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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그리고 최악의 전쟁이었다. 지난 2021년 8월 31일, 미군이 철수하면서 종료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0년간 약 20만 명의 군인, 무장 세력, 민간인이 전사하거나 죽었다. 당연히 언론 매체에서 엄청난 피해임을 부각하고 있다. 그런데 4년 동안 벌어진 독소전쟁에서 민간인을 제외하고도 무려 1,500만 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개 사단의 병력이 사라진 셈이었다.

이 정도로 참혹하다 보니 이길 수 있다면 상대의 좋은 것을 베끼는 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전략, 전술은 물론이거니와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적을 모방한다는 것은 평시라면 몹시 자존심 상하는 행위이나 전쟁터에서는 그런 여유나 사치를 부릴 틈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슷한 무기로 싸웠을 만큼 양측은 닮아 갔다. 야수 사냥꾼(Zveroboy)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소련의 SU-152 자주포도 그러했던 무기 중 하나다.

SU-152의 탄생은 1942년 말에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관련이 많다. 당시 소련군은 미끼 역할을 하는 부대가 독일군을 도심에 잡아 놓은 틈을 이용해 외곽에 있던 주공이 일거에 포위망을 형성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혹독한 경험을 한 독일은 시가전을 대비한 무기 개발에 나섰다. 33B 돌격보병포, 6호 돌격전차처럼 거대한 주포를 이용해 일거에 건물을 격파할 수 있는 자주화된 기갑 장비들은 그렇게 탄생한 것들이다.

그런데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소련이라 해서 결코 시가전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건물이나 잔해에 매복해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을 공격할 수단이 부족한 것은 소련군도 마찬가지였다. 엄밀히 말해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시가전 때문이 아니라 보급 능력의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이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련도 시가전을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이동하며 강력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이때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 KV-2 중전차였다. 강력한 방어물을 처치하기 위해 KV-1 중전차 차체에 152mm 구경 M-10 곡사포를 탑재했는데 외형만으로도 공격력을 극단적으로 강화한 별종 전차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전쟁 발발 전까지 210대만 생산되었으나 소련이 가장 수세에 몰렸던 전쟁 초기에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당국은 너무 포탑이 거대해서 작동하는 데 애를 먹었던 단점 등을 보완하면 시가전용으로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 KV 시리즈를 만든 키로프 설계국은 152mm ML-20S 곡사포를 탑재한 KV-14 중전차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KV-14는 독일의 돌격포로부터 영향을 받아 주포를 차체와 직접 결합한 구조였다. 개발자들은 어차피 주포의 발사 속도가 느리므로 굳이 포탑이 없어도 전투를 벌이는 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소련의 거대하고 평탄한 지형을 고려했을 때 KV-2처럼 전고가 높으면 방어나 매복에 불리했다.

이처럼 상당한 연구가 진행된 상황이었기에 당국의 지시가 떨어지자 불과 25일 만에 개발이 완료되었다. 포병총국에서 소요를 제기했고 운용도 화력 지원이 목적이어서 주포의 구경에 따라 완성작은 SU-152로 명명되었다. 각종 실험을 통과한 후 1943년 2월 14일 제식 화기로 채택되었고 3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어 5월부터 부대 편성이 이루어졌을 만큼 개발부터 배치까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마침 UZTM에서 같은 방식으로 T-34 전차 차체에 122mm 곡사포를 결합해서 만든 SU-122 자주포도 배치에 들어갔는데, 화력 지원은 물론 독일의 돌격포처럼 기갑전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개발 목적과 의도는 상이했지만 이처럼 SU-152와 SU-122는 본격적인 소련의 자주포 역사를 개막한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SU-152는 성공적이었던 반면 주포의 크기에 비해 차체가 작아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킨 SU-122는 실패작이 되었다.

SU-152는 대전차전까지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의외로 준수한 전과를 내었다. 명중률이 떨어지고 발사 속도가 느렸으나 152mm 구경의 ML-20S 곡사포였기에 명중만 시키면 고폭탄으로도 티거의 격파가 가능했다. 당연히 그 이하의 전차들은 손쉽게 제압했다. 그래서 야수 사냥꾼이라고 불렸지만 기갑전은 예외적이었고 자주포(SU)라는 부호처럼 보병과 함께 작전을 벌이며 벙커 같은 방어물을 격파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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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SU-152는 완전히 밀폐된 차체를 둘로 나누어 전방에 전투실이, 후방에 엔진과 변속기가 설치되었다. 이는 특별히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기반이 되었던 KV 전차의 차체가 그런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장갑은 압연 강판을 용접으로 연결한 방식인데 가장 두터운 전면은 75mm였다. 개발 당시에는 충분한 수준이라 생각했으나 실전에서 쉽게 격파당하면서 방어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중량을 감안하면 기동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기반이 되었던 KV가 한창 개발 중이던 IS 중전차가 양산을 시작하면 즉시 단종하기로 결정했을 만큼 기계적 신뢰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때문에 SU-152도 운용 중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점이 자주 드러났다. 후속해서 IS를 기반으로 하는 ISU-152 자주포가 탄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주행 계통에서 계속되어온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SU-152의 특징은 강력한 공격력이다. 하지만 조준기의 성능이 좋지 않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도가 떨어졌고 좁은 곳에 분리장약식 포탄을 사용하다 보니 장전 속도가 느려 2분에 3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포탄 탑재량은 20발에 불과해서 지속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자주포지만 시가전 때문에 탄생한 장비답게 근접전을 대비해 12.7mm DShK 기관포를 부무장으로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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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자료마다 차이가 있는데 SU-152는 약 700여 문 정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시가전이라는 한정된 목적을 위해 탄생했어도 많은 수량으로 보기는 힘들다. 6개월 후에 양산을 시작한 ISU-152의 생산량이 총 4,635문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주포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SU-152가 공격력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군 또는 전선군 직할 독립 자주포 연대에 배치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시가전이 아니라 대부분 공세전에서 활약했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워낙 혹독한 경험을 겪은 이후 최대한 집요한 시가전을 회피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실전은 1943년 7월부터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였다. 총 10개 연대가 참전해서 독일 전차, 자주대전차포 등과 교전을 벌여 대전차 능력도 있음을 입증했다.

이때 한 대의 SU-152가 단 하루 동안 10대의 독일 기갑 장비를 격파한 사례까지도 있었다. 1944년에 연이어 벌어진 크리미아 탈환전, 바그라티온 작전, 카렐리아 전투에서도 맹활약했다. 이들 대부분이 소련군이 공고한 독일, 핀란드의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보병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톡톡히 수행했다. 전후 폴란드에 3문이 교육용으로 제공된 것을 제외하고 1954년까지 전량 소련군이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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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SU-152: 양산형

ISU-152: IS-2 전차 차체를 이용한 개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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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생산업체: 키로프 설계국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704문
중량: 45.5톤
전장: 8.95m
전폭: 3.25m
전고: 2.45m
무장: 1×152mm ML-20S 곡사포
        1×12.7mm DShK 기관포
엔진: V-2K 2기통 디젤 엔진 600마력(450kW)
추력 대비 중량: 13.2마력/톤
항속 거리: 200km
최고 속도: 43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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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