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25는 성능이 최고는 아니었으나 일선에서 인기가 많았던 중형폭격기다. < 출처 : (cc)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개발의 역사
1930년대 중반이 되자 암울한 기운이 세계를 덮쳐왔다. 사상 초유의 제1차 대전을 겪고 난 후 국제 사회는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으나 독일, 일본, 이탈리아, 소련처럼 호전적인 전체주의 세력의 득세로 말미암아 새로운 전쟁이 가시화된 것이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의해 이들과 멀리 떨어진 미국도 위기감을 느꼈다. 중립을 유지했지만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비는 해야 했다.
- 1936년부터 일선에 배치된 B-18 중형폭격기. 배치가 시작된 직후부터 느린 속도로 말미암아 생존성에 의문이 들자 후속기 개발에 나섰다. < 출처 : Public Domain >
미국의 국방 정책은 본토 밖에서 적의 접근을 거부시키는 것이 우선이니 해군이 중시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 해군법 제정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대비해 나갔다. 육군은 상대적으로 역할이 덜 하지만 멀리서 적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만큼은 대동소이했다. 때문에 항공 전력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대비했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폭격기였다. 당시 운용 중인 폭격기는 전간기에 제작된 소형 공격기뿐이어서 제한적인 작전만 벌일 수 있었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 전력 증강의 기회를 확보한 USAAC(미 육군항공대)는 폭격기 전력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핵심은 기존 공격기와 달리 많은 폭탄을 장착하고 좀 더 멀리 위치한 적진을 맹타할 수 있는 대형 폭격기였다. 제1차 대전 당시에 유럽 원정군 항공단장으로 복무했던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 등이 주도해서 논의가 오가던 전략폭격의 구현에 나선 것이었다.
- NA-40의 기반이 되었던 XB-21 < 출처 : Public Domain >
그렇게 탄생해 1938년부터 배치된 중(重)폭격기가 제2차 대전 당시에 유럽 하늘의 맹주로 군림했던 너무나 유명한 B-17 플라잉포트리스(Flying Fortress)다. 그러면서 당시 여건 상 하나의 기종으로 모든 임무를 수행하기는 불가능했기에 중폭격기와 공격기의 중간 정도 능력을 보유한 중형(中型)폭격기 소요도 함께 제기되었다. 1936년부터 배치가 시작된 B-18은 폭장량과 작전 반경이 해당 조건에 부합되었지만 속도가 느렸다.
구조적으로 기동력이 뒤질 수밖에 없는 폭격기가 속도마저 느리면 작전 중 생존이 어렵다. B-18의 속도는 개발 당시에는 무난한 편이었으나 배치가 시작되었을 때는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USAAC는 1938년 3월, 시속 200마일(320km)로 비행해야 한다는 98-102 조건을 내세운 폭격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노스아메리칸은 B-18과 경쟁을 벌였으나 탈락했던 XB-21을 기반으로 하는 NA-40을 제출했다.
- B-25의 프로토타입인 NA-40. XB-21을 기반으로 했지만 외형만으로도 대대적인 개량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그 무렵 실전 배치가 시작된 독일의 Bf 109, 영국의 스피트파이어가 시속 450km 가 넘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음이 밝혀지자 USAAC는 1,100kg의 폭탄을 탑재하고 최고 시속 480km의 속도로 최대 1,900km까지 작전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강화된 조건을 내세우며 사업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노스아메리칸은 NA-40을 전면적으로 손 본 NA-40-1을 제출했다.
그렇게 바뀐 경쟁에서 NA-40-1이 좋은 평가를 받아 계약이 이루어졌다. 속전속결로 시제기가 제작되어 1939년 1월에 시험 비행에 나섰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노스아메리칸은 다시 재설계에 착수해 강력한 엔진으로 환장하고 기체 상부, 미익, 주익 결합 부위 등을 개선한 NA-40B를 개발했다. 이후 각종 시험을 통과한 NA-40B는 그해 9월, B-25 미첼이라는 부호와 이름을 부여받고 제식화가 결정되었다.
- 1942년 노스아메리칸의 캔자스시티 공장에서 생산 중인 B-25 < 출처 : Public Domain >
앞에 소개한 윌리엄 미첼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현재까지 미국의 군용기 중에서 인명으로 이름이 부여된 것은 B-25가 유일하다. 선행 양산형이 1940년 8월 19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후 이듬해부터 일선에 배치되었다. 이때는 제2차 대전이 시작된 직후여서 미국은 혹시 발생할지 모를 문제 등을 대비해 마틴에서 개발한 B-26도 함께 양산과 배치에 들어갔다.
특징
B-25는 동체 전체가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초기 양산형인 B-25A까지는 주익이 일자였으나 비행 중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하자 동체 결합부에서 엔진까지는 위로 살짝 꺾인 갈매기 날개 형상으로 바뀌었다. 주익 양측에 강력한 엔진과 커다란 3엽 프로펠러를 장착했음에도 고익기이고 세발자전거식 강착 장치를 사용한 덕분에 주기 시에 전고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 정면에서 바라본 B-25. 주익이 갈매기 날개처럼 꺾였고 이중 수직 미익이 엔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외형적으로 또 하나의 특징은 수평 미익 양쪽 끝에 결합한 이중 수직 미익이다. 엔진과 일직선 방향으로 바로 뒤에 위치해서 마치 윙렛 같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덕분에 B-25는 조종하기 편하고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강력한 엔진을 장착해서 힘은 좋지만 소음이 청력을 손상시킬 정도로 너무 크고 배기가스가 기내로 흘러 들어와 근무 여건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었다.
1톤 정도의 폭탄을 운반할 수 있다. 방어를 위해 10문 이상의 기관총을 탑재했는데 승조원이 모두 다룰 수 없어 일부는 무인 포탑으로 작동한다. 원래 단거리 폭격용이었으나 태평양 전역에서 저고도에서 대함, 대지 작전을 펼칠 때 효과가 좋아서 이를 전담하기 위해 B-25G, B-25H는 기수에 다량의 75mm 기관포를 장착했다. 때문에 일부 자료에서는 이들을 최초의 건쉽(Gun Ship)으로 보기도 한다.
- 지상이나 해상 목표를 정밀 타격하기 위해 기수에 12.7mm 기관총 4정과 75mm 기관포 1문을 장착한 B-25H < 출처 : (cc) Ssaco at Wikimedia.org >
운용 현황
B-25는 1940년부터 모든 파생형을 포함해 총 9,816기가 만들어졌다. 이는 미 공군이 운영한 중형폭격기로는 최대다. 대부분 전쟁 중에 제작되었으나 전후에도 해외 판매용으로 생산되었고 훈련기 등으로 꾸준히 개량이 이루어졌다. 인기가 많아 20여 개국에 판매, 공여되었는데 그중에는 나중에 적대국이 되는 소련, 쿠바, 중국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와 인도네시아에서는 1970년대까지 운용되었다.
- B-25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모든 전선에 투입되어 종횡무진 활약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태평양 전역에서는 전쟁 내내 종횡무진 활약한 반면 유럽 전역에서는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해서 서부전선이 형성된 이후에는 독일 요격기와 대공포로부터의 피해를 우려해 투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B-25는 전황에 크게 영향을 주기 힘든 전술적 무기이지만 1942년 4월 18일, 두리틀 중령이 이끄는 16기의 B-25 편대가 도쿄를 비롯한 4곳의 일본 주요 도시를 폭격하며 전쟁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이는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수세에 몰린 미국이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B-25를 항공모함에서 출격시켜 일본을 공습한 후 중국으로 날아가 탈출하는 1회성 작전이었다. 공습에 의한 타격은 미미했으나 의도대로 좋은 효과를 발휘했다. 대낮에 심장부에 폭탄을 얻어맞은 일본이 미국의 항공모함을 잡기 위해 대규모 작전을 실시했다. 이것이 바로 미드웨이 해전으로 결과적으로 일본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 1942년 4월 18일, 일본을 공습하기 위해 항공모함 호넷에서 출격하는 B-25. 이들의 목숨을 건 활약은 태평양 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나비의 날갯짓으로 작용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NA-40: R-1830-56C3-G 엔진 탑재 시제기.
- NA-40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NA-40B: R-2600-A71-3 엔진 탑재 시제기.
- NA-40B 시제기 < 출처 : Public Domain >
B-25: R-2600-9 엔진 탑재 초기 양산형. 24기.
- B-25 초도양산형 < 출처 : (cc) Umeyou at Wikimedia.org >
B-25A: 조종석 방탄판, 연료 탱크에 자동 봉인 장치가 추가된 개량형. 40기.
B-25B: 자동식 기관포탑 등이 장착된 개량형. 120기.
- B-25B < 출처 : Public Domain >
B-25C: R-2600-13 엔진 탑재, 방빙 장치 등이 추가된 개량형. 1,625기.
- B-25C < 출처 : Public Domain >
B-25D: B-25C 캔자스시티 공장 생산형. 2,290기.
- B-25D < 출처 : (cc) Clemens Vaster at Wikimedia.org >
F-10: B-25D 기반 정찰기. 45기 개조.
- F-10 < 출처 : Public Domain >
XB-25G: B-25C에 75mm M4를 장착한 대지 공격기 실험기.
B-25G: XB-25G 기반 양산형. 463기.
- B-25G < 출처 : Public Domain >
B-25H: 75mm 기관포×1+12.7mm 기관총×14 탑재 B-25G 개량형. 1,000기.
- B-25H < 출처 : (cc) Cliff at Wikimedia.org >
B-25J-NC: 캔자스시티 공장 생산 12.7mm 기관총×12 탑재 최종 양산형. 4,318기.
- B-25J-NC < 출처 : (cc) Airwolfhound at Wikimedia.org >
TB-25D/G/C/J/K/L/M/N: 개조 훈련기.
PBJ-1C/D/G/H/J: 초계용 장비 탑재 해군용 B-25.
- PBJ-1H 해상초계기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B-25H)
형식: 쌍발 성형엔진 중형폭격기
전폭: 20.60m
전장: 16.13m
전고: 4.98m
주익 면적: 57.4㎡
최대 이륙 중량: 15,876kg
엔진: 라이트 R-2600-92 트윈 사이클론 성형엔진(1,700마력)×2
최고 속도: 438km/h
실용 상승 한도: 7,400m
전투 행동반경: 2,170km
무장: 최대 1,360kg 폭장
12.7mm M2 기관총×14
75mm M4 기관포×1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