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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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F9F 팬서(Panther) 전투기

본격적인 미 해군 함상 제트전투기의 역사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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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9F 팬서는 실질적인 미 해군 최초의 주력 함상용 제트전투기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제트전투기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독일의 Me 262 정도만 의미 있는 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나 사실 영국, 미국도 제트전투기 개발을 완료하고 등판 시기를 저울질하던 중이었다. 만일 전쟁이 1년 정도 길어졌다면 제트전투기 간의 공중전도 1940년대에 벌어졌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이 바다 위에서 싸우는 해군이라고 다를 수는 없었다.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항공모함은 지난 반세기 가까이 바다의 제왕 자리를 차지하던 전함, 순양전함 같은 거함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항공모함이 부상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함포보다 멀리 그리고 정확히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후 함대함 미사일이 실용화되면서 다시 한번 해전의 방법이 바뀌게 되지만 함포의 시대가 저문 것은 확실했다.

착함 중인 FH 팬텀. 미국 최초의 함상용 제트전투기였지만 성능이 미흡해 62기만 생산되고 흐지부지 사라져 갔다. 하지만 팬텀이라는 이름은 후계자인 F-4에게 승계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운용해서 작전을 벌인다. 즉 함재기가 전투력의 원천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를 맞아 더 좋은 성능을 발휘하려면 당연히 함재기도 제트화되어야 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새로운 함상용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막 사상 최대의 전쟁이 끝났지만 다음을 대비한 전력 증강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대로 곧바로 냉전이 시작되었다.

미 해군이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은 야간 작전도 가능한 전천후 전투기였다. 그러려면 레이더의 탑재가 필수였다. 거기에다 제트엔진을 장착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기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운용해야 하므로 가뜩이나 제약이 많은 함재기에게는 어려운 난제였다. 고심 끝에 그루먼(Grumman)은 해군에 납품한 F7F 타이거캣(Tigercat)을 기반으로 한 G-75 프로토타입을 당국에 제안했다.

그루먼이 제트전투기의 개발 기반으로 삼았던 F7F 타이거캣. 함상용 전투기로는 보기 드문 쌍발기다.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1943년에 개발된 F7F는 함상 전투기로 보기 드문 대형 쌍발기다. 그루먼은 주익에 장착된 피스톤 엔진을 제트엔진으로 교환하고 동체를 약간만 개량하면 해군이 원하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는 비단 그루먼뿐만 아니라 제트전투기 시대 초기에 흔했던 개발 방식이었다. 이처럼 G-75은 기존에 성능이 검증된 기체를 바탕으로 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경쟁에서 승리해 제식화된 F3D 스카이나이트. 하지만 성능이 미흡해 265기로 생산이 종료되고 전자전기 등으로 임무가 전환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러나 치열한 경쟁 끝에 승자가 된 것은 더글러스가 제출한 XF3D-1이었다. 그런데 미 해군은 XF3D-1의 실패에 대비해서 G-75도 일단 XF9F-1이라는 제식 부호를 부여하고 후보군에 올려놓았다. 아직은 기술력이 부족했던 시기여서 한편으로는 대안을 미리 준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다른 전투기들에도 관심을 보이다 보니 단지 33기로 양산이 종료된 FJ-1 퓨리(Fury)처럼 당시 미 해군의 정책은 중구난방이었다.
시험 비행 중인 XF9F-2와 앨리슨 엔진 장착형 XF9F-3 < 출처 : Public Domain >
XF9F-1은 회생의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그루먼은 XF3D-1과 성능 차이가 없다고 보고 고성능 제트엔진을 단발로 장착한 G-79의 개발에 나섰다. 의외로 해군이 G-79에 관심을 보이면서 XF9F-2라는 제식 부호를 부여하고 개발을 독려했다. 때문에 XF9F-1과 XF9F-2는 제식 부호가 비슷해서 개량형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외형에서부터 전혀 다르다. XF9F-2의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1947년 11월 21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F9F-2 팬서의 생산라인 <출처 : Public Domain >
이후 각종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보이면서 미 해군은 F9F라는 이름으로 제식화를 결정했다. 그루먼은 자사 전투기에 고양잇과 동물명을 붙이는 전통에 따라 F9F 팬서(Panther, 이하 팬서)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실험기에 장착한 앨리슨 J33 엔진, 웨스팅하우스 J34 엔진 등은 추력이 떨어졌으나 양산형은 롤스로이스 넨 엔진을 면허 생산한 플랫휘트니 J42 엔진 덕분에 충분한 힘을 낼 수 있었다.
미 해병대 소속의 팬서로, 팬서는 미 해군과 해병대의 실질적인 주력 제트기였다. <출처 : Public Domain >
최초 양산기들이 미 해군 곡예비행팀인 블루에인절스에 공급되었고 곧이어 제51전투비행대(VF-51)를 시작으로 일선 부대에도 배치가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처럼 비슷한 시기에 미 해군은 여러 제트전투기를 획득했다. FJ-1을 비롯해 FH 팬텀(Phantom), F2H 밴쉬(Banshee) 등이 대표적이나 그중 주력은 단연코 팬서였다. 때문에 많은 자료에서 팬서를 실질적인 미 해군 최초의 주력 제트전투기라고 평가한다.

특징
개발 당시에 당국의 요구 조건이 까다로웠음에도 팬서의 크기는 이전 함재기들과 비슷했다. 오히려 F7F나 최후의 프로펠러 함상 공격기인 A-1보다도 작아서 당시 미 해군의 주력인 에식스급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주익의 8할 가까이를 접을 수 있어 주기 공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다만 속도 때문에 이착함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재상승을 대비해 착함은 고속으로 찍듯이 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엔진을 정비 중인 F9F 팬서. 프랫&휘트니 J48 엔진이 장착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제트기여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폭발, 화재 등으로 인한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영국은 항공모함을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이착함 공간을 분리한 앵글드 데크, 착함 유도 램프 등이다. 효과가 좋아서 미 해군도 채택하게 되었고 오늘날은 정규 항공모함의 상징처럼 바뀌었다. 이처럼 제트 함재기의 등장은 항공모함의 구조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후퇴익으로 개량된 F8F-8 쿠거. 성능도 좋아지고 외형에서부터 차이가 커서 별개로 여기기도 한다. < 출처 : Public Domain >
처음에는 후퇴익이 함재기로 적당한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팬서가 속도에서 MiG-15에 뒤지자 미 해군은 후퇴익 개량형 개발을 그루먼에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F9F-5를 기반으로 개발된 후퇴익형은 시속이 80km 증가되었는데 안정성은 그대로였다. 만족한 당국은 이를 F9F 쿠거(Cougar, 이하 쿠거)라는 별도의 이름을 부여하고 양산에 착수했다. 때문에 개량형이지만 외형부터 차이가 많아 쿠거를 별개로 보는 경향도 많다.

운용 현황
1952년 6월 한반도 상공을 비행중인 제24전투비행대대(VF-24) 소속의 팬서 < 출처 : Public Domain >
팬서는 1947년부터 쿠거의 양산이 시작된 1952년까지 총 1,382기가 생산되었다. 물론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전작들과 비교하면 적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같은 시기에 생산된 여타 초창기 함상 제트전투기들보다 많은 양이어서 미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해군기뿐만 아니라 여타 제1세대 전투기들과 마찬가지로 전성기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생산량도 후속한 쿠거가 1,988기로 더 많았을 정도다.
한국전쟁 당시에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F9F 팬서 < 출처 : Public Domain >
팬서가 명성을 떨친 시공간은 한국전쟁이었다. 1952년 11월 18일, 제781전투비행대 소속 로이 윌리엄스가 35분 동안의 공중전에서 팬서로 4기의 MiG-15를 격추시키기는 등 인상적인 전과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성능에서 MiG-15에 밀렸기 때문에 주로 대지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이외에 아르헨티나에서도 28기를 함재기로 운용했고 1963년에 있었던 반란 당시에 육군 기갑부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1951년 한국전쟁에 파견된 CV-9 에섹스 항모에서 이륙을 준비중인 F9F 팬서 < 출처 : Public Domain >
팬서는 전성기가 짧았지만 유독 한국전쟁에 참전한 셀럽들과 인연이 많다. 먼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을 들 수 있다. 뉴욕 양키스 2루수로 1951년 올스타였던 제리 콜먼도 팬서를 몰았다.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현재까지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도 편대장으로 복무했는데 그의 윙맨이 미국 최초로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하고 존경받는 상원으로 활약했던 존 글렌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유명인들이 팬서를 조종했다. 한편 윌리엄 홀덴 주연의 1954년 영화 "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는 팬서 조종사의 활약을 그려내기도 했다.
2002년 사망 후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벌어진 테드 윌리엄스의 추모 행사. 중앙이 한국전쟁 당시 F9F 팬서에 탑승한 모습이다. < 출처 : (cc) Cavic Steve Lipofsky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XF9F-2(G-79): 프로토타입. 2기.

XF9F-2 (G-79) < 출처 : Public Domain >
F9F-2: 플랫휘트니 J42 엔진 장착 초기 양산형. 567기.
F9F-2 < 출처 : Public Domain >
F9F-2B: 폭탄과 로켓 장착 개조형
F9F-2B < 출처 : Public Domain >
F9F-2P: F9F-2 기반 정찰기형. 36기.
CVA-31 본햄 리처드 항모의 격납고에 수납된 F9F-2P < 출처 : Public Domain >
XF9F-3: 앨리슨 J33 엔진 장착 프로토타입. 1기.
 
F9F-3: XF9F-3 양산형. 이후 J42 엔진으로 환장. 52기.
F9F-3 < 출처 : Public Domain >
XF9F-4: 앨리슨 J33 엔진 장착, 연료 탑재량 등을 늘린 프로토타입. 2기.
 
F9F-4: XF9F-4 양산형. 이후 J42 엔진으로 환장. 109기.
 
F9F-5: 플랫휘트니 J48 엔진 장착 개량형. 616기.
F9F-5 < 출처 : Public Domain >
F9F-5P: F9F-5 기반 정찰기형. 36기.
F9F-5P < 출처 : Public Domain >
F9F-5K: 퇴역 F9F-5 기반 훈련 무인표적기
 
F9F-5KD: F9F-5K 기반 무선조종 무인표적기


제원(F9F-5)

전폭: 11.84m
전장: 11.58m
전고: 3.73m
주익 면적: 23㎡
최대 이륙중량: 8,492kg
엔진: 프랫&휘트니 J48-P-6A 터보제트(6,250h 파운드)
최고 속도: 932km/h
실용상승한도: 13,000m
전투행동반경: 2,120km
무장: 20mm 기관포 X 4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