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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사

핵경쟁과 미사일 공백

핵무기의 등장은 전쟁사상과 전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모든 것을 파괴시켜버리는 절대무기인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냉전의 숙적인 미국과 소련은 서로 핵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국력을 집중했다. 애초에 핵무기의 투발은 B-29와 같은 전략폭격기에서 이뤄졌으며, 전략폭격기 경쟁에서는 단연 미국이 앞섰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B-29 에놀라 게이(좌)와 B-29를 모방한 소련의 Tu-4(좌) 전략폭격기 <출처: Public Domain>

소련은 B-29를 카피한 Tu-4와 같은 전략폭격기를 만들면서 미국을 뒤쫓고자 했지만, 기술과 생산력에서 미국을 쫓아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핵폭격을 위한 최단거리인 북극 상공을 놓고 보면, 소련은 미국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기에 지리상으로도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 폭격기 전력을 꾸준히 늘리면서 이를 추격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소련은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먼저 개발하여 1957년 10월 R7 세묘르카의 발사(정확히는 인공위성인 스푸트닉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소련의 갑작스러운 ICBM 개발 성공에 미국은 크게 당황했다. 미국은 미사일 경쟁에서 밀렸다고 판단하고 소련과의 미사일 공백(missile gap)을 메우기 위해서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핵투발수단의 개발에 집중했다. 우선 ICBM 전력을 따라잡기 위하여 아틀라스(Atlas) 미사일을 개발했고, 수적 열세를 상쇄하기 위하여 미니트맨(Minuteman) 미사일을 양산했다.

소련의 SLBM 개발

그러나 소련은 ICBM에 이어 또다른 분야에서 미국에 앞서 있었다. 소련은 2차대전 직후 나치가 개발하던 신무기들을 확보하여 완성시켜 나갔는데, 프뤼프슈탄트(Prüfstand)XII가 그 중 하나였다. 프뤼프슈탄트XII의 사업개념은 V2 로켓을 별도의 잠수 컨테이너에 수납하여 잠수함으로 견인하다가 사거리 내에 들어오면 부상하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었다. 즉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의 초기 형태였다.

소련은 전후에 프뤼프슈탄트XII 발사대를 입수하고 역설계하여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골렘II’ 견인발사대를 완성했다. 그러나 곧 견인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발사대 자체를 잠수함 내에 수납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줄루급 잠수함이 개발되었으며, 1955년 9월 16일 B-67 잠수함이 R-11FM (NATO명: 스커드 A)을 발사함으로써 R-11은 세계 최초의 SLBM이 되었다. 그리고 1959년 소련은 R-13 SLBM (NATO명: SS-N-4 Sark) 줄루5급과 골프급 잠수함에 싣고 실전배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배치한 줄루와 골프급은 디젤-전기 추진방식의 재래식 미사일 잠수함(SSB)이었다. 크기가 한정될 수 밖에 없는 디젤잠수함에 미사일을 탑재하다보니, 미사일 발사관이 잠망탑에 내장되는 형식이어서 커다란 잠망탑을 특징으로 했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한계는 발사방식이었다. 줄루급이나 골프급이 탄도미사일을 쏘려면 수면 위로 부상해야만 했다. 게다가 R-13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600km에 불과했다. 미사일 발사관도 2개(줄루급)나 3개(골프급)가 전부였다. 이에 따라 핵투발수단으로서의 전략적인 가치는 지극히 제한되었다.

SLCM이 아니라 SLBM으로

한편 같은 시기 미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미 공군의 핵전력 독점에 대응하여 미 해군은 잠수함발사 순항미사일(SLCM; Submarine-launched cruise missile)의 개발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나치의 V1을 모방하여  JB-2 룬(Loon)을 개발하여 1945년부터 1950년까지 기나긴 시험평가를 실시했지만 신뢰성이나 정밀도가 너무도 낮아 실전배치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개발한 SSM-N-8 레귤러스 순항미사일은 당대로서는 나름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였다. 미 해군은 1954년부터 레귤러스 I을 실전배치함으로써 소련보다 앞서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SLBM의 개발을 추진한 알레이 버크 해참총장(좌)과 개발전권을 위임받은 윌리엄 라본 제독(우) <출처: 미 해군>

그러나 해군은 막상 SLBM의 개발에는 소극적이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미 1954년부터 해군에게 해군용 ICBM의 개발을 재촉했지만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1955년 새롭게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알레이 버크 제독은 SLBM의 개발을 독촉했다. 미 해군은 전후에 V-2 미사일을 항모에서 시험발사를 실시하면서 액체연료 때문에 커다란 사고를 모면할 뻔한 경험이 있어 액체연료방식인 당대의 탄도미사일에 대해 거리낌이 있었다. 버크 총장은 SLBM을 개발할 책임자로 윌리엄 라본(William Francis Raborn, Jr., 1905-1990, 1965년 CIA 국장을 역임) 준장을 임명했고, 해군성 장관과 총장에게 직보할 권한을 갖게 된 라본은 폰 브라운이 개발한 PGM-19A 쥬피터 IRBM(I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나섰다.

물론 해군의 걱정은 새로운 SLBM의 개발에 반영되어, 1956년 초 해군은 고체연료방식으로 전환한 주피터 S의 개발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동년 12월에 이르자 해군은 주피터 S의 개발을 중단하고 완전히 새로운 SLBM을 개발하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한 세미나에서 버크 총장은 '수소탄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 1908-2003) 박사로부터 수 년내에  소형 탄두형태로 탑재할 수 있는 메가톤급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다고 의견을 듣고 굳이 주피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형 SLBM의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폴라리스(Polaris, '북극성'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고, 발사체는 록히드(Lockheed Corporation), 추진체는 에어로젯( Aerojet General)이 개발을 담당했다.

폴라리스 A1의 개발

개발단계에서부터 폴라리스는 잠수함에서의 수중발사를 상정했다. 이에 따라 발사전에 탐지가 불가능하다는 장점에 더하여, 폴라리스 미사일에는 관성항법시스템이 탑재되어 더욱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폴라리스에는 SSM-N-ooo이나 USM-N-ooo 같은 제식명칙이 붙지 않았고 우선 A1이라는 약칭이 붙었다. 한편 미사일의 개발과 함께 플랫폼이 될 잠수함의 개발도 진행되었는데, 버크 총장은 아이젠하워 정부에 SLBM 16발이 탑재가능한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40척이 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핵 억제가 가능하다고 강변했다. 결국 신형 전략원잠(SSBN; Submarine, Ballistic missile, Nuclear-powered)은 41척을 만들기로 결정되었다.

폴라리스 A1은 주피터 S에 비하여 현저히 작고 가벼운 미사일로, 잠수함에 탑재하기 적절한 크기였다. 함내에서 로켓모터에 점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판단하에 개발진은 '콜드 런칭(Cold Launching)'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우선 가스압으로 미사일을 잠수함에서 수면까지 밀어낸 이후에 로켓모터를 점화하는 방식이 채용되었다. 개발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1958년 9월에 폴라리스 AX가 최초로 시험발사되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후 5차례의 실패끝에 1959년 4월 드디어 최초로 발사가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1959년 9월은 해군은 드디어 폴라리스 A-1X 미사일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시험발사를 실시하여 대성공을 기록했다. A-1X의 시험발사는 1960년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폴라리스의 플랫폼이 될 SSBN의 개발도 꾸준히 추진되었다. 미 해군은 스킵잭(Skipjack)급 3번함 스콜피온으로 건조중이던 잠수함을 가져와서, 중앙선체를 40m를 늘려서 무려 16개의 미사일 발사관을 장착했다. 신형 SSBN은 한번 잠항으로 160여명이 6~70일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전략 잠수함이 바로 'SSBN-598 죠지 워싱턴(USS George Washington)'함으로 1959년 12월 진수되었다. 플랫폼이 준비되자 폴라리스 미사일과 결합되어 1960년 7월 20일 최초의 잠수함 수중발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1960년 11월 드디어 폴라리스 A-1 SLBM과 SSBN-598은 실전배치되었다.

개량형 A-2의 등장

폴라리스 A-1은 개발에서 실전배치까지 불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이 걸렸다. 개발과 시험평가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A-1의 무기체계로서의 가치는 의문이 있었다. A-1은 불과 2,200km(1,200해리)의 사거리에 정밀도(원형공산오차)는 무려 900m에 이르렀으며, 탑재하는 W47 핵탄두의 파괴력은 600kt에 불과하여 아직 메가톤급의 SLBM은 아니었다. 물론 탐지가 매우 어려운 잠수함의 특성으로 인하여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로 인한 핵 억제력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미 해군은 이에 만족할 수 없다.

 에단 앨런함에서 발사된 폴라리스 A-2 미사일(좌)과 핵폭발의 장면(우) <출처: 미 해군>

이에 따라 개량형인 폴라리스 A-2가 개발되었다. A-2는 1단의 길이가 조금더 길어져서 미사일 발사관에 꽉차는 크기가 되었으며, 2단 추진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표피는 강철을 대신하여 파이버그래스 합성수지가 사용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거리는 2,800km(1,500해리)로 증가하여, 해군이 애초에 폴라리스를 개발하면서 상정했던 목표 사거리를 달성했다. 또한 신형 항전장비를 탑재하여 정확성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폴라리스 A-2의 첫 시험발사는 1960년 11월에 실시되었다.

비로소 만족스러운 무기체계가 등장하자 미 해군은 도미닉 작전(Operation Dominic)을 감행한다. 1962년 5월 6일 SSBN-608 에단 앨런(USS Ethan Allen)함은 600kt급 파괴력의 W47Y1핵탄두가 장착된 폴라리스 A2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발사는 물론 실제 작전을 위한 발사가 아니라 SLBM의 실제 파괴력을 판단하기 위한 실탄 발사시험이었다. 발사는 태평양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는 최초이자 유일한 미국 전략 핵미사일의 실전 시험발사였다.

마지막 폴라리스

한편 폴라리스 A-1과 A-2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미국은 기존의 폴라리스와는 다른 새로운 개량형인 A-3도 동시에 개발했다. A-3는 기존의 A-1·2와는 다르게 1단과 2단 추진체의 표피에 모두 파이버그래스를 적용했고 유도부 중량도 무려 60%나 줄였다. 특히 2단은 허큘리스(Hercules Inc.)의 신형 로켓모터를 채용하여 단일노즐에 추력편향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A-3의 사거리는 무려 4,600km(2,500해리)까지 증가했다.

더욱 큰 변화는 바로 탄두의 변경으로 A-3는 탄두부를 개량하여 재진입체 3개를 탑재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각 재진입체에는 200kt급의 W58 탄두가 탑재되었다. 관성항법장치도 꾸준히 개량되어 원형공산오차는 600m까지 줄어들었다. A-3의 최초의 시험발사는 1962년 8월에 실시되었는데,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부분적 성공을 기록했다. 이후 1964년까지 A-3는 시험발사를 반복하면서 성능을 보완해 나갔다. 그리고 1964년 9월 폴라리스 A-3는 SSBN-626 대니엘 웹스터(USS Daniel Webster)함에 탑재되면서 드디어 실전배치를 시작했다.

이후 폴라리스는 제식명 UGM-27을 부여받아 A-1/2는 UGM-27A/B로 A-3는 UGM-27C로 명명되었다. UGM-27C야말로 미군이 원하던 ICBM의 능력으로 C형은 기존의 A/B형을 모두 교체하여, 1974년경에 이르면 UGM-27C 폴라리스 A-3가 미 해군의 주력 SLBM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록히드는 미 해군의 요청에 따라 1959년부터 1968년 사이의 10년간 모두 1,150발의 폴라리스 미사일을 만들었는데, 그 중 640여발이 A-3 사양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이미 1972년부터 폴라리스를 교체할 신형 SLBM인 UGM-73 포세이돈(Poseidon) C-3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폴라리스 A-3 미사일은 1981년 10월부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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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 교관을 역임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하다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한남대와 신안산대 등에서 군사전략과 대테러실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각군의 정책자문위원과 정부의 평가위원으로 국방정책에 관해 자문하고 있다.