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2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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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P6M 시마스터 수상폭격기

미국 핵 전력의 한 축이 될 뻔했던 바다 위의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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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M 시마스터 수상폭격기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무렵,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전쟁 기간 중에 쌓인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전시 체제 속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팽창한 군을 최대한 빨리 평시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급속도의 감군을 추진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전후 1년 내에 국방 지출을 66%, 4년 내에 90%까지 감액하는 목표를 세웠지만 1년이 됐을 무렵 목표치 달성은 물론이고 4년 내 목표 달성도 요원해 보였다. 이 상황에서 1947년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이 통과되면서 육군항공대가 군으로 독립하여 육, 해, 공군으로 나뉘어 군 구조가 재편되었지만, 여전히 국방비 부담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트루먼 행정부는 우선 1948년도 국방 예산을 450억 달러에서 143억 달러로 크게 감액하여 편성했다. 행정부에서 국방 예산을 감액해버리자 자연히 각 군 간의 경쟁도 심화되었는데, 이때 핵무기 경쟁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대규모의 재래식 전력을 보유할 필요성이 떨어졌으므로 구시대 전력보다는 핵 전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핵무기 경쟁 시대에 발맞춰 미 공군이 야심 차게 제안했던 장거리 폭격기 B-36J 피스메이커(Peacemaker) (출처: U.S. Air Force)
행정부의 목표가 핵무기에 맞춰지게 되자 신생 미 공군은 어차피 항속 거리가 긴 항공기로 적 수도에 핵폭탄을 투발하여 전쟁을 끝내는 시대가 도래했으므로 타 군의 재래식 자산은 모두 불필요한 자산이 됐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군은 미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한 번에 적국 수도까지 침투하여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기존 폭격기보다 항속 거리를 크게 늘린 B-36 피스메이커(Peacemaker) 대륙 간 폭격기 개발 계획을 입안했다. 반면 미 해군은 우선 민간 살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큰 핵무기를 대도시에 투하하겠다는 핵전략부터 반대했으며, 미군의 공세뿐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균형이 잡힌 재래식 자산이 필수불가결하므로 능력을 확장한 항모전단 보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폭격기까지 수납할 수 있는 슈퍼캐리어인 CVA-58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nited States) 항모의 초기 설계 모델. 하지만 CVA-58 건조 사업은 1949년 4월 23일에 취소됐다. (출처: US Navy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이에 맞춰 미 해군은 전술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을 실시하고 적에 대한 핵 억지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45톤 수준의 핵무기 투발용 대형 폭격기를 14대까지 탑재할 수 있는 슈퍼캐리어(supercarrier)인 항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함(USS United States, CVA-58)의 건조 계획을 수립했다. 결국 미 해군은 그 해 말 차기 회계연도 예산으로 공군 요청액의 네 배에 달하는 액수를 요청했으며, 공군에는 B-36 폭격기 개발 예산의 1/10 밖에 배분되지 않은 반면 해군에는 다섯 대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모 건조 예산이 할당됐다. 이는 초대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제임스 포레스탈(James Forrestal, 1892~1949)이 해군장관 출신이라 해군 쪽 의견을 지지한 영향이 컸다.
시마스터의 기본 틀이 된 글렌 마틴의 P5M-2G 말린(Marlin) 수상기. 1958년 1월 샌디에이고 인근에서 촬영된 미 해안수비대(USCG)용 형상이다. (출처: US Navy National Aviation Museum)
하지만 1948년 11월,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다시 국방 예산 감액 목표(4년 내 90%)가 문제로 떠올랐고, 트루먼 대통령은 포레스탈 장관이 3군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해 감액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판단함에 따라 결국 그를 1949년 3월에 해임했다. 이 상황에서 공군의 B-50 슈퍼포트리스(Superfortress) 폭격기가 약 37,740km 거리를 중간 기착 없이 공중 급유만으로 비행하여 세계 일주에 성공하자 순식간에 여론의 관심이 공군으로 쏠렸고, 설상가상으로 트루먼의 선거 기금 책임자였던 루이스 존슨(Louis A. Johnson, 1891~1966)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자 의회와 논의 없이 막 용골(龍骨) 절단식을 치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항모의 건조 사업을 1949년 4월 23일 자로 취소해버렸다.
마틴 P6M 시마스터 개념도 (출처: P. Melville /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이렇게 해군의 슈퍼캐리어 개발안이 무산되어버리자 미 해군은 해상에서 핵을 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를 넓힌다는 구상으로 다시 접근했으며, 이에 따라 핵무장 전략 수상기(水上機, Seaplane)를 개발하여 이들 항공기로 구성한 “수상기 타격대(seaplane Striking Force)”로 핵 투발뿐 아니라 통상적인 폭격, 기뢰 부설 및 정찰 임무도 소화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해군은 이들 항공기를 평소 수상기모함(Seaplane Tender)이나 수상기를 수납할 수 있도록 설계한 특수 목적 잠수함에 탑재하고 다니다가 적에게 최대한 가까운 위치까지 접근하여 수상폭격기를 전개한다는 복안을 냈으며, 이는 위치 노출이 어려울 뿐 아니라 광범위한 핵 전력 투사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얻었다.
P6M 수상폭격기의 미 해군 운용개념도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미 해군은 1951년 4월에 제트추진식 수상기 요구도를 발행하면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륙해 14,000kg의 무장을 싣고 2,400km을 비행할 수 있으며, 저고도 돌파 시 최대 마하 0.9(1,10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항공기를 요구했다.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에 맞춰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San Diego)에 본사를 둔 컨베어(Convair)와 캘리포니아주 산타애나(Santa Ana)에 본사를 둔 글렌 마틴(Glenn L. Martin) 주식회사 두 업체였으며, 미 해군 측은 두 설계를 검토 비교한 후 1952년 항공역학 엔지니어 조지 트림블(George Trimble), 유체역학 전문가 J.D. 피어슨(Pierson), 항공역학 전문가 J.L 데커(Decker)가 설계한 마틴사의 모델(Model) 275를 선정했다.
XP6M-1 시제1호기의 생산장면 (출처: Public Domain)
미 해군은 초도 계약으로 설계 연구 및 두 대의 시제기를 주문하면서 여섯 대의 사전 양산(pre-production)기 제작을 옵션으로 걸었으며, 만약 정상적으로 양산에 들어갈 경우 24대 정도를 생산할 계획을 잡았다. P6M은 당대에 개발된 항공기 중 가장 최첨단 설계가 적용된 항공기였으며, 계획대로 완성되어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면 미국의 핵전략에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
1955년 경에 촬영된 P6M-1 시마스터 (출처: US Navy National Museum of Naval Aviation)


특징

시마스터는 처음부터 바다 위에서 이착수(離着水)를 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중요한 이점을 갖고 있다. 우선 활주로에서 이륙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착륙 장소 선택 범위가 훨씬 넓으며, 바다로 최대한 적 영토 인근까지 접근하여 폭격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적의 대응 가능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수상기항모나 수상기를 수납할 수 있도록 제작한 잠수함에서 운용한다면 사실상 그 운용 가능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질 뿐 아니라 은밀성도 뛰어나다.

이수(離水) 를 위해 시동 중인 P6M-2 시마스터.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미 해군은 핵무기를 탑재시킨 수상폭격기를 잠수함으로 최대한 적 영토까지 이동시킨 뒤 적 영토 종심으로 순간 돌파하여 핵을 투하하는 타격 개념을 생각했는데, 이는 훗날 등장하는 잠수함발사식 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개념과 유사할 뿐 아니라 2차 반격 능력(2nd strike capability)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으로 핵무기 운용의 폭을 넓힐 가능성이 있었다. 당초 미 해군은 시마스터가 실전 배치된다면 소규모 단위로 모함(母艦)에 탑재하고, 모함 내에서 급유 및 무장을 시킨 뒤 필요 지역에서 전개하는 개념으로 운용할 예정이었다.
P6M-2 청사진 (출처: drawingdatabase.com)
P6M은 P5M 말린(Marlin) 수상기를 기본 설계로 삼았으나 물에 뜰 수 있도록 부력 설계가 된 동체 설계로 바꾸었으며, 가로세로 종횡비를 15:1로 잡아 수상 및 공중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시마스터에 적용된 기술은 마틴이 앞서 개발한 XB-51 폭격기 시제기에 적용된 것을 다수 차용했으며, 대표적인 것이 전체가 움직이도록 설계한 T형 미익과 착수 시 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도록 밀폐하기 위해 유압 회전식으로 설계한 하부 무장창이다. 시마스터에는 총 4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며, 이들은 각각 주조종사, 부조종사, 항법사나 무전사, 그리고 비행 엔지니어로 구성되었다. 고익(高翼)으로 설치된 P6M의 주익은 40도가량의 후퇴익으로 설계됐으며, 아래로 살짝 처진 하반각에 날개 끝에는 착수 시 동체를 띄울 부력 탱크를 달아 물 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게 했다. 하지만 후기로 제작된 P6M-2 형상은 주익 설계를 개선하면서 날개 끝이 처지지 않도록 제작했다.
이륙을 위해 돌리에 실려 입수중인 P6M-2의 모습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P6M은 부식이 강하고 무거운 강철과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대신 강화 티타늄을 사용했으며, 스퍼리(Sperry)사의 항법/비행통제/오토 파일럿(autopilot) 시스템을 비롯한 당시 기준의 첨단 항전장비를 채택했다. 시마스터는 유사시 공중 급유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제작한 점도 특징인데, 이를 위해 P6M에는 프로브/드로그(Probe-and-Drogue) 방식의 급유 키트를 하부 무장창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P6M의 폭탄창의 구성으로 다양한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시마스터는 후방 동체 미익 아랫부분에 작은 터렛 안에 20mm 기관포 2정을 설치했으며, 이는 조종석에서 원격조종 방식으로 사격할 수 있다. 시마스터에는 228kg의 Mk50 기뢰부터 921kg의 Mk25 기뢰까지 모두 탑재가 가능하며, 기뢰부설체계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항공기에서 기뢰를 원하는 위치로 부설할 수 있다. 또한 땅속으로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방식의 Mk91 우라늄 핵폭탄과 D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경량형 핵폭탄인 Mk28 핵폭탄도 운용할 수 있다. 만약 시마스터를 정찰용으로 운용할 경우에는 무장 장착 대신 고고도 정찰용 카메라, 그리고 야간 촬영을 위한 섬광탄을 장착할 수 있다.
시마스터는 터보제트 엔진 4기가 주익 위에 장착되어 있다.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시마스터는 최초 설계에 기반하여 제작한 양산형 P6M-1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P6M-2로 명명했다. P6M-2의 최대 이륙 중량은 72,575kg에 달해 컨베어사에서 제작한 R3Y 트레이드윈드(Tradewind) 수상수송기의 최대 이륙 중량(74,843kg)과 비슷했을 정도이며, 활주로 크기에 구애받지 않음으로 동체도 매우 큰 항공기에 속한다. P6M-2는 7,938kg 추력의 J75-P-2 터보제트 엔진을 총 4기 설치했으며, 물에서 이착수하는 항공기의 특성상 엔진이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익 위쪽에 엔진을 설치했다.


운용 현황

미 해군은 첫 시제기인 XP6M-1에 커티스-라이트(Curtiss-Wright)의 터보-램제트(Turbo-Ramjet) 방식의 엔진을 장착하려 했으나 설계 상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앨리슨(Allison)사의 J711-A-4 터보제트 엔진을 대신 장착했으며, 이들 엔진은 각각의 주익 하부에 2개씩 설치되어 1955년 7월 14일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수상 시험은 체사피크(Chesapeake)만에서 비밀리에 실시하여 타당성을 검증했으나, 이 과정에서 항공기 배기열이 너무 동체 안쪽 방향으로 뿜어져 애프터버너(afterburner)를 사용할 경우 동체에 그을음이 생기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최초의 시제기였던 XP6M-1는 2대 모두 소실되었다. 사진은 1955년 7월 28일에 촬영된 것으로, FJ-2 퓨리 전투기가 추적기로서 XP6M-1 시제1호기와 함께 비행중이다.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모델 275에는 “시마스터(Seamaster)”라는 별칭이 부여되어 1955년 11월에 일반 공개가 됐으나, 한 달 후인 12월 7일에 수평미익이 최대 각까지 꺾이는 오작동이 비행 중에 발생해 항공기가 아래 방향으로 곤두박질하면서 네 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고 기체가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사고 조사 단계에서는 급격한 하강으로 주익에 걸린 순간 하중이 늘어남에 따라 날개가 아래 방향으로 휘다가 엔진이 뜯어져 나가 동체를 때린 것이 발견되었다. 2번기인 BuNo 138822번기, 통칭 XP-2는 1956년 5월 18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이를 지켜본 당시 미 해군참모총장 알레이 버크(Arleigh A. Burke, 1901~1996) 제독은 “아름다운 비행 모습이다”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2번기 역시 시험 비행 중 특수 진동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기체 통제력이 상실되어 급격한 루프 기동에 들어갔다가 지상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종사는 항공기 측면에 설치된 해치를 통해 추락 직전 탈출에 성공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XP6M-1 시제2호기의 모습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시험 비행은 사전 양산기인 YP6M-1이 1958년 1월에 완성되면서 재개되었으며, 앞서 엔진 배기열이 동체를 그을리는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 엔진을 동체 반대 방향으로 약 5도가량 틀었다. 이 기체는 시험 비행 단계에서 요구 조건이던 마하 0.9를 달성하면서 B-52의 속도를 넘어섰다. 마틴은 같은 해 5대의 시마스터를 추가로 완성했으며, 이들 기체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하트포드(Hertford)의 하비 포인트(Harvey Point) 국방 종합시험장에서 지상 시험을 실시했다. 이곳에서 미 해군은 P6M-1에 전 무장과 기뢰를 장착하여 시험을 실시하고, 기뢰 부설 시험 등도 실시했으나 J71 엔진이 무장 탑재 상태로 고고도 비행 시 문제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해군이 원하는 중량까지 무장을 싣고 수상에서 이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P6M-1 기종은 계속 완성을 하더라도 원하는 요구 성능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시험 절차를 중단했으며, 글렌 마틴사는 앞서 발견된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점을 개선한 P6M-2의 개발에 착수했다. P6M-2는 1959년 초에 출고했으며, 엔진은 프랫엔위트니(Pratt & Whitney)사의 J75 엔진으로 교체하고 공중 급유용 파이프(Probe)를 설치했다. 또한 항전장비를 개선했을 뿐 아니라 시야각을 넓힌 캐노피로 교체해 달았다. 특히 P6M-2는 무장창에 키트 형태로 장착할 수 있는 버디 급유(buddy refueling: 동종 기체 간 실시하는 공중 급유) 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으며, 1959년 여름까지 기체를 완성한 후 그 해 말부터 시험 비행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사전양산기인 YP6M-1의 이수 모습. 하지만 물과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익 위에 장착한 엔진의 배기열이 애프터버너 가동 시 동체를 그을리게 하는 문제가 발견됐다. (출처: US Navy / Public Domain)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수상폭격기 개발 계획은 계속해서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래 미 해군은 총 24대의 시마스터를 양산할 계획이었으나 P6M-2로 재설계 과정에 들어가면서 사업 기간이 길어져 부담이 되었고, 그 사이에 개발비까지 상승해 미 해군은 주문 수량을 24대에서 18대로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기대 성능이 높았기 때문에 미 해군은 시마스터가 실전 배치되면 대잠전(對潛戰) 양상을 뒤집어 놓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이들 “수상기 타격대”는 평소 특수 제작된 잠수함이나 수상기모함에 은밀하게 실려 있다가, 적 잠수함이 항구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추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해군은 개발비가 계속해서 추가되자 주문 수량을 8대로 줄였고, 이마저도 다시 세 대로 줄였다가 결국 개발비가 4억 달러까지 치솟자 알레이 버크 총장은 1959년 8월 자로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미 해군은 최초에 P6M 24대를 주문하고자 했으나 그 숫자는 계속 줄어들다가 결국은 사업 자체가 취소되었다. (출처: US Navy)

미 해군은 시마스터를 취소하면서 폴라리스(Polaris) 잠수함발사식 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개발 계획으로 대체했으며, 글렌 마틴사는 시마스터를 민수용으로 개조하여 “시미스트레스(SeaMistress)”라는 명칭으로 내놓았지만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넓은 시마스터의 동체를 활용하여 원자력추진 수상폭격기나 초음속 수상폭격기로 개조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실제 추진된 것은 없다. 제작됐던 시마스터는 이후 모두 폐기되었으나 두 개의 미익, 동체 일부, 주익 부력기(floats) 부분만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글렌 마틴(Glenn L. Martin) 항공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글렌 마틴 항공은 이후에도 잔여 부품으로 쌍동선(雙胴船) 설계도 시도했으나 이후 회사의 사업 방향성을 항전장비와 미사일에 집중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시마스터를 부활시켜보려던 모든 계획을 접었으며, 시마스터는 마틴 항공이 개발한 최후의 항공기가 되고 말았다.


파생형

XP6M-1: 시제기. BuNos 138221, 138822 두 대가 제작되었으나 둘 다 추락 사고로 소실했다.

XP6M-1의 비행장면 (출처: Public Domain)
YP6M-1/P6M-1: 사전 양산 형상. BuNos 143822~143827까지 총 여섯 대가 제작되었다. 사업 취소 결정에 따라 전 기체 모두 폐기됐다.
시제기인 YP6M-1 (기체 번호 138822)의 비행 모습. 1958년도에 촬영. (출처: U.S. Navy National Museum of Naval Aviation)
P6M-2: 양산 형상으로, XP6M-1 및 P6M-1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개선한 형상. BuNos 145876~145899까지 총 여덟 대가 제작되어 비행까지 실시했으며, 145876, 145880~145883의 다섯 대는 비행을 실시해보지 못했다. 145884~145899는 제작 전에 계약이 취소됐다.
버디급유를 시험 중인 P6M-2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제원

제조사: 글렌 L. 마틴(Glenn L. Martin) 주식회사(1961년 아메리칸-마리에타[American-Marietta] 항공에 합병되어 마틴-마리에타[Martin-Marietta]로 개편/1995년 록히드[Lockheed] 항공과 마틴-마리에타 합병으로 록히드-마틴[Lockheed-Martin]으로 재편)
용도: 정찰용 비행 보트(Patrol Flying Boat)/수상 폭격기
승무원: 4명
전장: 40.94m
전고: 10.31m
날개 면적: 180㎡
자체 중량: 44,198kg
총중량: 83,588kg(이륙 시)/73,660kg(전투 시)
최대 이륙 중량: 86,183kg(잔잔한 수면 이륙 시)/72,575kg(거친 수면 이륙 시)
추진체계: 17,500 파운드 급 프랫앤위트니 J75-P-2 터보제트 엔진 x 4
최고 속도: 1,104km/h(고도 6,096m)
순항 속도: 861km/h
항속 거리: 3,352km
전투 범위: 1,210km(14,000kg 무장 탑재 시)
                 2,778km(P6M-2 급유 탱크에 자동화 비행급유체계[AAR] 1기 장착 시)
실용 상승 한도: 15,000m
날개 하중: 490kg/㎡
추력 대비 중량: 0.368
상승률: 37.5m/s
무장: - 동체 후방 포탑(turret) 장착식 원격운용 X-23B AGL 20mm 기관포 x 2(1,000발)
         -       기뢰: Mk36 Mod 1(개당 454kg) x 28, 총 12,713kg
         -       기뢰: Mk25 Mod 2(개당 921kg) x 15, 총 13,812kg
         -       기뢰: Mk50 Mod 0(개당 228kg) x 36, 총 8,230kg
         -       기뢰: Mk52 Mod 0~6(개당 611kg) x 15, 총 9,172kg
         -       기뢰: Mk39 Mod 0(개당 919kg) x 8, 총 7,348kg
         -       기뢰: Mk19 Mod 2(개당 245kg) x 15, 총 3,674kg
         -       기뢰: Mk10 Mod 9(개당 889kg) x 5, 총 4,445kg
         -       정찰 사양: 고고도 정찰 카메라(1,837kg)
         -       정찰 사양: M120(T9E8) 섬광탄 x 27(각 70kg), 총 1,886kg
         -       폭탄: Mk91 핵폭탄(개당 1,588kg) x 2, 총 3,175kg
         -       폭탄: Mk28 핵폭탄(개당 817kg) x 1, 총 817kg
항전장비: - 에어로(Aero) X-23B AGL 후방 동체 포탑용 화력통제체계
                - ASQ-29 자동 항법 및 기뢰살포체계
대당 가격: 1,112,550 달러(1955년 기준, 현재가치 약 10,701,942 달러)

수상 착수 중인 P6M-2 시마스터. 1959년 파튜센트(Patuxent) 강에 착수 중인 모습이다. (출처: Public Domain)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