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육군102기갑여단 ‘전차 승무원 전투형 체력단련’ 현장을 가다
체력이 곧 전투력 ‘컴뱃머슬’ 키운다
실전성
전차탄 들어 올리고 뛰고…
전차 승무원들의 필수 근력 단련
임무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고안
수준에 맞는 운동으로 부상자 0명전우애
“절대 포기는 없다” 다부진 각오
전우·중대원 응원에 끝까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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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맹수열 기자가 모의 105㎜ 전차탄을 들어 올리며 전투체력단련을 체험하고 있다.
전차탄으로 운동을?…‘기막한 운동법’
기자가 방문한 지난 7일 백호중대는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전투체력단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 설악산이 선명히 올려다보이는 탁 트인 연병장에서 장병들은 정 대위 지휘에 맞춰 한창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체력단련과 딱히 상관없을 것 같은 장비들. 전차 승무원들이라면 너무나 친숙할 모의 105㎜ 전차탄 박스와 12.7㎜ 기관총 탄통 2개가 그것이었다. 전투부상자처치(TCCC) 훈련이 활성화되면서 익숙해진 더미(인체모형)도 있었다.
“이제 저것들을 들고 뛰면 됩니다. 반환점에 도착하면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뒤 다시 들고 처음 온 위치로 뛰어오면 됩니다. 간단하죠?”
중대만의 운동 프로그램 ‘전차 승무원 전투형 체력단련’을 고안한 정 대위가 기자에게 다가와 설명했다. 105㎜ 전차탄 한 개는 약 35㎏, 12.7㎜ 기관총 탄통은 15㎏, 더미는 거의 70㎏에 육박한다. 헬스장에서 하는 고중량 운동을 생각하면 그리 무거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저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궁금해졌다. 왜 굳이 전차탄을 들고 뛰어야 할까? 본격적인 체력단련이 시작돼 일단 질문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프로그램은 정 대위의 설명 그대로였다. 2인 1조로 구성된 장병들은 전차탄 박스를 함께 들고 50m 앞 반환점을 향해 질주했다. 반환점에 도착한 이들은 탄 박스를 열어 각자 모의 전차탄을 들어 올렸다. 10번을 들어 올린 장병들은 모의 전차탄을 박스에 넣은 뒤 출발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각자 기관총 탄통 2개를 두 손에 나눠 쥐고 같은 방식의 운동을 했다. 더미를 어깨에 메고 달린 뒤 스쿼트(앉았다 일어나기)를 10번 반복한 뒤 돌아오는 것으로 한 세트가 마무리됐다. 더미를 메고 출발점으로 달려오는 장병들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상기돼 있었고, 연병장은 이내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들고, 달리고…전차 승무원에 ‘딱’
운동을 마무리한 뒤 잠시 쉬고 있는 장병들에게 먼저 가졌던 궁금증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명확했다. 바로 ‘실전성’.
“저희는 전차 승무원들입니다. 훈련이나 실제 상황에서 전차탄을 끊임없이 옮겨야 하죠. 전차탄뿐만 아니라 다른 무거운 장비도 많습니다. 저희는 운동을 통해 평소 전차 승무원들이 가져야 할 필수 근력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전차탄을 들어 올리는 것, 그것을 들고 뛰는 것 모두 전차 승무원들에게 필요한 부위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죠.” 남기탁 병장의 설명이다.
이어 정 대위는 조금 더 전문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정 대위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고안한 주인공이다.
“운동선수가 종목에 따라 다른 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전차 승무원에게 필요한 근육과 특전요원에게 필요한 근육은 저마다 다르죠. 전차 부대와 전차 승무원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프로그램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체육을 전공해 근력과 심폐지구력 향상을 위한 운동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죠. 지금 보신 운동은 ‘점진적 과부하 원리’(근육에 가해지는 부하를 점차 늘려 나가는 것)를 적용한 것입니다. 여기에 개인별 체력과 건강 상태를 고려해 팔굽혀펴기 등 가벼운 맨몸운동으로 구성된 ‘기초 타바타 운동’, 전차탄 박스 들고 달리기 등 ‘고중량 서킷 트레이닝’ 두 가지를 합친 ‘종합 서킷 트레이닝’ 순서로 강도를 조정했죠. 수준에 맞춘 운동을 한 덕분인지 아직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습니다.”
중대가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도 어느덧 1년. 많은 장병이 운동 효과를 입증했다고 입을 모았다. 첫 산악행군에서 가장 뒤처졌던 정현우 일병은 함께 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그램의 최종 단계인 종합 서킷 트레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이 급상승했다.
정 일병은 “중대의 운동 프로그램은 상당히 체계적”이라며 “무사히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체력 증진의 가장 큰 이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입대 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는 그는 “전역할 때까지 끊임없이 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다른 운동이라도 쉬지 않고 이어 가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또 다른 성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육군 헬스뿜뿜 콘테스트’ 군 트레이닝 부문 우수팀에 선정된 것. 풍호대대는 모든 중대가 전차 승무원 임무 수행에 최적화한 백호중대의 운동 프로그램을 함께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여단은 기계화보병대대·포병대대 역시 각자 특성에 맞는 전투체력단련을 고안하도록 권했다. 백호중대 장병들의 고민이 녹아 있는 맞춤형 운동이 여단 전체로 퍼지는 선순환을 이룬 셈이다. 정 대위는 “중대원들과 토의를 거쳐 만든 자체 프로그램이 육군 내부의 인정을 받아 정말 기뻤다”며 부하들에게 공을 돌렸다.
전우가 없었더라면…체력단련 체험기
취재 중에도 운동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한 여군이 전차탄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작고 가녀린 체격의 여군은 본인 몸무게 3분의 2는 족히 될 법한 전차탄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운동을 마친 여군은 1소대장 이정민 중위였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이 중위는 숨을 고르며 이야기했다. “솔직히 힘듭니다. 밖에서 운동을 좀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저는 여자이기 이전에 군인, 전차 승무원이자 소대장이죠. 실제 상황에서는 저 역시 전차탄을 옮겨야 합니다. 소대장으로서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독려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기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이 중위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장병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호승심이 들었다. 기자 역시 소싯적에 힘이라면 남부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직접 도전하기로 했다. 나이를 고려한(?) 중대장의 제안으로 기관총 탄통 들고 달리기만 하기로 했다.
시작 신호와 함께 탄통을 들고 달렸다. 옆에는 2소대장 박상준 중위가 러닝메이트를 자처했다. 반환점에서 탄통을 10번 들어 올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다시 출발점을 돌아오는 길, 반쯤 달리고 나자 급격히 속도가 떨어졌다. ‘내가 괜한 짓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숨을 몰아쉬는 기자에게 물을 건넨 박 중위를 보며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우애. 함께 달리는 전우와 중대원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박 중위의 배려가 더 고마운 순간이었다.
운동을 마친 장병들은 환하게 웃으며 연병장을 정리했다. 이들의 넓은 등을 지켜보며 장병들이 왜 전투체력단련을 해야 하는지를 체감했다. 전장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의 근간은 ‘체력’. 백호중대는 스스로 개발한 자율적인 프로그램으로 전차 승무원 임무에 부합하는 강인한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운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성취감, 자신감, 전우애 역시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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