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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전쟁이 발발하면 적의 모든 것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중에서도 적이 사용하는 무기는 적군과 더불어 제일 먼저 타도해야 할 당연한 목표가 된다. 그런데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적의 무기가 더 좋다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일단 빼앗아서라도 사용하고 당국에는 같은 수준의 대항마를 공급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그 정도로 좋은 무기를 당장 만들어 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때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 베끼는 것이다. 특히 급박한 전시에 그렇다. 아이디어만 따오는 것부터 나사 하나까지 그대로 복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는 다양하나 어쨌든 적의 무기이기에 자존심이 상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관련 노하우가 부족하고 시간을 단축하려면 어쩔 수 없다. 전쟁은 이기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피한다고 원하는 성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더 좋을 수도 있으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 원작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하나하나 터득한 기술은 추후 도움이 된다. 독일의 돌격포에 엄청나게 시달린 소련이 이를 흉내 내서 만든 SU-122 자주포도 비록 만족할 만한 성능은 아니었으나 후속해서 등장하는 소련 자주포의 향도 노릇을 담당했다.

차량으로 포를 견인하는 것보다 탑재해서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자주포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그래서 운송 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전간기 동안 자주포에 대한 이런저런 시도가 이루어졌다.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개념도 확고하게 정리되지 않던 때다 보니 기갑총국과 포병총국이 개별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기갑총국은 화력 강화형 전차(AT)의 개념이었고 포병총국은 말 그대로 자주포(SU)였다.

이처럼 구상하던 방향이 달랐기에 경쟁을 벌인 것은 아니었으나 공교롭게도 양측 모두 당시에 주력으로 사용하던 T-26 전차 차체와 76.2mm포를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기갑총국의 시도는 AT-1로 흐지부지 막을 내렸고 포병총국의 개발안은 다양한 구경의 주포를 장착한 변형들도 연구되었지만 당국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937년 시작된 피의 대숙청으로 기동전을 주장하던 이들이 일거에 제거되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결국 이렇게 연구가 중단된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후과를 불러왔다.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 발발 후 소련군은 마치 물에 녹은 설탕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기동전을 수행하는 능력에서 독일군에게 뒤졌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기갑장비를 사용하는 독일군과 마주하면서 그동안 뒷전으로 방치해 놓았던 자주포의 효용성이 급격히 부각되었다.

특히 포탑을 제거한 3호 전차 차체에 대구경 포를 결합한 돌격포(3호 돌격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차체가 낮은 데다 전투실 상부까지 장갑을 둘러서 방어력이 좋고 기반이 된 3호 전차보다 화력이 강했다. 소련군은 돌격포에 많은 수모를 겪었지만 처음 언급처럼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1942년 10월 포병총국은 유사한 성능과 임무를 목표로 T-34-76 전차 차체에 소련군 표준인 122mm M-30 곡사포를 탑재한 기갑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포의 구경을 기준으로 SU-122로 명명되었고 이러한 작명법은 이후 등장하는 후속작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당장 공급이 급했던 소련은 장비의 성능이 이미 검증된 두 장비를 별다른 개량 없이 단순히 결합하는 식으로 속전속결로 개발을 마쳤다. 그러나 충분히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과 달리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결국 일선에서 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티거 전차 격파를 목표로 했을 만큼 주포는 강력했으나 정작 원할 때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곡사 사격은 물론 벤치마킹한 돌격포처럼 기갑전을 염두에 두고 직사 사격 능력에도 많은 신경을 썼으나 정확도와 연사력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의 돌격포와 달리 SU라는 단어처럼 단순한 용도의 자주포로 사용되었다. 결국 1943년부터 후속작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급속히 도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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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SU-122는 외형만 보아도 상당히 급조한 장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개발 과정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속히 그리고 저렴하게 획득하기 위해 포탑을 제거한 T-34 전차 차체에 포가를 제거한 M-30 곡사포를 그냥 결합했다. 문제는 별다른 개조 없이 운전석 부근에 전투실을 만들면서 공간이 부족하자 주포를 앞으로 빼야 했다. 그래서 M-30은 포신이 짧은 편이었음에도 SU-122는 포방패가 기형적으로 돌출하는 형태가 되어 밸런스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방어력과 주행력에 문제가 생겼고 부앙각의 제약이 많아 곡사 사격을 하기 곤란했다. 부족한 조준기의 성능 때문에 직사 사격 능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당연히 3호 돌격포처럼 기갑전을 수행하기는 무리였고 그렇다고 야포처럼 후방에서 화력을 지원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화력이 강화된 T-34를 기대했으나 단지 움직일 수 있다 뿐이지 다운그레이드 된 M-30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반면 SU-122와 동시에 개발된 SU-152는 일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KV-1 전차 차체에 152mm ML-20S 중곡사포를 결합한 것으로 차체와 주포만 다를 뿐이지 개발 방식은 SU-122와 동일했다. 하지만 상반된 결과가 나온 이유를 검토한 결과 M-30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에 T-34의 차체가 작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소련은 122mm 이상의 주포를 탑재한 기갑차량의 차체에서 T-34를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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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SU-122는 1942년 12월부터 양산에 들어가 총 638문이 제작되었다. 제2차 대전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과 이후에 기갑장비 분야에서 소련이 보여준 무지막지한 생산량을 고려한다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무리 소련군이 인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있다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전선에 밀어 넣기에는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6개월 만에 단종했다.

다만 화력이 강력하기에 주로 보병과 함께 행동하며 진지 공격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사실 제2차 대전 이후 급속히 도태되었을 만큼 무포탑은 시대상 때문에 등장한 일종의 변칙적인 구조다. 그럼에도 소련은 독일과 더불어 다양한 무포탑 기갑장비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용한 나라였다. 실패작이라 할 수 있는 SU-122의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터득한 시행착오가 귀한 노하우가 되어 후속작의 등장을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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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SU-122: 양산형

SU-122M: D-11 곡사포 장착형. 개발 취소.

SU-122-III: SU-85 차체에 D-6 곡사포 결합 제안형. 개발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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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생산업체: UZTM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638문
중량: 30.9톤
전장: 6.95m
전폭: 3m
전고: 2.32m
무장: 1×122mm M-30S 곡사포
엔진: 클리모프 V-2 12기통 디젤 엔진 493마력(368kW)
추력 대비 중량: 16마력/톤
항속 거리: 250km
최고 속도: 55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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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