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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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41/YAK-141 VTOL 전투기

F-35B의 뿌리가 된 공산권의 마지막 VTOL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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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판보로 에어쇼에서 호버링 시범 중인 YAK-141. (출처: Ken Videan/Wikimedia Commons)


개발의 역사

항공모함은 ‘바다의 공항’ 개념으로 출발한 함정으로, 첫 등장 당시에는 해상 위의 활주로 역할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특히 미국은 진주만 공습으로 주요 전함이 전선에서 탈락함에 따라 함대 편성을 항모 중심으로 변경했으며, 태평양 전역의 해전이 함재기 중심의 대결 양상으로 변모함에 따라 항모는 일본 연합 함대를 꺾는데 큰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 항공모함에 대한 소련의 평가는 낮았다. 일단 소련의 교리 자체가 방어 위주인 데다 함대 방공을 위해 함대를 해안에서 멀지 않게 운용하면서 지상에서 이륙한 전투기들로 함대를 방어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항모의 필요성이 낮았던 것이다. 하지만 항모에 대한 소련의 평가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핵 추진 항모와 핵무기를 장착한 전략핵잠수함들이 등장하면서 달라지게 됐다. 경쟁국 함대의 항속거리가 넓어졌기 때문에 소련 함대도 근해 밖으로 나가야 할 필요성이 대두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선 대잠전(對潛戰) 수행을 목적으로 한 함정 탑재용 헬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련 해군의 트빌리시(Tbilisi)급 항모에서 이륙 준비 중인 YAK-41을 그린 상상도. (출처: US Defense Intelligence Agency)
소련은 항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VTOL(수직이착륙: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전투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간단한 경(輕)항모나 일반 항모 갑판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VTOL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다면 탑재 장비나 무장, 항속 거리 면에서 헬기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항모의 건조와 운용은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문제였으므로 VTOL 전투기의 개발은 항모가 부담스러운 국가들에겐 최적의 해답이었고, 전후 경제 부담에 시달리던 영국이나 프랑스, 소련 등은 VTOL기의 개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중 소련은 사상 최초의 수직이착륙 항공기인 YAK-36을 개발했고, 이를 군용으로 개량한 YAK-38까지 등장했다. 키에프(Kiev) 급 순양항모(Carrier-cruiser)에서 운용하기 위해 YAK-38을 개발한 소련은 이 기체를 1976년부터 실전에 배치해 운용했지만 YAK-38은 오로지 수직이착륙 능력에만 집중하면서 메인 엔진과 리프트(Lift)용 소형 엔진 두 기를 탑재해 무거운 전투기가 되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탑재중량과 항속거리가 실전에서 운용하기에는 어려운 기체가 되고 말았다. 특히 소련 해군은 YAK-38보다 훨씬 통합적인 능력을 갖춘 전투기의 개발을 원한 데다 단순히 함대 방공 임무 뿐 아니라 초음속 비행 능력과 높은 기동성을 갖춰 일선 전투기와 교전을 치러도 밀리지 않는 우수한 함재기의 도입을 희망했으므로 결국 야코블레프(Yakovlev) 설계국은 1975년부터 YAK-38의 후속 기종으로 대체할 차기 다목적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YAK-38 후속의 차기 다목적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1975년부터 개발했다. <출처: Public Domain>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설립자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예비치 야코블레프(Alexander Sergeyevich Yakovlev, 1906~1989) 국장은 앞서 YAK-38을 개발했던 자신감으로 해군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열 명의 수석 엔지니어를 이 프로젝트에 동시에 배정하여 차세대 VTOL 전투기, 통칭 “48번 제품(Product 48)”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렇게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곧장 예산 문제에 봉착해 진도가 지지부진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우선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50개가 넘는 설계 도안을 그린 후 최종 검토를 했으나 엔진 문제에 들어서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들이 직면한 문제는 추력편향(推力偏向) 방식의 노즐과 애프터버너(Afterburner)를 동시에 적용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였는데, 이는 VTOL 겸 초음속 전투기를 원한 해군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도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어느 쪽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최초에는 쌍발 엔진 설계를 고려했으나 수직이착륙 시 엔진 하나가 꺼지기라도 했다간 당장 기체 균형이 무너져 좌우 한 쪽으로 뒤집혀버린다는 문제 때문에 AV-8 해리어(Harrier)와 유사한 단발 엔진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하지만 단발 엔진 안은 수직 이착륙 시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결국 야코블레프 사는 추력편향 노즐을 채택한 단발 엔진을 기체 중심 바로 뒤에 위치 시키고, 조종석 바로 뒤에 수직이착륙용 리프트 엔진 두 기를 별도로 장착하는 안을 선택해 결국 YAK-38과 동일한 설계 방식을 채택했다. 이들은 처음에 노즐 모양도 현재의 F-22 같은 납작한 형태를 고려했는데, 이는 노즐 방향이 아래로 향해 이륙한 후 다시 뒤로 틸트(tilt) 하여 초음속 비행으로 전환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확정 설계에서는 원형 노즐을 채택했으며, 엔진이 최대한 기체 중심점에 가깝게 위치할 수 있도록 엔진 양옆으로는 붐(boom)을 설치해 길게 뺀 후 그 위에 수직 미익과 수평 미익을 달게 됐다.
YAK-141은 YAK-38과 동일하게 추력편향 단발엔진에 리프트엔진 2기를 별도로 장착했다. <출처: Public Domain>
우여곡절 끝에 조립에 착수한 차기 VTOL 기체는 1987년 3월 9일에야 시험 비행 조종사 시니친(Sinitsyn)의 조종으로 주코프스키(Zhukovskii)에서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2번기는 2년 뒤인 1989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시험 비행을 통해 해당 기체는 비행 특성 면에서 서방의 AV-8 해리어의 성능을 상회할 것으로 판단됐으며, 개발이 완료되면 동급 기종에서는 최강의 전투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야코블레프는 해당 기체를 YAK-41로 명명했으며, 시니친은 1989년 12월 29일에 처음으로 호버링(hovering) 비행에 성공하고 1990년 6월 13일에는 동일한 시제기로 수직 이륙 후 수평 비행으로 전환하여 고속 비행을 실시하는데 성공했다. 1991년 4월부터는 다양한 이착륙 및 항모 스키 점프대 이함 시험 및 해상 시험을 거쳤으며, 모의 전투 시험 등에서는 우수한 기동력을 자랑해 전투기로서도 손색 없는 결과가 나왔다. 이 차기 VTOL 기체에는 실제로 YAK-41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으나,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개발 사실을 비밀로 붙이기 위해 국제항공협회에 YAK-141이라고 등록한 후 시험 비행 조종사 시니친의 조종으로 12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해 등록했다. 이 때문에 서방에서는 해당 기체를 YAK-141로 인지했으며, 야코블레프는 1992년부터 기체 외관에 시제기 번호에 따라 “75”, “77”이라고 쓰여있던 번호를 지우고 올리브와 회색 계열의 위장색으로 칠한 뒤 백색 페인트로 크게 “141”이라고 새겨 넣었다.
1992년 판보로 에어쇼 중 수직이륙 비행 중인 YAK-141. 기수 조종석 아래 리프트 엔진용 도어가 열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출처: Wal Nelowkin/Wikimedia Commons)
YAK-41 시제기 2번기는 1991년 9월 26일에 러시아 항모 고르쉬코프 제독(TAKR Admiral Gorshkov)함 비행 갑판 위에 수직 착함에 성공했으며, 한 시간 뒤에는 블라디미르 야키모프(Vladimir A. Yakimov)가 조종하는 시제기 3번기가 같은 함정 갑판에 착함했다. 하지만 10월 5일, 세 대의 시제기가 돌아가면서 8소티를 소화하고 있던 중 3번기가 너무 일찍 하강하다가 랜딩 기어가 항모 비행 갑판에 부딪혀 부러지면서 연료 탱크를 파열시키는 바람에 불이 붙었으나 조종사이던 야키모프는 화재 발생 30초 후에 사출에 성공해 무사히 구출됐다. 이후 3번기는 회수하여 수리까지 했지만 이후 지상 전시용으로만 활용됐다.
1991년 10월 5일, 항모 착함 중 랜딩기어가 비행갑판에 충돌해 부러지면서 연료 탱크를 관통, 폭발 사고를 일으킨 YAK-41 시제기 3번기 사고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순풍을 타고 있던 YAK-41 사업은 우연히도 이 3번기 사고 이후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이미 1990년 3월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균열이 시작되면서 산하 공화국들이 하나 둘 독립하기 시작해 소련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가 1990년 3월 11일 자로 소비에트 연방 탈퇴를 선언했으며, 연이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5월에 탈퇴를 선언했다. 이를 기폭제로 하여 조지아 공화국(1991년 4월 9일), 우크라이나 공화국(1991년 8월 24일), 몰다비아 공화국(1991년 8월 27일), 키르기스 공화국(1991년 8월 31일, 키르기스스탄으로 개명), 우즈베키스탄 공화국(1991년 8월 31일), 타지크 공화국(1991년 9월 9일, 타지키스탄으로 개명), 아르메니아 공화국(1991년 9월 21일) 등이 1991년 가을까지 연이어 탈퇴했고, 1991년 10월 27일에는 투르크멘 공화국(1991년 10월 27일,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개명)까지 순차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소련 정부는 결국 발트 3국을 1991년 9월 6일 자로 연방에서 탈퇴시켰으며,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초읽기 상태가 되면서 더 이상 ‘붉은 해군’은 YAK-41 사업을 지원할 이유도, 예산도 없어져 버렸다.
YAK-141은 1992년 판보로 에어쇼를 마지막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결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통칭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 자로 앞서 언급한 탈퇴 신청 국가들의 탈퇴를 모두 승인하면서 연방이 해체됐으며, 소련을 승계한 신생 러시아 연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ce States)은 기존 소련 시절에 진행 중이던 모든 연구 개발 사업을 재검토한 후 VTOL 사업을 취소하고 대신 모든 개발 자원을 MiG-29K와 Su-33 개발에 집중 시켰다. YAK-41 사업을 추진 중이던 스몰렌스크(Smolensk)의 야코블레프 공장은 이미 한참 전부터 소련 붕괴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YAK-41의 양산 단계에서 필요한 치공구 조차 제작하지 않고 있었으며, 야코블레프사는 중앙 정부로부터 개발 예산이 끊어지자 한 대 남은 시제기를 1992년 영국 판보로 에어쇼(Farnborough Airshow)에 출품해 해외 고객 유치를 시도했으나 관심을 보이는 국가는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개발 자금과 추진력을 잃은 야코블레프는 결국 1992년을 기점으로 YAK-41 개발을 완전히 중단하고 말았다.


특징

YAK-41은 사실상 시험 제작기 성격을 갖고 있던 YAK-38과 달리 본격적인 VTOL 전투기이다. YAK-41은 처음부터 함재기로 활용하기 위해 설계했으며, 요격, 근접항공지원(CAS), 해상/지상 공격 임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YAK-41에는 안테나 크기만 작아 레이돔에 수납했지만 기본적으로 MiG-29와 동일한 멀티 모드(multimode) 레이더가 장착되었다. 또한 비행 시스템 역시 3중 중첩으로 설계해 안정화 시킨 디지털 비행 제어 시스템(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이 채택됐다. YAK-41은 고익(高翼)을 채택했으며, 마름모꼴 형상으로 설계했다. 동체의 전반적인 모양을 화살과 유사한 삼각형 형태로 설계해 초음속 비행이나 전투 간 기동에서 유리하게 제작했다.

1992년 판보로 에어쇼 중 수직이륙 시범 중인 YAK-141. (출처: Ken Videan/Wikimedia Commons)
YAK-41은 YAK-38 개발 시 소련이 선택한 수직이착륙 방식을 그대로 승계해 수평 비행을 위한 메인 엔진과 수직 이륙을 위한 리프트 엔진을 별도로 장착했다. 순항 비행 시에는 단발로 설치된 투만스키(Tumansky) P-79V-300 터보 제트 엔진을 활용하며, 수직 이륙을 할 때에는 이 메인 엔진의 노즐을 아래로 꺾고, 조종석 뒤에 장착된 두 기의 리빈스키(Ribynski) RD-41 리프트 엔진을 이용해 균형을 잡으면서 이륙한다. 메인 엔진의 노즐은 최대 95도까지 틸트(tilt, 아래로 꺾임)가 가능하며, 엔진은 주익 끝 콘솔(console)에 설치된 제트 러더(jet rudder)와 연결되어 저속에서도 우수한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동체는 복합재를 다량으로 사용했으며, 특히 카본 섬유를 28% 이상 사용했을 뿐 아니라 미익의 구조물에는알루미늄-리튬 합금을 다량 사용해 중량을 최대한 줄였다. 이에 따라 YAK-41은 YAK-38에 비해 탐지 거리가 넓은 효율성 높은 레이더, 음속을 돌파하는 비행 속도, 그리고 낮아진 중량 부담으로 늘어난 항속거리가 합쳐져 뛰어난 함재기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됐다.
YAK-41의 조종석(좌)과 계기판(우) (출처: SergeyGromov/Wikipedia.org)
야코블레프는 1980년 초에 설계를 확정한 후 총 4대의 시제기를 제작했으며, 1대는 정적(靜的: static) 테스트, 1대는 강도 테스트, 2대는 비행 테스트 용도로 활용했다. 이들 기체는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험 비행 단계에 들어갔으나 YAK-41에 탑재할 전용 엔진이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데다 소련 국방부가 요구도를 변경하면서 다목적 전투기로 용도를 변경함과 동시에 통합할 무장 목록을 늘림에 따라 야코블레프는 변경된 요구도를 반영한 항공기 형상을 YAK-41M이라 명명했다.
YAK-41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YAK-41은 기본적으로 GSh-30-1 30mm 기관포가 설치됐으며, 추가 무장은 주익 하부의 4개 파일런에 장착 가능하다. 무장으로는 유도식 단거리 공대공 및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공대함 미사일, 공대지 미사일, 대방사(對放射) 미사일을 통합할 수 있어 지상 표적이나 함정, 레이더 시설 및 통신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낙하식 폭탄도 장착할 수 있어 폭격 임무 수행도 가능하다.


운용 현황

YAK-41 사업은 소련 붕괴와 함께 중단된 후 종료되었으나,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시장 경제 전환을 전제로 한 사회주의 개혁을 시작하면서 미-소 간의 협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91년,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YAK-41 사업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해외 파트너를 물색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록히드-마틴(Lockheed-Martin)이 연결되어 사상 처음으로 미-소 업체 간 파트너십이 체결됐다. 당시 록히드-마틴은 미 공군이 발주한 합동 공격기 사업(JSF: Joint Strike Fighter)에 참여하면서 훗날 F-35가 된 X-35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록히드-마틴은 야코블레프와 협력 과정에서 YAK-41의 기술 문서를 전량 획득하고 관련 특허를 구입해 X-35의 수직이착륙(VTOL) 형상인 F-35B 개발 과정 중에 YAK-41의 핵심 기술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본적인 수직이착륙 개념이나 리프트 팬의 위치와 리프트-피스톤 엔진 구조, 미익 부분 테일 붐(tail boom) 설계 등에서 F-35B와 YAK-41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F-35B는 처음부터 VTOL 기체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F-35A/B/C의 공통 플랫폼을 사용했으므로 YAK-41의 수직이륙 설계 개념이 큰 참고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상세하게 보자면 메인 엔진 1개와 리프트 엔진 2개를 사용해 YAK-41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반면, F-35B는 통칭 “콜드(Cold)” 리프트 팬으로 불리는 회전식 노즐 방식의 리프트-피스톤 엔진을 채택해 구조가 단순하다. 따라서 F-35B의 개발에 YAK-41 기술이 어느 정도 참고가 됐다고는 볼 수 있겠지만, F-35B가 YAK-41의 “복제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YAK-41 사업은 소련 붕괴와 함께 중단된 후 종료되었으나 미소 공동개발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YAK-41의 기술 문서를 전량 획득하고 관련 특허를 구입함으로써 X-35B의 개발에 반영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록히드-마틴의 지원으로 시제기 2번기(48-2)를 1992년 9월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출품했으며, 행사 기간 중 야코블레프는 록히드-마틴과 약 4억 달러 규모로 계약을 체결해 3대의 YAK-41 신형 시제기 제작하며, 별도로  항전 장비와 설계 개선 연구를 위한 정적(靜的) 테스트용 항공기 한 대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야코블레프가 제작하기로 선언했던 YAK-41M은 YAK-41보다 최대 이륙 중량(21,500kg)을 늘릴 예정이었으며, 세 대 중 한 대는 복좌식으로 제작하여 훈련기로 개발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야코블레프 설계국은 1993년 모스크바 에어쇼 때에도 시제기 2~3번기를 전시했으나 사업은 이 시점 이후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업체는 계약 체결 사실까지만 발표하고 파트너십에 대해서는 뒤늦게 공개했다. 야코블레프는 1992년 9월, 록히드-마틴은 1994년 6월에야 양 사가 파트너십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 공동 연구는 1991년 말부터 시작한 상태였다. 야코블레프는 러시아 정부가 YAK-41 사업을 중단 시킬 당시까지 비행이 가능한 두 대의 기체가 있었으므로 1995년까지 계속 시험 비행을 진행했고, 남은 두 대는 엔진 및 기체 구조 시험용으로 활용했다. 한편 신생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1931~2007) 대통령은 YAK-41이 자생할 방법을 강구할 수 있도록 남미나 아시아 지역에서 관심을 보이는 3~4개국과 공동 개발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제정했지만  관심 국가 확보에는 실패했다.
1992년 판보로 에어쇼 YAK-141 “프리스타일(Freestyle)” VTOL 전투기 비행 시연 (출처: 유튜브 채널/Planes TV)
러시아 공화국은 2000년대부터 서서히 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2008년부터 군 현대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소련 시절에 중단한 사업들을 다시 검토 및 선별하여 재개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 총참모장인 니콜라이 마카로프(Nikolai Makarov, 1949~) 대장은 러시아 해군의 부활을 위해 경(輕) 항모 4척의 도입을 추진하면서 프랑스와 기술 제휴를 시도했다. 비록 프랑스는 2014년에 사업에서 철수했으나 러시아는 국내 기술 위주로 해군 재건 사업을 계속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경 항모에 탑재가 가능한 수직이착륙(VTOL) 전투기의 필요성이 함께 제기됐다. 특히 잠재적 경쟁국인 미국, 일본, 이탈리아가 강습상륙함 혹은 경 항모를 도입하면서 각각 F-35B를 도입했으므로 이에 맞설 수 있는 VTOL 기체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시 YAK-41에 주목했다. 특히 YAK-41은 취소 당시 시험 비행 절차 마지막 단계였고, 이미 연구 개발이나 설계 단계를 한참 지나쳤기 때문에 새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면 F-35B를 도입하기 부담스럽거나, 혹은 미국이 F-35B를 판매하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수출을 타진해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중에서 러시아가 가장 판매 가능성이 높은 잠재 고객으로 보는 것은 중국 및 태국으로, 중국의 경우 현재 3척의 4만톤 급 함정으로 30대의 함재기 수납이 가능한 075급 강습양륙함을 건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에 탑재가 가능한 적절한 VTOL 함재기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각에서 논의되는 수준이며, 당분간 러시아가 VTOL 전투기의 개발을 다시 추진하거나 개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중앙 공군 박물관에서 촬영된 야코블레프 YAK-141. (출처: Maarten / Wikimedia Commons)
4대가 제작됐던 YAK-41의 시제기 중 두 대가 현존하는데, 기체 번호 48-2, 콜사인 “75”로 명명된 YAK-41M은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모니노(Monino) 중앙 공군 박물관에 전시 중이고, 기체 번호 48-3, 콜사인 “77”이 붙은 또 다른 YAK-41M 한 대 역시 모스크바 내 블라딤 자도로츠니 박물관(舊 야코블레프 설계국 박물관)에 주기되어 있다.
YAK-41 시제기 2번기의 모습. 모스크바 바딤 자도로츠니 박물관(옛 야코블레프 설계국 박물관)에 야외 전시 중인 모습이다. (출처: Alan Wilson/Wikipedia.org)


파생형

YAK-41: 비행 가능 상태의 시제기로, 총 네 대가 제작되어 두 대는 시험 비행용, 두 대는 지상 시험용으로 활용됐다.

모니노 중앙 공군 박물관의 YAK-141. (출처: Mike 1979 Russia/Wikimedia Commons)
YAK-41M: 날개 앞전(Leading Edge) 연장부(root extension)를 넓게 변경하고, 항전장비 등 개선을 가한 양산 제안 형상.
YAK-41M의 삼면도 <출처: Public Domain>
YAK-43 (Izdeliye 201): YAK-41M에 쿠즈넷소프(Kuznetsov) NK-321 엔진을 장착하는 개발 제안 형상. 3세대 전투기로 원래는 YAK-41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YAK-41과 동일하게 메인 엔진 1기와 리프트 엔진 2기로 이륙하는 방식이며, 엔진으로는 투폴레프(Tupolev) Tu-160 블랙잭(Black Jack) 폭격기에 사용된 24,980kg 출력의 사마라(Samara) NK-321 3축 증강 터보팬 엔진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시제기 생산 단계까지 가보지 못하고 사업이 취소됐다.
YAK-43 개념도 <출처: Piotr Butowski>
YAK-201: YAK-41 및 YAK-43의 후속 기종 개념으로 연구가 진행된 프로젝트. 1990년대 중반에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 설계를 시작했으며, 항속 거리 면에서 YAK-41/43을 크게 상회할 예정이었다. 어느 정도의 스텔스(stealth) 개념을 적용한 것이 특징으로, 전반적으로 4세대 전투기와 유사한 외양을 반영했으며 F-35와 유사하게 메인 엔진과 리프트 팬을 반영했다. 추진구 역시 전통적인 원형 대신 납작한 모습을 고려했으며, 추력편향 엔진을 적용함에 따라 기동성을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가 개발 예산 문제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해외 고객을 상대로 몇 국가에 개발 의향을 타진했으나 고객을 찾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초 설계만 실시했을 뿐, 구체적인 설계도면이 나오거나 시제기는 개발된 바가 없다. 제원상으로 최고 속도는 1,250km/h에 도달하고 실용 상승 한도는 15,000m에 달하며, 무장으로는 GSh-301 라이플 기관포와 R-77 장거리/중거리 미사일, R-73, R-60 단거리 미사일 등을 통합할 예정이었다.
YAK-201의 모크업 <출처: Yandex>
YAK-141: 최초 YAK-41 개발을 위장하기 위해 부여했던 기체 번호로, 일부러 소련이 국제항공연합(FAI: Fédération Aéronautique Internationale)에 등록했던 번호이다. 이후에는 야코블레프사가 항공기 홍보 목적으로 이 명명 체계를 활용했다.


제원

제조사: 야코블레프 설계국(Yakovlev OKB)
용도: 수직이착륙(VTOL) 전투기/방공전투기
승무원: 1명
전장: 18.36m
전고: 5m
주익 길이: 10.105m/5.9m(접은 상태)
주익 면적: 31.7㎡
미익 길이: 5.9m
랜딩기어 궤도: 3m
랜딩기어 간격: 6.945m
자체 중량: 11,650kg
탑재중량: 1,000kg(VTO시)/2,600kg(단거리 이륙 시)/1,750kg(최대 외장 연료)
최대 이륙 중량: 15,800kg(VTO 최대 이륙 시)/19,500kg(단거리 이륙 시)
최대 내장 연료량: 4,400kg
출력체계: 코브첸코/소유즈 15,500kg 급 R-79-300 추력편향 리프트/순항 터보팬 엔진 x 1
               리빈스키 4,100kg 급 RD-41 터보팬 리프트 엔진 x 2
최고 속도: 1,250km/h(해수면 고도)/1,800km(고도 11,000m)/설계상 마하 1.8 도달 가능
전투 범위:  ㄴ 650km(VTO+외부 무장 無)
                ㄴ 690km(2,000kg 무장으로 120m 활주 이륙 시)
                ㄴ 1,400km(고도 12,000m)
                ㄴ 2,100km(최대 범위, 외장 연료 탱크+단거리 이륙 시)
                ㄴ 1,400km(VTO+외부 무장 장착 시)
페리 비행 범위: 3,000km
실용 상승 한도: 15,000m +
상승률: 250m/s
무장: 기본 무장 – GSh-30-1 30mm 기관포
        ㄴ AA-10 알라모(Alamo) 레이더 유도식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ㄴ AA-11 아처(Archer) 단거리 적외선 유도식 미사일
        ㄴ 폭탄
        ㄴ 무유도 로켓
사출시스템: 즈베즈다(Zvezda) K36 로켓추진식 제로-제로 사출 좌석 장착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