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국제인도법 바로 알기> 포로 지위 부여됨과 동시에 인도적 보호 권리 생겨
작성자 : 안준형(203.255.xxx.xxx)
입력 2024-02-05 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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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도법 바로 알기
전쟁 포로는 어떠한 대우를 받는가-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을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포로 대우 담은
협약 마련 국제사회 보편규범 안착
소지품 수색·무기 압수할 수 있지만
개인 물품 제외…금전은 영수증 발급
협박·모욕·대중 호기심으로부터 보호
얼굴 사진 보도·인터뷰 방송도 불법
노동 강제할 수 있지만 장교는 제외
적대행위 종료 땐 즉시 본국 송환해야
<strong>영화 ‘세인트 앤 솔저’ 스틸컷.</strong>
영화 ‘세인트 앤 솔저’ 스틸컷.

1944년 12월 독일군이 벨기에 말메디에서 미군 포로 80여 명을 학살한 사건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세인트 앤 솔저: 최강 전차 부대’는 독일군이 미군 포로들을 모아 놓고 소지품을 수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포로들이 소지하고 있던 담배나 귀중품을 압수하던 독일군은 대열에서 빠져나와 달아나던 포로를 즉각 사살하고 저항하는 포로들에게 집단으로 총격을 가한다. 이와 같은 장면은 포로의 소지품을 압수하는 것에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포로에 대한 무기 사용에 이르기까지 전장에서 포로를 어떻게 대우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19세기 말까지 전쟁 중에 생포된 포로는 사살되거나 노예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29년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당수의 포로들은 범죄 혐의로 처형당하거나 강제수용소로 이송돼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심지어 생체실험에 이용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관행을 인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채택된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은 전쟁 포로 보호를 위한 상세한 법적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이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 내용은 포로 대우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인은 합법적인 교전자로서 적국의 교전자에 대해 적대행위를 수행할 권리를 갖는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와 같은 행위는 다른 나라의 국민을 살상하고 물자를 파괴한 범법행위로서 해당 국가의 국내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전시에는 군인의 교전 행위 자체가 합법이므로 이들이 전쟁 중에 생포된다고 해서 국내법 위반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쟁 중에 생포된 군인은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에 따른 전쟁 포로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이와 같은 지위를 ‘전투원의 특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항복이나 부상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하는 등 교전자가 적국의 수중에 놓이게 되는 즉시 포로 지위가 부여된다. 포로를 생포한 국가는 이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소지품을 수색할 수 있으며 무기나 군 장비를 압수할 수 있다. 그러나 방탄모나 방독면 같이 포로의 안전과 관련된 장비 또는 계급과 국적을 표시하는 기장, 훈장, 특히 가족사진과 같은 포로의 개인적이거나 정서적 가치를 갖는 물품은 압수할 수 없다. 금전을 비롯한 귀중품의 압류 역시 안보상의 이유가 있는 경우로 한정되는데, 이때에도 특별장부에 기록하고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제18조).

전쟁 중에 적 전투원을 포로로 사로잡는 것은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더 이상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즉 포로는 범죄자가 아니라 단순히 안보상의 이유로 일정 기간 억류되는 자일 뿐이므로 수용 조건 역시 죄수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따라서 포로가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수용소의 일정한 공간에서 어느 정도 이동의 자유가 부여돼야 한다. 같은 이유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이들을 수용소 내에서 포박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의 핵심 원칙은 ‘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제13조). 6·25전쟁 당시 광주 중앙 제2 포로수용소 모습. 사진=거제시청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의 핵심 원칙은 ‘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제13조). 6·25전쟁 당시 광주 중앙 제2 포로수용소 모습. 사진=거제시청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의 핵심 원칙은 ‘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돼야 한다’는 것이다(제13조). 협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해석상의 문제를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포로를 사망하게 하거나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언급하면서, 특히 신체 절단 또는 의학실험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또한 포로는 폭력과 협박, 모욕,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항상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포로들을 독일 시내에서 행진하게 한 것이나 걸프전 때 연합군 조종사들을 바그다드 거리에 세워 대중이 공개적으로 관람하게 한 것은 국제인도법 위반이다. 오늘날에는 포로들의 사진을 촬영해 보도하거나 생포 직후의 인터뷰를 방송하는 행위 역시 불법으로 평가된다.

포로에 대한 심문은 금지되지 않지만, 포로는 자신의 ‘성명, 계급, 출생 연월일 및 소속군, 연대, 군번’을 제외하고는 진술할 의무가 없다. 설령 포로가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협박이나 모욕, 기타 불쾌하거나 불리한 대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정보 입수를 위한 육체적·정신적 고문이나 기타 모든 형태의 강제 역시 금지된다(제17조). 6·25전쟁 당시에는 심문 과정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국제인도법상 금지되는 ‘강제’로 평가된다. 다만 억류국이 자발적 협력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한편 억류국은 군사적 성질을 갖지 않는 업무에 한해 신체적으로 적합한 포로에게 노동을 강제할 수 있다. 물론 지뢰 제거와 같이 건강에 해롭거나 위험한 성질의 노동을 강요할 수는 없다(제52조). 이뿐만 아니라 억류국은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거나 일정한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등 협약에 따라 부과된 다양한 조건들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부사관에게는 감독업무만 강요할 수 있을 뿐이며, 장교는 강제노동이 허용되지 않는다(제49조).

억류국은 포로에게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로에 대한 무기 사용은 폭동이 발생하거나 포로가 도주하려고 하는 경우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후의 수단으로만 인정되므로, 무기 사용에 앞서 시의적절한 경고가 선행되어야 한다(제42조). 따라서 일정한 경계를 넘으면 경고 없이 즉각 사살하는 개념의 사선(death line)을 설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적대행위가 종료되면 포로는 지체 없이 석방, 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제118조). 그런데 6·25전쟁 당시에는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이 대거 발생하는 특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공산 측은 포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3협약에 따라 보장된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명시한 제7조를 내세우면서 무조건 전원송환을 고집했다. 반면 유엔사 측은 개인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송환은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맞서며 비강제 송환을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는 정전협정 제3조 51항에 따라 포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처리됐는데, 이는 제118조의 해석에 관한 중요한 선례라 할 수 있다.

필자 안준형은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필자 안준형은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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