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함 아일라트 격침 영광 머물러
함정 속도 높이고 전자장비 개발한
이스라엘 공격에 함정 수십 척 피해

이집트 해군본부·해군대학·해군사관학교와 주력 함대가 있는 알렉산드리아 항만 해변도로의 해군 전몰용사 추모탑. 필자 제공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인구 500만의 이집트 제2의 도시다. BC 303년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과거 이 나라 수도였다. 이 항구는 나폴레옹과 영국함대 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중동전쟁까지 많은 해상전투를 지켜보았다. 이집트해군의 요람인 알렉산드리아에는 해군본부·해군대학·해군사관학교와 주력 함대가 있다.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한국인의 불편함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세계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집트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중국 식당을 즉각 폐쇄했다. 이 사태로 중국인과 비슷한 한국인들까지 도매금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 최소화를 위해 ‘Korea’ 로고와 태극기가 붙은 모자를 썼다. 대한민국 표지를 보고 양식 있는 이집트인은 분명 중국인이 아님을 알 것이다.

카이로발 알렉산드리아행 열차 식당은 복잡했다. 커피값을 계산하려니 옆 청년이 선뜻 자신의 것과 같이 지불한다. 카이로 웨일스대학(분교) 건축과 5학년인 아하메드(Ahmed)는 모자를 보고 한국인임을 금방 알아봤단다. 이순신, 거북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언급하며 임진왜란을 설명할 정도로 한반도 역사에 관심이 많다. 물론 현재 북한 핵 위협 상황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다. 치대 2학년인 여동생도 열렬한 한국 팬이다. 치과의료 수준은 한국이 세계 최고라며 대학 졸업 후 한국 연수가 그녀의 꿈이라고 한다.


이집트 청년들의 고민 ‘결혼지참금’

아하메드는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취업 후 결혼할 생각이지만 ‘결혼지참금’ 때문에 힘들 것 같단다. 이 돈은 신부의 미모·학력·직업에 따라 달라진다. 신부 부모에게 지참금을 주어야만 혼인이 허락된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대학교수로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이지만 지참금만큼은 부담된단다. 결혼당사자들끼리 부담 액수를 대폭 줄이기도 어렵다. 집안 자존심 문제로 신부 부모가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 혼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결혼풍습으로 이집트에는 유난히 노총각이 많다. 결국, 경제적 기반을 갖춘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신부를 맞이하는 결혼이 흔하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돈 많은 남성은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다. 중동 졸부 중 외국에서 총각 행세를 하며 결혼하려는 사람도 있단다. 설령 첫째 부인이 되더라도 남편이 두 번째 여자를 데려오면 말릴 방법이 없다. 수백 년 전통의 이런 관습은 당분간 깨뜨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

BC 8000년부터 나일강변에서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졌다. 나일강 치수와 피라미드 건축은 현대과학으로도 해석이 어렵다. 수천 년 역사의 이집트에는 이런 유적들이 곳곳에 있다.

알렉산드리아 항 끝부분에는 ‘카이트베이 요새(Fort of Qaitbay)’가 시퍼런 지중해를 지켜보고 있다. 그 성채 안에는 2300년 전에 건립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파로스(Pharos) 등대’가 있었다. 높이 135m, 불빛 반사 거리 50㎞에 달했다는 이 건축물 잔해는 1994년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해저에서 일부 인양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 언저리에서 어떻게 24시간 불꽃을 피웠으며 거대한 렌즈는 누가 만들었을까? 1303년, 지중해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이 등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고 후세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의문점을 풀지 못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이집트 해군사관학교 정문. 필자 제공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전쟁 이야기

알렉산드리아 해변에는 의장병이 24시간 지키는 해군전몰용사 추모탑이 있다. 이 항구는 2차 대전 시에는 영국함대의 모항, 중동전쟁 시에는 이집트해군 발진기지였다.

1941년 12월 18일 야간, 이탈리아 해군 특전요원이 탄 잠항정 3대가 알렉산드리아 항구 침투에 성공했다. 잠수함차단그물·폭뢰·초병 등 촘촘한 경계망을 뚫고 입항하는 구축함 꽁무니의 파도 속에 몸을 숨겼던 것이다. 이들은 정박 중인 영국 전함에 고성능 폭탄을 설치한 후, 4명은 육지로 탈출했지만 2명은 포로로 잡혔다. 폭발 시간이 다가오자 포로는 영국군에게 대피할 것을 요구했다. 12월 19일 06시, 대폭발과 함께 전함 ‘밸리언트’와 ‘퀸엘리자베스’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유조선 ‘사고나’도 폭발 충격으로 침몰하였다. 해군 특수작전의 가공할 만한 성공 사례다.

1973년 ‘10월 전쟁’ 당시 이집트 해군은 어뢰정 37척, 미사일함 21척, 잠수함 10척, 구축함 3척을 보유했지만, 이스라엘은 14척의 미사일 함정이 주력이었다. 하지만 이집트군은 1967년 이스라엘 구축함 ‘아일라트’를 격침한 과거 영광에만 파묻혀 있었다. 반면 이스라엘 해군은 패전 교훈을 통해 대응 전술개발에 전력투구했다. 엔진 개량으로 함정 속도를 대폭 높였고, ‘가브리엘(Gabriel)’ 함대함 미사일과 최신 전자장비를 개발했다. 적 미사일 공격 대비 채프(Chaff) 살포, 회피기동 등 승조원들은 피눈물 나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 결과 10월 전쟁에서 이집트·시리아군은 55발의 스틱스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단 1척의 피해도 없이 이집트·시리아함정 수십 척을 격침하였고, 알렉산드리아 항만을 봉쇄했다. 이집트 군함들은 신출귀몰하는 이스라엘 함정 때문에 안전한 항만 내에 대피해 있어야만 했다.


사막의 혈투장 알라메인으로 가는 길

알렉산드리아 서쪽으로 100㎞ 떨어진 엘 알라메인은 1942년 연합군과 독일·이탈리아군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인 세계적인 전쟁 유적지다. 고속도로 주변 쪽빛 지중해와 하얀 백사장은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늘어선 리조트는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성수기에 이집트 부호들과 유럽 피서객이 몰려들어 충분한 수익성이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 같았다. 알라메인 군사박물관 주변 사막에는 수십 층 빌딩이 하늘로 치솟는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공사가 끝나면 과연 누가 이런 곳에 입주할 것인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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