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0.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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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KV 전차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책임진 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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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2 전차포를 장착한 KV-1 전차. 소련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중전차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28년 소련은 최초의 국산 전차인 T-18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10년 전인 제1차 대전 당시에 프랑스가 개발한 FT 전차를 그대로 복제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차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소련은 이후 영국, 미국 등에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도입해 다양한 전차를 개발해서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1930년대 시점으로 보자면 주변국과 비교할 때 소련의 전차 전력은 그다지 뒤지지 않았다.

쿠빙카 박물관에 전시 중인 T-35 중전차. 1935년부터 배치되었으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61대로 생산을 종료하고 후속작 개발이 시작되었다. < 출처 : (cc) Prised at Wikipedia.org >

하지만 무기의 성능은 실전을 경험하지 않고 정확히 알기 어렵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좋은 기회가 되었다. 소련은 인민전선에 다양한 물자를 지원해 주었는데, 그중에는 281대의 T-26과 50대의 BT-5도 있었다. 소련은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실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공격력, 방어력 모두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이는 T-35를 대체할 차기 중(重)전차를 구상 중이던 군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기존 45mm 전차포로 프랑스, 영국의 중전차나 독일이 한창 개발 중인 3호, 4호 전차를 격파하기 어렵다고 분석되었다. 참호선 돌파라는 중전차 고유의 임무는 물론 향후 기갑전까지 대비하려면 화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38년부터 M1914/15 대공포를 기반으로 76.2mm 구경 전차포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는 BT-5를 후속하기 위해 개발 중이던 차기 중형(中型)전차도 탑재가 결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T-34이다.

T-34 시제전차의 시험평가 장면. T-34는 BT-5를 대체하는 중형 전차로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방어력이었다.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지만 소련 전차는 장갑이 빈약해 어지간한 공격에 쉽게 격파 당했다. 원래 중전차는 중장갑이 기본이나 이런 전훈 때문에 장갑을 더욱 두텁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격력과 방어력이 늘어나면 구조적으로 전차가 커지고 그만큼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엔진이 있어야 기동력 저하를 막을 수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많았다.
키로프 공장에서 제작한 55톤 다포탑 중전차인 SMK 프로토타입. 보리시비크 공장의 T-100도 같은 모양이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당국의 신예 중전차 개발 명령에 따라 1939년 프로토타입인 키로프 공장(설계국)의 SMK과 보리시비크 공장의 T-100이 탄생했다. 양측 모두 동일한 토션 바 서스펜션, 광폭 트랙, 용접 및 주조 구조여서 외형이 그다지 차이가 없는데, 이는 GABTU(노농적군 기갑기계화총국)의 개념 연구를 따랐기 때문이다. 이들 시제작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방향으로 동시 전투가 가능한 다포탑 구조라는 점이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여전히 전차의 구조나 역할에 대해 개념 정립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여서 다양한 형태의 전차가 존재했고 실험 목적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다포탑 구조도 그러한 결과물 중 하나다. 양측 공히 전장이 9m 정도의 거대한 차체에 45mm 부포탑과 76.2mm 주포탑을 일렬로 장착한 구조였다. 중장갑인데다가 크기도 커서 무게가 55톤이 넘었고 승무원들도 7~8명이 필요했다.

KV 전차를 제안한 요시프 코틴. 이후 IS 전차를 비롯한 수많은 전차의 개발을 주도한 뛰어난 엔지니어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데 키로프의 SKB-2 설계국 수석 엔지니어인 코틴(Josef Kotin)은 GABTU가 제시한 다포탑 구조가 단지 전차의 크기만 늘릴 뿐이지 전투를 벌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부포탑을 제거하고 전차의 길이를 축소한 대신 전면 장갑을 더욱 강화한 개선안을 당국에 제시했다. 그렇게 3개의 시제작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며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실전 테스트를 벌였다.

SMK은 투입 직후 핀란드군이 축성한 함정에 돈좌되었다. 너무 덩치가 커서 자력 탈출은 물론 구난도 불가능해 현장에서 파괴했다. 때문에 같은 구조의 T-100은 전선 투입이 유보되었다. 반면 코틴의 시제작은 손쉽게 진지 점령에 성공하며 중전차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에 따라 양산형으로 코틴의 제안이 채택되었고 당시 소련의 국방상이자 스탈린의 친구인 보로실로프(Kliment Voroshilov)의 이름을 따서 KV 전차(이하 KV)로 명명되었다.


특징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KV는 변형과 파생형이 대단히 많은 전차다. 애초에 차체가 크고 넉넉하게 개발되어 다양한 형태로 개량이나 개조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성능을 설명하기 어려운데, 특히 공격력이 그렇다. 다만 제2차 대전 당시에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치고 가장 많이 생산된 KV-1은 76.2mm 전차포를 장착했다. 이는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함께 활약한 중형전차인 T-34와 같은 무장이었다.

KV-1의 공격력은 보통 수준이었으나 방어력이 좋아 독일군이 격파하기 어려웠다. < 출처 : Public Domain >

최종 양산형인 KV-85는 85mm 전차포를 장착했지만 활동 시기가 전쟁 후반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보통 수준이었다. 따라서 공격력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설령 KV의 1차적 목적이 기갑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차의 크기를 고려한다면 공격력은 부족했다. 일발로 진지를 격파할 목적으로 152mm M-10T 곡사포를 장착해 극단적으로 공격력을 강화한 KV-2 등도 존재하나 이 또한 기갑전 용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방어력은 뛰어났다. 원래 참호 돌파를 목적으로 하는 중전차였던 데다 개발 당시에 스페인 내전의 전훈이 반영되면서 장갑이 대폭 강화되었다. 때문에 KV 배치 당시에 존재하던 전차포나 대전차포로 격파가 불가능했다. 이는 KV-1을 기준으로 공격력에서 그다지 장점이 없던 KV가 무기사에 뚜렷이 각인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1942년을 넘어 각종 대응 수단과 방법이 등장하면서 방어력의 우위도 사라졌다.

최종 양산형인 KV-85. IS 중전차가 배치되기 전까지의 전력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600마력 12기통 엔진을 최대 시속 35km의 속도로 기동할 수 있었다. 또한 궤도가 광폭이어서 거친 러시아 대지에서 무난히 기동이 가능했기에 주행력은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출현 당시 최고인 45톤이 넘는 무게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변속기의 신뢰성이 나빠 조종이 어려웠고 툭하면 고장이 발생해 가동률이 떨어졌다. 때문에 승무원 중 한 명이 수리 전담이었을 정도였다.


운용 현황

KV는 1939년부터 실전 배치된 후 1943년까지 다양한 변형과 파생형을 포함해 총 5,219대가 생산되었다. IS 중전차의 데뷔가 늦어져 전쟁 후반기에 임시 대타로 활약한 KV-85도 있지만 수량으로 보나 실제 활약 정도로 보나 KV-1이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고 1942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한마디로 소련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책임진 중전차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격파된 KV-1. 독일군이 격파 수단을 확보한 1942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우세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전차는 전술적인 무기여서 전쟁 전체로 보자면 인상적으로 기록될 만한 전과를 남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KV는 독소전쟁 초기인 1941년에 있었던 전투들에서 전쟁사에 길이 남을만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23일에 있었던 라세이냐이(Raseiniai) 전투에서 교차로를 점거한 1대의 KV-2(일부 자료에는 KV-1이라고도 함)가 독일 제6기갑사단의 진격을 하루 동안 묶어버린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모스크바 전투 당시 전투 투입을 위해 도열한 KV-1 전차들. < 출처 : Public Domain >
8월 14일에는 레닌그라드 인근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Krasnogvardeysk)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5대의 KV-1이 2시간 동안 무려 43대의 적 전차를 격파시켜 독일 제8기갑사단을 후퇴시킨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1942년 여름까지 곳곳에서 독일군을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까지 독일군이 보유한 중화기로 KV를 격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영화 Tankers(2018년작)에서 KV-1과 팬저 IV의 전투장면 < 출처: 유튜브 Johnny's War Stories 채널>
독일군의 공격으로 무려 135발의 포탄을 정확히 얻어맞았음에도 단 한 발도 관통되지 않아 생존한 경우까지도 있었다. 당시 독일은 3개월 동안 무려 350여만의 소련군을 붕괴시키고 1,000km 가까이 진격했을 만큼 일방적으로 소련을 몰아붙이던 때였다. 그럼에도 이를 격파할 수단을 갖추기 전까지 일선에서 독일군의 KV에 대한 반응은 노이로제를 넘어 공포였다. 한마디로 짧고 굵게 역사를 쓴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변형 및 파생형

KV-1 Model 1939: 76.2mm L-11 전차포 장착 초도 양산형

KV-1 M1939 < 출처 : Public Domain >
KV-1 Model 1940 (KV-1A): 76.2mm F-32 전차포 장착 개량형
KV-1A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KV-1 Model 1941 (KV-1B): 전면 장갑이 강화, 76.2mm ZiS-5 전차포 장착 개량형
KV-1B < 출처 : (cc) Mightyhansa at Wikipedia.org >
KV-1 Model 1942 (KV-1C): 엔진, 포탑 개량형
 
KV-1S: 포탑 재설계, 신형 변속기 개량을 장착으로 주행력이 향상된 개량형
KV-1S < 출처 : (cc) Mike1979 Russia at Wikipedia.org >
KV-2: 대진지 공격을 위한 M-10 152mm 곡사포 장착형
KV-2 < 출처 : (cc) Gandvik at Wikipedia.org >
T-150: 장갑, 포탑 개량 제안형
 
T-220: 차제 확장 제한형
 
KV-3: T-150 양산 모델이었으나 독소전쟁 발발로 양산이 취소됨
 
KV-4: 107mm ZiS-6 주포 탑재 85~110톤 초중전차 제안형
KV-4 < 출처 : (cc) Н. Духов at Wikipedia.org >
KV-5: 107mm ZiS-6 주포 탑재 100톤 초중전차 제안형
 
KV-7(U-13): 45mm 자주포 프로토타입
KV-7-1(U-13) < 출처 : Public Domain >
KV-7-2(U-14): 76.2mm 자주포 프로토타입
KV-7-2(U-14) < 출처 : Public Domain >
U-18: KV-7 기반 152mm 자주포 프로토타입
U-18 < 출처 : warspot.net >
S-51(U-19): 203mm 자주포 프로토타입
S-51 < 출처 : (cc) неизвестен at Wikipedia.org >
SU-152: KV-1S 기반 돌격포
SU-152 < 출처 : (cc) I,Ranger at Wikipedia.org >
ZiK-20: S-51 방어력 향상 제안형
 
KV-8 (42): 45mm 주포, ATO-41 화염방사기 장착형
 
KV-9: 122mm 단포신 U-11 주포 장착 프로토타입
KV-9 < 출처 : Public Domain >
KV-10(KV-1K): 로켓발사관 설치 프로토타입
KV-10< 출처 : Public Domain >
KV-11: 85mm F-30 주포 장착 제안형
 
KV-12: 화학전 제안형
 
KV-13: IS 전차의 기반이 되는 차체 전면 재설계 프로토타입
KV-13 < 출처 : (cc) неизвестный фотограф at Wikipedia.org >
KV-14: 152mm 자주포 프로토타입
 
KV-85: 85mm D-5T 주포 장착 최종 양산형
KV-85 < 출처 : Public Domain >
KV-122: KV-85 기반 122mm S-41 곡사포 장착 제안형
S41 122mm 곡사포 장착형을 보로실로프 원수가 시찰하고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KV-100: KV-85 기반 100mm S-34 주포 장착 제안형
KV-100 < 출처 : Public Domain >
KV-122: KV-85 기반 122mm D-25T 주포 장착 제안형
D-25T 주포 장착형 KV-122 < 출처 : Public Domain >
KV-152: KV-85 기반 152mm 주포 장착 제안형


제원

생산업체: 키로프 공장
중량: 45톤
전장: 6.75m
전폭: 3.32m
전고: 2.71m
장갑: 50~90mm
무장: 76.2mm M1941 Zus-5 포×1
         7.62mm DT 기관총×3
엔진: V-2 12기통 디젤엔진 600마력(450kW)
추력 대비 중량: 13마력/톤
서스펜션: 토션 바
항속 거리: 220km
최고 속도: 35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