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의 역사

체코는 기계 공업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다. 1918년 슬로바키아와 함께 나라를 이루어 독립하기 이전에는 각종 무기를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기계 장비와 부품을 생산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심장부였다. 20세기 후반의 냉전 시기에는 T-55, T-72 등을 면허 제작해서 인근 바르샤바 조약국을 비롯해 많은 제3세계 국가에 공급했는데 경우에 따라 소련제 오리지널보다 선호되었을 정도였다.

이런 오래된 기반과 기술력이 있었기에 제1차 대전 이후 탄생한 체코슬로바키아는 약소국 임에도 상당수의 무기를 자체 개발해서 군대를 무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만 놓고 본다면 워낙 내수가 작아 무기 제작 업체들은 구상단계부터 수출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1935년 슈코다(Škoda)에서 개발한 LT vz. 35(이하 LT-35)도 배치와 동시에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 수출되었던 경전차였다.

그러나 일선에서 운용해 본 결과 개발 당시에 예상치 못했던 이런 저런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더불어 나치의 위협이 노골화하자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은 ČKD에 후속 전차의 개발을 의뢰했다. ČKD는 시간 절감을 위해 전혀 새로운 전차 대신 슈코다와 공동 생산 중이던 LT-35의 개량에 초점을 맞추었다. LT-35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동급 전차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으므로 기동력 향상에 신경을 썼다.

지금은 MBT(주력전차)가 전차로 벌이는 모든 임무를 담당하지만 195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기술력, 특히 엔진의 성능이 떨어져서 임무별로 경전차, 중형전차, 중전차를 별도로 운용했다. 그중 장갑을 두텁게 할 수 없는 경전차는 기동력으로 방어력을 대신하려 했다. 당시 대전차포의 정확도나 연사력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생각일지 모르나 사실 전차가 아무리 빨라도 초음속으로 나는 포탄보다 빠를 수는 없다.

어쨌든 당시 유행을 좇아 적의 공격을 기동력으로 회피할 수 있다고 본 ČKD는 커다란 보기륜을 4개로 단순화 했다. 덕분에 LT-35보다 정비가 용이하고 안정성도 대폭 향상되었다. 개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불과 1년 만에 시제작이 완성되었고 곧바로 실시된 각종 시험에서 군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충족시켰다. 이에 당국은 LT vz. 38 경전차(이하 LT-38)라 명명하고 즉시 150대를 생산을 지시했다.

개발과 동시에 페르시아, 스웨덴, 스위스, 페루, 라트비아 등에서도 약 150여대를 주문했다. ČKD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더불어 알음알음 저렴하지만 좋은 경전차라고 소문난 상태였다. 그러나 양산이 본격 시작되기 전에 LT-38의 운명이 엉뚱하게 바뀌는 사건이 벌어졌다. 갖은 협박으로 수데테란트를 차지했음에도 성이 차지 않았던 독일이 1939년 3월, 체코를 강제 합병하고 슬로바키아를 괴뢰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독일은 아직 공장에서 출고도 되지 않은 9대의 LT-38 초도 물량을 노획해 평가를 했는데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성능이 독일의 1호, 2호 전차를 압도하고 한창 개발 중인 3호 전차와 맞먹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독일이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보유한 전차의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제1차 대전 패전 후 개발과 보유를 금지당해 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침략 목표로 상정해 놓았던 폴란드는 물론 프랑스, 영국, 소련과의 대결을 위해 당장 좋은 전차가 필요했던 독일에게 LT-38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1938년 5월, 독일은 체코산 38년식 전차라는 Panzerkampfwagen 38(t)라는 독일군 제식명을 부여하고 ČKD에게 양산을 재개하도록 지시했고 이후 제2차 대전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때문에 LT-38은 엉뚱하게도 독일의 38(t)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

특징

LT-38은 3,7cm ÚV vz. 38 주포를 탑재했다. 1934년에 국내 개발한 3,7cm KPÚV vz. 34 대전차포를 개조한 것으로 1,000m 내에서 30mm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이는 기관총이 주무장인 독일 1호 전차, 20mm 기관포를 장착한 독일 2호 전차를 완벽하게 압도한다. 독일 3호 전차 초기형이 동일한 구경의 3.7cm KwK 36 L/45 주포를 장착했지만 관통력에서 LT-38에게 조금 밀린다.

75mm가 넘는 주포로 무장한 독일 4호 전차, 소련 T-34 등에게는 뒤지나 이들이 중형전차여서 LT-38와 직접 비교는 타당하지 않다. 한마디로 체급을 고려할 때 당대 최강의 경전차라고 평가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 부무장으로 탑재한 2정의 국산 7.92mm ZB-53 기관총은 영국이 면허 생산했을 만큼 성능이 좋은 기관총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 규격을 따르고 있어서 독일군이 노획해 사용하는데 탄 보급에 문제가 없었다.

LT-38은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전차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포탑이 작아 탑승 여건이 좋지 않았고 회전이 수동으로 이루어져 비교 대상인 3호 전차보다 작전 효율이 떨어졌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어쩔 수 없이 방어력이 나쁘다는 점이었다. 38(t) 후기형의 경우 장갑이 50mm까지 증가되었으나 1941년 발발한 독소전쟁에서는 전면에 세우기에 부족한 수준이었다.

엔진은 선체의 후면에 장착되었고 궤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2개의 지지륜이 있기는 하나 고무가 붙은 4개의 커다란 보기륜으로 최대한 단순화시킨 구조다. 덕분에 전작인 L-35 보다 도로에서 최고 속도가 시속 8km 정도 증가된 시속 42km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고 엔진의 힘이 부족해서 야지에서 주행력은 무게가 두 배가 더 나가는 3호 전차에 비해 오히려 떨어지는 편이었다.

---

운용 현황

L-38은 1942년까지 ČKD에서 총 1,414대가 제작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전차치고는 많은 수량이라 볼 수 없지만 독일 1호, 2호 전차, 소련 T-26 등에서 보듯이 전간기에 개발된 경전차들이 전쟁 초기에 급속도로 퇴출되었고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무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수량이라 할 수 있다. 1945년까지 전량 독일과 추축국이 사용해서 전사에는 38(t)로 더욱 많이 언급된다.

인상적인 활약은 독일의 전차가 충실하지 못했던 전쟁 초기에 있었다. 특히 1940년 프랑스 침공전에서는 독일이 보유한 10개 기갑사단 중 3개 사단이 L-38로 무장했을 정도였다. 1941년 발발한 독소전쟁에서도 활약했으나 손실이 커서 2선에서 작전을 펼치거나 헝가리, 루마니아 같은 추축국에 공여되었다. 전쟁 중반기 이후에는 구축전차인 마더 III(Marder III)나 헤쳐(Hetzer) 등으로 개조되거나 개발 기반이 되었다.

---

변형 및 파생형

LT vz. 38 : 체코슬로바키아군용. 납품 무산.

38(t) Ausf. A : 독일이 노획한 LT vz. 38 초도 양산형. 150대 생산.

38(t) Ausf. B : 점령 이후 독일제 무전기 등을 장착한 양산형. 110대 생산.

38(t) Ausf. C / D : 전면 장갑 등을 강화한 양산형. C형 110대, D형 105대 생산

38(t) Ausf. E / F : 측면, 포탑 장갑을 강화하고 서스펜션을 개량한 양산형. E형 275대, F형 250대 생산

TNHP : 이란 공급용. 50대

LTP : 페루 공급용. 24대

LTH : 스위스 공급용. 24대

LTL : 리투아니아 공급용. 납품 무산.
 
TNH : 스웨덴 공급용. 납품 무산.
 
Strv m/41 SI : 스웨덴 면허 생산형. 116대.

Strv m/41 SII : Strv m/41 SI 장갑 강화형. 104대.
 
Pansarbandvagn 301 : Strv m/41을 개조한 APC. 220대 개조.

Stormartillerivagn m/43 : Strv m/41 SII 차체를 이용한 구축전차. 36대.

Marder III (Sd.Kfz. 138) : 7,5cm Pak 40 대전차포 탑재 구축전차.

Marder III (Sd.Kfz. 139) : 노획 후 개조한 7,62cm Pak 36(r) 대전차포 탑재 구축전차.
 
Sd.Kfz. 138/1 Grille : 15cm sIG 33 중포 탑재 자주포.

Flakpz 38 (Sd.Kfz. 140) : 2cm Flak 38 탑재 자주대공포.

Sd.Kfz. 140/1 Aufklärungspanzer 38mit 2cm KwK 38 : 20mm 기관포 탑재 정찰차. 70대.
 
Sd.Kfz. 140/1 Aufklärungspanzer 38mit 7,5cm K 51 L/24 : 7,5cm 주포 탑재 정찰지원전차. 2대.
 
Jagdpanzer 38 : 7.5 cm PaK 39 대전차포 탑재 구축전차. 2,800여대.

G-13 : 전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제작한 스위스 납품용 Jagdpanzer 38.
 
Nahkampfkanone 1 : 스위스 시험제작 구축전차. 1대.

---

제원[38(t) Ausf. C]

- 생산업체: ČKD
- 중량: 9.5톤
- 전장: 4.61m
- 전폭: 2.14m
- 전고: 2.40m
- 장갑: 8mm~30mm
- 무장: 37mm KwK 38(t) L/47.8 포×1
           7.92mm ZB-53 기관총×2
- 엔진: Praga Typ TNHPS/II 6기통 수랭식 가솔린 엔진 123.3마력(91.9kW)
- 추력대비중량: 13.15마력/톤
- 서스펜션: 판스프링
- 항속거리: 250km

---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