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시험모델(STM)이 경남 창원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 기동시험장의 야지 시험로를 달리며 주행성을 테스트받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진은 사용군의 전술운용 개념을 구현하고 세계적인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해 차기장갑차의 분야별로 최신 기술들을 적용하고자 했다. 경량화 복합재 동체, 수상 추진·부양 장치, 750마력급 동력장치, 암 내장형(In-arm) 유기압 현수장치, 40㎜ 포·포탑, 자동송탄 장치 등과 같은 새로 개발할 부체계(Sub-system)가 그것이다.

　실로 그 누구도 개발의 성공 여부를 장담키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일부 기계화 장비를 좀 안다 싶은 이들 사이에는 “어렵겠다” “힘들겠는데” 정도가 아니라 “안 될 걸” 하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차후에 언급하겠지만, 그만큼 어려운 개발 과제인 것은 분명해 나중에 개발방향을 변경한 예도 있다.

　“그 같은 신규 개발 부체계가 주는 불확실성을 사전에 검증해야 했습니다. 그 방안이 구조시험모델(STM : Structure Test Model)을 제작·시험하는 것인데, 각각의 신규 개발 부체계의 기술 수준 정도를 평가하면서 체계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함이죠. 또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해 체계개발 때 기술적 대안을 수립하고자 하는 뜻도 있습니다.”(김종배 연구원)

　　▶선진기술 동향 파악

　이 무렵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전투장갑차(IFV)는 스웨덴의 CV90 장갑차와 미국의 M2 브래들리 장갑차였으며, ADD로서는 차기장갑차 개발에 필히 참조하거나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장비였다.

　2000년 8월 당시 차체개발 주관자인 김종배 박사는 해외 유사 전투장갑차의 체계기술 수준 및 개발현황 파악을 위해 일행과 함께 해외 유수업체 방문길에 나섰다.

　첫 방문은 스웨덴의 Hagglunds 사(社). CV90 장갑차는 30㎜ 포를 탑재한 CV9030 모델과 40㎜ 포를 탑재한 CV9040 모델이 있었는데, 1980년대 Hagglunds 사가 이 두 모델을 각각 개발해 1990년대 자국에서는 CV9040 모델을 전력화하고, CV9030 모델은 노르웨이·핀란드·스위스 등에 수출하고 있었다.

　Hagglunds 사는 또 한 번의 수출을 염두에 두었는지 김 박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CV9040 장갑차뿐만 아니라 CV9030 장갑차의 운행시범까지 김 박사 일행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CV90 장갑차들은 중량급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기동력과 야지 주행능력, 주행 중 사격성능 등과 더불어 날렵한 외형이 인상적이었다. 또 화생방 집단방호, 40㎜ 복합기능탄, 40㎜ 무장 및 송탄장치 등은 그 당시 K200 장갑차에만 익숙했던 김 박사에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기갑장비 박물관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부터 개발한 수백 대의 전차와 장갑차의 시제품 위주로 전시돼 있었다. 김 박사 일행은 주요 관심사였던 수상운행장치를 유심히 살폈다.

여러 종류의 스커트를 적용한 장비들과 스노클 적용 모델, 추진장치를 적용한 모델 등에서 하천과 호수 같은 수상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그들의 노력을 엔지니어의 감각으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인구 900만 명의 노벨상의 나라, 기술이 발달한 나라라는 생각만이 가득 찼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잠시 뇌리를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 박사 일행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 역시 미국의 최신 장갑차인 M2 브래들리를 보기 위해 UDLP 사(현재 BAE사로 흡수)를 방문했다. 방문 당시 UDLP 사에서는 기존 장갑차 개조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는데, 내장형 훈련장치는 개발했지만 실용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또 M2 브래들리에 수상운행장치를 개발해 적용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일도 털어 놓았다. 미국 방문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소득은 없었다.　

　▶중간 연구결과 공개

　김 박사 일행은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얻은 귀한 교훈을 갖고 귀국한 후 본격적으로 STM 설계에 착수했다. 마침 완료한 실물모형 평가 결과와 분야별로 수렴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그해 11월에 시제업체인 대우종합기계에서 제작을 완료, 각종 시험 및 검사에 들어갔다.

　ADD의 창원 기동시험장과 육군기계화학교 수상시험장에서 차량특성 시험을 비롯한 16개 항목의 기본성능시험, 수상주행저항측정을 비롯한 4개 항목의 수상운행시험 및 4000㎞ 내구도 주행시험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향후 차기장갑차에 복합재 동체 구조물을 적용하느냐의 문제가 크게 대두됐다. 복합체 동체는 금속재에 비해 중량 감소 효과는 있지만 아직 부분품을 제작하고 정비하는 기술이 낮으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 양산장비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됐다. 특히 피탄 등으로 손상이 생기면 정비업무로는 손상 부위를 정상으로 복원하기가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사업책임자 김종규 박사는 복합재의 동체 적용을 보류했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2002년 2월 초, 당시 사업책임자(PM : Project Manager)인 김종규(현 삼성테크윈 고문) 박사는 “탐색개발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이 시점에서 소요군에게 개발시제를 전부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자”고 제안하면서 체계팀장들에게 시연회 준비를 지시했다.

　이것은 2000년 1월 사업착수회의 이후 4월 체계요구 검토회의(SRR : System Requirement Review), 8월 실물모형 제작 및 평가, 11월 예비 설계 검토회의(PDR : Preliminary Design Review), 그리고 2001년 4월의 상세 설계 검토회의(CDR : Critical Design Review)와 구조시험모델(STM) 시제제작 등을 거치는 동안 소요군에서 일고 있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실제 소요군 관계자들은 관련회의 참석 횟수가 거듭될수록 ‘차기장갑차의 형상과 최신 기술이 적용됐다는 부품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증이 커져 갔던 것이다.

　2002년 2월 말, 창원에 있는 ADD 기동시험장에서는 차기장갑차의 탐색개발 중간결과 보고회가 열렸다. 기동주행 시험로에 마련된 행사장은 크게 실내 전시장과 야외 시연장으로 구성됐다.

　실내 전시장에는 체계 구조시험모델 자료를 비롯해 부체계 분야별 탐색개발 과정에서 제작한 각종 시료 및 시편들이 가지런히 전시됐다. 특히 하드웨어 제작물뿐만 아니라 M&S 기법으로 분석한 분야별 시뮬레이션 동영상들이 연속 시연돼 눈길을 모았다. 또 자동송탄 가상시제 동영상, 주무장 작동 동영상, 암 내장형 현수장치(ISU) 작동 동영상 등은 주요 장치들의 복잡한 내부 형상과 실제 기계적 작동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해당 전시부스들은 소요군 참석자들로 붐비는 가운데 특히 실내에 전시하기에는 부피가 커 야외에 전시한 복합재 동체 부분 구조물과 수상부양 시험장치 등은 구조시험모델 실물과 함께 차기장갑차가 완성되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실감나게 했다.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그렇듯 기동 시연. 탐색개발 체계시제인 STM이 최창곤(현 방위사업청 방산진흥국장) 체계팀장의 손짓에 따라 시동을 걸었다. 강력하고 웅장한 엔진소리가 울리더니 주행시험로 위를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치 한 마리의 비호와도 같았다. “와, 저렇게 빨라?! 대단하네!”

　시연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탐색개발 착수 후 지난 2년여간에 수행한 연구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차기장갑차 체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참여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탐색개발 중간결과 보고회는 소요군을 포함한 참여기관들 간의 업무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사업에서도 연구개발 진행과정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개발자와 소요군이 함께 참여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김종규 사업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