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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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모신나강 소총

격동의 역사와 함께 한 러시아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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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러시아에서 개발된 모신나강은 20세기 중반까지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이나 분쟁에 빠짐없이 등장한 소총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877년, 발칸반도로 세력을 확장하기를 원하던 러시아는 오랫동안 일대를 지배해온 오스만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이번 전쟁이 16세기 이후 12번째였을 정도로 양국은 그야말로 철천지원수였다. 약 10개월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승리한 러시아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시킨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등을 위성국으로 거느리며 슬라브족의 맹주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 군부는 엄청난 피해에 곤혹스러웠다. 예를 들어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플레브나 공성전에서 두 배나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승리했지만 전사자가 3배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보유한 무기의 성능 차이로 벌어진 일이었는데, 특히 소총의 질적 격차가 컸다. 오스만군이 무장한 윈체스터 소총이 러시아군의 베르단 소총보다 사거리가 길고 연사력도 월등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세스트로레츠크에 설치된 세르게이 모신의 흉상. 그가 개발한 소총은 러시아(소련) 현대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출처 : (cc) Volkov at Wikimedia.org >

이처럼 러시아는 레버액션식 윈체스터에도 맥을 추지 못했는데, 1880년대가 되자 소총의 대세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볼트액션식으로 넘어가던 중이었다. 주변국의 최신 동향을 접한 러시아는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하고 1889년 신예 소총 개발에 나섰다. 상금을 내건 국제 공모에 최종적으로 툴라 조병창의 모신(Sergei Ivanovich Mosin)과 벨기에의 엔지니어인 나강(Léon Nagant)의 제안이 경쟁을 벌였다.

모신은 프랑스의 르벨 M1886 소총과 한창 개발 중이던 오스트리아의 만리허 소총을 참조한 프로토타입을 제출했다. 한창 개발 중이던 7.62mm 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제작과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강의 제안은 9mm 탄을 사용하므로 추가 개조가 요구되었고 바로 직전에 있었던 자국군의 소총 사업에서 독일 마우저의 M1889 소총에게 밀렸기에 품질도 의문시되었다.

모신나강과 같은 1891년 제식화된 다양한 종류의 7.62×54mmR 탄. 120년이 지난 현재도 많이 사용 중인 걸작 총탄이다. < 출처 : (cc) CynicalMe at Wikimedia.org >

이에 추가 공모를 실시했으나 이 두 소총을 앞서는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개발자들에게 성능 개선을 요구했고 그렇게 해서 개량된 모델들로 시험을 진행한 결과 나강의 제출안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가장 기초적인 무기인 소총을 계속해서 외국산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라는 의견도 많았다. 실제로 볼트액션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세기 전반에 모든 열강들은 예외 없이 자국산 소총을 사용했다.

고심 끝에 군부는 모신의 제출안을 개조해서 나강이 설계한 탄창을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개발되어 1891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새로운 제식 소총에 ‘세 줄 소총 M1891(3-line rifle M1891)’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고 모신에게는 포상금이 지급되었다. 그러자 나강이 자신도 개발자라며 소송을 걸어 배상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후 세 줄 소총 M1891은 모신나강(Mosin–Nagant)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5년 발행된 기념우표에 등장한 모신나강. 러시아에서는 모신 소총으로 불린다. < 출처 : Public Domain >

소련은 공로를 기리기 위해 무기명을 개발자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전통이 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제정러시아 시절에 개발되었지만 세 줄 소총 M1891이라는 이름은 소련군의 무기 체계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에 혁명의 혼란기가 정리된 직후인 1924년에 모신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단지 탄창 때문에 나강의 이름까지 붙이는 것은 억지라며 현재 러시아에서는 모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신나강 덕분에 러시아는 경쟁국들과 같은 시기에 본격적인 볼트액션 소총 시대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다만 20세기 초반까지 러시아의 공업 수준이 떨어져서 생산의 상당 부분을 외주에 의존했다. 그래서 프랑스의 샤텔로 조병창, 미국의 레밍턴, 웨스팅하우스 등에서도 제작이 이루어졌다. 여담으로 설계도가 러시아의 도량형인 아르신 방식으로 표기되어 업체들이 수치를 재계산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제1차 대전 당시 모신나강으로 무장한 러시아군. 스파이크 총검까지 착검하면 총의 길이가 병사의 신장과 맞먹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이러한 개발 과정과 자국 산업 수준의 불신 때문인지 모신나강에 대한 일선의 최초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새롭게 표준이 된 7.62×54mmR 탄의 초기 불량률이 높았던 점도 나쁜 평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 경쟁 소총과 비교했을 때 성능은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7.62×54mmR 탄도 실제로는 1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 중일 만큼 뛰어난 총탄이다.

모신나강이 생각보다 좋은 소총이라는 사실은 한참 후인 제2차 대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개발 당시에 군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대한 구조를 단순화시킨 덕분에 모신나강은 어지간한 악조건에서도 무난히 작동했다. 독소전쟁 초반이던 1941년 겨울에 윤활유가 얼어붙어 독일군의 무기는 작동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모신나강은 같은 상황에서도 사격에 문제가 없었다.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한 소총이었다.

제2차 대전 당시 일부 병력이 기관단총으로 무장했으나 모신나강이 소련군의 주력 제식 소총이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특징

모신나강의 외관은 기존에 사용하던 베르단과 유사하나 5발을 내부 탄창에 장탄할 수 있어 연사 속도가 빨랐다. 노리쇠 작동에 악명이 높았던 카르카노 소총 같은 사례도 있지만 사실 볼트액션 소총은 기계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아 연사력은 사수의 숙련도에 의해 결정된다. 모신나강도 마찬가지다. 또한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조준기, 노리쇠, 방아쇠 등의 개량이 이루어져서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모신나강의 격발 장치와 노리쇠는 구조가 단순해서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출처 : Public Domain >

모신나강은 총신이 상당히 긴데 러시아식 스파이크 총검까지 달면 무려 병사들의 신장과 맞먹은 173cm를 넘길 정도여서 휴대가 불편했다. 러시아 평원처럼 넓은 개활지에서 백병전을 벌일 경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제1차 대전에서 일상화가 된 참호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량이 이루어질수록 총신이 줄어들었는데 특히 1907년에 등장한 기병대용 M1907 카빈은 총신이 28.9cm나 짧아졌다.

볼트액션 소총은 사격의 정확도가 높다. 여기에 모신나강은 긴 총신 덕분에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도 뛰어나다. 때문에 전쟁사에 길이 빛날 많은 저격수들이 애용했다. 1939년 발발한 겨울전쟁 당시에 3개월 동안 적군 542명을 사살한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인 헤위헤(Simo Häyhä)도 핀란드산 모신나강인 M24을 사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군은 자신들이 개발한 모신나강에게 치욕을 당한 것이었다.

전설적인 저격수인 시모 헤위헤. 핀란드산 모신나강인 M24를 사용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운용 현황

모신나강은 1891년부터 1973년까지 3,700만 여정이 생산되어 러시아(소련) 외에도 60여 개국 이상에서 사용했고 지금도 10여 개국에서 운용 중이다. 1899년 의화단운동 진압 당시에 처음 실전 투입되었고 이후 러일전쟁, 발칸전쟁, 제1차 대전, 적백내전, 제2차 대전,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 분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에 빠짐없이 등장한 소총이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노획한 러시아군의 모신나강 < 출처 : Public Domain >

단연코 그중 제2차 대전 당시에 가장 많은 활약을 선보였다. 당시 소련군의 기본 무장이던 M1891/30은 전쟁 전인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생산되었는데, 현존하는 대부분의 모신나강은 바로 이 모델이다. 제2차 대전부터 기갑부대를 앞세운 기동전이 대세가 되었으나 동부전선은 독일의 진격이 돈좌된 1941년 겨울부터 거의 2년간은 어느 일방이 전략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특히 레닌그라드, 르제프 일대가 그러했다.

제1차 대전 당시의 서부전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참호를 깊게 파고 대치했다. 때문에 모신나강은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후 새롭게 등장한 AK-47이 기존 소총과 기관단총을 일거에 대체하면서 급속히 퇴출되었다. 비록 주력에서는 물러났지만 정비만 제대로 했다면 사용에 크게 문제가 없어 2000년 이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등장하기도 했고 민간용으로도 인기가 꾸준하다.

제2차 대전 후 주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민수용 등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변형 및 파생형

M1891: 최초 양산형

M1891 < 출처 : Public Domain >
M1891 드라군: M1891 기반 카빈
M1891 드라군 < 출처 : Public Domain >
M1907 카빈: 착검 장치를 제거한 카빈 개량형
 
M1891/10: 조준기, 노리쇠, 슬링 등 개량형
 
M1891/30: 가늠자를 미터법 방식으로 바꾼 개량형
M1891/30 < 출처 : (cc) Tyronegopaldi at Wikimedia.org >
M1891/59 카빈: M1891/30 기반 총신 단축형
 
M1938 카빈: M1891/30의 착검 장치를 제거한 개량형
M1938 카빈< 출처 : Public Domain >
M1944 카빈: M1938 카빈 개량형
 
M/91: 핀란드 생산형
M/91 < 출처 : Public Domain >
M/91rv: M1891 드라군 라이플 핀란드 생산형
 
M/24: 7.62mmx53R 탄을 사용하는 핀란드 개조형
M/24 < 출처 : Public Domain >
M/27: 핀란드 자체 설계형
M/27 < 출처 : Public Domain >
M/27rv: M27 기반 카빈
M/27rv < 출처 : Public Domain >
M/28: M/27 개량형
M/28 < 출처 : Public Domain >
M/28-30: M28 개량형
M/28-30 < 출처 : Public Domain >
wz.1891: 폴란드 생산형
 
wz.1891/30: wz.1891 현대화 개수형
wz.1891/30 < 출처 : Public Domain >
wz. 91: wz.1891 카빈
 
wz. 91/98/23: 7.92x57mm 마우저탄 사용형
 
wz. 91/98/25: wz. 91/98/23 개량형
wz. 91/98/25 < 출처 : Public Domain >

wz. 91/98/26: wz. 91/98/25 개량형
 
VZ91/38: 체코슬로바키아 생산형

53式: 중국 복제형

53式 < 출처 : (cc) Joe Mabel at Wikimedia.org >
M/52: 헝가리 복제형
< 출처 : (cc) B4Ctom1 at Wikimedia.org >
US 라이플 7.62mm M1916: 미국 위탁 생산형


제원(M91/30)

제작사: 툴라 조병창 외
구경: 7.62m
탄약: 7.62×54mmR
급탄: 5발 들이 스트리퍼 클립
전장: 1,232mm
총열: 730mm
중량: 4kg
유효 사거리: 500m
작동 방식: 볼트액션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