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0월, 철기는 상해(상하이)에서 수만 리 길을 달려와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에 위치한 서로군정서 본부에 도착한다.

1919년 당시 독립운동에는 크게 세 갈래 흐름이 있었다. 첫째가 상하이와 미주를 중심으로 외교를 통해 독립하자는 흐름이었다. 둘째는 외교로는 한계가 있다며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하자는 흐름이었다. 주로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이 중심이었다. 셋째는 민족교육을 통한 실력양성론이었다.

철기는 무장투쟁의 길을 택했다. 3·1만세운동 후 파리평화회의에 대한 실망으로 국내외에서는 무장투쟁을 원하는 열혈 지사들이 만주로 속속 몰려들었다. 철기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만주에는 40여 개 이상의 독립무장투쟁단체가 활동했다. 그중 규모 면이나 지도자의 면면, 그리고 임시정부 인식 면에서 대표적인 무장투쟁단체가 서간도의 서로군정서와 북간도의 북로군정서였다.

철기의 나이 20세. 한창 혈기왕성한 철기는 만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배운다.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세력의 이합집산과 공산주의라는 무서운 사상이 얽히고설킨 혼란의 한복판에 들어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철기는 올바른 판단과 결심, 그리고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다. 훗날 대한민국 국군을 건설하는 데 자양분이 되는 큰 걸음이었다.



1920년 전후의 만주와 독립군

만주 지역은 지금의 중국 동북3성(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 지역을 말한다. 현대의 중국은 만주라는 명칭을 싫어한다. 과거 만주국에 대한 어두운 기억 때문이다. 중국에서 보면 만주 지역은 청나라의 발흥지이지만, 신해혁명 이후 새롭게 변모해 가는 당시 중국으로서는 변방에 불과했다. 1920년대가 되자 만주는 점점 중국·일본·러시아 세력이 이해를 다투는 핵심무대로 바뀌어 갔다.

만주의 동남방인 간도 지역은 압록강·두만강과 직접 맞닿아 있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한국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다. 지금의 연변자치 지역 일대다. 두만강 북쪽인 연변 지역을 북간도, 그 서쪽인 압록강 북쪽 지역을 서간도라 부른다.

청나라 시절 간도는 청과 조선의 국경 지대로, 사람 출입을 금하는 비거주 지역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와 바로 인접해 있는 심리적·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조선인들이 일찍부터 이주했다. 조선 철종 시기부터 조금씩 이주민이 월경해 간척을 시작하다가 1869년 전후로 함경도에 대기근이 일어났을 때 본격적으로 이주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인 1910년부터 1911년 사이에 2만5000여 명이 집단적으로 이동했다.

이 지역에는 일찍부터 무장투쟁을 벌이기에 유리한 여러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우선 많은 이주 한인들을 바탕으로 항일 무장세력은 인적·물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간도 지역은 중국 땅이기는 하나 국가 권력의 공백 지역이었다. 당시 만주의 주인인 동북군벌 장작림(장쭤린)은 만주 지역의 지배자였다. 그러나 베이징 일대를 중심으로 타 군벌과 세력다툼을 벌이는 데 치중하느라 간도 일대에 대해서는 장악력이 미비했다. 그 때문에 치안이 부실하고 마적들이 들끓었다.

한편 일제는 간도에 조선총독부 파견 영사기관을 설치해 일본인 이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인 이주민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간도 지역은 대한제국 군대해산 후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무장 의병세력들이 넘어와 활동하기에 좋은 최적의 공간이었다.



서로군정서와 신흥무관학교

서간도 지역의 한국인 독립투쟁사를 알려면 그 지역 이주민 자치단체의 발전과 무장단체의 발전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 독립운동사적으로 보면 1910년을 전후해 일본이 미국·중국·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므로 이때를 대비해 해외에 독립전쟁 기반을 만들어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독립전쟁론이 대두하게 된다.

1907년 국내의 애국지사들은 항일 비밀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해 계몽과 교육, 독립군 양성 등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경술국치 후 신민회는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얽혀 조직이 붕괴하자 국내보다는 국외 독립군기지 확보를 통해 조직적인 활동으로 전환했다. 1910년 12월, 신민회는 전국간부회의를 열어 국외 독립군기지 설치 장소를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대일 무장투쟁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한다.

즉 만주 서간도 황무지를 새 영토 개념으로 구입하고, 여기에 무관학교를 세워 기회가 오면 독립전쟁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각 도 대표들은 지역으로 돌아가 서간도에 갈 이주민과 군자금 모집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우선 영남 지역의 이회영·이상룡·김대락·김동삼 등의 일가들이 가산을 정리하고 집단으로 간도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주한 한인들은 1911년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 이주민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했다. 경학사는 이주민의 정착과 계도를 지도하면서 장차 군사력화하기 위한 일종의 비밀결사였다. 그리고 1911년 6월엔 예하에 신흥강습소라는 교육단체를 설립했다. 이후 신흥강습소는 중국인과의 토지분쟁으로 1912년 7월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해 신흥학교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해 운영했다. 이후 한족자치단체는 1919년 3·1운동 후 ‘한족회’로 확대 통합된다. 그리고 그 산하에 남만주 일대의 독립운동 총본영으로서 군정부(軍政府)를 조직했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되자 한족회는 상하이에 대표를 파견해 임시정부 산하로 들어갈 것을 협의했다. 그 결과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로 한족회의 군정부를 서로군정서로 확대해 개편했다.

군정서의 첫 사업은 신흥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해 정예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독립군을 편성하는 일이었다. 신흥학교는 서로군정서 산하로 들어가면서 1919년 5월 3일(음력) 신흥무관학교로 정식 개교했다.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의 영향으로 학교를 찾아오는 청년들이 넘쳐나자 합니하(본교)에서 유하현의 고산자 하동 대두자(분교)로 이전했다.

개교된 신흥무관학교 교장에는 이세영, 연성대장에 지청천, 교관에 오광선·신팔균·김경천 등이 선임됐다. 철기는 신흥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이면서 당시 상하이에 있던 이시영의 추천을 받아 신흥무관학교로 갔다. 그리고 한족회 학무부장인 김규식을 통해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임명된다.

당시 신흥무관학교 개교 소식은 국내는 물론 만주 일대에 흩어져 있던 한인 청년들에게 큰 희망이었다. 특히 일본 육사를 나온 김경천이나 지청천이 일본군을 탈출해 합류하고, 중국의 명문 운남(윈난)군관학교를 졸업한 이범석이 교관으로 합류했다는 소식은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철기가 만주에서 내디딘 첫걸음은 정예 독립군을 양성하는 데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사진=필자 제공

<박남수 철기 이범석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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