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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1940년대 중반에 소련에서 개발된 T-44 전차는 외형만으로도 무기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T-34 전차와 T-54(이하 T-55 포함) 전차를 기술적으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의의가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정작 T-44에 대해 아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생산량도 적었고 실전에서의 활약상도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개발 당시에 추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기습 침공하며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독일은 지금까지 폴란드, 북유럽, 프랑스, 발칸반도를 석권해 온 자신감에 더해 지난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보여 준 한심한 모습 때문에 손쉬운 승리를 장담했다. 그런 생각대로 석 달 동안 독일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전선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소련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특히 전차는 독일보다 앞섰다.

독일은 우세한 작전 능력을 앞세워 근근이 밀어붙이고 있었으나 소련의 KV-1 중(重)전차와 T-34 중형(中型)전차에게 곤욕을 치렀다. 당시 주력인 3호, 4호 전차는 명백한 열세였고 PaK 38 대전차포로도 잡기 어려웠다. 라세이냐이 전투에서 도로를 막은 한 대의 KV에 의해 독일 제6기갑사단이 하루 동안 발이 묶이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모스크바 전투를 기점으로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독일이 6호 전차 티거, PaK 40 대전차포 같은 신예 무기를 투입하자 소련 전차들이 속속 격파되어 나갔던 것이다. 이에 소련은 장갑을 추가 장착해서 방어력을 늘렸지만 기동력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결국 가뜩이나 무거웠던 KV는 퇴출이 검토되었다. 어차피 화력이 T-34와 동일하므로 함께 운용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전차 나름대로의 역할이 여전했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1942년 6월, KV-1과 T-34를 모두 대체할 수 있는 후속 전차 개발에 나섰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MBT(주력 전차)의 탄생을 이끌게 되지만 당장은 쓸 만한 전차를 많이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개발 초점이 생존성에 맞춰지면서 방어력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양호한 기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에 따라 KV의 크기를 줄이는 것과 T-34의 성능을 개량하는 두 가지 방안이 동시에 추진되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주포는 기존 76.2mm F-34 전차포면 충분하다고 보고 화력 강화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T-44가 단명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KV-1의 축소형인 KV-13과 T-34의 방어력을 늘린 T-43이 탄생했으나 테스트 결과 둘 다 군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조달 비용도 비쌌다. 차라리 T-34의 생산량을 늘려서 많이 공급해 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었을 정도였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모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차의 개발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통합 전차 계획은 유보되었다. 억지로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 하락까지 불러온 KV-13의 크기를 다시 늘리고 대신 경사장갑 등을 도입하여 이전 KV-1보다 가볍고 기동력이 향상되었지만 방어력은 오히려 늘어난 IS 중전차가 탄생했다. 전쟁 말기에 실전에 투입된 IS는 전후 제1세대 전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활약했다.

T-43도 문제점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새로 도입한 포탑은 승무원들의 근무 여건을 향상시켰고 화력을 업그레이드할 여건도 제공했다. 그러나 크기가 커지면서 무게 중심 쏠림 문제는 오히려 더 커졌다. 전면에 장갑을 덧대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사부에 노출된 조종석 해치 등의 구조물로 말미암아 방어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지는 못했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차체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차체는 엔진을 재배치하고 토션 바 현가장치를 채택해서 실내 공간이 효율적으로 바뀌었지만 크기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여담으로 이때 구현된 설계 사상과 구조는 현재까지 소련(러시아) 전차에게 계속 승계되고 있다. 여기에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T-43의 포탑에 85mm ZIS-S-53 전차포를 결합했다. 이것이 제2차 대전 말기에 5호 전차 판터의 맞상대였던 T-34-85에 탑재된 바로 그 포탑이다.

이들을 결합한 것이 바로 T-44다. 때문에 마치 T-54 차체에 T-34-85 포탑을 얹은 모양이어서 처음 언급한 것처럼 이 유명한 두 전차의 중간자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실제로 외형뿐만 아니라 구조, 성능 등에서 확실한 연결고리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말기와 곧이어 닥친 냉전이라는 시대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단지 무기사에 의의만 컸던 전차 정도로 기록되고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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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앞서 언급처럼 T-44의 가장 큰 특징은 차체다. 엔진이 좌우 방향으로 설치되어 차체의 길이와 높이를 줄일 수 있었다. 때문에 중심을 맞추기 위해 전면에 쏠리다시피 했던 포탑의 위치가 조정되었고 대형 주륜과 토션 바를 채택한 덕분에 오히려 실내 공간은 늘어났다. 그만큼 무게는 줄었지만 기동력은 향상되었고 전면의 구조가 바뀌어 방어력도 좋아졌다. 이런 구조는 T-62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최신 전차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포탑은 T-43의 것을 채택했다. 하지만 76.2mm F-34 포로는 새롭게 전선에 등장한 독일의 5호, 6호 전차와 교전이 힘들었다. 이것은 T-43의 채택이 불발된 이유이기도 해서 T-44는 화력을 강화해야 했다. 85mm ZIS-S-53 전차포를 장착했는데 제2차 대전까지만 보자면 그럭저럭 충분했다. 하지만 종전 후 경쟁자로 바뀔 것이 분명한 미국의 전차와 대결을 상정한다면 이 또한 부족했다.

전쟁 말기에 미국이 데뷔시킨 M26 전차는 90mm 주포를 장착했다. 따라서 이후 등장할 전차는 그 이상의 주포를 사용할 것이 확실했다. 소련제 포는 포구 속도가 느려 서방제와 동일한 구경이라도 위력이 떨어졌다. 때문에 종전 후를 고려한다면 좀 더 강력한 주포로 환장해야 했다. 100mm 주포를 장착한 T-44-100이 등장했으나 반동 제어와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포탑을 대대적으로 재설계한 T-54에 이르러서야 문제가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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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T-44는 1944년부터 1947년까지 총 1,823대가 제작되었다. 오늘날 최신 전차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량처럼 보이나 수 만대씩 제작된 T-34, T-54는 물론 실패작이라 할 수 있는 T-64와 비교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곧바로 개량이 요구되었을 만큼 시대 등장 시점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T-54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가치가 급속히 사라졌고 곧바로 단종되었다.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의 승리가 확실했기에 IS-3 중전차처럼 종전 이후 서방과의 대결을 예정하고 전선에 투입하지 않았다. 사실 이때 투입되었다면 무기사에 나름대로 전과를 남길 수 있었겠지만 전후 오히려 전차 개발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작 어정쩡한 위치가 되었고 결국 순식간 2선급 무기로 취급되면서 사라져 갔다. 1956년 헝가리 의거 진압 작전에 소수가 투입된 것이 유일한 실전이나 시가전에서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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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 및 파생형

T-44-85 (1944): 85mm 주포 장착 프로토타입

T-44A (1944): 양산형

T-44S (1966): 주포 안정기 개량형
 
T-44M (1961): T-54 수준 업그레이드형

T-44MK (1963): T-44M 기반 지휘전차

T-44MS (1966): T-44M 주포 안정기 개량형
 
BTS-4A (1965): T-44M 기반 구난전차

T-44-122 (1944): 122mm D-25-44T 주포 장착 프로토타입

T-44-100 (1945): 100mm D-10T 주포 장착 프로토타입

SU-122-44 (1944): 122mm 자주포 프로토타입
 
Uralmash-1 (1944): 100mm 자주포 프로토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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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T-44A)

생산업체: KhPZ
중량: 32톤
전장: 6.07m
전폭: 3.25m
전고: 2.455m
장갑: 120mm
무장: 85mm ZiS-S53 전차포×1
         7.62mm DTM 기관총×2
엔진: V-44 12기통 디젤 엔진 520마력(388kW)
추력 대비 중량: 16.3마력/톤
서스펜션: 토션 바
항속 거리: 250km
최고 속도: 55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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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