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회담이 진행되는 2년여 동안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피아간에 진지전과 고지쟁탈전이 계속됐다. 그 중 특히 휴전이 임박한 1953년 6∼7월의 전투는 뜨거웠다.



동부전선에서는 동해안 최북단 간성까지 진출한 국군 15사단이 간성에 인접한 351고지 전투(1953년 6월 2일∼7월 18일)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공세를 받고 적 1800여 명을 사살했음에도 아군 피해 전사 478명, 부상 1413명의 피해를 보며 적에게 넘겨주었다.

351고지는 북쪽의 저지대를 감제(瞰制)할 수 있고 월비산 점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 전투는 1953년 6월 2일부터 7월 18일까지 3차에 걸쳐 국군 15사단이 북한군 7군단 예하 3사단과 7사단을 맞아 전개한 방어 전투였다. 1차전에서 적은 포병의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고지 정상까지 공격해왔고 아군은 육박전으로 대항했으나 진지를 점령당했다. 6월 15일 치러진 2차전에서 유엔군은 함재기와 포병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고지 탈환에 실패했다.

서부전선에서는 경기도 연천 북방 임진강 상류에 있는 국군 1사단 11연대 6중대가 방어하고 있는 전초기지 앞으로 중공군 2개 대대가 공격해와 7월 15일∼16일 이틀 동안 무려 19차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중에 김만술 소위가 지휘하는 6중대 2소대가 백병전을 치르며 사력을 다한 끝에 중공군 2개 대대를 물리치고 베티고지를 사수했다.

1개 소대 병력으로 적 2개 대대의 공격을 물리친 유례는 세계전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승리이자 6·25전쟁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대승리’로 기록됨으로써 한국전쟁사를 빛나게 했다. 김만술 소위는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정부가 주는 십자훈장을 받았다.

가장 치열한 전투는 중부전선 화천 북방 ‘425고지’ 전투였다. 정전협정을 앞둔 7월 20일부터 27일까지 8일 동안 국군 7사단과 중공군 135사단이 화천발전소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벌인 결사항전이었다. 이 전투는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로 기록됐고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고 휴전선이 38선 북쪽으로 35㎞나 확장됐다.

425고지는 화천 북방 1.2㎞ 지점의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요충지로 6·25 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다. 화천발전소가 있어서 어느 편도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다. 김일성은 절대로 이 지역을 빼앗길 수 없다고 강조하며 중공군사령관 펑더화이에게 반드시 빼앗아 달라고 요청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남한이 사용하는 총 전력의 30%를 생산하는 화천발전소의 중요성을 인식해 절대 사수를 명하고 7월 19일 2군단 사령부를 직접 방문하여 장병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425고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좌전방의 감제고지인 602고지와 552고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602고지는 11사단 20연대(연대장 유원식 대령)가, 552고지는 9연대(연대장 김영하 대령)가 각각 작전구역으로 맡아 공격, 점령, 방어, 역습, 철수, 반격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7월 15일부터 20일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을 지속했다. 그런 가운데 7월 20일 새벽 2시50분 602고지가 중공군 손에 넘어갔고, 새벽 4시경에는 552고지도 중공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3연대(연대장 박응규 대령)는 20연대에 앞서서 425고지와 602고지 탈환작전에 투입돼 18일 아침 8시30분 425고지를 탈취, 중공군의 역습을 막아내고 방어에 들어갔다. 13연대는 425고지는 점령했지만 연대 전투력은 기진한 상태가 됐다. 이때 2군단장 정일권 중장은 13연대의 피로를 덜어주고 전투력 회복을 위해 예비대로 빠지게 하고, 그 자리에 군단의 예비 7사단을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7월 20일 아침 6시40분에 진지 교대가 이뤄졌고 7사단 8연대는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곧바로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됐다.

중공군은 135사단의 병력을 증강해 20일 오후부터 425고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사용했고 국군은 백병전으로 맞섰다. 작전지역을 인수한 7사단 8연대는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사력을 다해 잘 지켜냈다. 특히 1중대장 김한준 대위 등이 용전한 8연대는 중공군 950여 명을 사살하고 화천발전소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아군도 160명이 희생됐다.

한편 602고지와 552고지를 빼앗긴 11사단은 예비로 빠져있던 13연대를 재투입, 고지를 탈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명에 따라 13연대는 7월 23일 새벽 4시에 1대대는 602고지로, 3대대는 552고지에 대한 반격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 고지를 각각 점령했다. 그러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런 과정이 반복됐지만, 휴전이 성립되던 7월 27일 오전에는 적의 수중에 들어감으로써 고지 확보에 실패했다.


<배영복 전 육군정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