는다는 공격 방식의 임팩트가 워낙 크기에 여러 매체에서는 실전 효과 이상으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무기다.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진영 보병인 ‘파이어뱃’이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또 효율 높은 화염방사기를 그려낸 게임 속 모습일 것이다. 기본 유닛인 ‘마린’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지만, 프로토스나 저그 진영의 기본 유닛인 질럿과 저글링이 떼로 몰려오는 근접 공격 유닛인 점을 감안할 때 ‘파이어뱃’의 광역 화염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로 자리 잡는다. 전방에 ‘파이어뱃’을, 후방에 ‘마린’을 놓는 기본 진형은 어지간한 적 근접 유닛의 접근을 말 그대로 녹여버리는 테란 운용의 기본 전술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미군 화염전차 M4 크로커다일은 포탄 대신 화염을 뿜어내 건물 안의 적 보병을 대응할 때 유용한 기갑 장비로 등장한다. 필자 제공

2차대전 시뮬레이션 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공병과 기갑에 각각 화염방사기가 등장한다. 미군 기본 공병을 업그레이드하면 M2 화염방사기를 들고나오는데, 건물 안에 있는 적이나 벙커 속의 기관총을 우회해 공격하는 데 있어 상당한 효율을 보여주는 무기로 기능한다. 미군 주력전차였던 M4 셔먼의 개량형인 M4 크로커다일 또한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개량형으로 등장하는데, 일반 전차에 비해 적 보병 대응용으로는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막상 자원 대비 효율이 높은 편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한 만큼 치명적이라 조심스러운 소이탄

현대적인 화염 무기라면 아무래도 소이탄 계열이 최종 형태일 것이다. 폭발을 중심에 두는 일반적인 폭탄과 달리 소이탄은 폭발보다도 화염의 확산을 통한 화재 유발에 중점을 두는 무기다. 대규모의 화재를 손쉽게 일으키고 또 잘 꺼지지 않도록 만드는 소이탄은 화재를 통한 적 전력의 전소, 공포 유발과 2차적인 유폭 등을 일으킬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로 손꼽힌다.

그러나 소이탄에 이르면 불을 활용하는 무기의 또 다른 특징인 쉽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불이 번지는 방향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이탄을 활용하는 공격은 다른 무기에 비해 민간인 오폭의 위험이 큰 편이기 때문이다.

백린탄은 강력한 화염을 발생시키지만, 사람에게 지나치게 치명적인 무기다. 강한 무기일수록 그 사용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필자 제공

특히 연막탄과 소이탄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백린탄의 경우는 아예 사람의 신체에 달라붙어 지속적으로 화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무기가 된다. FPS게임 ‘스펙옵스: 더 라인’에서는 백린탄을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의 효과가 잔인할 정도로 묘사되면서 무기의 인도적 사용이라는 주제를 게이머들 사이에 뜨겁게 끌어낸 적도 있을 정도다.

인류 문명의 시작을 만들어낸 불은 한편으로는 그 끝 모를 파괴력 덕분에 역사의 시간 내내 무기로서의 활용이 연구되어 왔고, 인간이 쉽게 통제하지 못하는 불의 위력은 효과적인 무기와 스스로를 파멸시킬 재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상태다. 모든 무기는 효과적일수록 위험하고, 그렇기에 무기는 철저한 안전수칙과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다뤄져야 한다. 비단 불을 활용한 무기에만 국한되는 안전수칙은 아닐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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