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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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베텔리 소총

세계 최초의 연발식 제식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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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텔리 M1871 소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1860~1875년 사이는 총기의 역사에서 가장 압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860년대가 시작될 때만 해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총구에 탄과 화약을 따로 넣는 전장식 소총을 주 무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당대 최강대국이라는 영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1860년대 중반쯤 되면 갑자기 전장식 소총이 종이 탄피나 금속 탄피를 쓰는 단발 후장총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1875년에 이르면 금속 탄피가 주요 국가들의 당연한 탄약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일부 국가에서 연발총까지 쓰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총기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스위스의 군용 소총은 이런 시대의 변화를 정말 롤러코스터 타는 수준으로 겪었다. 1863년까지만 해도 스위스는 아예 강선도 없는 1851년형 활강식 전장소총을 사용했다. 1863년에야 이 총에 강선 총열이 도입된 1863년형 보병총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1867년에는 원래 전장식이던 1863년형 소총을 금속 탄피식 후장총으로 개조해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1866년, 스위스 연방정부는 폭탄선언을 해 버렸다. 기존의 전장식 단발총을 대체할 신형 소총을 무려 연발총으로 결정한 것이다.

1860~70년대는 소총의 급격한 변환기로 금속탄피를 사용하는 스나이더-엔필드나 스프링필드 트랩도어(사진) 등이 막 배치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출처: Reddit>

당시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 모두 종이 탄피를 사용하는 니들건이 주력이었고 영국이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스나이더-엔필드 단발총, 미국이 스프링필드 트랩도어 라이플을 막 배치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이제야 후장식 단발총의 시대로 넘어가던 그때, 스위스는 그 모든 나라들보다 한발 앞서 연발식 소총을 군용 제식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연발총을 군용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스위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남북전쟁에서 미 육군은 상당한 숫자의 스펜서와 헨리 연발총을 실전에 투입해 적잖은 전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 미 육군조차 연발총의 제식 대량 채택은 결국 포기했다. 연발총은 주로 기병대나 일부 제한된 부대들이 사용했고,  남북전쟁 중의 주력은 미니에탄을 쓰는 전장식 뇌관총이었으며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존의 전장식 소총을 개조해 후장 단발총으로 만든 스프링필드 트랩도어가 제식이 되었다.

베텔리 소총의 개발자인 요한 프리드리히 베텔리 <출처: Public Domain>

왜 연발총의 ‘고향’격인 미국조차 연발총을 군용 제식으로는 채택 안 했을까. 일단 가격이 비쌌다. 당시의 연발총들은 아직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경우가 많았고, 아직 자동화가 안 되었던 그 시대에는 그만큼 손이 많이 가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는 내구성과 그에 따른 제한된 위력이었다. 충분한 위력을 갖춘 탄약을 쓰기에는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스펜서도 헨리도 위력이 다른 소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무엇보다 탄약 자체가 아직 비쌌다. 금속 탄피는 그 시대에야 막 실용화된 것이었고, 여전히 화약과 탄두 그 자체도 비싸다고 손사래치던 나라가 대부분이던 시대에 그 비싼 구리를 소모품인 탄피로 사용하는 것은 많은 나라 정부에게 아주 힘겨운 결정이었다. 그런 마당에, 그 귀하고 비싼 탄약을 몇 배나 빨리 소모하는 데다 총 자체도 그 시대 기준으로는 매우 비싼 연발총이 쉽게 채택됐을까?

베텔리 소총의 단면 일러스트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스위스는 이런 ‘비싼’ 결정을 과감하게 내렸다. 일단 스위스는 유럽 한복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강력한 힘을 갖춘 무장 중립이 필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적은 인구로 인근 강대국의 대군과 맞서 싸우려면 병사 하나하나가 짧은 시간에 많은 탄을 쏠 수 있는 연발총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또 그런 생각을 뒷받침할 경제적-산업적 여건도 점점 성숙해가고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산업과 경제의 발전으로 경제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유럽의 대표적인 부자 나라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었다. 여기에 스위스에는 전통적으로 사격인과 건스미스 모두 많았고, 또 시계 산업 등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 정밀 기계 가공의 전통도 있었다. 한마디로 연발 소총을 개발하고 생산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베텔리 M1878 <출처: Public Domain>
마침내 1868년 2월, 스위스는 사실상 세계 최초로 연발식 소총을 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하는 나라가 되었다. 연발 볼트액션식 소총인 베텔리 소총을 스위스군 제식으로 채택한 것이다. 1분에 약 20발을 쏠 수 있는 베텔리 소총의 등장으로 스위스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유럽에서 가장 발사 속도가 빠른 소총으로 무장한 나라가 되었다.


특징

1868년에 채택은 되었지만, 실제로 양산이 되어 대량 지급된 것은 1869년에 M1869가 나온 다음부터의 일이다. 따라서 보통 베텔리 기본형이라고 하면 M1869를 뜻한다.

격발 직전의 베텔리 소총 <출처: Public Domain>
베텔리는 볼트액션식 연발총이다. 볼트액션 구조 자체는 이미 드라이제와 샤스포가 실용화시킨 뒤였지만, 여기에 연발 기능을 조합해 ‘볼트액션식 연발총’을 만든 것은 스위스가 처음이다. 베텔리라는 이름은 개발자인 요한 프리드리히 베텔리(Johann Friedrich Vetterli, 1822-1882)의 이름을 딴 것으로, 생산은 지금까지도 이름이 남아있는 SIG(Schweizerische Industrie Gesellschaft)와 베른 조병창이 분담했다.
격발 후 차탄 장전 시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볼트액션 구조의 기본 형태 자체는 이미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베텔리는 디테일이라는 면에서 다른 경쟁자들과 달랐다. 드라이제의 경우 별도의 폐쇄돌기(로킹러그)가 사실상 없고, 샤스포도 장전손잡이 부분에 큼직한 폐쇄돌기 하나가 마련된 비교적 단순한 방식인 반면 베텔리는 노리쇠 후방에 별도로 마련된 두 개의 폐쇄돌기가 장전손잡이와는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이 총은 내구성도 확보하면서 동시에 비교적 빠르고 부드러운 조작도 가능하게 되었다.
기관부 클로즈업. 탄피 배출구는 위에 있고 탄창의 탄 삽입구는 옆에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사실 베텔리에서는 연발총이라는 분류에 걸맞게 그 연발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탄창이 중요한 부분이다. 베텔리의 탄창과 송탄 기구는 당시 실용화된 얼마 안 되는 ‘제대로 된’ 연발총인 윈체스터 M1866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 시대에 참고할만한 연발 소총의 연발 급탄-송탄 기구는 그것 빼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기관부 반대쪽 <출처: Public Domain>
윈체스터와 마찬가지로 베텔리도 총열 아래에 긴 막대 형태의 튜브형 탄창을 이용해 11발을 장전하게 했다. 탄창 맨 끝의 실탄은 엘리베이터 위에 얹히게 되고, 장전손잡이를 당겨 노리쇠를 후퇴시키면 여기에 연동되어 엘리베이터가 올라와 노리쇠 앞으로 새 탄이 올라온다. 노리쇠를 다시 앞으로 전진시키면 새 탄약은 약실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는 내려가 새 탄이 얹힌다. 발사한 뒤 다시 노리쇠를 후퇴시키면 탄피는 약실 밖으로 빠져나가고, 엘리베이터는 올라와 새 탄을 발사 위치에 올려놓는다.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윈체스터와 큰 차이가 없지만, 윈체스터보다 내구성이 높고 높은 약실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볼트액션 구조와 연동시킨 점은 보다 선진적이었다.
M1878의 가늠자. 탄속이 낮아 탄도 곡선의 커브가 심해 가늠자도 거리에 따라 조절 각도가 커진다. <출처: Public Domain>
장탄수가 12발(11+1발)이라는 점은 분명 당시는 물론이고 그 뒤에 나온 다른 볼트액션식 소총들보다 앞섰지만, 대신 튜브형 탄창이라는 점은 한계가 있었다. 탄창에 탄이 다 떨어지면 총 옆의 급탄구로 11발을 한 발씩 넣어줘야 했기 때문에 재장전 시간이 제법 길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초기형에는 매거진 컷오프, 즉 탄창의 급탄 기능을 정지시키고 약실에 한 발씩 탄을 넣어 단발총처럼 쓸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적과의 거리가 충분하면 단발총으로 쓰다가 적이 접근하면 매거진 컷오프를 해제해서 연발총으로 쓰자는 것으로, 잘못하면 병사들이 탄창을 급하게 비웠다가 정작 필요할 때 연발총의 화력을 발휘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설치된 기능이다.
총구 부분. 측면에 착검할 수 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이 매거진 컷오프 기능은 1871년에는 제거된다. 어차피 급탄구로 한 발씩 탄창에 탄을 채울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굳이 매거진 컷오프 같은 부품을 하나 더 추가하느니 훈련을 통해 원거리 사격 시에는 습관적으로 탄을 한 발씩 탄창에 넣도록 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라고 여겨졌다. 유사시에 매거진 컷오프 같은 부품의 조작이 추가되면 오히려 실수나 고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탈리아 베텔리에 사용된 10.35mm 탄약 <출처: Public Domain>
하지만 베텔리에는 약점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사용 탄약(10.4x38mm 림파이어)이 소총탄 치고는 좀 약했다. 당시만 해도 소총탄쯤 되면 운동에너지가 2,200~2,600J 정도가 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베텔리의 10.4mm 탄약은 1,800J 정도로 약간 약한 편이었다. 탄피 길이가 짧은 데다 튜브형 탄창의 사용 때문에 굵은 탄피를 쓰지도 못하기 때문에 탄피 용량이 작고, 그만큼 추진장약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 것이었다.
스위스 베텔리에 사용된 10.4mm 림파이어 탄약 <출처: Public Domain>

또 다른 문제는 림파이어라는 격발 방식이다. 튜브형 탄창은 탄창 안에서 자칫 탄두가 앞의 탄피 바닥을 강하게 찌르기 십상이고, 센터파이어 방식이면 자칫 뇌관이 뒤쪽의 탄두에 찔려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가 있다고 당시에는 우려했다(이런 사고는 탄두 끝을 평평하게 만든다든가 하는 여러 방법으로 나중에 피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베텔리가 설계될 당시에는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스위스는 베텔리에 들어갈 신형 탄약을 림파이어 방식으로 만들었다. 림파이어는 탄피 바닥 가운데에 따로 뇌관이 있는 센터파이어 방식과 달리 뇌관 바닥의 테두리(림)을 어디라도 찌르면 격발이 일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설령 탄창 안에서 탄두가 앞 탄피의 바닥 가운데를 찔러도 폭발 사고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림파이어 방식은 불발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운반 시 충격에 의한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는 데다 고압의 탄약을 설계하기도 어려운 점 등, 이미 이 시대에도 군용 탄약의 격발 방식으로는 선호되지 않던 방식이다.

이탈리아의 M1870/87 베텔리 실사격
총 자체도 널리 보급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베텔리는 이 당시에 생산된 군용총으로는 매우 비싸고 복잡한 축에 속했다. 이 점은 탄약과 맞물려 베텔리가 수출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운용의 역사

베텔리는 스위스군에서 1880년대까지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이미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이 총이 실전에 대량으로 투입될 일은 없었다. 또 수출용으로도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기에 해외 전쟁에서 널리 사용되기도 어려웠다.

베텔리가 아주 수출이 안 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가 1870년부터 베텔리를 자국군 제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라이선스 생산된 베텔리의 양은 150만 정 정도로, 16만 정에 불과한 스위스의 베텔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베텔리는 스위스 군에 채용되었으나, 그리 오래 현역을 지키지는 못했다. <출처: Public Domain>

다만 이탈리아의 M1870 베텔리는 스위스 오리지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연발총이 아니라 단발총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이다. 사용 탄약도 센터파이어 방식의 더 강력한 10.4x47mm R 탄약으로 바뀌었다. 현실적으로 이탈리아로서는 백만 단위가 필요한 신형 소총을 비싸고 복잡한 연발총으로 충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1887년에 이 총에 이탈리아가 독자 개발한 4연발 상자형 탄창을 추가해 연발총으로 개조한 M1870/87형을 개발, 생산해 1890년대까지 주력 소총으로 사용했다.

이탈리아의 베텔리는 이탈리아가 참전한 여러 전쟁에 사용되었고 여기에는 패전으로 끝난 에티오피아와의 전쟁(1895~1896)이나 1차 세계대전, 심지어 1935년의 2차 에티오피아 전쟁까지 포함된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도 신형 소총들이 등장했다고 구형 소총을 다 버리는 게 아니라 2선 급 부대나 후방 부대 등에 지급했고, 또 식민지의 현지인 부대 등에도 지급해 사용했기에 2차 세계대전까지도 무시 못 할 숫자가 남아있었다.

막상 스위스보다 베텔리 소총을 많이 사용한 것은 이탈리아였다. <출처: Public Domain>

러시아군도 베텔리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핀란드 독립운동가들이 반란을 위해 밀반입하려다 적발한 물량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적백내전에도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사용된 양은 매우 적다.

뜻밖에 많은 양이 사용된 곳이 미국이다. 대부분의 베텔리는 스위스군에서 실전을 겪지 않고 쓰였기에 아주 좋은 상태로 관리됐고, 또 운용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마모도 적었다. 덕분에 이 총들의 대부분은 거의 새것 같은 상태로 퇴역한 뒤 해외 민간 시장에 헐값으로 수출됐고, 대부분이 미국에 넘어갔다.

베텔리 소총의 실사격 리뷰
20세기 초반에 이 총들은 미국인들이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연발 소총으로 인기리에 판매됐는데, 비록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냥감인 사슴 상대로는 비교적 근거리 아니면 효과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래도 사슴 사냥꾼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싼 맛에 이 총을 구입해 썼다. 심지어 1942년까지도 윈체스터 등의 미국 업체들이 탄약을 만들 정도였고, 1970년대까지도 이 총을 사냥용으로 ‘실생활에’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게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스위스가 아닌 미국에서 이 총이 지금까지도 예상외로 흔하다.


파생형

M1869: 가장 초기에 나온 기본형.
 
M1869/71: M1869의 매거진 컷오프 등 일부 불필요 기능을 제거한 버전

베텔리 M1869/71 소총 <출처: Public Domain>
M1871: 약간의 구조 단순화에 더해 가늠자/가늠쇠를 교체하고 총열도 더 튼튼한 것으로 바꾼 개량형. 77,300정 생산. 실질적으로 이 버전부터 본격적인 양산이 이뤄졌다.
베텔리 M1871 <출처: Public Domain>
M1871 저격 카빈: M1871의 정밀 사격 버전. 길이 1.26m. 총열은 약간 짧지만 방아쇠가 더 가벼운 방식이다. 일종의 저격총에 가까운 방식으로 운용. 1만 정 생산.
M1871 저격 카빈 <출처: Public Domain>
M1871 기병총: 말 그대로 기병대용으로 만든 형식. 길이 93cm. 탄창 용량 6발. 4,300 정만 생산.
M1871 기병총 <출처: Public Domain>
M1878/M1881: M1878은 베른에 스위스 정부가 세운 조병창에서 생산된 버전. 25군데의 자잘한 변화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M1881은 방아쇠를 개량한 저격 버전. M1871만 해도 7만 7천 정만이 생산된 반면 M1878은 11만 4천 정, M1881도 11,000 정이 생산되었다.
베텔리 M1878 <출처: Public Domain>
M1870 베텔리(이탈리아): 이탈리아군이 사용한 단발 버전. 사용탄도 센터파이어 방식(10.35x47mm R)이다.
이탈리아 베텔리 M1870 <출처: Public Domain>
M1870/87 베텔리-비탈리: M1870에 4연발 탄창을 장착한 버전.
M1870/87 베텔리-비탈리. 4연발 탄창 장착. <출처: Public Domain>
M1870/87/15: M1870/87 베텔리-비탈리를 신형 6.5mm탄약에 맞게 개량한 버전. 1915년에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극도의 소총 부족에 시달린 이탈리아군이 2선 급 부대용으로 쓰기 위해 기존 총기들을 개조했다.


제원(기본형)

사용탄: 10.4x38mm 림파이어
탄창: 11연발
길이: 1.3m
무게: 4.6kg
총열 길이: 84.2cm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 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전투외상 응급처치>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