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2.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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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백과]

드와탱 D. 520 전투기

너무 늦게 등장한 프랑스의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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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탱 D.520은 준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실전배치가 늦어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개발의 역사


복엽기는 제1차 대전 당시 주력으로 활약했으나 고속 비행에 적합하지 않기에 1920년대 말이 되자 자연스럽게 단엽기로의 세대 교체가 시작되었다. 일단은 기존 복엽기를 개량하는 방식이었으나 성능을 어느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단엽기로써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달라져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된 연구와 실험을 발판으로 1930년대가 되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투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제1차 대전 당시의 복엽기처럼 고정식 강착 장치와 개방형 캐노피 구조를 가진 드와탱 D. 500. < 출처: (cc) G.Garitan at Wikimedia.org >
종종 간과하는데 피스톤 엔진 전투기에 관한 기술력은 193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제2차 대전을 통해 꽃을 피웠고 종전 후 제트기 시대가 도래하자 마치 브라운관 TV처럼 순식간 사라져 갔다. 다시 말해 역사상 최고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은 1930년대에 개발되어 1940년대 초반까지 활약한 것들이다. 오늘날 마음을 먹는다면 더 좋은 피스톤 엔진 기체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무기로서의 가치가 없다.
D. 520 채택 전에 주력 전투기 역할을 담당한 모랑 솔니에 M.S.406. 최고 속도가 시속 450km 정도여서 Bf 109와 대적하기 곤란했다. < 출처: (cc) Kogo at Wikimedia.org >
항공 분야의 선도국 중 하나인 프랑스도 단엽기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제1차 대전 후 국방 정책이 마지노선 같은 방어물 구축에 투자가 우선 시 되면서 전투기 개발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고 호전성을 드러내자 더 이상 가만있기 곤란했다. 더구나 독일은 Bf 109의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고 동맹국인 영국이 이에 맞서 스피트파이어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중이었다.
이스파노 수이사 12 기통 수랭식 엔진의 초기형인 12Ybrs < 출처: (cc) Pline at Wikimedia.org >
반면 프랑스가 1935년 배치를 시작한 전금속제 단엽전투기 드와탱(Dewoitine) D. 500은 기본 구조가 1920년대 복엽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성능이 미흡했다. 최고 시속이 410km에 불과해 배치와 동시에 구식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상될 정도였다. 이를 개량한 D. 510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프랑스 항공성은 양산을 중지시키고 1936년 6월 15일, 새로운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드와탱 D.520은 1938년 초도비행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성능은 부족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이에 드와탱은 물론 SNCAO, 코드론르노(Caudron-Renault), 모랑솔니에(Morane-Saulnier) 등의 쟁쟁한 제작사들이 경쟁에 참여했다. 드와탱의 엔지니어 카스텔로(Robert Castello)는 이스파노 수이사(Hispano-Suiza) 12Y 엔진을 기반으로 시속 450km로 비행할 수 있는 D. 513을 당국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미 시속 500km를 훌쩍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스피트파이어, 허리케인을 시찰한 항공성 관계자들의 눈에 들지 못했다.
드와탱 D.520은 1939년이 되어서야 만족스러운 성능을 낼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주변 열강, 특히 적성국인 독일이 신예기를 본격 배치하기 시작하자 조급했던 항공성은 1937년 1월 12일, 4,000m에서 시속 520km로 비행할 수 있고 15분 내에 8,000m까지 상승 가능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개발을 독려했다. 이에 카스텔로는 대대적으로 기체를 재설계하고 보다 강력한 12Y-21 엔진으로 환장한 드와탱 D. 520(이하 D. 520)을 개발해 1938년 10월 2일 초도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D. 520은 제2차 대전이 발발 이후인 1940년 1월이 돼서야 배치가 시작되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실험 속도가 시속 480km였고 엔진 냉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등의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으나 여타 성능은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었다. 내일 전쟁이 벌어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국이 긴장된 만큼 개선에 박차를 가해 1939년 6월 마침내 D. 520은 당국이 요구한 모든 수치를 초과 달성했다. 결과에 고무된 항공성은 D. 520을 신예기로 선정하고 510기를 발주했는데 두 달 후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드와탱 D. 520은 성능이 준수했지만 등장이 늦어 전쟁사에 커다란 전과를 남기지 못했다. < 출처: (cc) PpPachy at Wikimedia.org >
폴란드 항복 후 독일과의 전쟁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당국은 2,250기 획득으로 계획을 바꾸고 월 350기 씩 납품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1940년 5월 10일, 독일의 침공 당시까지 제작된 246기 중 79기만 납품되었고 6월 25일 항복할 때까지 생산된 437기 중 351기만 전투에 투입될 수 있었다. 때문에 Bf 109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기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사에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지는 못했다.


특징

D.520은 고속 비행에 적합하도록 기골이 단순하지만 상당히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일러론 같은 일부를 제외하고 외피 대부분이 금속인데 정비와 보수가 용이하도록 탈부착이 가능한 판넬로 제작되었다. 외형상 특이점은 전쟁 말기 미 해군의 주력이던 F4U처럼 기수가 길어 조종석이 상당히 뒤편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하방 관측에는 유리했으나 지상 활주나 이륙 시 전방 시야 확보에 애를 먹었다.

D.520은 연료 탱크가 엔진과 조종석 사이에 설치되면서 기수가 길게 설계되었다. < 출처: (cc) PpPachy at Wikimedia.org >
이러한 구조로 설계된 이유는 항속 거리를 늘리기 위해 주익 외에 엔진과 조종석 사이에도 연료 탱크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P-51처럼 조종석 뒤에 장착하는 여타 기종과 비교하면 특이한 방식이라 할 수 있지만 연료 공급과 내부 구조를 단순화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효율적이다. 다만 자동 밀봉 기능이 있음에도 유사시 화재 발생 위험성이 커서 조종석 내에 자동 소화 설비가 장치되어 있다.
D.520의 칵핏. 판넬이 한눈에 보기 쉽게 제작되었다. < 출처: (cc) PpPachy at Wikimedia.org >
수직 급강하 시험 비행에서 시속 83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을 만큼 안정성이 탁월했지만 일선의 조종사들은 전반적으로 다루기가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당시 등장한 대부분의 신예 전투기들을 제대로 조종하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했으므로 이를 D.520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프랑스는 노획한 Bf 109E와 비교 실험을 한 결과 상승력 정도를 제외하고 성능이 대등하다고 평가했다.

운용 현황
1940년 기준으로 D. 520은 최고 수준의 전투기였으나 생산량도 적고 군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 출처: Public Domain >
전쟁 발발 당시에 독일 공군의 전력은 연합군의 2배에 달했다. 이처럼 수적으로 격차가 벌어졌지만 질적 차이는 더욱 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는 항복 전까지 351기의 D.520를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던 반면 독일은 1,000여 기의 Bf 109기를 프랑스 침공전에 할당했다. 거기에다 연합군 사령관 가믈랭이 전력 보존을 핑계로 출격을 자제시키고 후방 작전에 투입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충수까지 두었다.
프랑스는 항복 직전까지 도합 350여대의 드와탱 D.520을 투입할 수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남부에서 침공한 이탈리아 공군과의 대결에서 114기 이상을 격추시켰으나 80여 기를 상실했다. 약간 우세한 결과지만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이 MC200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프랑스가 항복하기 직전에 영국으로 탈출한 극히 일부와 작전 중 상실한 손실분을 제외한 잔여 D.520는 괴뢰 정권인 비시 정부에 귀속되었다. 독일은 추가 생산을 허락했으나 프랑스 내에서의 운용을 금지시켰다.
나치에 의해 생산이 재개된 드와탱 D.520의 생산라인 < 출처: Public Domain >
때문에 식민지인 시리아, 레바논에 위치한 식민지군과 알제리(당시는 프랑스 직할 영토) 주둔군에서 운용되었고 주로 영국과 교전을 벌였다. 많은 전투를 치렀음에도 영국도 구닥다리 전투기를 투입했을 만큼 전쟁 전체로 볼 때 중동은 2선급 전선이어서 전과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1943년 알제리가 해방된 후에는 연합군 소속으로 작전에 나섰으나 전쟁 중반기 이후에 활약한 여타 전투기에 비해 성능이 뒤져 최전선에서 활약을 하지 못했다.
나치에 대항한 자유 프랑스군 소속 D. 520 < 출처: Public Domain >

변형 및 파생형
르부르제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D.520 전투기 < 출처: (cc) Duch.seb at Wikimedia.org >
D.521 :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 장착형. 1기 제작 후 항복으로 개발 취소
 
D.522 : 앨리슨 V-1710 C-1 엔진 장착형. 항복으로 개발 취소
 
D.523 : 이스피노 수이사 12Y-51 엔진 장착형. 항복으로 개발 취소
 
D.524 : 이스피노 수이사 12Y-89ter 엔진 장착형. 항복으로 개발 취소
 
HD.780 : 수상기형. 항복으로 개발 취소
 
D.550 : 속도 테스트용 실험기. 1기 제작
 
D.520 아멜리오(Amélioré) : 성능 개선 실험기. 1기 제작

제원

전폭 : 10.2m
전장 : 8.6m
전고 : 2.57m
주익 면적: 15.87㎡
최대 이륙 중량 : 2,677kg
엔진: 이스파노 수이사 12Y-49 수냉식(950hp)
최고 속도 : 560km/h
실용 상승 한도 : 10,000m
전투 행동 반경 : 1.250km
무장 : 20mm 이스파노 HS.404 기관포 1문
7.5mm MAC 1934 기관총 4문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