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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1941년 12월, 소련이 극적으로 모스크바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독소전쟁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는 상당히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계속되어 온 독일의 외교적, 군사적 팽창이 마침내 멈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전쟁은 치열한 장기 소모전으로 변질했고 전쟁 수행 능력이 뒤진 독일이 결국 패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전쟁 초반에 있었던 연이은 독일의 대승 때문에 종종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부터 독일은 소련을 압도하지 못했다. 병력, 장비의 수에서 열세였고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무기의 질적 차이도 크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는 소련제의 성능이 좋았다. 단지 작전 구사 같은 소프트웨어가 독일군이 우세했을 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연이은 대패를 경험한 대가로 해당 부분의 소련군 수준도 향상되었다.

때문에 독일의 쇠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 이후부터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겨우겨우 소련군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었으나 어떻게든 일선에 전력을 보충해 줄 대안이 필요했다. 이때 독일은 노획, 도태, 2선급으로 물러난 각종 장비들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지만 1943년을 기점으로 더욱 많아졌고 오히려 주류가 되다시피 했다.

공격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나스호른 자주대전차포(Panzerjäger Nashorn, 이하 나스호른)도 이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표적 무기 중 하나다. 1940년 프랑스 침공전 때 활약한 1호 자주대전차포를 필두로 이후 마르더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은 이전부터 도태된 차체를 이용한 자주대전차포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이들은 원거리에서 적 전차를 요격하는 임무를 담당했기에 장갑이 빈약했다.

그러다가 독소전쟁에서 근접 기갑전이 일상이 되자 방어력이 없다시피 한 이들은 순차적으로 퇴출되고 대신에 돌격포, 구축전차 등이 해당 임무를 담당했다. 그럼에도 1943년이 되어 전세가 역전되고 소련군 기갑부대를 막을 전력이 절대 부족해지자 상대적으로 제작이 쉬운 오픈탑 구조의 자주대전차포라도 다시 만들어 공급해 줘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나마 당시에 독일은 당대 최강의 대전차포인 8.8cm PaK 43(이하 PaK 43)이 있었다.

해당 포는 사거리 내라면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지만 6호 전차 B형 티거II, 5호 돌격전차의 주먹으로 사용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를 탑재하려면 차체도 그만큼 커야 했다. 사실 이들의 공급량이 충분했다면 굳이 새로운 자주대전차포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처럼 상황이 그렇지 않다 보니 최대한 수급이 가능한 차체를 이용해서 개발을 해야 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이제 막 양산에 들어간 훔멜 자주포였다. 30구경장 sFH 18 중곡사포를 탑재한 훔멜은 4호 전차 차체에 3호 전차의 구동 및 조향 장치를 결합한 차체를 채택했는데 반동 제어에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상태였다. 나스호른은 여기에 71구경장 PaK 43을 단순히 결합한 것이다. 이미 기반이 갖춰진 데다가 장비 개량에 일가견이 있는 알케트가 사업을 주도했기에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1943년 호니스(Hornisse)라는 이름으로 양산이 개시되어 전선에 공급되어 활약했다. 이듬해 히틀러의 지시로 나스호른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정확한 사유는 밝혀진 바 없다. 처음부터 방어력은 포기한 상태이기에 나스호른은 견인식 PaK 43처럼 먼 거리에 은폐해서 적 전차를 요격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소련군, 연합군 전차들에게 나스호른은 한마디로 얄미운 지옥의 사신이었다.

나스호른은 오로지 수적으로 많은 적 전차를 잡기 위해 공격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장비다. 대신 방어력을 희생했기에 상대방 전차의 사거리 밖에서 작전을 펼쳤다. 따라서 적 전차가 나스호른을 잡으려면 주포의 사거리 이내로 거리를 좁혀야 했는데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독일군 대형을 돌파해야 했다. 문제는 설령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적진을 돌파하면 정작 나스호른은 뛰어난 기동력을 살려 뒤로 빠져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1944년이 되면서부터 나스호른은 일선에서 더 이상 활약하기 어려웠다. 독일이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빈약한 방어력이 문제가 되었고 희생이 늘어나자 나스호른을 비롯한 오픈탑 형식의 자주포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후 대전차전은 전차, 구축전차가 전담하게 되었다. 활약 기간이 짧았던 점을 고려하자면 차라리 나스호른 대신 중전차나 구축전차의 생산에 진력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전쟁 후반기 독일의 입장에서 나스호른의 개발은 한편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나 전략적 실책이었다. 소련과 미국은 독일의 중전차에 성능이 뒤져도 전차의 종류를 단순화해서 생산량을 극대화했다. 반면 독일은 하나로 통일해도 될 장비를 이것저것 다 만들어 내면서 스스로 제약을 만들었다. 당시 독일이 무기의 대량 공급을 염두에 두고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면 나스호른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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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나스호른의 놀라운 위력은 전적으로 주포의 성능 때문이다. 71구경장 PaK 43 자체의 위력이 강력한 데다 조준기의 성능도 좋아 명중률이 상당했다. 때문에 2km 이내에 위치한 모든 기갑 장비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고 경우에 따라 4km까지 떨어진 목표도 격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갑전에 최적화된 유럽의 평원을 생각한다면 상대보다 멀리서 강력하게 때릴 수 있다는 것은 가히 대단한 장점이었다.

엔진은 전투실 확보를 위해 차체 중앙에 설치되었다. 얼핏 자체가 기존 4호 차체를 재활용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훔멜과 나스호른을 위래 별도로 양산한 새로운 차체였다. 기동력은 무난했고 안정성도 뛰어났으나 전쟁 말기 독일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굳이 이것저것 만들 필요 없이 같은 공격력을 가진 5호 구축전차에 올인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는 옳았다.

뛰어난 공격력과 기동력, 그리고 빠른 양산을 위해 방어력은 포기했다. 적 전차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후방에서 작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방어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사실 공군의 공격에는 나스호른이나 여타 기갑 장비 모두 고양이 앞의 쥐 신세라는 점은 같았지만 파편에도 승조원들이 쉽게 피해를 입었다. 이는 적 포병의 공격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갈수록 활약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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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나스호른은 1945년 초까지 총 494문이 제작되었다. 많은 생산량은 아니었으나 전쟁 말기 만들어진 여타 기갑 장비들과 비교하면 적은 수량도 아니다. 공격력이 강한 만큼 귀한 자산으로 취급되어 6개의 독립 중구축전차대대에서 운용되었다. 최초 실전은 1943년 쿠르스크 전투였고 이후 모든 전선에서 활약했다. 상당한 전과를 올렸지만 전술 무기다 보니 전황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나스호른에게 공격력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적 전차에게는 마치 저격수 같은 존재로 군림했으나 방어력이 없다시피 해서 아무리 급해도 근접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구경이 작은 주포를 사용하는 헤처, 4호 돌격포, 4호 구축전차보다 운용 효율이 떨어졌다. 빠른 개발과 양산을 위해 포기한 방어력이 결국 커다란 제약으로 돌아왔기에 설령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어도 더 이상 양산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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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나스호른(Sd.Kfz. 164): 8.8cm PaK 43 탑재 자주대전차포

훔멜(Sd.Kfz 165): 동일한 차체를 기반으로 sFH 18 중곡사포를 탑재한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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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494문
중량: 24톤
전장: 8.44m
전폭: 2.95m
전고: 2.65m
무장: 1×8.8cm Pak 43/L71
        1×7.92mm MG34
엔진: 마이바흐 HL120 TRM 12기통 가솔린엔진 296마력(221kW)
추력 대비 중량: 12.3마력/톤
항속 거리: 235km
최고 속도: 4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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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