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1.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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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F-101 전투기

시작과 끝이 전혀 달랐던 냉전 초기의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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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01은 호위기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전폭기를 거쳐 요격기로 임무가 바뀐 파란만장한 전투기다. < 출처 :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제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의 국방 정책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앞으로 전면전이 발발하면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밀고 당길 필요 없이 적의 심장부에 핵폭탄을 던져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해군도 필요 없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거론되었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당시 유일하게 핵폭탄을 목표까지 운반할 수 있는 폭격기의 위상이 커지면서 1946년 전략폭격을 전담할 SAC(전략공군사령부)이 창설되었다.

F-101의 기본 베이스가 되었던 XF-88. 2기만 시험 생산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폭격기 전력 확충과 더불어 이들을 호위할 장거리 침투전투기(Penetration Fighter) 계획도 함께 시작되었다. 제2차 대전을 겪으면서 폭격기 단독으로 적진까지 날아가서 벌이는 작전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맥도넬의 XF-88도 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투기로 대륙 간을 횡단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계획은 유야무야 되었다.

대신 B-36에 제트엔진을 장착해서 속도를 향상시키고 최초의 제트폭격기인 B-47의 전력을 확충하면 요격기의 방해를 물리치고 폭격기 단독으로 적진 침투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1950년 11월 1일, 한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MiG-15는 이런 미국의 생각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MiG-15처럼 강력한 전투기의 존재로 말미암아 폭격기가 단독으로 소련 깊숙이까지 진입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1984년까지 활약한 캐나다 공군의 CF-101B < 출처 : (cc) Bzuk (talk) at Wikipedia.org >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는 F-86이 호위에 나서 그럭저럭 문제를 해결했지만 폭격기와 함께 대륙 간 횡단은 불가능했다. 결국 사장되었던 장거리 호위기 계획이 부활했다. SAC은 한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장거리 비행 능력에 더해 MiG-15를 비롯한 소련의 요격기와 적지에서 공대공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빠른 속도도 요구했다. 이렇게 재개된 사업에서 맥도넬은 XF-88을 기반으로 한 개량형을 제출했다.

동체를 3m 가량 연장하고 강력한 J57-P13 엔진을 탑재했다. 덕분에 최대 이륙 중량과 작전 반경이 증가했다. 더해서 마하 1.72의 최고 속도로 비행이 가능했고 최대 6발의 AIM-4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을 만큼 무장 탑재량도 늘어났다. 이 정도면 개량이 아니라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군은 F-101 부두(Voodoo)로 명명하고 29기를 선 발주했을 만큼 기대가 컸고 개발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1954년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1978년 뉴욕 주 방위군 제107전투요격비행대 소속으로 임무 수행 중인 F-101B < 출처 : Public Domain >

그런데 완성 시점이 되자 최대 8톤에 이르는 폭장량 때문에 일각에서 다른 주장이 나왔다. 이 정도 항속 거리에 무장 능력이면 굳이 폭격기를 호위할 것이 아니라 직접 핵폭탄을 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었다. 결국 1957년 핵폭탄 투하가 가능한 장거리 전폭기로 변신이 이루어져 배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데뷔하였지만 ICBM, SLBM 같은 미사일이 실용화되면서 이 또한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핵폭탄을 비행기에 달고 적진까지 날아가는 것보다 격추 위험이 적고 속도는 훨씬 빠른 장거리 미사일에 싣고 공격을 가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입지가 흔들리자 F-101은 TAC(전술공군사령부) 소속으로 바뀌어 본토 방공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에 TAC은 애물단지를 넘겨 받았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방공용으로 도입한 F-102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F-101 '부두' 전투기의 소개영상 < 출처 : 유튜브 >
이처럼 애초 폭격기를 호위하는 용도로 구상되었던 F-101은 중간에 전폭기로 바뀌어 개발이 이루어졌으나 정작 적의 폭격기를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마저도 TAC의 입장에서 물량이 너무 많다며 절반 정도가 정찰기, 훈련기로 개조되었다. 이처럼 F-101은 시작 당시의 생각과 마지막 현실이 달랐던 전투기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상대를 앞서야 한다는 조급증이 난무했던 냉전 시대의 모습이 응축된 전투기라고 할 수 있다.


특징

F-101은 기반이었던 XF-88 보다 기체가 3.2m 연장되고 미익 구조가 조금 바뀌었으나 상당 부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최대 마하 1.7의 속도는 개발 당시에 매력적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F-104, F-105, F-106, F4H처럼 마하 2 이상으로 비행할 수 있는 후속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평범한 수준이 되어 버렸다. 탑재한 J57-P13 엔진이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체의 구조가 성능을 십분 발휘하는데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제123전투요격비행대 소속의 2인승 F-101B. 비행 성능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익면하중이 높아 저속에서의 안정성이 나빴다. 특히 T자 모양으로 수직 미익 끝에 수평 미익을 연결한 구조는 상당한 설계 실수로 평가받는다. 커다란 받음각으로 말미암아 후류가 수평 미익의 효과를 없애 실속을 발생시키고는 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체의 급격한 변동을 제한시키는 장치를 장착했고 당연히 선회력, 기동력 등이 제한을 받아 근접전을 벌이기 어려웠다.
F-101B의 반 매입형 웨폰베이 < 출처 : Public Domain >
앞서 소개한 것처럼 F-101은 개발 시작부터 배치에 이를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무장 형태도 변동이 컸다. 호위기를 목적으로 했을 때는 기관포와 6발의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려 했으나 전폭기로 바뀌면서 외부 파일런에 보조연료탱크나 폭탄을 장착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요격기로 임무가 정해지면서 기관포가 제거되고 공대공미사일 4발이나 핵로켓 2발 + 공대공미사일 2발로 무장이 고정되었다. 이들은 기수 하부에 커버가 없는 반 매입 로터리식 웨폰베이에 장착되었다.


운용 현황

F-101은 총 807기가 생산되었고 1957년부터 일선에 배치되어 미 공군에서는 1972년, 주방위군에서는 1982년까지 사용되었다. 캐나다 공군이 112기를, 대만 공군에서 정찰기인 RF-101A 8기를 운용한 것을 제외하면 전량 미국이 사용했다. 기대를 모았던 F-102에 실망한 TAC이 어쩔 수 없이 대체 요격기로 운용했다. 선회력 등이 미흡하지만 어차피 적 전투기와의 대결이 목적이 아니어서 일선에서는 그럭저럭 쓸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AIR-2 핵 로켓 모의 발사 실험 중인 캐나다 공군의 CF-101B < 출처 : Public Domain >
장거리 비행 능력을 살려 전쟁이 발발하면 소련의 폭격기가 제일 먼저 등장할 북극권 영공 방어 임무에 투입되었다. NORAD(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통제에 따라 미 공군의 F-101이 알래스카를, 캐나다 공군의 CF-101이 캐나다 북부 영공을 담당했다. 이후 F-102를 대체할 F-106이 배치되자 한동안 임무를 나누어 수행하다가 절반 가까운 390여 기가 정찰기나 훈련기로 개조되었다.
1967년 베트남에서 정찰 활동을 벌이는 RF-101A. 유일하게 비전투용인 정찰기로 개조된 F-101이 실전에 투입되었다. < 출처 : Public Domain >
실전 투입은 정찰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초반에는 미 공군의 주력 정찰기로 운용되었다. 특이한 점은 정찰기형은 고정 무장은 갖추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곧바로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핵폭탄 투하 능력도 보유했다. F-101은 설계상 문제로 임무 수행이나 훈련 중 기동에 엄격히 제한을 가한 덕분에 1961년까지 미 공군에서 가장 사고율이 낮은 전투기라는 반갑지만은 않은 타이틀을 보유했다.


변형 및 파생형

YF-101A : 프로토타입. 29기
 
F-101A : 장거리 호위 전투기로 계획되었다가 전폭기로 탄생한 초기 양산형. 77기

F-101A < 출처 : Public Domain >
NF-101A : GE J79 제트엔진 테스트기. 1기 개조
 
YRF-101A : F-101A 기반 단좌정찰 시제기. 2기 개조
 
RF-101A : F-101A 기반 단좌정찰기. 35기 개조
RF-101A < 출처 : (cc) 玄史生 at Wikipedia.org >
F-101B : 복좌 장거리 요격기. 367기
F-101B < 출처 : Public Domain >
CF-101B : 캐나다군용 복좌 장거리 요격기. 112기
CF-101B < 출처 : (cc) Ahunt at Wikipedia.org >
RF-101B : CF-101B 기반 정찰기. 22기 개조
RF-101B < 출처 : Public Domain >
TF-101B : F-101B 기반 훈련기. 후에 F-101F로 재명명. 79기
TF-101B < 출처 : (cc) RSafn1949 at Wikipedia.org >
EF-101B : F-101B 기반 전자전기 훈련기. 1기 개조
EF-101B < 출처 : Public Domain >

F-101C : 기체 골격이 강화된 개량형. 47기

F-101C < 출처 : (cc) RuthAS at Wikipedia.org >
RF-101C : F-101C 기반 정찰기. 166기
RF-101C < 출처 : Public Domain >

F-101D : GE J79 엔진 환장 제안형
 
F-101E : GE J79 엔진 환장 제안형

F-101F : F-101B 복좌형의 개량모델로 전투임무능력을 모두 보유하여 전투에도 투입되었음.

F-101F < 출처 : US Air Force >
RF-101G : F-101A 기반 주방위군용 정찰기. 29기 개조
 
RF-101H : F-101C 기반 정찰기. 32기 개조


제원 [F-101B]

- 형식 : 쌍발 터보제트 전투기
- 전폭 : 12.09m
- 전장 : 20.55m
- 전고 : 5.49m
- 주익 면적 : 34.2㎡
- 최대 이륙 중량 : 23,768kg
- 엔진 : 플랫 휘트니 J57-P-55 터보제트(후연기 가동 시 16,900파운드)×2
- 최고 속도 : 마하 1.72
- 실용 상승 한도 : 17,800m
- 최대 항속 거리 : 2,450km
- 무장 : AIM-4×4 또는 AIM-4×2 + AIR-2×2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