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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오늘날 기계화부대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각각 목적이 다른 이들은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한 세기 전인 제1차 대전 당시에 등장한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는 최초의 장갑차이자 최초의 자주포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오늘날에 와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세 가지 역할을 모두 담당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다만 순식간에 분화된 것은 아니고 수많은 실전을 겪으면서 필요한 장비가 순차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제2차 대전 초기에 전격전이라는 신화를 만든 독일군의 역할이 컸다. 오늘날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을 전차 군단이라고 부를 만큼 기갑 분야에서 독일이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들은 1930년대에 전차를 돌파의 중핵으로 삼는 새로운 전략을 연구하면서 함께 작전을 벌일 보병이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해서 하프트랙, 트럭 등이 오늘날 APC(병력수송장갑차)나 IFV(보병전투차)의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야포의 자주화는 상대적으로 늦었다. 당시 독일군 사단에는 10.5cm leFH 18 경곡사포 2개 대대와 15cm sFH 18 중곡사포(이하 sFH 18) 1개 대대로 구성된 포병연대가 표준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들 야포의 상당수는 말이 끌고 다녔다. 당연히 전차, 기계화보병에 비해 이동이 느렸는데 특히 중량이 많이 나가는 sFH 18가 그랬다.

그러나 sFH 18은 최전선의 배후의 안전 지대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용도이므로 기동력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갑부대와 관련해서 참조할 것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결코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2차 대전 초기에는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대전차포, 보병포 정도만 자주화시켰다. 연전연승했을 당시에는 문제점을 몰랐으나 1941년 시작된 독소전쟁에서 서서히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워낙 소련의 작전 지역이 크고 진격 속도가 빠르다 보니 갈수록 부대 간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야포가 도착할 때까지 선두의 전차가 돌격을 멈춰야 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는 했던 것이다. 독일군의 중핵으로 떠 오른 기갑부대에게 이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선봉에 선 전차의 자체 화력이 강해도 포병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기갑부대에 속한 포병은 함께 기동하며 화력을 투사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 1942년부터 sFH 18의 자주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주포는 정해진 것이니 문제는 차체였다. 처음에 고려한 3호 전차는 차체가 작아서 sFH 18의 탑재가 어려웠다. 이에 좀 더 커다란 4호 전차로 눈을 돌렸는데, 이 또한 중곡사포의 사격 시 발생하는 커다란 충격을 감당하려면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했다. 그렇게 4호 전차 차체에 3호 전차의 구동 및 조향 장치를 결합하고 30구경장 sFH 18를 탑재해서 탄생한 자주포가 훔멜(Hummel)이다.

여담으로 훔멜의 차체는 급조 제작한 것과 다름없었지만 중포 운용용으로 좋다는 평가가 나와서 걸작 자주대전차포인 나스호른(Nashorn)의 차체로도 사용되었다. 기술적으로는 제2차 대전 당시에 등장한 여타 자주포들처럼 단순히 기존 장비들을 결합하는 수준이었기에 개발하는 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한 후 간신히 전선을 고착화시키는데 성공한 1943년 봄부터 본격 배치에 들어갔다.

훔멜의 임무는 앞서 언급처럼 기갑부대를 따라다니며 화력 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치된 시점은 독일이 수세로 전환한 시기였다. 때문에 전차가 돌격할 지역을 사전에 정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신속히 옮겨 다니면서 이곳저곳에 대한 화력을 지원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기갑부대가 별동대를 담당하면서 역할이 바뀌었지만 sFH 18의 강력함을 바탕으로 훔멜은 많은 임무를 담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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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훔멜의 차체는 앞서 언급처럼 3호 전차의 구동, 조향 장치를 4호 전차 차대와 결합한 것이다. 여기에 바퀴, 차축, 트레일러를 제거한 sFH 18의 포신과 주퇴 복좌기를 장착했는데 밸런스를 잡고 전투실을 확보하기 위해 엔진의 위치가 차체 중앙으로 옮겨졌다. 무거운 중포가 장착되었지만 전차 포탑이 제거되었기에 전체 무게는 4호 전차와 같아서 주행력과 안정성이 좋았다. 덕분에 진지 이동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같은 대포병전이 없던 시기다 보니 방어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오픈탑 구조로 제작되었다. 이는 차체가 좁지만 승무원이 6명이어서 임무를 보다 편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래도 전면과 측면은 유탄 파편이나 소총탄 정도를 막을 수 있도록 10~30mm 수준의 장갑을 둘렀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근접전을 대비해서 자위용 기관총을 기본 무장으로 장착했다.

자주포이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격력이다. 전적으로 탑재한 sFH 18에 의해 성능이 결정되는데 RAP탄을 사용할 경우 사거리가 18,000m까지 늘어나기는 하나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소련의 야포보다 짧은 수준이다. 다만 위력은 좀 더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분당 최대 4발 발사가 가능하다. 휴대할 수 있는 포탄은 최대 18발이어서 같은 차체를 사용하는 별도의 탄약운반차량과 함께 작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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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훔멜은 총 714문이 양산되었고 별도로 탄약운반차량 150대가 만들어졌다. 즉 6문으로 구성된 한 개 포대 당 1대의 탄약운반차량이 배치되었다. 독일이 항복하기 전인 1945년 4월까지 생산되었을 만큼 독일군은 중요한 전력으로 취급했다. 전량 기갑사단, 기갑척탄병사단 예하의 중포병대대에서 운용했다.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패전 직전까지 전 전선에서 활약했다. 종전 후 루마니아, 프랑스, 시리아 등에 일부 물량이 흘러 들어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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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Sd.Kfz. 165 훔멜: 4호 전차 차체에 sFH 18을 탑재한 자주포

Nashorn: 훔멜과 동일한 차체를 이용하는 자주대전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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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도입 연도: 1943년
생산 대수: 714문
중량: 24톤
전장: 7.171m
전폭: 2.97m
전고: 2.81m
무장: 1×15cm sFH 18/1 L/30
         1×7.92mm MG34
엔진: 마이바흐 HL120 TRM 12기통 가솔린 엔진 296마력(221kW)
추력 대비 중량: 12.5마력/톤
항속 거리: 215km
최고 속도: 4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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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