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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포는 구경이 크고 포신이 길수록 위력이 향상된다.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화력을 늘리면 필연적으로 무게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쟁은 가변적인 행위이므로 야포도 상황에 맞춰 이동해야 한다. 문제는 신속히 전개하기 어려울 만큼 포의 무게가 많이 나가면 애로 사항이 많기에 무턱대고 화력을 강화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목적과 용도 등의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포의 크기 결정된다.

인력으로 이동이 가능한 박격포, 무반동총 또는 경량의 야포가 존재하나 그래도 화력 지원용으로 사용하는 야포는 기본적으로 무거운 무기이므로 가축이나 차량으로 견인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렇게 이동한다고 해도 전장이 넓거나 원거리를 옮겨 다니며 전투를 벌이기는 쉽지 않다. 일단 이동 후 진지를 구축하고 방열하는 일련의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즉시 화력 투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견인할 것이면 차라리 차량에 포를 탑재해서 이동하고 즉시 사격을 하는 방법이 구상되었다. 그렇게 해서 제1차 대전 당시에 탄생한 무기가 자주포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트럭에 경포를 얹은 단순한 수준이었으나 종전 후 관심이 급속히 멀어졌다. 그렇게 잠시 잊혀있던 자주포는 제2차 대전이 발발하고 전차를 앞세운 기동전이 대세가 되자 새삼스럽게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41년 독소전쟁 개전 후 6개월 동안 소련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패를 당했다. 엄청난 수모를 겪은 대가로 새로운 전투 기법을 벤치마킹했는데 기갑부대와 함께 이동하며 든든하게 화력을 지원해 주는 독일의 자주포도 그중 하나였다. 전쟁 발발 전에 T-26 전차를 기반으로 하는 SU-5, SU-6 등을 만들기도 했지만, 성능이 미흡해서 소량만 시험 삼아 제작한 후 자주포를 등한시했던 소련은 다시 관심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포병을 중시해 왔던 소련은 국토가 넓기에 기갑부대뿐 아니라 보병부대를 지원하는 포병도 자주포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그렇게 해서 소련군의 새로운 표준으로 정해진 76mm ZiS-3 사단포를 기반으로 1942년에 탄생한 걸작 자주포가 SU-76이다. 긴즈부르그 설계국(S.A. Ginzburg Design Bureau)에 개발 명령이 떨어진 지 불과 1개월 만에 제작을 완료하고 양산에 나섰을 만큼 SU-76은 속전속결로 탄생했다.

기존 장비들을 결합하는 방식이었기에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발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흔히 T-34, PPSh-41과 더불어 소련을 구한 3대 무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ZiS-3의 성능은 충분히 뛰어났으나 문제는 차체였다. 별도로 개발할 만한 여유가 없을 만큼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라 도태되거나 전력 외로 구분된 유휴 장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독일도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이때 5,000대 이상 만들어졌으나 전선에서 독일군의 손쉬운 표적으로 전락해 버리면서 퇴역을 결정한 T-60 경전차가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ZiS-3가 사격할 때 발생하는 반동을 받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져 최초 개발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에 현가장치의 성능이 좋다고 평가받은 T-70 경전차의 차체를 이용해 개발이 재개되었으나 이 또한 차체가 작아 ZiS-3을 탑재한 후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차체를 연장해 문제점을 해결한 후 1942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2개의 엔진이 좌우 궤도를 별도로 구동시키는 구조는 그대로여서 조종이 힘들고 고장도 자주 발생했다. T-70이 도태 장비로 결정되면서 개선을 하지 않았기에 문제점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에 양산과 동시에 개량에 착수했고 1943년 문제점을 해결한 SU-76M이 탄생했다. 이후 통상 SU-76이라 하면 SU-76M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SU-76 차체는 T-70을 기반으로 했으나 구조와 성능이 다르기에 별도로 생산해야 했다. 때문에 유휴 장비를 재활용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되었으나 SU-76이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련이 제작한 기갑 장비로는 T-34 다음으로 많이 제작되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SU-76은 개발에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생산성이 좋고 성능도 준수해서 공급이 신속히 이루어졌다.

SU-76은 제2차 대전 중 소련이 중포와 중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한 여타 자주포에 비하면 크기가 작아서 다루기 편한 데다 독일의 돌격포처럼 경우에 따라 대전차전까지도 벌일 수 있을 만큼 화력이 준수해서 일선에서 상당히 선호했다. 배치된 이후부터 소련군이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라는 명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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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SU-76은 주포인 ZiS-3의 크기가 크지 않은 데다 차체 또한 작고 전고가 낮아서 야전에서 은폐나 엄폐가 쉬웠다. 앞서 언급처럼 최초 양산형은 구동 계통에 문제가 많았지만, 한쪽 엔진이 고장 나더라도 기동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개선이 이루어진 후에는 엔진이 2개라는 점이 오히려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등판능력도 좋아서 거친 환경에서 보병과 함께 작전을 벌이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반면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T-70 자체가 장갑이 얇은 경전차였던 데다 전투실이 오픈탑 구조여서 보병들의 공격에도 쉽게 파괴되었다. 특히 가솔린 엔진이어서 화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었고 초기형은 방어용 기관총도 탑재되지 않아 보병의 엄호 없이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밀폐식 장갑을 갖춘 개량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포의 부앙각이 줄어들어 양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SU-76은 기존 장비와 생산 시설을 최대한 이용해서 만들었기에 생산성이 좋았다. 또한 구조가 간단한 편이어서 야전에서 정비가 쉬웠고 그만큼 가동률이 좋았다. 독일군이 자신들을 괴롭힌 대표적인 소련군 무기 중 하나로 손꼽았을 만큼 성능도 준수한 데다 많이 만들어졌기에 질적으로는 물론 양적으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 한마디로 그 정도 체급으로 부족함 없는 활약을 펼친 자주포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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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SU-76은 1942년 12월부터 종전 직후인 1945년 10월까지 총 14,292문이 제작되었다. 제38호 공장을 비롯해 제40호 공장, GAZ에서도 생산이 이루어졌다. 양산 기간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수량이었고 그만큼 제2차 대전 중에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종전 후 소련은 1선급 장비에서 도태시켰다. 원래 임시변통적인 성격이었던 데다 전후 감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친소 국가에 공여가 이루어졌는데 북한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6.25전쟁 당시 SU-76은 T-34와 더불어 북한군이 남침에 앞세웠던 대표적 기갑 장비였다. 개전 초기에 북한군 주공이 침공한 서부전선보다 조공이 투입된 동부전선 등에서 주로 활약한 것으로 파악된다. 산악 지대에서 기동력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나 방어력이 빈약해서 춘천전투에서 보듯이 국군의 반격에 쉽게 격파당하고는 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불쾌한 무기였음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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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OSA-76: T-60 전차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프로토타입

SU-76: T-70 전차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초기 양산형

SU-76M: 엔진 및 주행 계통 개량형

SU-85A/B: 85mm 포 장착 프로토타입
 
ZSU-37: SU-76 기반 자주대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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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생산업체: 제38호 공장 외
도입 연도: 1942년
생산 대수: 14,292문
중량: 10.5톤
전장: 4.97m
전폭: 2.71m
전고: 2.10m
무장: 1×76.2mm ZiS-3 사단포
        1×7.62mm DT 기관총
엔진: 2×GAZ-70 6기통 가솔린 엔진 140마력(102kW)
추력 대비 중량: 13.3마력/톤
항속 거리: 320km
최고 속도: 4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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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