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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2차세계대전을 주름잡던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BF109를 비롯한 주력 전투기를 생산한 항공업체인 매서슈미트(Messerschmitt), 그리고 전쟁 말엽 제트 요격기인 He162 개발을 추진했던 독일 하인켈(Heinkel)사는 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항공기 제작을 금지당했다.

이 때문에 두 업체는 항공기 생산에서 업종을 변경하면서 3륜 모터사이클을 주로 개발했으며, 조립식 가옥 사업에도 손을 대는 등 어렵게 사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들어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변화했다. 새롭게 건국한 서독이 군 재건 작업을 시작했고, 1955년에는 서독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고 자유 진영의 핵심 국가로 인정받으며 전기가 마련됐다. 서독에서 군대가 재건되면서 자연스럽게 2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군납 및 방산 업체들에게 단행된 제재 조치도 해제되기 시작했으며, 힘겹게 사세를 이어가던 매서슈미트, 하인켈, 뵐코프(Bolkow) 등도 항공 산업 참여 제한이 풀리게 됐다.

우선 하인켈이 독일연방군 공군에 납품할 미제 F-104 스타파이터(Starfighter) 면허 생산권을 받으면서 항공 산업에 다시 뛰어들었다. 하인켈은 서서히 항공 분야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자체 항공기 개발도 시도를 했으며, 당시 항공 선진국 각국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단거리 및 수직이착륙(V/STOL) 항공기 분야도 도전하게 되었다.

당시 서독은 소련과 위성국들이 공세를 취할 경우 이들을 제일 먼저 상대해야 할 "자유세계의 전초 기지"였다. 따라서 서독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공산 국가로부터 기습을 당해 대응 능력이 마비되는 상황이었는데, 이 때문에 활주로나 기지가 파괴되더라도 전투기를 이륙시킬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활주 거리가 짧고 이륙이 손쉬운 수직이착륙 항공기는 서독 공군이 원하는 답이었으므로 제재가 풀린 독일 항공 방산 업체들은 모두 다 VTOL기 제작 분야에 뛰어들고자 했다.

서독 연방 정부가 본격적으로 수직이착륙 전투기 개념 설계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발행하자 도르니어(Dornier), 매서슈미트 등 '왕년의 유수 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설계를 내놓은 곳은 이미 제트기를 개발해 본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F-104 면허 생산을 시작하고 있던 하인켈이었다. 하인켈은 그간의 기술력을 응용하여 제트 엔진을 설치한 VSTOL 항공기인 "He231" 설계안을 내놓았다. 또한 전투기의 옛 명가인 매서슈미트 역시 따로 개발을 진행해 X1-21 설계안을 개발해 독일 연방 정부에 제출했다.

서독 연방정부는 복수의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았으나, 이들 설계 제안이 실제 실용성 있는 항공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단순히 수직 이착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지간한 당대의 요격기와 비슷한 성능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는 경쟁 중인 국내 업체를 통합하여 기술 집중성을 높이는 방법을 추진했다. 이에 1959년부터 매서슈미트, 뵐코프, 하인켈 3사 간에 합작사(JV: Joint Venture) 설립이 추진됐으며, 사명은 '남부 개발지대(Entwicklungsring Süd) 연합업체'라는 의미를 담아 EWR로 명명했다.

EWR은 순전히 마하 2 속도의 VTOL 요격기를 만들어 납품할 목적으로 설립된 뒤 개발에 들어갔다. 이들 업체는 1960년 초, 독일 국방부에 VJ 101D로 명명한 VTOL 전투기 개발안을 발표했으며, 뵐코프와 매서슈미트가 각각 개발하고 있던 개념을 활용하여 시제기인 VJ 101C 두 대를 개발하기로 하면서 각각 X-1과 X-2로 이름 붙였다. X-1은 통상적인 개념을 적용한 기체로, X-2는 독일 공군 요구도에 맞춰 요격기 성능에 준하게 하기 위해 엔진에 애프터버너를 장착한 형상이었다.

한편 독일의 엔진 제조사인 만 투르보(Man turbo)사는 독일 국방부로부터 VTOL이 가능한 엔진 개발을 의뢰받아 자체적으로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VTOL 엔진 분야는 생소했던 만은 해외 업체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1960년 3월,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사와 엔진 공동 개발을 제의하여 10년간 협업 계약을 체결했다. 독일 국방부는 같은 달 경량형 싱글스풀(Single-spool) 터보제트 엔진 개발 사업자로 만을 선정했으며, 롤스-로이스를 주요 협력 업체로 선정했다. 이에 두 업체는 독일 국방부에 납품할 롤스로이스/만 투르보 RB153 터보 팬(turbo fan)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EWR은 우선 롤스로이스-만의 RB.153 엔진 완성 전까지 더 가벼운 RB-145 엔진을 시제기에 장착했으며, VTOL을 위해 조종석 뒤에 수직이륙용 리프트팬 엔진을 장착하고, 주익 끝에 위아래로 꺾이는 틸트형 엔진을 장착했다. 이렇게 할 경우 이륙 시 3축으로 동체를 안정시켜 공중으로 기체를 들어 올린 후, 리프트팬을 정지시킨 뒤 주익 끝의 엔진을 전방으로 꺾어 수평 비행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VJ 101C는 5년간 시험을 실시했지만 개발비가 계속 치솟기 시작하자 1968년 부로 사업을 취소했다. 만약 VJ 101C가 도입됐다면 독일 공군이 운용하고 있던 F-104G 스타파이터(Starfighter)의 후속 기체가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엔진을 제작하던 만과 롤스로이스 역시 고성능 6,850 파운드급 RB.153 엔진을 제작해 양산형 VJ 101D에 장착할 예정이었으나, 완성 전에 사업이 취소됨에 따라 엔진도 개발이 중도에 좌절되고 말았다. 만약 VJ 101D가 양산에 들어갔다면 이 엔진은 당대에 개발되던 수직이착륙 항공기에 도입됐을 가능성이 컸으며, 실제로 호커 P.1157 항공기나 도르니어(Dornier)의 Do 31 VTOL 수송기에도 해당 엔진 장착이 논의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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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WR의 VJ 101C는 시제기 단 두 대만 제작됐다. 두 대는 전반적으로 제원이 유사해 두 기체 모두 고익(高翼) 단엽 항공기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경합금으로 제작했다. 랜딩기어는 3축으로 설치했고, 조종석은 기밀(氣密) 구조로 설계했으며, 조종석에는 사출좌석의 명가인 마틴-베이커(Martin-Baker)제 사출좌석을 채택했다.

엔진은 총 6개의 롤스로이스-만 투르보 RB.145 엔진을 채택해 두 기는 조종석 측면 동체에 수직으로 넣고, 두 기는 양 날개 끝에 포드(pod) 형태로 장착해 틸트(tilt)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동체에 들어간 엔진은 저속 비행을 위해 사용되며, 주익 끝 윙팁의 엔진은 수직 이륙 후 전방으로 틸트 시켜 고속 비행에 활용하게끔 설계했다.

VJ 101이 가장 시대를 앞서갔던 부분은 비행 통제를 통칭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 방식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 방식의 비행 통제는 VJ 101에게 필수였는데, 수직 이륙을 할 때에도 균형을 잡아야 했고, 엔진을 틸트 시켜 전진 비행으로 바꿀 때도 미묘한 균형 통제와 엔진 대응 속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비행 통제 시스템은 미국의 허니웰(Honeywell)사와 독일 보덴제베르크(Bodenseewerk)사가 공동 개발했으며, 최초 2채널 방식으로 테스트를 했으나 3채널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 결과가 나와 최종 변경했다.

VJ101은 공중으로 수직 이륙 후 리프트 엔진을 끄면서 좌우 끝의 엔진을 전방으로 돌려 수평 비행에 들어가는 개념으로, 해리어뿐 아니라 오늘날 F-35B도 사용하고 있는 수직/수평 전환 방식을 사용했다. 비록 개발 과정에서 시제기 한 대가 추락한 이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수평 전환 문제보다는 기기류 계통 오작동에 가까워 비행 방식 자체는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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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현황

VC-101C X-1은 1963년 4월 10일, 자유 호버링(hovering) 비행을 실시해 첫 비행에 성공했다. X-1은 1964년 하노버 에어쇼에 처음 출품되어 일반 공개됐으며, X-1은 총 40회의 비행과 24회의 호버링, 14회의 수직이륙-수평비행 전환을 실시했다. 이 실험 중 항공기 역사상 처음으로 수직 이륙 후 음속 돌파 비행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54년 9월 14일, 오토 파일롯(autopilot) 모드로 전환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 추락했으며, 기체에 꽤 작지 않은 파손이 발생했지만 이후에도 기체는 계속 사용했다. X-1은 1964년 7월 29일에 애프터버너를 사용하지 않고 마하 1.04에 도달했다.

VJ 101C X-2기는 윙팁 엔진에 애프터버너가 설치된 것이 X-1과 달랐는데, 이 때문에 수직이착륙 간 더 추력이 커 안정적으로 비행이 가능했다. X-2는 1965년 6월 12일에 첫 호버링 비행에 성공했으며, 4개월 뒤인 10월 22일에는 수직 이륙 후 엔진을 틸트 하여 수평 비행을 실시했고, 반대로 수평 비행 후 틸트 해 수직 착륙을 해 비행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사업 전체가 1968년에 취소됨에 따라 더 이상의 개발이 중지됐으며, 양산형인 EWR VJ 101D의 개발도 실현되지 못했다. 당초에는 양산기를 단좌식 요격기 형상으로 개발할 계획이었으며, 완성 시에는 시제기와 달리 동체에 수직이륙용 리프트제트(lift jet)  엔진을 넣고, 나머지는 동체 뒤에 설치할 계획이었다.

사업이 중단된 이유는 결국 VTOL 전투기의 짧은 항속 거리 등 성능 상의 열세 때문에 실용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의 다쏘(Dassault)도 미라주(Mirage) IIIV를 개발하고, 영국도 결과적으로 호커-시들리(Hawker-Siddley) 해리어 Harrier)가 된 P.1154 등을 개발하고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서방에서 탄생에 성공한 것은 오로지 AV-8 해리어(Harrier) 뿐이다.

X-1은 한차례 추락했지만 복구됐으며, X-2도 온전하게 보존되었기 때문에 사업 취소 후에도 남아 있다. 현재 두 기체 모두 독일 뮌헨의 도이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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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EWR VJ 101C X-1: VJ 101C의 시제기 1번기.

EWR VJ 101C X-2: VJ 101C의 시제기 2번기. 1번기와 달리 윙팁 엔진에 애프터버너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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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용도: 수직/단거리 이착륙(VSTOL) 전투기
제조사: EWR
승무원: 1명
전장: 15.7m
전고: 4.1m
날개 길이: 6.61m
최대 이륙 중량: 6,000kg(VTOL 이륙 시); 8,000kg(윙팁 엔진을 사용해 VTOL 이륙 시)
추진체계: 2,750파운드급 롤스로이스/만 투르보 RB.145 터보제트 엔진 x 6
최고 속도: 마하 1.08
최저 속도: 260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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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