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이범석 다시알기 - 북만주에서의 항일 투쟁 

중국군 초빙돼 기발한 전략으로 주목
마잔산 장군이 소문 듣고 참모로 발탁
일본군 장갑차 급소 공격 조언 큰 전과
강교전투기념관에 용맹·지략 자료 남아
1932년 러시아서 8개월간 포로 생활
공산국가 실체 목격 반공정신 공고해져

자유시에서 대한독립군이 공산군에 의해 집단 학살된 후 철기는 연해주와 만주·외몽골을 떠돌며 고단하고 외로운 항일 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31년, 만주사변으로 중국군이 항일투쟁에 나서자 철기에게 중국군 야전군급 참모를 경험할 기회가 왔다. 중국 정규 군관학교 졸업 경력과 청산리전투 명성으로 헤이룽장성의 중국 항일군대에 초빙된 것이다. 

일본군 장갑열차에 ‘눈에는 눈’ 대응책 제시

중국 헤이룽장성 내 군지휘관 중 한 명인 쑤빙원(蘇炳文) 장군이 철기의 소문을 듣고 정중히 불렀다. 일본군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브레인 역할을 주문한 것이었다. 이때의 유명한 일화가 철기의 ‘개조 장갑화차’ 이야기다. 당시 일제 관동군의 드넓은 만주 땅 공략 전략은 만주 지역에 발달된 철로를 따라 대도시 중심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철도를 이용해 최전방에 대부대를 보내고 철로와 역참은 경비대로 방호하는 개념이었다. 이를 위해 장갑열차를 선봉으로 활용했다. 장갑열차는 탱크이자 자주포였다. 막강한 화력과 돌파력에 중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쩔쩔매는 쑤빙원에게 철기는 ‘눈에는 눈’이라는 대응책을 제시했다. 즉, 중국군 지역 내에 널브러져 있던 무개화차를 돌과 모래를 이용해 장갑열차로 개조하자는 아이디어다. 아래는 철기의 회고다.

“무개화차 위에 절단한 레일로 말뚝 삼아 두터운 이중 벽을 만들고 이 사이에 돌과 모래를 부어 방탄 효과를 만들었다. 그 위에 다시 레일을 촘촘히 걸치고 다시 모래주머니를 160㎝가량 쌓아 놓고, 중간에 사방으로 총구를 만들어 소총이나 기관총이 자유롭게 사격하도록 했다.

기관차는 대열 중간에 위치시켜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그 앞뒤로 개조 장갑화차 2~3량을 달게 했다. 기관차는 가운데 있으니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작았다. 장갑은 모래나 자갈 등을 잘 다져 넣었다. 그리고 우수한 보병간부들을 선발해 개조 장갑화차의 전술적 운용을 숙달시킨 다음 관동군에 대응하게 했다.”

이 개조 장갑화차는 일본군 진격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만주 땅에 드날린 것이다. 철기는 말했다.

“창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있지만, 있는 것을 새롭게 쓰는 것도 창의라고….”

 

중국군 야전군 참모로 활약 

철기의 개조 장갑화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중국 헤이룽장성 주석 마잔산(馬占山) 장군이 철기를 핵심 참모 요원으로 스카우트했다. 중국에서 마잔산 장군 하면 중국 최초의 대규모 항일전을 승리로 이끈 ‘강교(江橋)전투’의 영웅이다. 강교전투란 1931년 11월 일제 관동군의 헤이룽장성 성도 치치하얼 점령을 중국군이 저지한 전투로, 중국 항일투쟁의 상징적인 전투로 이름이 높다. 당시 마잔산군은 일제 관동군의 장갑차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철기는 장갑차의 급소는 포탑 회전부이니 용감하고 날랜 병사를 선발해 이 포탑 회전부에 철 공구 등 쇠붙이를 끼워 포탑을 돌지 못하게 하면 공격하기 쉽다고 조언했다. 중국군은 철기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를 실전에 적용해 큰 효과를 봤다. 철기는 강교전투에서도 지략과 용맹을 과시해 지금도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에 가면 항일기념관에 철기의 용맹과 지략을 기리는 흉상과 자료가 있다.

마잔산 부대의 치열한 항일전투로 크게 피해를 본 일제 관동군은 관동군 전체 전력을 이 방면으로 집중시켰다. 악전고투 끝에 중국군 수만 명은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중동철도 서부 종점인 만주리를 경유해 소련령인 다후리로 탈출했다.

러시아 소도시 톰스크서 공산국 실상 목도

1932년 초가을, 철기를 포함한 7만여 명의 중국 항일군은 러시아에 억류됐다. 시베리아 한복판의 작은 도시 톰스크에서 8개월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됐다. 철기는 톰스크에서의 억류 생활 8개월 동안 공산 러시아혁명의 실상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철기가 본 공산 러시아의 첫인상은 자유의 억압이었다. 거주지를 떠나려면 먼저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동 즉시 비밀경찰 게페우(GPU)의 감시가 따랐다. 화폐는 돈이 아니라 소속 직장의 코페라치프(소비 합작사)에서의 물건 교환권에 지나지 않았다. 주택은 민간 가옥을 모두 정부가 접수해 국가 소유가옥과 합쳐 직장별로 다시 할당했다. 두 식구에 방 하나 정도였다. 모든 사람은 직장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이 없으면 배급도 없기 때문이다.

지독한 감시와 통제로 전통적 가정 관념이 무너졌다. 부자 형제 사이에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 남편과 아내의 직장이 다르고 근무 시간도 맞지 않아 부부가 집에서 만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탁아소에서 공산국가에 충실한 공산당원으로 키워졌다. 천지가 공포와 불안의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숙청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밤에 유리창 너머 나는 발소리에 깨 밖을 내다보면 누군가가 끌려가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병영이었다. ‘노동자 조국을 수호하는 방위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군사교육이 사회를 지배했다. 여자 직공까지 소총·기관단총 분해 결합의 선수가 됐다. 초등학생은 비오네르(소년돌격대), 청년들은 콤소몰(청년단)에서 조직 생활과 의무를 가르쳤다.

공산주의는 사회의 모순을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가족주의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파괴됐다. 공산주의와 다른 모든 사상과 관습은 탄압 대상이었다. 공동생산과 공동 분배는 인간의 경제적 동기를 무시했다. 지금의 북한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철기는 톰스크에서의 8개월 억류 동안 공산국가 실상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철기가 회고하는 그 실상은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공산국가인 북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시 참변 과정에서 본 공산주의자의 속성과 흉계, 톰스크 억류 생활에서 겪은 공산국가 실상, 그리고 앞으로 국민당 군대에서 체험하게 될 중국 공산당의 선전 선동과 간계 등은 철기의 반공정신을 공고하게 했다. 이는 훗날 철기가 대한민국의 초대 국방부 장관이 돼 정훈병과를 창설하고 국군의 사상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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