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1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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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MAS-36 소총

거칠고 못생겼지만 든든했던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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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3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때까지 대부분의 주요국 소총들은 19세기 끝 무렵~20세기 초반에 개발된 볼트액션 소총의 개량형 내지 파생형이었다. 일본의 38식/99식, 영국의 리엔필드 계열 소총들, 독일의 Kar98k, 소련의 모신-나강, 이탈리아의 칼카노 소총 등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참전국들의 주력 소총이 1차 세계대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태로 2차 대전 개전을 맞이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예외였다. 1936년부터 완전히 새로 개발된 볼트액션 소총인 MAS-36을 생산-배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는 1차대전이 끝나고 MAS-36 소총을 새로 개발하여 신속히 보급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는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비록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나라가 실패했지만, 모든 주요국 군대들이 1920~1930년대에 걸쳐 볼트액션 소총을 반자동 소총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볼트액션 소총을 완전히 새로 개발하는 나라는 없었고, 신형 볼트액션 소총이 등장해도 정말 새로 개발하는 게 아니라 예전 모델의 개량형 정도로 그쳤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쓰다 남은 총 자체도 워낙 많았고, 새로 뭔가 만든다 해도 기존 소총의 개량형을 만드는 편이 기존의 생산 라인이나 병사 훈련, 탄약 호환성 등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훨씬 컸던 것이다. 프랑스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프랑스군에는 약 300만 정의 소총이 있었다- 평화 시 기준으로는 정말 많은 숫자였다.
MAS-36 소총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프랑스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하던 총과 탄약이 모두 구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식 탄약인 8x50mm R탄약은 탄피 바닥의 테두리가 튀어나온 림드(Rimmed) 방식이라는 점부터 문제였지만, 영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림드 방식 탄피보다도 탄피의 경사가 더 심한 편이라 탄창 설계도 더 까다로웠다.
MAS-36 탄생의 직접적 계기가 된 7.5mm MAS(7.5x54mm) 탄약 <출처: Public Domain>
그 결과 프랑스는 1921년에 현대적인 림리스(Rimless) 탄약을 개발하기로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7.5mm 탄약(7.5x54mm MAS)이다. 이 새로운 탄약은 당시 가장 이상적인 탄약으로 여겨지던 독일의 7.92mm 마우저 탄약과 큰 차이 없는 사이즈와 형태, 탄도학적 특성으로 완성되었으며 특히 탄피 테두리가 탄피 밑둥의 지름과 같은 림리스 형태 덕분에 이 탄에 맞는 탄창을 만들기도 훨씬 쉬워졌다.
MAS-36은 저렴한 양산을 목표로 개발되어 못생기고 거칠지만 신뢰성 높은 총기로 평가된다. <출처: Public Domain>
원래 프랑스군은 이 탄을 쓰는 반자동 소총을 만들어 그것으로 1선 주력 소총을 삼고, 2선급 부대들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쓰다 남은 다양한 구식 소총들을 7.5mm로 개조해 지급하려 했다. 그러나 반자동 소총의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족할만한 반자동 소총이 등장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설령 완성된다 쳐도 생산과 배치에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게 걸릴 것은 분명했다. 또 1차 세계대전에서 쓰다 남은 소총들은 대체로 상태가 낡아 7.5mm로 개조한다 쳐도 1선급 소총으로 계속 쓰기에는 좋은 편은 아니었다.
MAS-36 소총의 리뷰 영상 <출처: 유튜브>
그 결과 프랑스군은 원래의 계획을 살짝 수정한다. 먼저 7.5mm 탄을 쓰는 새로운 볼트액션 소총을 개발해 그것부터 1선 부대에 배치하면서 낡은 1차 대전의 유물들을 대체한다. 그러면서 1차 대전 때 쓰고 남은 총들도 상태가 좋은 것들을 골라 7.5mm로 꾸준히 개량한다. 그러다가 반자동 소총이 완성되면 신형 볼트액션 소총은 1선급 부대에서 2선급 부대 혹은 비전투 부대로 내려보내고, 1차 대전의 유물들은 그보다 더 후방의 부대들이나 예비 비축용 등으로 돌리기로 한 것이다.
MAS-36 소총은 1937년부터 생산과 지급이 시작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 계획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신형 볼트액션 소총은 최대한 단순하고 생산하기 쉽게 만들 예정이었지만 1920년대에는 국방비가 크게 축소되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1929년에 대공황까지 벌어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하지만 1930년대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대두되면서 그나마 국방비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1936년에는 새로운 볼트액션 소총인 MAS-36이 완성된다. 이 총은 1937년부터 생산과 일선 지급이 시작되었다.


특징

MAS-36은 원래 반자동 소총을 보조할 ‘조연’이었다. 따라서 최대한 싸고 단순하게 만들어질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MAS-36의 작동방식 <출처: 유튜브 Si vis pacem , para bellum 채널>
하지만 그것이 이 총이 ‘허접한’ 증거는 아니다. 이 총은 가장 늦게 개발된 덕분에 다른 나라 소총들의 시행착오나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 분석해서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긴 ‘깔끔한’ 총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전문가들 중에는 이 총을 볼트액션 소총들 중 가장 가성비 높은 총의 하나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못생겼고, 거칠게 만들어졌지만 매우 튼튼하고 신뢰성 높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MAS-36의 구성부품. 부품 숫자가 매우 적고 단순하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총은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겪은 경험과 다른 나라 볼트액션 소총들을 연구 분석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장전손잡이 형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영국의 P14(미국에서 M1917 스프링필드 엔필드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 바로 그 총)을 참조했으며 노리쇠의 폐쇄돌기는 전방이 아닌 후방에 위치시켜 영국의 리엔필드 소총을 참조했다. 이 폐쇄돌기 배열은 비교적 빠른 조작과 쉬운 청소, 그리고 진흙 등의 오염물질에 대한 약간의 우위를 제공한다. 노리쇠 형태도 매우 단순하지만 튼튼하며 생산 효율도 높았다.
MAS-36의 노리쇠. 형태 자체가 매우 단순하다. <출처: Public Domain>
탄창은 기존의 프랑스 소총들에 대해 중요한 우위였다. 5연발 상자형 탄창을 사용하는데, 비록 탄창 자체는 분리되지 않는 고정식이지만 일체형 클립을 사용하는 베르디에나 튜브형 탄창을 사용하는 르벨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고장이 적고 튼튼했다. 또 탄창 밑판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쉽게 분리되는 타입이어서 유지 보수가 아주 쉬웠고, 마우저와 같은 벗겨내기식 클립을 사용해 장전하기 때문에 필요하면 얼마든지 한 발씩 탄창에 넣을 수도 있었다.
7.5mm MAS탄약의 5연발 클립 <출처: Public Domain>
MAS-36은 베르디에나 마우저 등과 달리 르벨 소총처럼 금속제 리시버를 기준으로 개머리판과 핸드가드가 분리된 방식이다. 다른 소총들처럼 핸드가드부터 개머리판까지 하나로 연결된 스토크(Stock) 개념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생산성 증대였다. 목재 부품을 길게 하나로 만드는 것보다는 둘로 나누는 편이 오히려 대량생산에는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사실 르벨 소총의 원래 디자인 자체가 기존의 그라 소총을 연발식으로 쉽게 개조하기 위해 설계된 크로파첵 Mle1885에서 비롯된 것과 나름 일맥상통한다.
스파이크식 대검(좌)과 착검된 MAS-36(우). 쓰지 않을 때에는 총열 아래에 꽂아둔다. <출처: Public Domain>
대검은 스파이크(꼬챙이) 식으로, 이것도 원가 절감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쓰지 않을 때에는 총열 아래에 끼워 넣게 되어 있다. 따라서 대검을 위한 별도의 칼집도 생산할 필요가 없으며 정식으로 착검하지 않을 때 걸리적거릴 일도 없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착검돌격을 강조하던 프랑스군이지만 1차 세계대전의 교훈으로 착검전투의 중요성을 크게 줄인 교리 상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MAS-36-51. 나토 표준 총류탄 발사용 베리에이션 <출처: Public Domain>
MAS-36은 길이도 이전 전쟁들의 교훈을 받아들였다. 원래 프랑스군은 다른 유럽 국가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기병총과 보병총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따라서 프랑스군도 영국이나 독일,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기병총과 보병총의 중간 길이를 가진 통일형 소총을 전군에 지급하기로 했고, 그 결과 MAS-36도 전통적인 보병총과 기병총의 중간 길이로 완성되었다.
MAS-36에는 프랑스군의 전통에 따라 별도의 안전장치가 장착되지 않았다. <출처: Public Domain>
이 총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실은 이것은 이 총만의 특징이 아니라 프랑스 소총의 전통에 가깝다. 르벨도 베르디에도 별도의 안전장치는 없다. 프랑스군은 오랫동안 지휘관의 사격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장전과 사격을 하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이 때문에 병사 개개인의 소총에 안전장치가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평소에는 약실을 비운 채 휴대하다 지휘관이 명령하면 그때부터 장전과 발사를 일제히 반복하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사격을 일제히 멈추고 약실을 비운 채 다시 휴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전장식 소총 시대부터의 전통이지만 그것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운용과 생산

MAS-36의 생산이 시작된 것은 1937년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1939년까지 약 10만 정이 생산되는, 당시 기준으로는 다소 느린 생산 속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1939년 9월 1일에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생산량은 급증했고, 1939년 10월부터 1940년 5월 사이에는 약 15만 정이 생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1940년 5월까지 약 25만 정이 생산되어 프랑스군 일선 부대에 대한 지급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정도 숫자로는 프랑스군의 소총 전부를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1940년 5월까지 프랑스군은 기존의 베르디에와 르벨을 7.5mm용으로 개조한 개조형 소총은 물론이고 아예 8mm탄 상태 그대로인 총기들도 다수 동원해야 했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군은 15만 정을 추가생산하여 프랑스군은 모두 25만 정의 MAS-36을 보유했다. <출처: Public Domain>
그리고 1940년 5월. 프랑스군은 독일군에 패배했고, MAS-36의 생산은 중지됐다. 이 총의 주요 생산 거점이던 생테티엔 조병창은 독일 점령 지구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시 프랑스군의 규모가 전쟁 전보다 크게 위축되면서 대규모 추가 생산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2년 11월에는 비시 프랑스 정부의 통치 지역들까지 독일군에 모두 점령되면서 생테티엔 조병창 등의 병기 생산 거점들도 모두 독일군에 장악되었는데, 독일은 이 조병창들에서 병기를 추가로 대량생산하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총류탄 발사용 바리에이션인 MAS-36 LG48 <출처: Public Domain>
1944년 여름에 생테티엔 조병창과 샤텔로 조병창이 잇따라 해방되면서 MAS-36의 생산이 재개됐다. 비록 두 조병창 모두 후퇴하는 독일군의 사보타주와 두 조병창을 해방시킨 레지스탕스들의 약탈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봤지만 여전히 전쟁 중인 프랑스군은 하나라도 더 많은 소총을 조달해야 했고, 그래서 1944년 가을부터는 MAS-36의 생산이 재개됐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생산은 빠르게 속도가 붙었고, 1945년 겨울까지 약 18만 5천 정이 생산되었다.
인도차이나 전쟁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의 MAS-36 CR39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그러는 사이에 전쟁은 끝났지만 MAS-36의 생산은 이어졌다. 2차 대전에 뒤이어 인도차이나반도와 알제리 등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군은 계속 다수의 소총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게다가 유럽 본토에서도 냉전이 시작되면서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고, 결국 대량의 소총이 필요했다. 프랑스로서는 자국 내에 생산 기반을 마련해 놓은 MAS-36의 지속적인 생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1980년에 촬영된 폴리사리오 해방전선 게릴라들. MAS-36을 휴대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그 결과 1959년까지 생산은 지속됐고, 누적 총 생산량은 119만 정 정도에 달한다. 사실 프랑스는 1944년부터 새로운 반자동 소총인 MAS-44와 MAS-49 등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이 총들의 생산은 프랑스군이 원하는 수준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반자동 소총들은 최일선 보병 전투부대들에 우선 배치되었고, MAS-36은 그 외의 다양한 다른 부대들에 배치되었다.
1978년 촬영된 프랑스 경찰. MAS-36을 휴대 중이다. <출처: Public Domain>
1960년대부터 프랑스군의 MAS-36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찰이나 국가헌병대 등에서는 더 늦게까지 사용되었고, 일부는 1980년대까지도 남아있었다. 또 프랑스군 외에도 베트남 등 구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역에도 상당수가 사용되었고, 일부는 아직까지도 알제리 등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치안유지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생형

MAS-36 구경감소형 소총 5.5: 훈련용으로 개조된 MAS-36. 훈련용으로 .22LR탄을 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7.5mm 탄의 치수를 유지한 어댑터를 사용, 원래의 탄창 그대로 기능을 살려 5발을 장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1941~1942년 사이에 비시 정부를 위해 생산되었다고 한다.

MAS-36 구경감소형 소총 5.5 <출처: Public Domain>
MAS-36 LG48: 원래 MAS-36은 2선급 소총이라 총류탄 발사를 기능에 넣지 않았다. 하지만 졸지에 1선급 소총이 된 탓에 1948년에 총류탄 발사 기능이 추가된 베리에이션이 등장했다. 이것이 LG48로, 사거리에 따라 총류탄이 총구에 꽂히는 깊이를 조절하는 어댑터와 그에 연동되는 가늠자가 달려있다. 유탄발사기를 지급하듯 분대에 하나씩 지급됐다.
총류탄 발사용 바리에이션인 MAS-36 LG48 <출처: Public Domain>
MAS-36-51: 총류탄 발사형이지만, LG48과 달리 NATO표준 총류탄 사용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버전.
MAS-36-51. 나토 표준 총류탄 발사용 베리에이션 <출처: Public Domain>
MAS-36 CR39: 공수부대용으로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게 만든 버전. 개머리판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공수부대뿐 아니라 산악부대에서도 애용했고 생산량은 약 33,800정이다.
공수부대용의 MAS-36 CR39 <출처: Public Domain>
FR-F1/FR-F2: MAS-36의 설계를 응용해 만든 저격용 버전. 탄창이 탈착식으로 바뀌었고 스코프 장착 등 저격용으로 필요한 많은 재설계가 가해졌다. FR-F1은 약 6천 정이 생산되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운용됐다. 1976년에 GIGN이 인질 구출작전에 사용한 저격총도 FR-F1이다. 1980년대에는 7.62mm NATO탄을 사용하는 버전인 FR-F2가 등장해 프랑스군에 채택되었으며, 2018년부터  신형인 SCAR-H나 HK417 등의 총기들로 대체되고 있다.
FR-F1 저격총 <출처: Public Domain>

FR-F2 저격총 <출처: Public Domain>


제원

무게: 3.72kg
길이: 1.02m
총열 길이: 575mm
탄창: 5연발
사용탄: 7.5x54mm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