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UN가입 30년과 軍 국제평화협력활동> 파병 전 현지조사 결과 지뢰 매설 상황 심각했다

  작성자: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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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4-08 10:38:51

48 D-60, 파병을 준비하라-천영택 예비역 대령 (앙골라 공병부대 1진 대대장)

 
유엔이 요청한 지뢰 제거 부대 대신 재건 작전 펼칠 공병부대 파견 합의
물자·장비 컨테이너 40개 분량 준비... 촉박한 일정에도 교육·훈련·예방접종
시행착오 기록 일지 책자로 묶어 발간

 

1995년 8월 부산항으로 수송을 마치고 선적 중인 앙골라 공병부대 차량·장비들.

1995년 8월 부산항으로 수송을 마치고 선적 중인 앙골라 공병부대 차량·장비들.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앙골라 공병부대의 파병은 신속하게 추진됐다. 시작은 1995년 2월 유엔 PKO 사무국이 우리 정부에 한국군 파병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이었다. 이후 같은 해 7월까지 국방부를 중심으로 초기검토, 현지 조사,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쳤고, 대통령 재가와 국회 동의를 얻어 최종적으로 이뤄졌다. 부대창설은 8월 7일이었고, 본대 출국일은 10월 4일이었으니 부대가 실제 파병 준비에 쏟은 기간은 두 달이 채 되질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7월 중순께 대대장에 선발되고 8월 7일 부대가 창설됐어요. 출국까지는 두 달 남짓 남았는데 준비 업무는 산더미 같았지요. 그렇다고 대충 할 수 없었고, 더욱 강한 집중력과 굳건한 의지로 완벽하게 마쳤습니다.”

당시 앙골라 공병부대 1진 대대장이었던 천영택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은 파병 준비에서의 아쉬움이 남아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더라면 더욱 완벽한 파병이 이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이전까지 소말리아와 서부사하라 등 두 번의 유엔 PKO를 통해 북부 아프리카 경험을 쌓았지만, 중부지역은 처음이었다. 기후, 환경, 지형이 모두 달라 그에 맞는 전략적 준비와 작전이 필요했다.

“같은 아프리카라고 해도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합니다. 사막 지형이 있고 밀림·정글 같은 지형도 있으며, 산악 지형이나 해안 지형도 있으니까요. 파병지에 따라 공병 작전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 물자·장비·자재부터 신경 써야 했습니다. 풍토병에 대비한 예방접종도 마찬가지였고요.”

당시 천 중령은 본대 파병 전 두 번에 걸쳐 앙골라 현지를 다녀왔다. 첫 번째는 한미연합사 공병 축성과장이었던 1995년 4월 합동 현지조사단으로서 국방부·외무부(당시) 관계자들과 떠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같은 해 8월 1진 대대장 선발자로서 현지협조단 임무를 위해서였다.

현지조사단은 PKO 부대 파병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실사하는 데 주목적이 있었고, 현지협조단은 파병 결정 이후 부대 주둔 지역과 임무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주로 했다.

현지에서의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유엔이 요구한 우리 군 전개 희망지역인 앙골라 중부는 내전이 치열하게 진행된 곳으로 격전지마다 수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었다. 또 유엔은 처음 지뢰 제거 부대 파병을 요청하면서 우리 정부와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우리 정부는 공병부대를 파견해 교량복구 중심의 재건 작전을 펼칠 것 등을 유엔과 협의·결정했다.

“신문·방송 보도 등을 통해 위험지역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울면서 말리더라고요. 하지만 군인으로서 사명감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설득했지요. 6·25전쟁 때 각국 유엔군이 우리나라를 도왔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듯, 고통과 아픔을 겪는 아프리카에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월 7일 부대 창설식과 함께 198명의 파병 인원이 온전하게 집결해 본격적인 파병 준비에 돌입했다. 본대 출국일은 10월 4일이었지만, 부대가 현지에서 사용할 물자·장비는 그보다 앞서 8월 말께 부산항에서 먼저 출발해야 했다. 천 중령을 포함한 부대원들의 마음은 다급했다.

“사전 현지 조사와 협조 임무를 수행했지만, 부대 창설 이후 주어진 시간이 많이 부족했어요. 각 부대에서 각종 공병 물자·장비를 받아 기술검사를 진행했고, 결과에 따라 정비와 부품 교체를 해야 했습니다. 또 도색을 통해 유엔 표식을 넣어야 했어요. 아울러 임무 기간과 범위를 고려해 필요 수량을 측정한 뒤 소모품과 자재를 구매했고요. 2~3주 내 이 작업을 우선 마무리해야만 했습니다.”

선박에 선적된 물자·장비는 컨테이너 40개 분량이었다. 20종이 넘는 특수 장비와 자재, 차량, 통신·화학·일반물자, 유류·탄약, 비품·소모품, 의약품 등이 포함됐다. 준비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 부대에서 모인 부대원들에게 앙골라 현지 상황과 임무에 맞는 교육·훈련을 해야 했고, 이들의 단결과 협동을 강화해야 했다. 풍토병 예방접종도 마찬가지였다.

“예방접종에는 간섭 기간이 있어서 한 번 접종하면 일정 시간이 지나야 새로운 접종을 할 수 있고 또 접종마다 정해진 시기가 있는데요. 진행해야 할 접종이 말라리아, 황열, 장티푸스 등 10가지는 족히 됐습니다. 이를 겨우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중령 이하 부대원들은 금세 단결했다. 낯선 이국땅에서 임무를 함께 수행한다는 동질감과 평화를 위한 유엔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하나 된 마음은 부족한 시간을 메우는 힘이 됐다. 순탄치 않았던 준비와 시행착오를 거쳐 부대는 10월 5일 앙골라에 도착했다. 이어 중부지역 우암보로 전개해 주둔지를 구축했고 빠르게 현지 적응했다. 그들의 준비는 완벽했다.

“완벽했다고 이야기 듣지만, 지휘관으로서 아쉬움이 큽니다. 참고할 만한 자료나 기록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앙골라에 오는 그다음 부대, 또 훗날 각지로 떠날 또 다른 파병부대들은 저희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1진 부대원들이 합심해 책자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부대 파병을 준비하면서 잘된 점은 물론 부족했던 부분과 시행착오를 기록한 일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 800쪽 분량의 책자로 남겨졌다. 그 중 절반은 파병을 준비하면서 경험한 일들이었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교훈을 함께 주고 싶었습니다. 시행착오를 숨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각해 발전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했습니다. 그것이 초기 PKO 부대의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서현우 기자
사진 제공·도움말=군사편찬연구소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0408/1/BBSMSTR_000000100138/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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