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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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헤처 구축전차

작지만 강력했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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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처는 38(t)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탄생한 구축전차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1943년이 되자 독일이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나치 선전 매체의 주장과 달리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거웠던 전선의 부대들은 더 많은 지원을 요청했다. 그중에는 이번 전쟁을 거치면서 확고하게 지상전의 주역이 된 전차도 있었다. 개전 이후 독일은 집단화된 기갑부대를 앞세워 전쟁사를 새롭게 썼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차의 공급량이 부족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독일의 대표적 구축전차 중 하나인 4호 구축전차.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전차들이 뒤엉켜 싸우는 기갑전이 일상이 되면서 소모가 불가피했기에 고질적인 수적 열세는 심각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질적으로 우수한 6호 전차 티거나 대전차포 등으로 대응하더라도 양적 격차를 줄이기는 어려웠다. 일선의 어려움에도 자원과 시설이 제한된 독일의 여건상 전차의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불가능했다. 지금은 사라진 구축전차(驅逐戰車, Jagdpanzer)는 이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구축전차는 적 전차 요격에 특화된 기갑 장비를 의미한다. 포탑을 제거한 전차 차체에 강력한 주포를 결합한 형태인데, 사실 이는 자원을 절감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독일에서 구축전차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1944년 9월부터였지만 1호대전차자주포처럼 이런 구조의 기갑 장비는 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자주포는 오픈 탑이어서 기갑전에 투입하기 곤란했다.

장포신 75mm 포를 탑재한 3호 돌격포 G형. 1943년 해당 장비를 생산하던 알케트의 공장이 파괴되면서 38(t)를 기반으로 한 돌격포의 생산이 검토되면서 헤처가 탄생했다. < 출처 : (cc) Darkone at Wikimedia.org >

1941년 독소전쟁 발발 당시에 주력이던 3호, 4호 전차가 화력 부족으로 애를 먹자 원래 보병지원용이던 3호 돌격포(StuG Ⅲ)에 장포신 75mm 포를 탑재한 개량형을 기갑전에 투입해서 쏠쏠한 전과를 올렸다. 이것을 최초의 구축전차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갑전력을 빨리 늘릴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이때부터 2선으로 물러난 전차나 이를 제작하던 설비와 자재를 이용한 구축전차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정식 명칭이 Jagdpanzer 38(Sd.Kfz. 138/2)인 헤처(Hetzer)도 그렇게 탄생한 구축전차 중 하나다. 독일은 제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다. 이때 ČKD가 제작한 LT vz. 38 전차를 노획하게 되는데, 당시 독일의 1호, 2호 전차보다 성능이 좋았다. 때문에 독일은 ČKD에서 이름을 바꾼 BMM으로 하여금 38(t)라는 제식명으로 계속 양산하도록 조치하고 1939년 폴란드 침공전, 1940년 프랑스 침공전에 투입해 재미를 보았다.

독일이 노획해 사용했던 체코슬로바키아제 38(t) 전차. 해당 차체를 이용해 마더 Ⅲ, 헤처가 개발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하지만 38(t)는 1941년 소련 침공전에 와서 T-34 같은 전차에게 역부족이었다. 유명한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가 쓸모없는 전차라고 악평을 남겼을 정도였다. 결국 2선급 전선으로 보내지거나 주행력이 좋다는 점을 살려 마더 Ⅲ(Marder Ⅲ) 대전차자주포 등의 차체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는 무기의 공급량이 부족한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흔하게 이뤄지던 재활용 방식이었다.

그러던 1943년 11월에 3호 돌격포를 만들던 알케트(Alkett)의 베를린 공장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이에 OKH(독일 육군 최고사령부)는 BMM에서 3호 돌격포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시설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문제로 말미암아 38(t)를 기반으로 별개의 돌격포인 헤처를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뀌었다. 이미 마더 Ⅲ를 만들어 보았기에 대구경포를 탑재하는데 기술적 문제는 없었다.

대전말 장비와 자산의 부족으로 시달리던 독일인 돌격포인 헤처를 양산하였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다만 대전차자주포와 달리 경우에 따라 진지 공격과 보병 엄호가 목적인 돌격포는 근접전을 대비해 최소한의 장갑을 둘러야 했다. 이에 BMM은 헤처의 전면, 측면에 경사장갑을 주어 방어력을 늘리고 3호 돌격포 F형이 사용하는 7.5cm Pak 39 L/48 대전차포를 장착했다. 그런데 개발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헤처를 기갑전에 투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300m 내에서 IS-1, IS-2 같은 중전차 격파가 가능했다.

이에 기갑병과는 전차 부족을 명분으로 헤처를 자신들이 운용하겠다고 주장하며 포병병과와 알력을 벌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헤처는 돌격포에서 전차 요격용 구축전차로 임무와 사용 목적이 바뀌었다. 하지만 장갑이 증가하고 대구경포를 탑재하면서 완충 장치, 궤도 등이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것에 버금갈 정도로 개선되어야 했다. 그래서 헤처는 38(t) 전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에도 별개의 무기로 취급된다.

캐나다 워싱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 중인 헤처. < 출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헤처는 반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개발을 끝내고 1944년 4월부터 전선에 공급이 시작되었다. 독일이 본토 방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전황이 악화되어 충분한 시험을 할 수 없었던 상태였지만 차체와 주포가 기존에 충분히 성능이 검증된 상태여서 안정성이 대단히 좋았고 일선에서 정비 요소도 많지 않았다. 또한 제작이 쉬웠고 비용도 저렴한 편인 데다 무엇보다 전투력도 좋았다. 한마디로 작지만 강력했던 걸작 구축전차였다.

특징
헤처는 작지만 화력이 강력해서 중전차와 기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 출처 : (cc) Adamicz at Wikimedia.org >
헤처는 경전차인 38(t)의 차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포탑이 제거되어 전고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반대로 그만큼 공간이 줄어들면서 주포를 장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고심 끝에 우측에 주포와 전차장이 좌측에 조종수, 포수, 탄약수가 일렬로 촘촘히 앉는 구조를 택했다. 당연히 승무 여건이 열악해서 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정면에서 바라본 헤처. 공간 확보를 위해 주포가 차체의 우측에 탑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 Public Domain >
4호 구축전차도 채택한 헤처의 7.5cm Pak 39 L/48 전차포는 4호 전차 후기형의 주포인 7.5cm KwK 40을 기반으로 화력을 강화한 형태여서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대부분의 연합국, 소련의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부무장으로 외부에 장착된 MG34 기관총은 수동식이지만 원격 조종 장치가 부착되어 실내에서도 사격이 가능하다. 교전 중 승무원이 신체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많은 호평을 받았다.
경사장갑을 채택해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전면의 경우 120mm 장갑 효과를 낼 수 있었다. < 출처 : (cc) Mark Pellegrini at Wikimedia.org >
구축전차는 매복하고 있다가 급습하는 식으로 적 전차를 요격한다. 때문에 헤처의 낮고 작은 차체는 숨는 데 유리했고 피탄 효과도 좋았다. 하지만 혼전을 벌일 경우에는 포탑이 없어 불리했다. 경사장갑을 도입해 방어력이 좋아졌지만 실내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대구경포를 달고 장갑이 강화되면서 중량이 늘어났고 그만큼 기동력이 저하되었다. 다만 헤처가 활약할 당시는 독일의 수세기여서 기동력은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운용 현황

워낙 급박한 시절이어서 정확한 수량은 확인되지 않지만 헤처는 1944년 4월부터 패망 직전인 이듬해 4월까지 1년 동안 2,800여 대 정도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말이었음에도 이는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여타 독일의 기갑장비와 비교해도 많은 수량이다. BMM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체코슬로바키아에 위치했던 점도 있었지만 이미 기반 시설이 충분했고 해당 장비만 집중 생산한 덕도 있었다.

헤처는 전쟁 후반의 어려운 시기였지만 무려 2,800여 대 정도가 양산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당시는 총탄 한 발조차 아쉬웠던 시절이어서 헤처는 생산하는 족족 일선에 곧바로 공급되어 교전에 참가했다. 형식적으로 적 전차 요격을 담당하는 구축전차로 분류했지만 모든 교전에서 활약했다. 워낙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었고 독일의 전력이 급속히 소모되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령 공세기라고 해도 전술 무기는 교전이 벌어지면 일일이 용도나 목적 등을 따져가며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
1944년 서부전선에서 교전 중 격파된 헤처 < 출처 : Public Domain >
헤처는 필요할 때 반드시 작동될 만큼 기계적 신뢰성이 좋아 일선에서 대단히 호평을 받았다. 자재 등이 부족했던 전쟁 말기에 급하게 생산된 상당수의 여타 무기나 장비 중에서 불량품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헤처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덩치에 비해 화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전후에도 생산이 이루어져 체코슬로바키아, 스위스에서 사용했다.
2006년 스위스군 퍼레이드에 등장한 G-13 < 출처 : (cc) Sandstein at Wikimedia.org >


변형 및 파생형

Befehlswagen 38 : 지휘차

Befehlswagen 38 < 출처 : Public Domain >
Flammpanzer 38 : 화염방사차
Flammpanzer 38 < 출처 : Public Domain >
Panzerjaeger 38(t) mit 75mm L/70 : 7.5cm KwK 42 L/70 탑재 제안형
 
Jagdpanzer 38 Starr : 7.5cm Pak 39 탑재 다운그레이드형
75mm 무반동포를 장착한 Jagdpanzer 38 Starr < 출처 : Public Domain >
Panzerjaeger 38(t) mit 105mm StuH 42/2 L/28 : 10.5cm 포 탑재 제안형
 
ST-I : 전후 체코슬로바키아 생산형
ST-I < 출처 : Public Domain >
G13 : 스위스군형
G13 < 출처 : Public Domain >
Bergepanzer 38 (t) : 구난차
스페이드를 장착한 구난차량 < 출처 : Public Domain >
15cm Schweres Infanteriegeschütz 33/2 (Sf) auf Jagdpanzer 38 (t) : 15cm sIG 33/2 장착 구난차
15cm sIG 33/2 장착 구난차 < 출처 : Public Domain >
Vollkettenaufklärer 38 (t) : -Bergepanzer 38 기반 정찰차
Vollkettenaufklärer 38 (t) < 출처 : Public Domain >


제원

생산업체 : BMM
도입 연도 : 1944년
중량 : 15.75톤
전장 : 6.38m
전폭 : 2.63m
전고 : 2.17m
장갑 : 8~60mm
무장 : 7.5cm PaK 39 L/48 x 1
          7.92mm MG34 x 1
엔진 : Praga Typ TNHPS/II 수랭식 6기통 가솔린엔진 165마력(118kW)
추력 대비 중량 : 10.2마력/톤
항속 거리 : 177km
최고 속도 : 42km/h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