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군이 자랑하는 ‘검은 독수리’ 블랙이글스(Black Eagles)가 ‘독수리의 섬’ 랑카위를 접수했다. 블랙이글스는 23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랑카위 국제공항에서 열린 ‘국제해양·항공 방산전시회 에어쇼(LIMA 에어쇼)’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곡예비행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랑카위에서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한국 기술로 만든 인도네시아 공군 KT-1B도 선봬

말레이시아 공군 초청으로 LIMA 에어쇼에 참가한 블랙이글스는 이날 개막식에서 화려한 비행능력을 뽐냈다. 본격적인 에어쇼 전 활주로에는 각국 참가팀이 자랑하는 항공기들이 주기돼 있었다. 중국의 J-10 전투기, 러시아의 수호이(Su)-35,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인도네시아 공군의 KT-1B도 반갑게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미국·캐나다·오스트리아·태국·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의 항공기도 지상에 전시됐다.

하지만 단연 관심을 끌었던 것은 블랙이글스의 T-50B 항공기. 블랙이글스는 지난 3월 ‘2023 호주 애벌론 국제에어쇼’에서 초대 종합 최우수상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비행팀임을 입증받았다. 지난해 영국 리아트(RIAT) 에어쇼에서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받는 등 최근 국제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도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고 T-50B의 늠름한 자태를 촬영하기 바빴다.

에어쇼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각국 항공기들은 비행 전 점검을 했다. 이는 블랙이글스도 마찬가지. 조종사들이 비행에 앞서 브리핑을 하는 동안 정비사들이 먼저 활주로로 향했다.


고온·습도 이겨내며 항공기 구석구석 점검한 정비사들

비행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정비사들의 손길은 유독 꼼꼼해 보였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격납고에서 출격하는 다른 항공기와 달리 활주로에서 바로 이륙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기를 맞아 폭우가 쏟아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을 비추는 말레이시아의 기상은 가장 큰 변수. 정비사들은 고온과 습도를 이겨내며 연료탱크, 타이어 기압, 각종 센서 등 항공기 구석구석을 살폈다.

개막 비행을 맡은 말레이시아 공군의 특별비행이 끝나자 관람객들은 큰 박수로 이들을 격려했다. 비행 장면 장면을 재미있는 쇼처럼 소개하는 내레이터의 활약도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제 블랙이글스가 나설 차례.  브리핑을 마친 조종사들이 속속 활주로로 향했다.

조종사들은 정비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점검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곡예비행을 앞둔 조종사와 정비사들의 표정은 비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긴장감을 떨쳐내려는 듯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드디어 하나, 둘 조종간에 몸을 싣고 캐노피가 닫혔다. 최종점검까지 모두 완료된 상황. 대한민국 공군력과 국산 항공기의 우수성을 선보일 블랙이글스가 출격에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Ladys and Gentleman….” 블랙이글스 내레이터 김영광 소위가 유창한 영어로 블랙이글스를 소개했다. 특히 블랙이글스의 T-50B와 말레이시아 공군이 계약한 FA-50이 같은 기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공군은 곧 블랙이글스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FA-50 전투기를 조종할 예정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공군과 말레이시아 공군을 가족으로 만들 것입니다.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블랙이글스 비행 오는 27일까지 지속

“지금부터 쇼를 시작합니다(It’s Showtime)!” 김 소위의 외침과 함께 블랙이글스가 무대에 등장했다. 블랙이글스는 30분 동안 ‘다이아몬드 포메이션(Diamond Formation)’ 등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극찬을 받은 고난도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비행기가 좌우에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서로 교차할 때는 탄성이, 로맨틱한 음악과 함께 연막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 때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을 향해 날아가는 ‘웨지 브레이크(Wedge Break)’를 선보이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활주로 맨 앞에서 블랙이글스 비행을 지켜본 아리스 씨는 “오늘 쇼를 보면서 블랙이글스의 빅 팬(Big Fan)이 됐다”며 “놀랍고 환상적인 쇼였다. 앞으로도 한국과 블랙이글스를 사랑하고 응원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블랙이글스의 비행은 오는 27일까지 계속된다. 독수리를 의미하는 말레이시아어 ‘헬랑(Helang)’과 갈색이란 뜻의 ‘카위(Kawi)’의 합성어인 랑카위에서 펼쳐질 ‘검은 독수리’의 활약은 이제 막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 LIMA 에어쇼 이모저모

전우 응원 세계 유일…최고 기량의 원동력은 팀워크

비행 준비를 마친 블랙이글스 8기가 활주로로 향하자 정비사를 비롯한 지상 요원들이 앞으로 나와 각 항공기와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안전비행을 기원했다. 지상 요원들이 하나가 돼 조종사를 응원하는 모습은 랑카위 국제공항 활주로에 모인 여러 나라 비행팀 가운데 블랙이글스가 유일했다. 전우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블랙이글스는 23일 LIMA 에어쇼 개막식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세계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블랙이글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모든 요원은 이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팀워크’라고 답했다.

블랙이글스는 현재 운용하는 항공기마다 반고정 형태의 팀원들이 배치돼 있다. 이들은 거의 매일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춘다. 정비사 송영길 중사는 “조종사와 정비사는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다”며 “서로의 존재가 안전비행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조종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곡예비행을 완벽하게, 안전하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기본이라고 한다.

이런 팀워크와 신뢰에는 블랙이글스를 이끄는 서영준(대령) 53특수비행전대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블랙이글스 조종사 출신인 서 전대장은 ‘배려’를 강조했다. “모든 조종사가 모든 비행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흔들릴 수 있죠.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동료 조종사입니다. 우리는 동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임무를 끝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른 이에 대한 이해·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서 전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블랙이글스의 비행이 다르게 보였다. 어느 비행이나 변수는 있기 마련. 블랙이글스의 완벽한 비행은 매 순간 작용하는 변수를 소통·배려·팀워크로 ‘미세 조정’한 결과물이었다.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국위 선양 앞장

비행을 종료한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은 쉴 틈이 없었다. 활주로를 벗어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구름떼 같은 관람객들. 이들에게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은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 스타였다.

블랙이글스의 인기는 비단 조종사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블랙이글스의 팀복을 입은 사람, 오른쪽 어깨에 태극기가 붙은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 요청이 이어졌다.

기자의 눈에는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블랙이글스 장병들은 태연했다. “에어쇼를 마치면 늘 있는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놀라운 비행을 선보이는 블랙이글스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과 성원은 놀라우리만큼 뜨거웠다.

긴장되는 비행을 막 마쳤음에도 블랙이글스 장병들은 정성을 다해 ‘팬 서비스’에 나섰다.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관람객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쳐가며 환한 미소를 건넸다. 다정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경하는 블랙이글스 장병들과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관람객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국제 에어쇼 무대에 처음 선 내레이터 김영광 소위 역시 수많은 관람객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 소위는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아 다소 쑥스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관람객들과 소통하면서 블랙이글스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만큼 맡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블랙이글스가 관람객들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부대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과 공군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국방외교의 일환이다. 블랙이글스는 이번 LIMA 에어쇼 퍼블릭 데이(Public Day)인 오는 26~27일 현장을 방문하는 일반 관람객들을 위해 조종사 사인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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